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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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4EA2> '''이름'''
김비오(金枇澳)
'''출생'''
1968년 6월 10일 (56세)
부산광역시 영도구
'''학력'''
혜광고등학교
서울예술대학교
경성대학교 연극학과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병역'''
육군 이병 의병제대
'''가족'''
아내
'''소속 정당'''
''' '''[1]
'''현직'''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
'''경력'''
부산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정부특별보좌관
통합민주당 부산시당 대변인
영도구 지역위원장
문재인 대통령 후보 정책특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정책특보
1. 개요
2. 정치 활동
3. 여담
4. 선거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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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2. 정치 활동


2006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계에 입문하게 되고, 당시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정무특별보좌관을 지냈다. 그리고 통합민주당 부산시당의 대변인을 거쳐 김정길의 뒤를 이어 부산 영도구 지역 위원장을 맡았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도구에 출마했지만 득표율 9.53%의 최종 3위로 낙선했다.[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때에는 예비후보 시절 지지율이 상당히 높았으나[3] 당시 야권연대 과정에서 영도구를 통합진보당이 전략지역구로 선정하고 강력하게 양보를 요구해서 통합진보당의 몫이 되는 바람에 출마하지를 못했다.[4] 이후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의 거물 김무성에 맞서서 22.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여당 대권 후보 1위인 김무성과의 재대결에서 40.7%[5]라는 예상밖의 높은 득표율을 올려 선전했으나 원외워원장 대 여당 대권후보 1위라는 절대적인 정치적 체급차이는 극복하지 못하고 아쉽게 낙선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미래통합당황보승희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는 줄곧 우세하였으나 전국적인 더불어민주당 압승 분위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영남 지역에서 불어닥친 미래통합당의 거대여당 견제론에 의한 막판 결집현상과 반대로 민주당 지지층의 표심 이완 현상 때문에 또 7% 정도 차이로 석패하며 낙선했다. 그때 당시 부울경 지역에서 아쉽게 낙선한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출마할 때마다 득표율이 상승 중이라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며 황보승희는 전임자인 김무성에 비하면 정치적 체급이 약한 편이기에 지역구를 더 갈고 닦으면 다음 총선에서 당선될 가능성도 없진 않다.[6]
총선 후 청와대 정무수석실 선임행정관으로 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청와대 근무로 인해 당적을 이탈하였다. 이후 나온 보도에 의하면 이낙연계인 듯 하다.

3. 여담


  • 부인이 치과의사이다. 김비오가 젊은 시절에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교통사고를 심하게 당했을 때, 얼굴 뼈까지 크게 다쳐서 악안면 수술을 여러 번 했다고 한다. 그때 본인의 수술과 치료를 담당하던 치과의사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람이 지금의 아내라고 한다.[7]
  •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다. 첫째 딸은 현재 서울에서 연극배우로 활동 중이고[8], 둘째 딸은 신비주의로서 알려진 바가 없다. 셋째 아들과 넷째 딸은 각각 영도에 소재한 고등학교, 중학교에 재학중이다.

4.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영도)

5,358 (9.53%)
낙선 (3위)

2013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 (부산 영도)

9,500 (22.31%)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영도)

31,717 (40.74%)
낙선 (2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중·영도)

41,085 (44.91%)
낙선 (2위)


[1] 청와대 행정관으로 선임됨에 따라 정무수석비서관인 최재성의 선례를 따라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2] 참고로 이때 당선자는 한나라당의 김형오.[3] 예비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여론조사가 실제로 존재했다.[4] 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한 통진당 민병렬 후보는 야권단일후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지지자들을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6% 차이로 낙선했다.[5] 15.6% 차[6] 실제로 김무성의 이전 지역구인 남구 을에선 김무성이 떠난 뒤 측근인 서용교가 물려받았는데 정치적 체급이 약했기에 바로 다음 총선에서 박재호 의원에게 패배하며 지역구를 내놓아야 했다.[7] 참고로 부인의 고등학교 시절 동창이 이언주다.[8] 아버지 또한 문화예술계 테크를 타긴 했으나 경영대학원 석사에 정치 테크를 탔으니 문화예술 경력은 학창시절 때를 제외하고는 전무하다. 오히려 첫째 딸이 진짜 문화예술계 테크를 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