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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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기아 소피아의 그리스도[1] (데이시스 모자이크)
하기아 소피아의 성모 마리아 (쎄오토코스 모자이크)
<colbgcolor=#ddd> '''언어별 명칭'''
코이네 그리스어
Εἰκών (이콘)
현대 그리스어
Εικόνα (이코나)
러시아어
Икона (이코나)
로마자
Icon
루마니아어
Icoană (이코아너)
1. 개요
2. 정교회에서의 이콘
3. 가톨릭과 성공회에서의 이콘
4. 기타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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Μια εικόνα ισοδυναμεί με χίλιες λέξεις. (A picture speaks with thousand words)

'''그림 하나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 그리스속담[2]

정교회에서 주로 그리는 종교적인 상징물. 원래 이콘은 그림뿐 아니라 다른 예술품도 포함하지만 그림으로만 한정지어 이해하는 사람들이 몇 있다. 단어의 기원은 중세 그리스어로 '그림', '도상'을 뜻하는 'εικόν' (이콘)에서 유래되었으며, 또한 영어에서 사용되는 아이콘의 직접적인 기원이 되었다.
오늘날 남아있는 이콘으로 추측하건대, 기독교에서 이콘을 받아들인 것은 초기 공동체 사회로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론 교리나 기초적인 교리가 완성되기 이전에도 신자들은 물고기 등 상징물을 그려왔으며, 이교도의 우상숭배를 비판하던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같은 사람도 비둘기나 물고기 등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상징적 형상들을 몸에 지니기를 권하는 글을 썼다.[3] 또 문자를 아는 사람이 적은 고대 로마때 신자가 많아져 신자들을 가르칠 필요가 많아지자 가르침을 목적으로 미술과 음악을 많이 사용했다.
정교회에서는 이콘의 기원에 대해 신화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하는데, 이콘은 사람의 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직접 당신의 상을 드러낸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중세의 유명한 전설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십자가의 길을 걸을 때 성녀 베로니카가 땅에 넘어진 그리스도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쓰고 있던 머릿수건을 풀어 그의 피땀을 닦아주었는데, 그 수건에 예수의 얼굴상이 남아있었다고 한다.[4] 이 전설의 원형인, 동방정교회에서 전해오는〈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리스도의 상〉의 전승은 이러하다. 병에 걸린 에데사의 왕이 예수를 보길 간청하자 직접 갈 수 없었던 예수가 아마포 수건으로 그의 땀 묻은 얼굴을 닦자 그곳에 상이 맺혔고, 그 상을 보자 왕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이야기다. 그리스어로 "아히로피타"(αχειροποίητα, 손으로 그려지지 않은)라 불리는 이 이콘은 이외에도 과달루페의 성모의 발현과 관련된 사건에서도 비슷한 기적으로 나타난다. 이 모두가 이콘의 신비성에 대한 교회적 차원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들이다.
좀 더 전문적인 신학의 영역에서 보자면, 오랫동안 성화상 파괴론자들과 키배를 떠온 정교회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이콘을 긍정한다.
구약시대의 하느님은 절대 자신을 내보이지 않았고, 모세 같은 사람들 앞에 현현할 때도 '보면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한다. 하느님의 광채가 너무나 눈부셔서 사람이 대면하여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모습은 그림으로 그리거나 형상으로 빚을 수 있는 것을 초월한 존재였고, 구약의 하느님은 볼 수 없는 존재이니 형상을 만들어 섬기지 말라[5]고 명령한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사람들이 보고 만질 수 있는 인간적인 존재로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관점에서, 복음은 구약의 완성이므로, 구약에서 '볼 수 없는 하느님의 형상을 만들지 말 것'을 규정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 전까지의 잠정적인 것이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도래 이후에도 그리스도의 형상을 표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되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혹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임을 부정하는 이단적인 사고방식에 연결된다고 정교회에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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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그려지지 않은 그리스도〉,
시몬 우샤코프, 1658년 그림[* 이 주제의 이콘은 [[서울 성 니콜라스 대성당
서울 아현동 소재 정교회 성 니콜라스 대성당]] 내부에도 그려져 있다.]
그리스도의 얼굴이 찍힌 머릿수건을 들고 있는
성녀 베로니카의 이콘
기독교가 공인된 후 상당히 오랫동안 이콘은 그리스도교회에서 신앙행위의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었으나, 나중에는 신학 문제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콘이 우상인지 아닌지를 놓고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8~9세기는 동로마 제국 내에서 대대적인 성상파괴가 일어났다. 이러한 우상숭배 논쟁은 당시 떠오르던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 면이 있으며, 일부는 동로마 황제가 촉발하기도 했다. 동로마 제국의 레반트 지역 영토에 살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기독교의 이콘 풍습을 우상숭배로 공격하는 이슬람의 주장에 대응하여 이콘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교회의 영향력을 제어하고 싶어하던, 그리고 해당 지역의 현실을 이해하고 있던 황제들이 이런 움직임을 밀어준 것이 문제였다. 이 문제는 동방 교회에서는 몇 차례 엎치락 뒤치락 하다가 10세기에 들어와서야 공의회를 통해 이콘은 우상숭배가 아닌 공경의 형태로 정리되어 합법적인 성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서방에서는 이 기간 동안 이콘이나 성상의 사용이 특별히 문제시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동방 교회에서 주기적으로 제기되는 성상 금지 떡밥으로 인해 동서방 교회 사이의 골이 더 벌어졌다.
성상파괴운동 문서 참고.

2. 정교회에서의 이콘


정교회의 신학적 견해로는, '''모든 이콘은 거룩하고 신비롭다.''' 이 때문에 이콘이 전시된 박물관에는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이콘에 입맞춤하는 정교인도 쉽게 볼 수 있다. 열심한 신자들은 지나가다 성당십자가를 봐도 성호를 긋고 화살기도를 한다. 어떤 이콘들은 특별히 하느님의 선택을 받는데, 하느님은 그 이콘을 통해 기적의 역사를 베푼다. 성유나 알 수 없는 향을 발산하거나 병든 이를 치유하거나, 적의 공격으로부터 도시를 방어해주고 재난으로부터 백성들을 지켜주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눈에 익은 〈블라디미르성모〉가 대표적인 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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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의 성모(Θεοτόκος του Βλαντιμίρ)〉, 12세기 콘스탄티노플 학파의 무명 작가 그림
이 이콘이 크게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1395년 티무르모스크바를 침입했을 때의 일이다. 이콘을 블라디미르에서 모스크바로 급히 옮겨온 뒤 바실리 1세 대공은 그 이콘 앞에서 밤새 울면서 기도했다. 그러자 기도의 효험이 있었는지 티무르의 군대가 전투 한 번 치르지 않은 채 퇴각해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기적에 놀란 모스크바 사람들은 이 이콘을 블라디미르로 돌려주기를 거부했고, 결국 모스크바가 계속 간직하게 됐다. 이 이콘의 기적은 1451년과 1480년 타타르 무리의 침입 때도 반복적으로 나타났으며, 심지어는 1941년 독일군이 모스크바로 진격해 왔을 때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이콘을 비행기에 실어 주변 상공을 비행하도록 하자, 며칠 뒤 독일군이 퇴각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콘은 기본적으로 믿음과 영성 수양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에, 정형화된 구도와 매우 수학적이면서도 신학적인 인체비례를 적용한다. 심지어 인물이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이나 들고 있는 도구, 펼쳐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도 모두 각각의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이콘의 구도는 수백 년 동안 크게 변하지 않았다. 창작은 절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이콘화가들은 예술가라기보다는 오히려 전문장인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중세 러시아에서는 이콘을 그리는 화가들이 사제서품을 받은 신부수도자들이었으며, 이들이 이콘을 그릴 때에는 사순시기에 준하는 금식기도를 하고, 이들이 사용하는 물감까지 축복을 받았다고 한다. 오늘날 수도원에서도 이콘을 그리는 수도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도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위의 〈블라디미르의 성모〉 이콘은 전형적인 '엘레프사(Ἐλεούσα)', 러시아어로는 '우밀례니에(Умиление)'에 속한다. '자비로운'으로 해석되며, 이콘에서 성모 마리아는 아기 예수에게 친근한 듯이 얼굴을 맞대는 구도로 나타난다. 하지만 성모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슬퍼보이는데, 이는 다가올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천진한 표정은 수난의 고통을 이겨내고 부활할 것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며, 황금빛 하늘은 천상왕국의 영원성을 상징한다.

이콘은 전통적으로 널빤지 위에 캔버스천을 붙인 다음 그 위에 금박을 입히고 '템페라'라 불리는 가루물감을 달걀 흰자와 맥주로 풀어서 그리는데, 물감이 상당히 빨리 굳기 때문에 다루기가 쉽지 않다. 색칠하는 작업에도 절차가 있는데, 먼저 배경과 옷처럼 넓은 면을 먼저 칠하고, 그 다음 얼굴, 머리카락, 수염, 문구(文句)순으로 칠해나간다. 마지막으로 광택이 나는 일종의 천연랙커로 마무리하는데, 이렇게 되면 이콘이 번쩍번쩍하고 빛이 나고 단단해진다. 단 이렇게 마무리한 이콘은 성당에서 사용하는 기름등불과 촛불, 향의 연기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점점 검게 변하며 보통 70~100년마다 한 번씩 덧칠한다.
공간의 한계로 인해 이콘에 표시되는 글자는 대체로 압축되어 있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 승리자'라는 뜻의 그리스어인 '''Ι'''ησού'''ς''' '''Χ'''ριστό'''ς''' '''νικά'''는 ICXC NIKA로 압축되며,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인 '''Μ'''ήτη'''ρ''' '''Θ'''εο'''ύ'''는 ΜΡ ΘΥ로 압축된다. 이 문구는 각 정교회마다 자국어로 표기하는데, 한국 정교회 성당에 가면 한국어 이콘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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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교회의 수호성인들 중 하나인 미라의 성 니콜라스 주교.
산타클로스의 모델로도 유명하다.
사악한 용을 죽인 전설로 유명한 성 제오르지오 순교자의 이콘.
16세기 러시아 무명작가 그림. 성 제오르지오는 모스크바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이콘 공경은 3차원 도상을 인정하고 성유물에 대해 좀 더 비중을 두는 가톨릭보다 정교회에서 더 강한 편이다. 독실한 정교회 신자들은 가정에 이코노스타시(εικονοστάσι)라는 이콘을 위한 공간을 두는데, 러시아에서는 정교회 신자이든 아니든 가정집을 방문하면 그 집의 이코노스타시를 찾아가 그곳의 이콘에 성호를 긋고 친구하면서 공경을 표하는 것이 예의이다.[6] '이코노스타시'에는 적어도 3가지의 이콘이 놓여지게 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콘과 성모 마리아의 이콘, 그리고 그 가정을 수호하는 성인의 이콘이다. 이외에 케루빔세라핌 천사의 이콘과 다른 성인의 이콘을 놓기도 하며, 1쌍의 촛불, 십자고상과 기도서, 성경, 축일날 사용되는 성물들을 함께 비치한다. 또한 축복받은 이콘은 이콘 속에 묘사된 성인이 가정, 직장, 착용자를 위해 천국에서 기도한다고 믿기 때문에 집이나 사무실, 자동차에 이콘을 비치하고 목걸이로 조그만 이콘을 착용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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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져 누운 남편〉, 1881년 바실리 막시모프 그림.
이코노스타시 앞에 무릎을 꿇고 남편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는 가난한 농부의 아내가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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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 가게 되면 조그만 성당 모형 안에 이콘이 들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도로 곳곳에서 보이는데, 이것은 '이꼬노스따시오 스띠 아크리 뚜 드로무(Εικονοστάσιο στη άκρη του δρόμου)'라고 부른다. 이것은 누군가가 도로에서 사고를 당했거나 전쟁, 살인, 강도 등 불의의 이유로 사망했을 때, 그 유가족이나 그 시신을 수습한 사람들이 시신을 찾은 그 장소 위에 세워주는 일종의 추모비이다. [7] 주로 죽은 이의 주보성인의 이콘을 모셔놓는다.

3. 가톨릭과 성공회에서의 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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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이콘.
폴란드의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 이콘.[8]
가톨릭에서 볼 수 있는 이콘은 위에서 보아온 형식으로 만들어지는 것과는 좀 다른데, 사실상 '성화(聖畵)'의 역사는 서양의 미술사와 함께 하고 있다. 중세의 미술은 권력층 및 종교계와 이어져 있기 때문에 그 시대에 그려진 것의 거의 대부분이 가톨릭의 성화라고 봐도 무난하다. 이 관계는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며 헬레니즘적인 예술활동으로 치우치게 되어 점점 깨져갔고, 성화들의 형식도 많이 희석되어 세속화되었다.
가톨릭의 입장에 의하면 이콘은 하느님으로부터 기원했으며, 이콘에 대한 공경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닮은 삶을 살아가면서 그들의 믿음을 실천한 여러 성인들의 이미지를 통해 그들의 생애와 믿음을 기억하고 그들의 굳건한 믿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이다. 쉽게 말하면, 돌아가신 부모님의 사진을 보고 그들을 기억하는 것과 위인들의 동상을 보면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존경심을 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9] 그래서 가톨릭 신자의 가정이나 직장 등에서 정교회의 이코노스타시처럼 선반이나 탁자 위에 십자고상과 성화, 성상, 성경을 모시고 공경한다.
성공회에서는 이콘을 비롯한 각종 시각적 상징을 교회의 전통으로 존중하며,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성공회 신자들은 십자고상이나 성모상, 혹은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성가정을 묘사한 이콘을 보면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총을 상기하고, 삼위일체나 성서의 여러 사건들을 묘사한 이콘을 보면서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성인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보면서는 성인들이 굳센 믿음을 가지고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여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묵상한다. 주요 축일 미사(감사성찬례)때에 제대 주위를 작은 이콘들로 장식하는 성공회 성당이 많으며, 서울주교좌성당에는 커다란 '전능자 그리스도' 이콘과, 성 니콜라, 성모 마리아, 성 이사야, 성 요한 사도, 성 스테파노의 이콘이 있다.
가톨릭과 성공회에서는 정교회의 영성에 관심을 가지는 평신도들이 늘어남에 따라 정교회의 이콘을 취급하는 성물방이 많아지고 있다. 관심 있는 신자는 지금 다니는 성당의 성물방을 찾아가면 된다. 어떤 성당에서는 이콘과 십자고상을 혼합한 물품도 종종 취급하는데 온라인으로도 구할 수 있으니 비단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구입해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팔고 있는 이콘들은 사제의 축성을 받지 않은 것이라는 걸 알아두자.

4. 기타


개신교에서는 교파에 따라 이콘을 쓰고 보거나, 예배에 활용하는 것을 우상 숭배라며 금기시하기도 한다. 이런 교파에서는 예배당 내에 시각적 상징을 배치하는 것을 대단히 기피하여 십자가조차 두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만 시각적 상징을 활용하는 것이 신앙 생활에 유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교파도 있는데, 이런 교파의 교인들은 성(聖) 미술이나 이콘을 활용하는 데에도 긍정적이다.
루터교회에서는 이콘을 금기시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유럽의 경우 정교회 등과 교류하는 등 에큐메니컬 분위기의 영향으로 서방식 성상뿐 아니라 이콘도 활용하는 루터교회들이 많다. 다만 한국 루터교회의 경우 이콘을 잘 쓰지 않는데, 이는 장로회가 대부분인 한국교회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장로교 교회에는 이콘이 없지만 각 신자들이 마치 정교회 신자들처럼 집안 잘 보이는 곳에 예수 초상을 걸어놓은 경우가 아주 많다. 그게 정식 이콘이 아니라 미국에서 현대에 그려진 예수 초상화여서 문제지...[10]
성공회에서는 이콘 제작과 활용, 공경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축일 미사(감사성찬례) 때 제대 주위에 작은 이콘들을 가져다 놓는 성당이 흔하고, 성물방에서도 이콘을 판매한다. 성공회에서는 주로 성가정 이콘과 삼위일체 이콘을 애용한다. 서울주교좌성당의 전통 제대는 커다란 '전능자 그리스도' 이콘을 바라보도록 놓여 있는데, 이 '전능자 그리스도' 이콘 밑에는 성 스테파노, 성 이사야, 성모 마리아, 성 요한 사도, 성 니콜라 이콘이 있다.
한국에서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인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가 러시아에서 이콘을 배워와 가르치고 있으며,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코회 소속인 오승민 스테파노 수사가 정동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이콘을 가르치고 있다. 이 둘은 학위기관은 아니며 학위기관은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원 그리스도교 미술학과가 있다. 가톨릭, 정교회, 성공회 신자라면 누구든지 배울 수 있는 듯하다. 그러나 성공회를 제외한 개신교 신자는 성모 신심이 없어서 좀 그렇다고 한다.
이콘을 그리는 기법이 화장과 아주 유사하다. 우선 이콘을 그릴 캔버스를 준비한 다음에 그 위에 금박을 먼저 입히고, 밑그림을 그린 다음 템페라 물감을 계란 노른자로 녹인 다음에 밑그림을 따라 우선 진한 색부터 옅은 색으로 칠해나가기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덧칠을 하면서 명암을 주는 식이다. 이는 세상 창조 때 어둠속에서 빛이 만들어졌음을 뜻한다.
그리스 한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교회에서는 이콘을 다른 성물보다 더 중요시한다. 신자들이 집에서 사용하는 촛대나 향로같은 성물들은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사제가 강복하는 형태로 축복을 받을 수 있지만, 이콘은 사제가 축복받을 이콘들을 모아서 지성소 안에 있는 제대 밑에 놓고 40일동안 보관한다. 이 40일이 지나야 축복이 이루어졌다고 여긴다.
[1] '만유의 주관자 그리스도' 이콘으로 분류한다.[2] 아래에 언급했듯 이콘을 뜻하는 현대 그리스어인 εικόνα(이코나)는 고대 그리스어나 현대 그리스어나 종교화뿐만 아니라 그림 자체를 의미한다. 참고로 그리스 원문을 번역하면 '천개의 단어로' 이야기 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콘에 들어있는 수많은 상징이 복음서에 쓰여진 내용들을 자세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다.[3] L.우스펜스키,<정교회의 이콘신학>, 정교회출판사 2012, p.24[4] 베로니카 문서에도 언급되듯이 베로니카의 이콘에 대한 전설은 중세 유럽의 발명품이며, 뒤에 설명하는 원형 전승의 변형이다.[5] 신명기 4장 15절[6] 마찬가지로 정교회 성당을 방문하면 먼저 입구에서 양초를 봉헌한 다음, 앞에 모셔진 주보성인의 이콘에 친구하고 들어간다.[7] 정교회에서는 길바닥에 죽은 채 버려져 있는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는 것을 가장 큰 선행 중 하나라고 여긴다.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도 처형된 이후 농부들이 수습해서 묻어주었다.[8] 가톨릭 전승에 따르면 성모의 얼굴에 있는 긁힌 자국은 개신교도들의 반달리즘 때문이라고 한다.[9] P.30, <천주교와 개신교> 천주교 대구대교구 박도식 도미니코 신부, 가톨릭출판사.[10] 가장 흔한 것은 ‘중국에 간 미국 선교사가 눈 녹은 진흙탕을 갑작스런 충동으로 사진 찍었는데 현상해 보니 예수 초상이었다’라는 일화가 달려나오는 검정 얼룩무늬로 그려진 예수 초상. 심하면 1977년작 영화 ‘나사렛 예수’의 포스터에서 따온 예수(역을 맡은 배우)의 사진을 모신 집도 상당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