광주 수완지구 헬기 추락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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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발생 약 두 달 전에 찍힌 사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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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14년 7월 17일, 세월호 참사 지원 활동을 마치고 복귀 중이던 강원도 소방본부 소속의 소방헬기가 조종사의 과실로 인해 도심지에 추락한 항공 사고. 이로 인해 소방헬기 노후화와 지방 소방서 환경 열악 등 한국사회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2]
다만 사고 기종인 AS365는 우리나라에 있는 헬기들 중에서 비교적 신형에 속하는 편이고, 사고 며칠 전에 대대적인 점검을 받기도 해서 기체 문제는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사고로 대한민국에서는 '''2014년 동안 육해공 모든 곳에서 큰 사고를 한 번씩 겪었다. 그뿐만 아니라 땅 속에서도 사고가 터졌다.'''
2. 사고 진행
사고 발생 시각은 7월 17일 10시 52분쯤이며, 수색을 마치고 광주공항을 이륙한 후 4분 만에 갑작스레 추락했다. 관제를 맡았던 대한민국 공군 제1전투비행단 측은 사고헬기가 비행예정 고도보다 낮게 날았고, 상승을 시도했다가 추락했다고 밝혔다. 이 소방헬기에는 조종사 정성철(52) 소방령(당시 소방경), 박인돈(50) 소방경(당시 소방위), 정비사 안병국(39) 소방위(당시 소방장), 구조대원 신영룡(42) 소방장(당시 소방교), 이은교(31) 소방교(당시 소방사)가 타고 있었으나 모두 목숨을 잃었다.
근처에 있던 차량용 블랙박스와 핸드폰 카메라로 추락 영상이 촬영 되었다.추락장면
해당 헬기는 70도에 가까운 각도[3] 로 헬기 앞 부분부터 지면에 충돌하여 탑승원 5명은 현장에서 숨졌으며, 주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인근 고등학교의 여학생이 헬기 파편에 맞아 2도 화상을 입었다.
2016년 3월 4일 최종 조사보고서가 발표되었다. 사고 원인은 다음과 같다.
상승 직진비행을 하는 도중 원인 미상의 이유로 우측 페달을 입력했고(조종중 미인지 상태에서 우측 페달을 밟은 것), 회복할 수 없는 항공기 우경사 및 급강하가 유발되어 회복하지 못하고 추락하였다. 조종사들은 항공기의 자세가 급격히 바뀌기 전 계기 관찰에 실패했고, 이로 인해 항공기의 우경사를 조기에 막지 못하였다. 또한 조종사들은 계기비행 훈련요구시간을 충족하지 못해 계기비행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계기비행을 하였으며, 강원도 소방본부의 항공구조대 지휘가 적절하지 못하였다.
3. 조종사의 의로운 행동?
목격자 증언과 촬영영상 분석 및 관계자에 의하면, 추락지점이 '''중학교'''와 '''상가단지'''와 '''고층아파트'''가 밀집한 지역(수완지구 문서 참조)이었음에도 추가적인 인명피해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추락을 시작한 헬리콥터의 자세 복구가 불가능해진 것을 순간적으로 파악한 헬기 조종사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도로쪽으로 필사적으로 진로를 바꿨기 때문으로 보인다.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조종사의 의로운 행동이라고 보기 어려운것이 공개 된 블랙박스 영상이나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기상 상황은 구름이 매우 많은 상태였어서 지상을 확인하기 힘들다고 보는것이 타당하며 기체는 이미 뒤집힌 상태였고 초과금지속도 시속 360km를 넘어 400km의 속도로 지면에 추락했다
https://rhfvm1111.blog.me/220950890087 해당 페이지 본문과 댓글 1페이지 참조
탑승자 분들을 폄하할 생각은 없으나 조사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문제점도 있었고 언론의 보도와는 많이 다른 면이 있는 만큼 사실만을 전달 했으면 합니다
막말로 유명한 이동훈이 또 이 사건에 막말을 했다가 대차게 까였다. 추락 직전에 조종사가 과연 탑승자의 생명과 민가피해 중 과연 어떤 것을 생각하였겠냐 면서 지상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행동임을 부정하고, '의로운 행동'이라며 기사를 쓰는 언론을 디스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항공 계열 사람들은 "조종사들은 추락시 피해를 최소화, 특히 기내 이외의 피해자가 추가 발생하지 않도록 비상시에 이런 방향으로 본능적으로 움직일 만큼 훈련을 받는다."며 이동훈의 생각 없음을 비난했다. 이동훈이 한 때 월간항공 기자로 일했다는 사실 때문에 정말 항공 관련자 맞느냐며 더 까인데다, 이를 지적하는 덧글을 작성한 사람들을 차단하고 덧글을 지우는 치졸한 짓거리를 하고 있음이 밝혀져 비난은 배가되었다.
12월 21일, 국가보훈처에서 순직한 소방관 5명에 대해 국가유공자 지정을 결정하였다. 유족들은 법령에 따라 고인의 국립묘지 안장, 보상금 지급, 취업 우대, 의료지원, 주택 우선분양 등의 예우를 받게 된다. #
4. 소방공무원들의 처우 개선 요구
이 사고로 순직한 이은교 소방교가 사고 1시간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소방관 국가직 전환의 당위성에 대한 기고글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
당시 2014년 여름부터 현직 소방공무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방화복과 근무복을 입고 소방공무원의 처우 개선과 국가직 전환에 대한 1인 시위를 벌이며, 본격적으로 소방공무원의 열약한 처우와 환경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현직 소방관들이 순직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고로 마련된 분향소에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조문을 위해 방문했는데, 순직한 소방관들의 동료들이 정홍원 총리의 앞에 엎드려 소방공무원들의 처우 개선을 눈물로 호소하였다. 순직한 소방관들의 유족들과 동료들이 조문을 위해 방문한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에게 소방관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정홍원 총리는 이들에게 "충분히 알겠다"라고 대답한 반면, 한편 함께 있던 남상호 소방방재청장은 오열하고 있는 이들에게 "소방공무원이 왜 이러느냐"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남 청장은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게 '누구를 위한 소방청장이냐'는 질타를 받았으며 그 후 정부조직개편을 앞두고 사임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그동안 일선 소방관들이 나서서 주도한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이 사회적인 지지를 받게 되었으며, 결국 중앙소방본부가 국민안전처로 이관되면서 단계적으로 국가직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허나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은 이후로도 계속 국회를 떠돌다가 '''사고로부터 무려 5년이 지난 2019년에서야 통과'''되면서 소방공무원은 국가직이 되었다.
5. 관련 문서
[1] 조퇴를 한 여학생으로 귀가하다가 버스정류장에 날아든 파편으로 인해 화상을 입었다.[2] 순직한 이 모 소방교가 사고 직전 자신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우리나라 소방공무원 4만여 명 가운데 260여 명만 국가직일 뿐 나머지는 지방직이며 이로 인해 만성적인 소방 예산 부족과 노후 장비화 문제 등이 나타나고 있다는 요지의 글을 올린 사실도 화제가 되었다.[3] 전투기 조차도 이정도 각도로 강하하는 경우는 드물고, 더군다나 하강을 위해서 크게 기수 각도를 낮출 필요가 없는 헬리콥터가 이렇게 떨어진 것은 조종계통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섣부른 추측은 금물.[4] 이 사건으로 시작 육해공 사고 그랜드슬램 달성.[5] 사고 헬기는 이 사건의 수습을 지원한 뒤 귀환 중이었다.[6] 전부 7월, 그것도 이 사고와 더불어 1주일 내에 다 발생했다. 더군다나 말레이시아항공 격추사건은 동일날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