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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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Cathedral of Christ the Savior
러시아어 : Храм Христа Спасителя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의 복원은 경건한 러시아 부활의 상징이다.

- 모스크바와 전 러시아의 총대주교 알렉세이 2세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정교 대성당이다.
러시아 제국황제 알렉산드르 1세는 1812년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이 친정한 러시아 원정에 맞서 승리하였다. 이후 그는 모스크바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면서 이 승리를 기념하고자 대성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황제의 명령을 받고 건축가는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대성당을 설계하고 모스크바 강가의 참새 언덕에서 공사를 시작했지만, 건설이 안전 문제로 취소되었다.
알렉산드르 1세의 후계자이자 동생인 니콜라이 1세는 대성당 공사를 재개하기로 했지만, 형이 채택한 설계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니콜라이 1세는 다른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얼마 후 하기아 소피아 성당을 참고한 새로운 설계가 완성되었다. 자리도 크렘린과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1837년 니콜라이 1세가 설계를 채택한 후로 오랜 세월이 지난 1860년에야 건물이 완공되었고, 성화 작가들을 동원하여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계속했는데 이 작업에 다시 20년이 흘렀다. 결국 1881년에 니콜라이 1세의 손자 알렉산드르 3세이 대관식을 할 때에야 대성당도 축성식을 거행하여 진정한 성당으로 거듭났다.
이 대성당은 높이 103미터, 넓이 9000제곱미터로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 되었고 인원 약 1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표트르 차이콥스키1812년 서곡을 이곳에서 초연한 1882년에서 다시 1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오랜 세월을 소모하며 지어진 대성당인 만큼 그 규모는 엄청났고, 아직까지도 세계에서 이 성당보다 높은 정교회 성당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이후 정교회가 탄압받으면서 격하되었고 결국 1931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다이너마이트로 철거해버렸다.[1] 대성당을 폭파하면서 나온 대리석 조각들을 모스크바 지하철 자모스크보레츠카야선 테아트랄나야 역을 건설하는 데에 사용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원래 스탈린은 이 자리에다가 꼭대기에 100 m짜리 블라디미르 레닌 동상이 서 있는 거대한 소비에트 궁전을 지으려고 했는데 독소전쟁 발발로 무산되었고, 결국 1950년대 중반까지 공터로 방치되다가 흐루쇼프의 지원하에 1959년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넓은 야외 수영장'''으로 재탄생되어 모스크바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가 소련 붕괴 직후에 재정악화로 수영장은 문을 닫았다.[2] 정교회가 복권되면서 모스크바 탄생 850주년을 기념해 1997년에 다시 지었다.
결국 건물 자체는 현대에 다시 지었지만, 무지하게 거대한 규모나 황금빛 가득한 화려한 장식 덕분에 러시아인들에게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나 명소가 됐다. 대성당 외부는 얼마든지 사진 촬영이 가능하나, 내부는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되어 내부 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직접 방문하거나 인터넷에 올라온 홍보용 또는 학술용 사진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대성당 자체도 진귀한 볼거리이지만, 그 주변에도 눈여겨 볼 만한 것들이 많다. 대성당 옆에는 알렉산드르 2세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알렉산드르 2세는 부황 니콜라이 1세 때 발발한 크림 전쟁에서 러시아가 처참히 패배한 원인이 뒤떨어진 사회체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개혁을 단행하기로 결심했다. 알렉산드르 2세 시대의 절정은 바로 그 유명한 1861년의 농노 해방령(Крестьянская реформа)이다. 비록 그 실효성은 미미했다고 전해지나, 사회 근본체계를 바꿔보려고 했던 알렉산드르 2세의 노력 자체는 되새겨볼 만하다. 그의 아들 알렉산드르 3세는 부황의 기념비를 세우라 명령했는데, 니콜라이 2세 때 완성되었다. 당시에는 좌우로 복도가 딸린, 상당한 규모의 기념비였다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 혁명 이후 조각상이 파괴되었으며 몇 년 후 복도까지 완전히 파괴됐다. 2006년에야 당시 모스크바 시장 유리 루즈코프가 다시 세웠지만, 복도까지는 완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복원된 이후의 성당 내부는 원래 그랬는지, 아니면 복원 비용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대체적으로 이콘을 사방 모든 벽에 도배하다시피 하는 전통적인 정교회 성당에 비해 미완성된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입구에는 대성당의 연혁과 소련시절의 박해사를 기록한 문구가 벽 전체를 메우고 있는데, 이 또한 특이한 점이다.
대성당 뒤쪽으로는 모스크바 강을 가로지르는 총대주교 다리(Патриарший Мост)가 있다. 다리 위에 서면 북쪽으로는 저 멀리 크렘린이 한눈에 들어오며, 반대쪽으로는 조지아계 러시아 미술가인 주라프 체레텔리가 만든 표트르 대제 기념비가 서 있다. 그런데 이 기념비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이 기념비가 본래는 표트르 대제를 기념하려고 만든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문에 따르면, 이 기념비는 본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으나, 미국 정부는 이 기념비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자 러시아 정부가 체레텔리에게 구입을 제안하였고 체레텔리도 이에 동의하여 전신상의 머리 부분만 교체한 뒤 모스크바 강가에 설치했다고 한다.
위치는 붉은 광장성 바실리 성당 쪽 강가로 나가면 이게 워낙 건물이 커서 잘 보이지만 보기보단 먼데,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크로포트킨스카야 역에서 하차할 것.
크고 아름다운 종소리가 유명하다. 멀리 크렘린에서도 들릴 정도다.


[1] 당시 기준으로 완공된 지 7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은 건물이라 문화재라는 인식이 약했던 이유도 있었다.[2] 겨울철에도 수영장을 개장했는데, 수영장 수온을 유지하기에 상당한 돈이 깨졌다고 한다. 그런데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까지 치달으면서 재정 악화로 수영장 운영에 애로사항이 생겼고 결국 소련 붕괴 직후에 버려져서 성당 건설이 시작될 때까지 3년 동안 방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