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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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된 건물 상상화
1. 개요
2. 역사
3. 부지 선정
4. 공사
5. 건설 중단
6. 그 후
7. 만약에 지어졌더라면?
8. 기타


1. 개요


Дворец Советов(드보례쯔 싸볘토프)/Palace of the Soviets.
20세기 중반에 소련이오시프 스탈린이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마천루였으나 실제로 세워지진 못한 건물이다. 독일게르마니아 계획과 쌍벽을 이루는, 독재자의 그릇된 과시욕의 상징물이라고 평할만 하지만, 압도적인 크기 덕분에 지금까지도 종종 주목을 받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2. 역사


1922년 12월 소비에트 대회 당시 회의 의장이었던 세르게이 키로프가 최초로 언급하였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상징하는 궁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지만, 이후 2년 동안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1924년 블라디미르 레닌이 사망한 후 한 학생이 "꼭대기에 레닌의 동상을 짓자"고 주장하면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1931년 2월 소련 정부는 공모전을 시작했다. 이 때 수많은 건축가들이 참여했는데 소련의 현지 건축가들은 물론, 프랑스르 코르뷔지에부터 미국의 건축가까지도 있었다.[1] 무려 15개의 도안이 제시되었는데, 이 중에서는 지금 기준으로 봐도 별 손색이 없는 매우 현대적인 디자인도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자국민이었던 보리스 이오판이 선정되었다. 여기에 똑같이 자국민이었던 블라디미르 슈추코와 블라디미르 겔프라이흐가 동참하면서 새로운 도안에 들어가게 된다.
이 세 명은 한 조를 구성했으며 소위 "이오판-슈추코-겔프라이흐"로 불렸다. 소련 정부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세웠다.

이오판-슈추코-겔프라이흐 조는 이에 맞춰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으나, 첫판부터 스탈린에 의해 퇴짜를 맞는 등 상당한 난항을 겪었다. 처음에는 높이가 너무 낮다고 퇴짜를 맞는 좀 황당한 일도 있었지만, 결국 네 차례 수정한 끝에 최종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높이는 무려 '''415m'''이며 첨탑을 포함해서 '''495m''', 층수는 총 '''100층'''이였다. # 참고로 70여년 뒤에 지어진 롯데월드타워가 554m로 겨우 60m 차이인데 그나마 이 쪽은 높이만 높지 옆으로는 홀쭉하지만 소비에트 궁전의 압도적인 부피까지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건물.

3. 부지 선정



철거되는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모스크바는 여느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건물들로 가득해서 이 마천루를 짓기 위한 부지를 선정하는 데 큰 난항을 겪었다. 물론 당시에는 모스크바 면적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성냥갑 아파트(일명 흐루숍카)들이 없었던 터라 시 외곽에다 짓는 것도 가능했었지만, 용도가 정부 시설인 만큼 시의 중심부에 두는 것을 원했다. 하지만 '''애초에 중심부에 오래된 건물들이 가득한데 다 때려 부수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난항이 발생했다.
그러던 중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이 최종 부지로 선정되었는데, "종교는 아편"이라는 공산주의의 전형적인 특성상 이 시설은 "공산주의를 방해하는 원흉"으로 간주되었고, 이 성당을 없애버리면 충분히 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은 1860년에 지어진 건축물이라서[2], 러시아인들에게는 철거 당시를 기준으로 지어진 지 70년 밖에 안 된 건축물이라 철거하기에는 만만하다는 이유로 , 철거 대상으로 지목되는 불운을 맞았다. 70년이나 된 건축물이 뭐가 그리 오래된 게 아니냐고 하겠는데, 원래 러시아를 포함한 서양권 국가들에는 100년 짜리가 우스워보일 만큼, 수백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건축물들이 수두룩하게 남아있다. 그래서 아우슈비츠 수용소같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건축물이 아니라면, 근현대 건축물은 문화재 취급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까 당시의 소련인들의 입장에서의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은, 2020년의 한국인들 입장에서의 상암월드컵경기장 수준으로 그리 오래된 건물로 보이지 않았을 만큼[3], 이 건물을 문화재로 보는 인식이 없었다. 결국 1931년 8월 18일부터 철거에 들어가기 시작했고, 이후 두 차례의 폭파에 걸쳐 성당은 완전히 사라졌다. 성당은 소련이 멸망한 후에 다시 세워졌다.

4.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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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공사 현장
이후 6년 간의 공백 끝에, 1937년 본격적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공사를 시작할 때 구 성당에 있던 골조를 옆으로 옮겼는데, 분명 성당을 철거했음에도 골조들은 여전히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 측에선 1943년을 완공 시점으로 잡았는데, 이는 말하자면 약 500m에 가까운 마천루를 짓기 위해 6년을 소비한다는 뜻이다. 이보다 훨씬 높은 부르즈 할리파를 짓는데 약 4,5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너무 길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1930년대는 21세기보다 기술 수준이 낮았고 높이가 부르즈 할리파보다 낮더라도 규모와 면적은 크고 웅장하기 때문에, 4년이나 5년으로는 턱없이 기간이 짧았다.
그러나 사실은 1943년으로도 많이 부족했다. 만약에 공사가 계속되었더라면 적어도 1940년대 후반에는 가야 완공되었을지도 모르는데, 제정 시절에 성당을 짓기 전부터 부지가 원래 늪지여서, 고층 건물을 지으려면 독일에서 히틀러가 추진했던 게르마니아 계획처럼 상당한 기초공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의 침공 전까지 1937년 이후 약 4년 간 기초공사만 한 상태였다. 물론 그래도 공사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5. 건설 중단


그러나 1941년에 독소전쟁이 일어나자 이 희대의 국난 앞에서 소련 정부는 즉각 이 마천루의 공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라가 나치에게 넘어갈 판에 마천루 공사를 계속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껏 기초를 다 쌓아놨는데 이걸 철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놔둘 수도 없었기에 소련은 기초 자재들을 해체하기로 결심하고, 이를 이용해 모스크바 앞에 대전차 방어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얼마 못 가 독일군이 서서히 철수하기 시작했으나, 당장 독일군이 전쟁 중 파괴한 건물들을 복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남은 자재들을 독일군이 파괴한 시설들을 복원하는 데 사용했다.
1945년에 독일이 패망하며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피해가 극심했기 때문에 재건에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마천루 공사를 재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재추진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건축가가 전쟁 중 사망한데다 도안마저 소실되었고, 결국 공사는 영영 중단되었다. 이후 이 마천루를 추진하는 데 앞장섰던 스탈린은 1953년 사망했고, 후에 집권한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에 들어가면서 그나마 남아있던 골조들도 죄다 철거되었다.

6. 그 후


흐루쇼프에 의해 소비에트 궁전 건설 계획은 완전히 백지화 되었고 1960년에 수영장이 완공되면서 모스크바 시민들의 휴양시설이 되었다. 참고로 당시 모스크바 시민들의 반응은 수영장 건설에 대해서는 약간 떨떠름했는데 태초에 성당이 있었고 마천루를 짓겠다고 하면서 성당을 철거한 뒤에 쓰레기장이 되었다가 결국에는 들어서게 된 건 수영장이었다는 반응이었다.
원래는 마천루 세울 땅이였다 보니 부지가 꽤나 커서 이왕에 수영장을 짓는 김에 크고 아름답게 지었는데 어찌나 크던지 한 때는 이 수영장이 세계 최대의 야외 수영장이었고 거기에다가 수영장 시설도 당대 기준으로는 최신식으로 공을 들여서 겨울철에도 영상 30도 이상의 수온을 유지할수있었고 그 덕택에 '''야외수영장이었음에도 겨울철에도 문을 열었다.'''[4] 그렇게 모스크바 수영장은 30년간 모스크바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휴양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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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수영장의 모습
그래도 아쉬웠던 것이 있었기도 했고, 수영장 시설이 점차 노후화되면서 수영장을 재개발해서 박물관을 지으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무산되었다. 1980년대 후반 소련에 자유화 물결이 일면서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재건에 들어가자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수영장 자체는 9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었지만 90년대 초반 신생 러시아의 혼란상 속에서 수영장 운영에 수익을 제대로 낼수없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1991년에 문을 닫았으며 3년간 수영장은 버려지는 처지가 되면서 방치되었다. 그러다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이 1994년부터 본격적인 재건축에 들어가서 2000년에 완공되었다.

7. 만약에 지어졌더라면?


그야말로 당시 최고층 빌딩이었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381m)를 제치고 '''세계 최고층 마천루'''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높이가 무려 '''495m'''이며 한때 세계 최고층 마천루였던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452m)보다도 높았으므로, 2004년 타이베이 101(509.2m)가 개장하기 전까지는 '''세계 최고층 마천루'''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예정대로 1943년에 완공되었으면 무려 '''61년''' 동안 저 기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다만 냉전 시기에는 그나마 체제 간에는 격화되지 않았었던 '마천루 경쟁'이 만약 이 건물을 만들었다면 체제 경쟁화되어 각 진영의 위신을 건 빌딩들이 미친듯이 올라가서 현실과는 또 다른 스카이 라인이 생겨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현실에서 우주 경쟁이 있었듯, 소련이 세계 최고층 마천루 타이틀을 가져갔다면 미국에서도 분명히 실제 역사보다 더 높은 건물들을 경쟁적으로 올리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이 건물을 완공했다면, 나중에 소련이 망했어도 구세주 그리스도 대성당 복원은 완전히 물 건너 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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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됐을 시 모스크바의 스카이라인을 묘사한 합성 사진.

8. 기타


동시대의 독일 나치당은 세계 수도 게르마니아를 구상하면서 국민회관[5]을 포함한 거대한 건물을 구상했지만 역시 실제로 세워지진 못했다.
훗날 같은 공산권 국가인 루마니아북한주석궁을 본따 인민궁전이란 거대한 건물을 지었다. 덩치는 소비에트 궁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쪽도 사실 어마어마하게 크다. 그리고 루마니아 인민궁전의 경우 덩치 자체는 소비에트 궁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대신 대리석만 90만 입방미터에 장식용 수정이 3500톤 이상 들어가고 건물 내에 설치된 샹들리에만 천여개가 넘어간다는 순수 돈지랄 호화 건축물이라서 다른 의미에서 만만치 않다. 게다가 루마니아의 경우, 인민궁전 건축을 포함한 차우셰스쿠의 돈지랄로 결국 동구권 붕괴 이후 인구의 10%가 해외로 돈 벌러 나가야 할 정도의 격심한 경제난에 시달려야 했다. 루마니아 인민궁전의 사례에 비하면 소비에트 궁전은 차라리 양반이라고 할 정도.
저렇게 크진 않았지만, 스탈린 시절에 스탈린 건축이라고 불리우는 나름대로 거대한 마천루들을 동유럽 등지에 많이 박아놓았다. 바르샤바같은 곳에 남아있는 스탈린 시대의 건물들은 동유럽의 극심한 반공정서에 의해 혐오시설 취급을 받고 있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3에선 욱일제국 미션 8에서 아나톨리 체르덴코 서기장이 모스크바가 욱일제국군에 합락되자 소비에트 궁전 지하 격납고에서 타임머신을 실은 트윈블레이드 헬기로 도주를 시도한다.
Workers & Resources: Soviet Republic에선 모드 건물로 등장한다.

[1] 당시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아직 냉전이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2] 정확히는 1837년에 착공해서 1860년에 완공한 건물이다.[3] 2020년 기준으로 상암월드컵경기장은 완공된지 근 20년 밖에 안됐다.[4] 다만 그렇다해도 실내수영장은 아니었기 때문에 모스크바 날씨가 영하 20도를 밑돌았을 때는 수영장 문을 닫았다.[5] Volkshalle(폴크스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