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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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命洙
일본식 성명 : 金光命洙
1906년 ~ 1986년 10월 12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1] , 호는 일초(一初)이다.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용균이 그의 아들이다.
1906년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손목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중학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합천군에서 면장, 합천금융조합장을 역임하였다. 이 때의 경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최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최창섭 후보에 설욕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다시 자유당 최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인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초 허정의 신정당에 몸담았다가 탈당하고 자유민주당, 국민의당에 몸담았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양극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金命洙
일본식 성명 : 金光命洙
1906년 ~ 1986년 10월 12일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본관은 광산(光山)[1] , 호는 일초(一初)이다.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용균이 그의 아들이다.
2. 생애
1906년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손목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학 중학부를 졸업하였다.
이후 합천군에서 면장, 합천금융조합장을 역임하였다. 이 때의 경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대한독립촉성국민회에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상남도 합천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최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대한국민당 최창섭 후보에 설욕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다시 자유당 최창섭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경상남도 부산시(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인호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초 허정의 신정당에 몸담았다가 탈당하고 자유민주당, 국민의당에 몸담았다. 같은 해 치러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동래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양극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 37세 수(洙)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