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호

 


대한민국 국회의원 (부산 남구 을)
제19대
서용교

제20-21대
박재호


현직
대한민국 제20 · 21대 국회의원
박재호
朴在昊 | Park Jaeho

<colbgcolor=#004ea2> 출생
1959년 2월 13일 (65세)
경상남도 부산시 동래구 연산동
(現 부산광역시 연제구 연산동)
거주지
부산광역시 남구 용호동
학력
연산국민학교 (졸업)
동해중학교 (졸업)
부산동성고등학교 (졸업)
부산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 / 학사)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가야대학교 (정치학 / 명예박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가족
배우자 이미선[1], 슬하 1남 2녀
소속 정당

지역구
부산 남구 을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20, 21
소속 위원회
행정안전위원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경력
국회의원 서석재 비서관
대통령비서실 인사재무비서관
대통령 후보 노무현 특별보좌역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 및 이사장
코리아스픽스 원장
더불어민주당 전국대의원대회 부의장
SNS


1. 개요
2. 생애
3. 이야기거리
4. 논란
5. 사건사고
5.1. 페이스북 음란물 노출사건
5.2. 부산시민 비하 논란
6. 소속 정당
7. 선거 이력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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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21대 국회의원으로 지역구는 부산광역시 남구 을이다.
3당 합당 이후 영남 지역 중 비교적 민주당계 정당 지지세가 강한 낙동강 벨트 지역이 아닌 동부산에서 재선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다.[2]

2. 생애


1959년 2월 13일,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태어났다. 부산연산초등학교, 부산동해중학교, 부산동성고등학교를 거쳐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여 재학중 부마민주항쟁에 참여하였다. 군 제대 후 다시 부산외국어대학교 불어과에 입학, 졸업하였고, 중앙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6년 신한민주당 서석재 국회의원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 민주쟁취 선거혁명추진 부산학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대통령비서실 인사재무비서관 등을 역임하였다.
김영삼 대통령 퇴임 후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 객원연구원으로 있다가, 1999년 귀국한 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산 북·강서 을 선거구 출마를 선언한 노무현의 선거캠프에 합류하면서 3당 합당 후 9년 만에 민주당계 정당으로 이적하였다. 제16대 대통령 선거 기간 동안에는 노무현 후보의 조직 특별보좌역으로 활약한다.
2003년 대통령 정무비서관으로 임명되었으나 반년만에 사임하고,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부산 남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김무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같은 해 국민체육진흥공단 상임감사에 임명되었다가 이듬해인 2005년 이사장에 임명되었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무소속 김무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이재정, 천호선 등과 국민참여당 창당을 주도했으나 통합진보당에는 합류하지 않았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서용교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5년에는 부인이 별세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48.11%를 득표해 43.45% 득표에 그친 현역 의원 새누리당 서용교 후보에 설욕하면서 3전 4기만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3]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으로서 신규아파트 이주와 오륙도 관광지화로 교통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용호동 지역에 오륙도선을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허남식 전 시장과 김무성 전 의원이 이뤄내지 못하던 사업을 당선된지 3년만에 이뤄낸 것이다. 거기에 국방부와 포럼을 열어 우암선을 활용한 부산 도시철도 우암선 계획도 진전시켰다. 이런 사업들이 모두 무사히 성사된다면 도시철도 유치로 다선의원이 된 사하을의 조경태처럼 지역구의 절대적 지지를 얻을 수도 있을 듯 하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의 단수 공천을 받아 출마가 확정되었으며 미래통합당의 공천을 받아 경기도 광명시 을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온 이언주 의원과 대결을 펼치게 되었다. 개표 후 90%선까지도 이언주 후보에게 뒤처질 정도의 접전을 치른 끝에 50.5%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48.74%의 이언주 후보를 득표율 1.76%, 득표 수 1,430표 차로 꺾고 재선에 성공하였다.[4]

3. 이야기거리


  • 2018년 말부터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았지만 국회의원 겸직금지 규정을 이유로 1년 만에 이사장직을 스스로 내려놓게 됐다. 후임 이사장은 부산지역 기업인 대선주조 조우현 대표가 맡았다.
  • 9년간 횟집을 운영했다.
  • 자신의 핸드폰 번호가 적힌 명함을 지역 주민들에게 돌리고, 자신이 딴 지역 주민들의 번호로 지역 주민과 통화 혹은 문자하면서 지역구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5] 뽐뿌에서 관련 글도 올라왔다.
  • 전재수(부산 북구·강서구 갑), 최인호(부산 사하구 갑)의원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지역밀착형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남구의 큰머슴'. 당선만 되면 서울에 머무르며 지역구는 잘 방문하지 않던 다른 부산 지역 국회의원들과는 대조적으로 당선된 후에도 주기적으로 지역구를 찾아 주민들에게 인사하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말을 걸며 지역 현안을 확인하려 한다. 위 문단에서 설명한 대로 자신의 직통 전화번호를 명함에 적어 나눠주고, 실제로 걸려오는 전화는 3시간 안에 답하려 노력한다고 한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지역구 관리를 하는 모습이 남구 구민들의 눈에 각인되었기에 전국적 인지도가 낮은 초선의원임에도 전국구 정치인으로 이름이 알려진 이언주 의원을 꺾고 21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실제로 21대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시종일관 문재인 정권 심판만 내세운 이언주 전 의원에 비해 박재호 의원은 남구 지역 현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이 이 현안들을 해결할 일꾼임을 강조했다.[6]
  • 4월부터는 이언주 부부에게 흑색선전을 당했다. 1일부터 보좌관과의 불륜설[7]을 사람을 시켜 퍼뜨렸다고 고소를 당하더니, 투표 직전에는 그의 여성 지지자가 이언주의 남편을 폭행했다고 무고당했다. 다행히 누군가가 사건의 전말을 담은 영상을 올려줘서 모두 무용지물이 됐지만.
  • 그가 21대 총선에서 한 연설이 미디어공감이라는 유튜브 채널에 명연설로 뽑혀 올라왔다. 본인도 이에 감사를 표했다. 여기서 볼 수 있다.
  • 딸이 아버지가 정치 활동을 그만두셨으면 하는 생각을 비친 적이 있다고 한다. 출처

4. 논란


  •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벌금 80만원으로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지켰다.

5. 사건사고



5.1. 페이스북 음란물 노출사건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에 음란물이 올라왔다. 해당 동영상은 일본 AV[8], 10분쯤 게재되었다가 삭제되었다. 의원실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 중이라고 한다.[9] ## 박재호 의원실 관계자는 "페이스북은 의원 본인이 아니라 보좌진이 관리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한편 부산경찰청은 "오후 5시부터 남부경찰서 사이버수사팀이 공식적으로 내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

5.2. 부산시민 비하 논란


與 박재호 "부산 분들, 조중동·종편 많이봐...한심스럽다"
친문 박재호 "부산 분들, 조중동 너무 많이 봐…한심스럽다"
與 박재호 “부산 분들 조중동 많이 봐서 나라 걱정만…한심"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박재호 "부산 있는 분들, 보수언론 보고 나라 걱정만...한심"
2021년 1월 29일 박재호는 더불어민주당 부산광역시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여기서 "부산에 계시는 분들은 조중동, TV조선, 채널A를 너무 많이 봐서 어떻게 나라 걱정만 하고 계시는지 한심스럽다"라고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는 보수언론을 시청하며 부산에 사는 시민들을 한심하다고 싸잡아 비난한 행동으로, 과거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산을 "초라한 도시"라고 지칭하여 비하 논란이 일어난지 1년 만에 또다시 부산에 대한 비하 논란이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박재호 의원 본인은 지역구가 부산에 있다 보니 자신을 찍어준 지역 유권자들까지 비하했다는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소속 정당인 민주당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 여권 관계자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최근 민주당 지지율이 좀 올랐다고 다소 들뜬 분위기인 것 같다. 우리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 유권자들에게 한심스럽다고 할 수 있나" 라며 "우리 때문에 치러지는 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좀 더 자숙하고 겸손한 자세로 시민들의 마음을 얻어야한다" 라고 꼬집었다. #
이후 논란이 갈수록 거세지자 본인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부산에는 보수언론을 통해 너무 나라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는 말씀과 함께 한심하다는 정제되지 못한 발언을 했다."라며, "분명히 저의 본심과 다른 잘못된 발언이다.", "제 발언으로 불편하셨을 시민 여러분께 사죄드린다." 라며 사과하였다. #

6.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6 - 1987
정계 입문

1987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1987 - 1990
창당

1990 - 1995
합당[10]

1995 - 1998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1998 - 1999
입당

1999
탈당

1999 - 2000
입당
정계 복귀

2000 - 2003
합당[11]

2003 - 2004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

2004 - 2007
입당

2007 - 2008
합당[12]

2008
합당[13]

2008 - 2010
탈당

2010 - 2011
창당

2011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

2011
창당

2011 - 2013
합당[14]

2013 - 2014
당명 변경

2014 - 2015
합당[15]

2015 -
당명 변경
정계 입문 시기는 제21대 국회의원 중 상당히 이른 편이지만[16] 잦은 낙선으로 인해 2016년이 되어서야 국회의원이 되었다. 때문에 정계 입문 시기에 비해 국회 입성 시기가 매우 늦다.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부산 남 을

31,918 (45.11%)
낙선 (2위)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8,718 (16.50%)
낙선 (3위)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27,919 (41.46%)
낙선 (2위)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33,499 (48.11%)
당선 (1위)
초선[17]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41,005 (50.50%)
재선[18]

8. 둘러보기








[1] 2015년 별세하였다.[2] 이에 해당하는 또 다른 인물은 울산광역시 북구이상헌 의원이다.[3] 그리고 안타깝게도 박재호 의원과 2차례 선거에서 맞붙어 1승 1패의 전적을 주고 받았던 서용교 후보는 2018년 7월 14일에 지병인 백혈병이 악화되어 만 5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4] 박재호가 상도동계 출신으로 더불어민주당 내 타 국회의원과 달리 상대적으로 중도적이다. 그리고 이언주는 출생만 부산이지, 실제로 부산에 기반이 없는 셈이다. 동구 을에서 유승민 심판만 주장하는 윤창중과 비슷한 사례고, 이전 총선 당시 김문수의 사례와도 비슷하다.[5] 부산, 경남 지역의 민주당계 관련자들은 보통 당락에 상관 없이 지역 기반을 다진 사람들이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 옆동네 김해에서도 김경수 경상남도지사가 이런 식으로 지역구 관리를 하여 (다만 김경수의 경우에는 마을 잔치에 자주 나왔다고 한다.) 지역 주민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일화도 있고.[6] 지역 토박이들은 출신이 부산이라는 이유로 뽑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낙하산들이 지역구의 현안을 제대로 파악할리가 없잖은가? 게다가 이언주의 경우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지역구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보여질 정도로 지역구에서 조차 여론이 안 좋았다. 반면, 지역구를 묵묵하게 관리했던 박재호에 대한 여론이 상당히 좋았고, 선거에서 정당으로 인한 불리함을 상당히 상쇄시킬수 있을 정도로 지역구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준 것이다.[7] 사실 이 루머 자체는 수 년 전부터 있던 것이었다.[8] 배우는 니시미야 코노미#로 아마 동남아 계정에서 도용되어 올라 간 것으로 추정된다. 품번은 MIDE-400.[9] 비슷한 사례로, 문재인의 트위터 계정에도 일본 음란물 사진이 올라온 적 있다.[10] 민주정의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11]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2]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3] 민주당(2007년)과 신설 합당[14]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5]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16] 정계 입문 시기로만 따지면 21대 국회 최고참인 김민석친노 원로인 이해찬보다도 빠르다.[17] 4번의 선거 중 첫 당선[18] 울산 북구이상헌과 더불어 낙동강 벨트가 아닌 지역에서 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