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남(야구선수)
1. 개요
전 삼미-청보-태평양에서 활약하던 야구선수. 인천고, 인하대를 졸업했으며, 은퇴 후 쌍방울 레이더스,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에서 전력분석원으로 근무하였다. 2014년부터 kt 위즈에서 전력분석 코치로 부임하여 2년간 코치 생활을 하였다.
2. 선수 생활
고교시절엔 인천고에서 4번타자와 핵심 투수진으로 활약하였고, 대학교 시절에도 인하대 중심타선의 축을 맡았다. 1981년 4학년 당시 백호기에서 원광대에 끝내기 3점 홈런을 기록한 바가 있다.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 창단멤버로 프로에 입문하였다. 선수 등록은 외야수로 되어있었고 실제로 외야수 출장이 더 많았지만, 원년 시즌 당시 내야, 외야 가리지 않고 포수를 제외한 거의 모든 포지션에서 활약하였다. 양승관, 금광옥과 함께 원년 삼미의 중심타선의 축을 맡았던 타자였다.
특히 처참한 투수진의 삼미에서 고등학교 당시 투수를 본 적이 있던 김경남은 1982년 4월 12일 MBC와의 경기에서 땜빵 선발로도 던지는(경기는 3이닝 2실점으로 패전) 그야말로 전천후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82시즌 삼미에서 투구를 한 선수가 단 '''8명'''[1] 에 불과하였는데, 김경남은 이 중에 야수로서 투구를 한 유일한 삼미 선수였다. 또한 82시즌에 야수로 등록된 선수가 투구를 한 것은 해태의 김성한과 김경남 둘 뿐이었다.
82 시즌에서 타율 .269라는 팀에서 좋은 타율을 보이면서 외야수로는 가장 많은 77게임에 출장, 3루타 리그 공동 1위[2] 를 기록하며 열악했던 삼미를 지탱해주었던 선수였다.
삼미에서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던 타자 중에 하나였으나 1983년 시즌 타율 .217로 부진하게 되었고, 정구선, 김대진,이영구, 이선웅 같은 취약 포지션에 보강 자원이 들어오게 되어 김경남의 자리는 없게 되었다. 84시즌 이후 2할 1푼 이상 타율이 올라오지 못했고, 팀이 청보 핀토스로 바뀐 후에도 조흥운과는 달리 성적이 부진한 이후에도 꾸준히 출장 기회는 받았으나 그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1988년 태평양 돌핀스에서도 1시즌을 더 보내게 되었으나 시즌 후 방출되었다.
3. 은퇴 이후
은퇴한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 현대 유니콘스, 넥센 히어로즈에서 다년간 다양한 팀에서 기록담당원과 전력분석원으로 근무하였고, 그에 대한 능력을 인정 받아 2014년 kt 위즈 전력분석코치로 입단하였다. kt에서는 2년간 재직하였다.
2018년 5월 23일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4. 기타
2006년 현대 기록담당원으로 근무하면서 고향 인천의 해양경찰 야구동호회와의 교류가 있었는지, 해경 야구동호회 코치로 임명된 기록이 있다.
마구마구에선 듀얼 포지션이 생기기 전엔 빼박 2루수 카드밖에 없었다. 선수 등록도 외야수로 되어있고, 내야보다는 외야수로 출장한 기록이 많지만 이를 반영하지 않아 애매한 카드 중에 하나였다.[3]
5. 연도별 주요 성적
[1] 김경남을 제외하면 삼미에 투수로 등록된 선수가 인호봉, 김재현, 감사용, 오문현, 김동철, 박경호, 한상연 뿐이었고, 그나마 오문현은 시즌 중 7월에 입단하였다.[2] 구천서, 윤동균과 타이[3] 그래서 마구마구 초창기에 어쩌다가 82삼미덱으로 게임을 한 유저들은 투수도 투수지만(딱 5명 밖에 없어서 전부 선발투수로 등록해야 덱이 완성됐다. 그런고로 82삼미덱은 투수교체가 불가능했었다.), 주전 좌익수로 박준영을 강제로 기용해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