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건

 

'''이름'''
길건
'''본명'''
길건이
'''출생'''
1979년 4월 19일 (44세), 경상북도 포항시
'''신체'''
169cm, AB형
'''학력'''
포항초등학교
포항용흥중학교
포항해양과학고등학교
부산예술대학 연극과
'''종교'''
개신교
'''데뷔'''
2004년 싱글 'My Name Is KG'
'''소속'''
싸이프레스 뮤직
'''SNS'''
, [1], [2]
1. 활동
2. 사건
3. 여담 및 근황


1. 활동



데뷔 전 이효리의 뮤직비디오에 비중 있게 출연했던 길건
데뷔 전 부터 이효리의 '춤선생'[3], 이효리 안무가 등의 닉네임으로 화제를 모았었다.[4] 2004년 힙합 리듬의 싱글 앨범 'Real'로 데뷔했다. 당시에 콘로우 헤어스타일과 중절모, 정장 등 당시 섹시 컨셉 열풍이었던 여가수들이 택하지 않았던 매니쉬[5]한 컨셉트로 데뷔했다. 당연히 반응은... 영 신통치 않았다. 요즘이었다면 또 어땠을까 싶기도 한 컨셉. 나중에는 걸스힙합 컨셉으로 변경해 활동을 이어갔다.

2005년 여름, 정규 1집 파워풀한 락비트 댄스곡 ''''여왕개미''''를 발표하면서 '매트릭스 춤을 선보였다. "춤" 하면 길건이라는 등 호의적인 반응이었으며, 다른 섹시 컨셉 여가수들과 달리 안티도 없는 이미지였다. 요즘으로 치면 여자들이 더 선호한 '걸크러쉬' 느낌이었다.[6] 후속곡 '건망증'엔 무려 윤미래가 피처링을 맡았지만 큰 반응은 없었다.

2006년 2집, 고급스러운 미디움 템포 댄스곡 ''''A.U Ready?''''를 발표했다. 이는 원티드 멤버 김재석이 작곡하고 휘성이 작사 및 랩 피처링을 맡았다. 이 곡은 가수 이정MBC 예능 프로그램 <행복주식회사-만원의 행복>에서 '배추송'이라며 배추잎으로 생계를 버티자는 가사를 붙인 데모 버전을 부르기도 했는데, 추후 다듬어서 이 노래로 탄생됐다. 그래서 첫 발매됐을 때 소수의 네티즌들이 '어, 이거 배추송 아니야?'라는 반응도 있었다. 후속곡으로는 나이트 클럽풍 댄스곡 '왜 몰라'로 활동.
이 때부터 매니쉬함을 살짝 내려놓고 섹시미를 가미해 서서히 노선 변경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길건은 노래도 무난하고 안티도 없는 이미지였지만, 그냥 거기서 끝이었다. 이 말인 즉 딱히 화제성도 크게 터지지 않고, 가수로서 뭔가 큰 한 방이 절실했던 것. 이를 결심한 듯 2007년엔 작곡가 홍진영이 작곡한 댄스곡 ''''흔들어봐''''를 발표했다.[7]

2.5집 《Born Again》의 타이틀곡 ''''흔들어봐''''는 길건이 이전에 고수했던 걸크러쉬 컨셉, 보이쉬함, 파워풀함은 다 버리고 글래머한 몸매로 다른 여가수들과 같이 섹시함을 승부수로 띄운, 길건으로써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길건은 이 활동으로 몸매를 드러내는 스타일의 시원한 노출 무대 의상도 과감히 입었다. 인터뷰에서 굵은 다리에 대한 악플이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한편 이전 길건에 대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사람들은 그의 컨셉과 음악 노선에 굉장히 실망했고, 심지어 안티로 돌변한 사례도 있었다. 새로 유입된 팬들은 길건의 섹시하고 처음 보는 모습에 환호했다.
등가교환이라 했던가, 인지도와 화제성을 올린 대신 섹시 컨셉 가수들이 욕 먹는 패턴을 그대로 물려받고 만다. 다만 이 때가 길건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는 전성기라고 한다. 활발한 음악 방송과 각종 행사 출연으로 역대 음반 중 가장 많은 수익을 얻었다고... 군부대에서도 인기가 치솟아 이 곡으로 수많은 장병들이 몸살을 앓기도 했다.
후속곡으로 격렬한 비트의 댄스곡 ''''샤워''''를 발표했지만 아무로 나미에의 음성을 무단 사용했다며 표절 시비가 붙었고,[8] 이 곡을 만든 신인 작곡가 이민수[9]는 자신의 미니홈피 억울함을 표했고, 길건이 '오빠 힘내'라며 글 남겼다가 정신승리한다고 쌍욕을 먹기도 했다. 그러나 어찌 됐건 이 앨범이 길건의 가장 리즈 시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 없던 어그로를 많이 끌어 욕도 먹었지만, 대표곡이 없던 길건에게 하나 만든 계기가 됐다.

2008년엔 스타 작곡가 신사동호랭이가 작곡한 정규 3집 타이틀곡 ''''태양의 나라''''를 발표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함, 비욘세 음악이 떠오르는 브라스 사운드에 골드톤을 활용한 무대 의상, 맨발로 추는 안무 등 전작의 섹시한 컨셉트를 보강해 이어갔으나, 수많은 걸그룹 후배들에 묻혀 조용히 활동을 마감하게 된다. 본인도 활동 많이 못해본 비운의 곡이라 아쉬운지 현재까지도 길건 행사 직캠이 가끔 올라오는거 보면 자신의 대표곡인 ''''흔들어봐''''와 이 곡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몇 년 뒤...

2. 사건


소속사 대표 김태우와의 사건.
길건은 "계약된 1년 4개월 동안 음반 발매는 커녕 스케줄도 없었다", "계약 해지에 동의했더니 소울샵 측은 계약금의 두 배에 달하는 위약금을 요구했다", "김태우 대표와 김애리 이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으며, 소울샵 엔터테인먼트에 공동 기자회견은 제안했다.#
소울샵 측은 "길건에게 모두 4000만원이 넘는 돈을 지급했고, 음반 발매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도움을 주고자 한 김태우에게 오히려 길건이 협박 빛 언어폭력을 가했다"라고 주장.#
기자회견전을 벌이다가 결국 서로의 소를 취하하고 전속 계약을 해지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3. 여담 및 근황


  • 부산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대학교는 다시 부산, 그리고 댄서 일을 시작하며 서울로 상경했으며, 사실 포항에는 그다지 유쾌한 기억이 없다고 언급했다. 이유는 학창 시절 튀는 외모와 이름, 무용 수업 때문에 조금 하교를 일찍 했는데, 같은 학년은 물론 선배들까지 학교 측에서 길건만 편애한다 생각하고 재벌이라는 둥 루머를 양산하며 안 좋은 시선들 때문에 꽤 힘든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이 부단히 노력해 졸업 즈음엔 그래도 좋은 이미지로 변화시켰다고.
  • 소속사를 옮긴 후 2016년 7월, 싱글 음반 '내 아래'를 발매하고 8년만에 가수로서 활동했다. 오랜만에 뮤직뱅크 등 음악 프로 활동을 재개했으나 화제는... 이후 2017년 4월에는 드라마 '완벽한 아내' OST에 참여했다.
  • 2017년 8월 비디오스타에 출연해 2~3년 전 남자친구와 사업을 하다 실패, 떡볶이집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밝혔다.
  • 2019년 1월 31일에 '달빛 그리움'이라는 곡으로 오랜만에 음반을 발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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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건 - 달빛 그리움, 흔들어봐 (2019 원주삼토페스티벌)

[1] '''브루거니'''. '안녕하세요 가수 길건입니다. 쎈언니의 무대위 모습이 아닌 무대밑 소소하고 평범한듯 독특한 저의 일상을 함께 공유하며 소통하고 싶은 공간입니다.'[2] '''아는누나TV'''. '아(아~알고 보면)는(느~은 따뜻하고)누(누구하고나 잘지내는)나(나는 나~는 털털한 여자~)'[3] 비슷한 포지션으론 BoA 'My Name'의 댄서 가희라던지, 박지윤 '성인식'의 댄서 미나도 있다. 길건은 이효리 외에도 백지영, 왁스 등의 선배들 무대에도 올랐었다.[4] 2003년 발표된 이효리의 1집 후속곡 ''''Hey Girl'''' 뮤직비디오에서 이효리와 클럽에서 춤으로 신경전을 벌인 여성 출연자가 바로 데뷔 전 길건. 이때 이효리와 가수 이수영과 함께 셋이서 친했었다고. 다만 소속사의 춤선생 언플로 인해 인지도는 얻었지만, 이효리와의 친분이 멀어졌다고 밝혔었다.[5] 매니쉬는 남성취향의 여성패션을 총 망라해서 부르는 명칭으로 매니쉬 감각은 남성적인 옷차림에서 페미닌(Feminine)한 감각을 더해서 여성다움을 강조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출처: 최은경, 김주섭,〈미니멀리즘 특징에 보여지는 매니쉬 헤어스타일 경향〉, 《아시안뷰티화장품학술지》, 2012년 5월, p. 268.)[6] 2005년 명절 특집으로 댄스 배틀을 했을 때 라이벌로 나왔던 유니는 방청석에서 침묵으로 일관했던 것에 반해 길건의 경우 여성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었다.[7] 현재는 가수로 활동 중인 그 홍진영이 아니다. 동명이인이며 음저협 23대 회장으로 임명됐다. 이승철의 '소리쳐' 등 작곡.[8] 'No'의 가사인 'How about some sweet peach?'가 '샤워'에도 들어가 있었다. 그 외에도 '너 샤워해'라는 가사가 나오는 부분이 'I say No'의 멜로디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있다.[9] 추후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히트곡 제조기가 되는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