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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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O 한국시리즈 역사상 최초로 끝내기 홈런을 친 선수, 그리고 LG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끝내기 홈런 타자'''
現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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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LG 트윈스에 입단하여 1루 백업 겸 지명 대타로 주로 출장하였다. 입단 당시만 해도 대형 신인으로 기대받았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1루 자리는 김상훈-서용빈의 차지였고, 설상가상으로 1993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뇌주루를 선보여 팀 탈락의 원흉이 되었다. 그래서 1994년을 끝으로 방출될 예정이었으나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11회말 태평양 돌핀스의 선발 투수 김홍집을 상대로 '''끝내기 솔로 홈런을 쳤다.''' 덕분에 방출 위기를 모면하고 2000년 시즌 후 은퇴할 때까지 LG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다. 저 홈런 이후 선수생활은 180도 달라졌는데, 1995년에 한대화를 대신해 4번 타자를 맡은 적이 있고, 서용빈이 턱관절 부상으로 빠진 1998년에는 주전 1루수가 되어 준수한 활약을 하여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힘을 보탰다. 단 첫 풀타임 주전이었던지라 시즌 중반까지 3할 2푼까지 갔던 타율이 풀시즌을 치르면서 체력저하로 2할 7푼대로 떨어진점은 옥의 티.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의 끝내기 홈런 외에도 나름 중요한 시점에서 한 방을 쳐주는 일이 많아 한대화의 뒤를 잇는 해결사로 LG 팬들에게 사랑받았던 선수다. 그리고 음지와 양지를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해왔던, 초기 LG의 소금같은 존재였다.
1루수였음에도 상당히 빠른 발과 높은 도루 성공률을 보여주어서 대주자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원래 대학 시절까지만 해도 나름대로 꽤 유망주였던 유격수였으나 대학 시절에 심각한 어깨 부상을 당해 송구가 거의 불가능할 수준의 중상을 입어서 오랜 재활을 거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간 케이스이다. 그래서 1루수임에도 발이 빠르면서 주루 플레이가 능했던 것. 하지만 그 때의 부상으로 김선진이 맡을 수 있는 포지션은 1루수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백업에서 시작해 (준)주전까지 올라갔던 그의 선수 생활은 최동수가 이어받게 된다.
광주일고 1학년 때부터 유격수로써 주전을 꿰차면서 당시에만 해도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유명했었고 올드 야구팬들은 김선진이 고교를 졸업하고 프로에 입단했다면 하는 IF놀이에 간혹 오르내리기도 한다.
3. 지도자 시절
2000년 이후 은퇴하고 야구용품점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야구 현장을 떠나 있었다.
3.1. LG 트윈스 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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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2011년 10월 김기태 감독의 부임과 거의 동시에 LG 트윈스 2군 타격코치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LG 트윈스 갤러리에서는 야구용품점 하던 사람이 감독의 고등학교 선배라는 이유만으로 코치가 되었다며 박한 평가를 내렸다.
서용빈이 연수를 선언하여 LG 트윈스를 떠나게 되자 2013년 12월 1군 보조타격코치로 승격되어 신경식 1군 메인타격코치를 보좌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4년 초반 LG 타선이 득점권 타율 바닥에 치고 병살타를 많이 쳐서 까였다. 결국 김기태 감독이 사퇴한 뒤 양상문이 새롭게 감독에 취임하자 신경식 메인 타격코치와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결국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도중에 LG 트윈스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3.2. KIA 타이거즈 코치
2014년 12월 24일에 고향팀 KIA 타이거즈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역시나 김기태 감독과의 연관성이 적잖아 보인다.
2017년 시즌에는 3군 타격코치로 보직 이동했다.
4. 연도별 성적
5.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