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야구)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출신 감독. 現 KIA 타이거즈 2군 감독. 2019년 5월 17일부터 시즌 종료까지 KIA 타이거즈 감독대행을 맡았다.
MBC 청룡 - LG 트윈스에서 활약한 원클럽맨으로,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멤버이기도 하다.
김무관과 함께 2000년대 이후 대단히 높게 평가받는 타격코치이기도 하다. 한 때는 이승엽의 스승이라는 타이틀에 비해 다소 침체기에 빠져 있었으나, 미국 연수 이후 출루와 장타를 중시하는 메이저리그식 공격 스타일을 공 맞히기에 급급하던 한국프로야구에 전파하며 타격코치로서의 부활에 성공하였다.
등번호는 20번(MBC - LG) - 73번(삼성, 1996~2007) - 86번(넥센, 2010~2012) -71(롯데, 2013-2014) - 73번(KIA, 2015~ )
코치 1기에 비해 미국 연수 및 넥센 타격코치 경력 이후에는 타격폼 수정보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멘탈관리, 각자의 개성 존중 등으로 방향을 잡아서인지 코칭 효과가 나타나는데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다.롯데와 기아 2기 모두 1년차에는 죽일놈 취급을 받다가 2년차에는 주전급 선수들의 복귀도 크지만 본인이 신인이나 준주전급 선수들의 타격을 크게 향상시키며 평가가 급변했다.
2. 선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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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군 출신으로 대구광역시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했지만 여담 문단에서 후술할 집안 사정으로 인해 서울특별시의 신일고등학교로 진학했다. 한양대학교 졸업 이후 MBC 청룡의 1차 지명 신인으로 입단하여[3] MBC 및 LG 트윈스에서 뛰었다. 전형적인 똑딱이, 쌕쌕이였고, 잘 할 때에는 고정 1번타자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리즈 시절은 1987~88년으로 2년연속 3할을 기록하였으며, 1987년에는 3루타 1위(9개)를 차지한 적도 있다.
그러나 1989년 시즌 타율 .222의 초라한 성적을 남긴 박흥식은 은퇴와 동시에 가족이 있는 미국으로 이민할 계획을 세웠지만, 이듬해인 1990년 봄 LG 트윈스 감독으로 부임한 백인천의 부름을 받고 은퇴를 철회했다. 그리하여 LG가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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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의 박흥식. 1번 타자로 나왔고 이 타석에서 안타를 쳤다.
이후 1993년까지 선수로 뛰었지만 고질적인 허리 부상으로 인해 32세라는 젊은 나이로 은퇴하였다.
3. 지도자 시절
3.1.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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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제자 이승엽과 함께.[4]
은퇴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현지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다가[5] 당시 세탁소의 주 고객이었던 루 피넬라[6] 시애틀 매리너스 감독이 그의 세탁소에 걸려 있던 선수 시절 사진을 보고 야구선수 출신인걸 알게 되자 시애틀 산하 마이너리그 팀이었던 타코마에서 코치 연수를 받게 되고[7] 이후 백인천의 권유로[8]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 코치로 부임하였다. 이후 1997년 백인천 감독과 함께 삼성 타선의 세대교체를 이루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삼성의 공포의 핵타선을 만든 명 코치. 그리고 KIA가 2017년 8경기 연속 두자릿수 득점을 낼 때의 코치도 그였다.
특히 같은 좌투좌타인 '''이승엽을 지도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시켰다.''' 이승엽도 박흥식을 자신의 스승이라고 이야기한다. 2002년 한국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마해영의 끝내기 우승 홈런 때 1루 코치로 출장하여 마해영과 함께 포옹을 했던 장면도 유명하다. 2001년 김응용 감독을 따라 김종모 코치가 타격코치로 부임하며 한동안은 1루코치도 같이 겸했다.
다만 삼성 라이온즈에서 10년 가까이 타격코치를 맡은 까닭에 매너리즘이 온 탓인지 2000년대 중후반에는 그 공포의 삼성 핵타선이 물타선으로 전락하고 만다.[9] 특히 2006년에 정말 심각했다. 물론 2006년은 역대적인 투고타저 시즌이어서 어느 정도 실드는 쳐줄 만했지만, 결국 물타선으로 삼성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겨우 거둔 직후에 선동열 감독에 의하여 2007년 2군 타격코치로 내쳐졌고, 시즌 후 재계약에 실패하며 11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된다.
3.2. KIA 타이거즈 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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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시즌 후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에 실패한 후[10] 2008년 KIA 타이거즈로 옮겨 1년간 타격코치로 일했다. 하지만 KIA역시 여전히 물타선으로 일관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다만 이는 참작의 여지가 있는데, 당시 기아타선의 경우 그나마 제대로 된 포텐을 지닌 선수가 이용규, 김원섭, 김선빈 정도였으며, 박흥식이 강점을 보이는 거포 쪽 포텐을 지닌 유망주선수는 당시엔 기껏해야 김주형(...)정도 였다. 사실상 자원이 없었다고 봐야할 정도. 그래도 그 와중에 몸쪽 공에 약점을 보인 이용규를 뜯어고쳐 페넌트레이스와 올림픽에서 맹활약을 하게 만들었으며, 김원섭의 기량이 만개하게 만든 공은 존재한다.
다만, 최희섭의 경우 유리몸에 개노답이였다.[11] 장성호 본인 이름 값에 부진이 좀 겹쳤지만 타선에서 버팀목이 되었다. 단지, 서정환과 조범현이 고정으로 박았던 1루수를 좌익수와 지명타자로 겸업 시키면서 밸런스가 무너진건 덤.. 이재주가 '''4번타자'''를 맡아야 하는 그야말로 기아 1기 코치시절은 타이거즈 최악의 암흑기 시절을 봤었다
3.3. 넥센 히어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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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선진 야구 체험도 하고 겸사겸사 공부도 하기 위해 미국에 1년간 연수를 다녀온 뒤 영남대학교 타격 인스트럭터를 맡은 후 다시 넥센 히어로즈로 옮겨서 2011년 2군 감독을 거쳤고, 2012년 1군 타격코치로 활동하였다.
연수를 다녀온 효과가 있었는지, 넥센 히어로즈는 2012년 막강한 타선을 구축하며 팀 홈런 102개를 기록하며 108개를 기록한 SK에 이어 팀 홈런 2위에 올랐다. 특히 이승엽 때처럼 박병호를 본격적인 거포로 성장시킨 건 명실상부한 박흥식의 공. 물론 좋은 재목이었던 강정호의 거포 본능을 더 살려 주기도. 또한 신고선수로 입단한 서건창을 2군 감독 시절에 추천하여 발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건창은 신인왕 타이틀과 2루수 골든글러브 획득. 확실히 몇년 간 야인으로 지내면서 미국 야구를 체득하면서 공부했던 게 타격코치로서의 재도약에 큰 도움이 된 듯하다.
3.4.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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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즌 종료후 넥센의 마무리 훈련 도중 롯데 자이언츠의 타격코치로 옮긴다는 기사가 나와 넥센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대다수의 롯데팬들은 열렬히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 반대로 넥센팬들과는 철천지 원수가 되어 '''런흥식'''이라는 안 좋은 별명을 얻은 것은 물론 금지어에까지 등극하였다. 마무리 훈련 도중에 타격코치가 사라지면서 선수들이 배우려 해도 가르칠 사람이 없어진 황당한 상황.
결국 새로 부임한 염경엽 감독이 며칠 뒤 LG 시절에 알고 지내던 허문회 상무 피닉스 야구단 타격코치를 넥센 1군 타격코치로 선임했다.[12] 갑작스레 자리가 빈 상무의 타격코치에는 당시 LG에서 방출당한 손인호가 부임했고, 반면에 박흥식에게 밀린 박정태 타격코치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임한 후[13] , 쓸쓸히 롯데 자이언츠를 떠났다.
3.4.1. 2013년
박정태 코치의 막장행각에 질린 롯데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면서 시즌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타격은 최악으로 평가받는 작년 시즌과 비교해도 더 답이 없는 수준으로 전락하면서 감독인 김시진을 비롯해서 정민태, 공필성 코치와 더불어 엄청나게 까였다. 주전 타자들의 선구안과 수 싸움 능력을 향상시키지 못한 건 고사하고 스윙폼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도(강민호·전준우가 대표적) 아무런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장거리 타자로 키워 보겠다던 김대우는 초반에 반짝하고 완전히 버로우를 타 버렸으니.[14]
넥센에서의 업적, 혹은 시즌 초 롯데 팬들의 기대치와 비교한다면 초라한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당시 강타선의 우산효과나 현재의 얇은 선수층로 인한 체력문제를 감안하더라도 팀의 주축 타자인 손아섭, 전준우, 황재균은 커리어 하이였던 2011 시즌의 장타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손아섭은 정확성과 선구안의 향상을 이루어내며 다른 방향으로 완성형 타자가 되었지만 전준우와 황재균의 타격성적은 그들의 우수한 신체조건이나 데뷔 초 보여준 잠재력에 비하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잦은 타순변경과 2012 시즌 커리어로우를 겪으며 크게 흔들린 전준우를 살려내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박종윤, 이승화, 신본기 등 기존의 수비형 선수들도 잠시 개선된 타격성적을 자랑했으나 역시나 큰 수의 법칙을 증명하며 코치 한 명 바뀐다고 그들의 클래스가 변하지 않았음을 팬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15] 극악의 선구안을 자랑하던 정훈의 볼삼비가 상당히 개선되었고 신인 조홍석이 시즌 말에 잠시 활약했지만 갈 길이 멀다. 2013 시즌 롯데의 상황이 의외로 열악했던 만큼[16] , 경찰청에서 2군 본즈에 등극한 장성우와 2013시즌 초 좋은 모습을 보이다 부상당한 김문호 등이 복귀하는 2014 시즌 롯데 타선의 잠재력을 얼마나 이끌어내는지에 따라 그의 롯데 시절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3.4.2. 2014년
시즌 개막 초 팀 타선이 롯데 팬 입장에서 지긋지긋한 투수 중 하나인 윤성환을 상대로 승리를 뽑아 냈다.[17] 6이닝 동안 4점을 뽑았는데 상대의 숨은 실책성 플레이 덕이 있었지만 예전처럼 윤성환의 칼제구력과 폭포수 커브에 농락당하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성과물이었다. 과연 롯데의 팀 컬러를 바꿔나갈 수 있을지...
2014 시즌 4월이 끝난 후 롯데 타선은 환골탈태했다. 대부분의 공격스탯 상위권을 점령해버린 외국인 거포 루이스 히메네스의 덕이 크지만, 거액 FA인 강민호와 최준석이 공갈포질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시즌 잉여라인이었던 타자들 대부분이 부활 혹은 각성하여 손아섭과 히메네스의 뒤를 훌륭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전반적으로 선구안도 개선되고 타구 질이 좋아진 편이라고 볼 수 있을듯. 물론 히메네스의 우산효과가 클 수 있고 롯데에는 이전부터 한 달 폭발한 뒤 시즌은 말아먹어 온 타자들이 좀 있는 만큼 타격코치에 대한 평가는 조금 후로 미루어지는 중이다.
2014 시즌 팀 OPS 3위를 기록했지만 김시진 사단을 정리하려는 프런트에 의해 10월 26일 부로 정민태와 함께 해임을 통보받았다.
선수 개인으로 보면 문규현, 박종윤, 황재균 그리고 특히 정훈의 도약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타고투저라고 하지만 이번 시즌의 기록은 커리어에 비해 충분히 대단한 수준. 팀은 DTD를 선보이며 완전히 멸망했으나 개인 차원에서 공갈포와 똑딱이형 타자들의 선구안, 갭파워 향상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증명했다.
무엇보다 타격 잉여삼신기로 불리던 박종윤, 문규현, 이승화 중 둘을 터뜨린 것은 기적에 가깝다. 각각 면제와 경찰청 입대로 희비가 갈리기는 했으나 밀어치는 전임 타코의 저주로 몰락했던 황재균, 전준우 또한 어느 정도 갱생시켰고 롯데 팬들이 절실하게 터지기를 바라던 정훈도 상당히 키워 놓았다. 이런 성과가 김시진 사단의 투수라인 삽질과 롯데 프런트의 막장 행태에 휘말려 다소 묻힌 감이 있다. 롯데 팬들의 공공의 적 취급받는 정민태나 당당히 감동님 대열에 합류한 김시진과 달리 재취업이 어렵지 않을듯. 그리고 이 예상대로 기아 타이거즈로 옮겼다.
본인이 떠나며 남긴 인터뷰에 의하면 거포의 잠재력을 갖추었으나 타자 전향이 너무 늦었던 김대우를 제일 아쉬워하는 듯하다. 아무래도 롯데에서는 어정쩡하게 망가져있던 툴플레이어들을 다수 갱생시킨 것이지 이승엽, 박병호와 같은 걸출한 4번타자를 키워내지는 못했으므로. 다행히 최준석이 있어서 팀 차원에서 큰 문제는 아니었지만.
3.5. KIA 타이거즈 2기
롯데 자이언츠를 떠난 후 예전에 삼성 시절 선수와 코치 관계로 한솥밥을 먹었던 김기태 감독의 부름을 받고 KIA 타이거즈의 타격코치로 부임, 7년 만에 다시 KIA 타이거즈로 돌아오게 되었다.#인터뷰 이전까지 롯데 자이언츠 타선을 이끌었다는 점에서 호의적임과 동시에 2008 시즌 김기아 타선의 원흉이기도 해서 박흥식의 영입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18]
3.5.1. 2015년
개막 초 평가는 상당히 미묘했다. 기아 타선의 비율스탯이 최하위 kt를 제외하면 확실히 바닥에서 놀고 있는 것은 사실. 하지만 기존의 고액연봉자들이 부진과 부상으로 삽질중인 반면 신인과 하위타선 타자들이 공을 오래 보고 출루를 해서 팀 승리에 기여를 하고 있다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이대로 김주찬-신종길 등이 병원에 계속 임대되고 나지완-최희섭-이범호가 삽질을 거듭한다면 김기아 시즌 2를 찍을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아직은 평가가 유보되고 있다.
전반기 타격부진으로 먼지나게 까이다가 후반기에 고액연봉자들의 밥값과 함께 나머지 타자들이 연쇄적으로 살아나자 약간 평가가 호전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시즌의 흥망성쇠를 단정하기는 이르다. 타격폼에 크게 손을 대지 않는 스타일인 박흥식 코치의 특성상 흥식매직의 효과는 좀 느린 편이라 이번 시즌은 그냥 맘 편하게 지켜보고 다음 시즌을 평가하는 것이 나을 듯한다고 생각해도 타선이 완전 망해버렸다..
후반기 들어서 대다수 기아팬들 사이에서의 평가는 '''저 놈은 해로운 코치다''' 일정도로, 평가가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보통 팀의 성적이 안좋으면 투수진을 탓하지만, 2015시즌에는 KIA의 선발과 불펜이 선수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성적이 5할을 넘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건 타선이 상당한 원인제공을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기아의 패배 양상을 보면 대부분이 물타선 때문에 투수가 선전하고도 패하거나 아니면 그냥 탈탈 털리고 대패하거나 둘 중 하나인데 이건 타자들이 제몫을 못해서 벌어지는 사태로 봐야 한다. 필 혼자서 거의 이끌어 가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
당장 프로야구 주간 타자 워스트를 보면 기아타자들이 기본적으로 4~5명이나 배치되어 있고 안그래도 안좋은 타선이 더 망해버린 상황. KIA 타이거즈 갤러리를 비롯한 여러 팬덤에서 나노단위로 까이는 중. 더불어 타격코치라는 인간이 자기팀 선수들 코칭하는 사진은 없고 타팀 선수들과 친목질하는 사진들만 잔뜩 올라와 팬들 뒷목잡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배터리 코치인 강무지가 상대투수 연구와 번트 코칭한다는 기사까지 나와 도대체 이 인간이 하는 게 뭐냐는 분위기. 아마시절 홈런 한개도 쳐본 적 없는 김호령 을 15+ 홈런 타자로 만들겠다는 말을 하는 걸 봐서는, 아직까지도 선수단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다.
2015년 12월 현재 기아는 타격팀 부문 10위를 차지하고 있고, 덕분에 창단 이래 최저타율을 기록하게 됐다.
기아 안티로 의심된다는 장강훈 기자가 박흥식의 잔류를 암시하는 기사를 올렸다. 대다수 기아 팬들의 반응은 매우 좋지 않다. 우려했던 몸야구형 타자인 신종길을 제외하면 박흥식이 확실하게 망쳐놓은 타자는 없다는 것[19] 과, 넥센에서나 롯데에서나 미국 연수 이후의 박흥식은 2년차에 타선 성적을 많이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1년 더 두고 보자는 기아 팬들도 아주 소수 있지만 일단 대다수의 기아 팬들은 눈에 보이는 팀 타격지표가 답이 없는 수준인데 고액연봉 타격코치가 닥치고 책임을 지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FA 시장에서 박석민조차 못 잡고[20][21] 별 성과 없이 철수하면서 타격코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에 박흥식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다만 2015년 부진과 함께 기아 팬들을 중심으로 박흥식이 삼성, 넥센, 롯데 타선을 실제로는 말아먹은 코치라는 괴담이 엄청나게 퍼지기 시작했는데, 이는 상당히 악의적으로 짜집기된 면이 강해서 신뢰하지 않는 것이 좋다.[22] 12 넥센, 14 롯데 타선 구축은 높게 평가받으며 넥센과 롯데가 박흥식 계약만료 이후 타격성적이 여전히 좋기 때문에 선수빨이라는 재평가[23] 가 약간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다음 해에 더 크게 터진 선수들을 봐도 박흥식 재임 중후반기부터 터질 조짐을 보였던 경우가 많다.[24] 어느 정도는 공갈포들에게 꽂히는 성향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 선수들을 양아들 급으로 중용했던 적도 없다. 다른 팀에서는 실패라고 보기는 어려운데 기아에서 유독 두 번이나 확실하게 실패하는 이유는 리빌딩을 해야 하고 1군 컨택부터 처음부터 배워야 할 신인급 타자들에게 무리하게 높은 눈높이로 일괄적으로 자신의 볼넷과 장타 중심의 야구관을 강요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기아에서 커리어 평균에 비해 성적이 하락한 타자들을 살펴보자면 김원섭과 박기남은 정상적인 노쇠화이고, 모 강타자는 답이 없다. 그러나 신종길의 경우는 확실히 타격코치와 궁합이 안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
3.5.2. 2016년
2015년 시즌 타자진의 부진으로 박흥식 타격코치를 경질할수 있다는 예상이 있었지만.. 김기태감독이 지금의 코치진과 계속 가고싶다 요청하여 코치진의 변화가 없었다.. 이 소식을 접한 다수의 기아팬들은 박흥식코치가 계속 남는다는 소식에 아쉬워 했고 대부분 비난의 의견들이 대다수였다. 시범경기에서 만년유망주 라고 불리는 김주형이 그전과 달리 4할5푼7리로 좋은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만약 이 타격감이 시즌까지 이어지고 좋은성적을 보인다면 오랫동안 포텐이 안터져 구단의 골칫덩어리였던 김주형을 살려내는거여서 무능했다고 평가받았던 이전시즌과 달리 좋은쪽의 재평가가 나올수있다. 그런데 김주형도 전의 짐으로 돌아오는 듯 하고 빠따는 물빠다다. 근데 4월 24일 기준 장타율 1위 OPS 3위다. 어라? 그리고 다음 경기인 4월 26일 한화전에 귀신같이 털렸다.
5월 14일 현재 1~6번 타순까지가 3할 타자다. 김주형은 폭망중이지만 기존의 고액연봉자들 성적이 나름 개선된 상황에서 공짜로 얻어온 서동욱이 날아다니고 강한울, 김호령, 오준혁, 노수광 등 신인들이 뻥뻥 터지면서 평가가 급속도로 호전되었다. 다만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김주형은 역시 안 되는 것 같다.
5월 26일 현재 KIA 타선은 타율 3위/출루율 5위/'''장타율 2위/ops 2위'''를 달리고 있다. 올시즌이 타고투저임을 감안해도 타이거즈 역사상 .289의 타율은 2014년을 뛰어넘는 최고의 기록이며 .459의 장타율은 1999년 이후 최고 기록 덧붙여 '''ops도 210홈런을 기록했던 99년과 비교해서 0.005밖에 차이가 안난다.''' 이정도면 충분히 재평가가 가능하지 않나 싶다. 작년에 너무 폭망해서 그렇지..
확실한 것은 김호령과 오준혁이 타격이 상당히 좋아진 것은 박흥식과 홍세완의 공이 컸다는 평. 아직 풀시즌을 치러야 하지만, 롯데에서도 1년차와 2년차의 평가가 상당히 상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슬슬 호평하는 팬들이 많다.
시즌 전까지 최약체로 평가받았던 KIA 타선을 예토전생 시켜놨다. 김호령, 노수광 등 젊은 외야수들의 타격이 일취월장했고, 특히 김호령은 7월 10일 현재 홈런 4개와 두 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는 등 최고의 중견수를 만들어놨다. 심지어 김주형도 커리어하이를 찍는 중.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갓흥식 또는 가틍식으로 불리며 무한찬양을 받고 있다.
7월 12일 두산에게 홈런 5방을 몰아치며 타격의 팀이 무엇임을 보여주며 갓흥식 칭찬이 이어졌다.
2016년 KIA 불빠따의 이유가 김주찬, 이범호, 나지완의 커리어하이가 크긴 하지만, 박흥식이 이홍구, 백용환, 김호령, 노수광 같은 유망주를 사람 구실 해놓게 만들어놓은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롯데시절 좋게 말해 중장거리 타자지 중거리 타자에 가까웠던 김주찬이 20홈런 타자로 변신한데도 기아 타격코치진의 공이 있다고 볼 수 있다.
8월 7일 삼성한테 털린 후, 모 갸갤러가 직관후기를 썼는데 거기서 심각한 애연가라는 게 밝혀졌다. 정말 많이 피운다고.
3.5.3. 2017년
짐짝 김주형이 화려하게 다시 폭망하고 김주찬의 부진, 이범호의 부상 등이 겹치면서 그냥 최형우 영입빨, 키스톤 제대빨이라는 비판아닌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명기, 김선빈 등 컨택형 교타자들에게 공을 오래 보도록 유도하면서 안정적 타격을 만들어내고 시즌 초반 부진하던 용병타자 버나디나의 폼을 수정하는데 성공한 것을 보면 할 일은 해주고 있다. 그리고 전년도까지 한화 이글스 소속이었던 쇼다 코우조 코치도 새로운 타격코치로 합세하면서 서로의 시너지가 제대로 터졌다는 것이 주 요인으로 보고 있다.
7월 5일에는 기아 타선이 8경기 연속 두자릿수 득점 11타자 연속 안타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면서 쇼다 코치와 함께 신으로 칭송받고 있다. 최형우 나지완 이범호급의 이름값 있는 선수들 외에도 거의다 잘 치는것을 보면 코치의 능력을 인정 안 할수가 없다.
그러나 후반기에 기아 타자들이 부진에 빠지면서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듯 했다. 하지만 기아의 2017 시즌은 엄연히 갓흥식 갓세완이 이대진 코치를 캐리하고 있는 시즌이다. 김 감독의 경우 세세한 운영에 의문이 있어도 LG 시절부터 보여준 숲을 보는 능력과 준수한 인사관리능력을 인정받을 만하지만, 현재 기아의 위기상황은 전적으로 프론트라인 선발을 제외한 투수진 전원을 붕괴시킨 이대진의 책임이다.
그리고 kt와 운명의 3연전 그 1차전, 투수진 붕괴와 이대진 김기태의 창조운영에 힘입은 2:20 패배로 우승전선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하지만 다음 2차전에서 안치홍의 연타석 투런으로 승리했고 3차전에서 10점을 내서 kt 투수진을 초토화시키며 정규시즌 우승을 따냈다. 불확실한 변수가 많은 포스트시즌이 아닌 정규시즌 이토록 강력하면서도 비교적 꾸준한 타격을 보여줬다는 것이 박흥식-쇼다-홍세완으로 이어지는 기아 타격코치진의 공임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시리즈 1~2차전 경기감각의 문제로 타선이 부진했지만 2차전 양현종의 완봉을 계기로 각성, 쏠쏠한 득점을 올리며 시즌 마지막까지 2017년 타격의 팀으로써 마침표를 찍었다.
3.5.4. 2018년
2017년 12월 7일 퓨처스 감독으로 보직 이동했다.
김기태 감독과 함께 2018 시즌부터 2군 개혁을 시작했다. '''바로 퓨쳐스팀을 독립시켜서 철저히 나이어린 신인 유망주 육성 중심으로 개편해서 소위 2군 베테랑들을 쳐내겠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2군 나이 어린 유망주들에게 일단 기회를 준다고 선언한 것은 기아 야수들의 노쇠화로 인해 장기적으로 구단 세대 교체를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2018년 기준으로 정성훈이 39세, 이범호, 김주찬이 38세, 최형우가 36세, 나지완이 34세로 팀 내 중심타자들이 모두 30대 중후반이 되었고, 당장 이 선수들이 노쇠화가 와서 대체할 선수가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육성을 시작하겠다는 것. 게다가 구단의 운영도 신인들이 입단하면 3년 이내에 웬만하면 군대에 다 보내버려서 병역문제도 딱히 걸릴 것이 없기 때문. 장기적 강팀 만들기와 세대교체를 목표로 잡은 2군이 기대가 되는 시즌이다.
그러나 2군에서 투수 혹사, 김주형 유격수 실험 등으로 김기태의 뒤를 잇고 있다.
최근 밝혀진 바로는 2군 선수들도 특히 신경쓰고 있다고 한다. 팀 사정상 2군에는 주로 어린 선수들이 배치되어있는데, 어린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도 해줄 겸 타점 올리면 만원, 7구 이상 승부하면 만원,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안타치면 만원 이런식으로 용돈을 주고, 반대로 루킹 삼진등에는 만원씩 뺐고 있다고 한다. 가장 많은 용돈을 타간 선수는 류승현이고, 박흥식의 주머니 사정은 7월 현재 3만원 벌었다고(...)
2군 선수들 중 특별히 눈여겨보는 선수들을 언급했는데, 포수에는 신범수, 한준수를 언급했고 내야수에서는 류승현, 황대인, 오정환, 김석환을 언급했다. 출처
2019 KBO 신인드래프트를 앞두고 조계현 단장에게 투수는 145 이상 던지는 놈, 키 190 이상인 놈, 타자는 우타자 위주의 덩치 큰 놈을 뽑아줄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25] 그 결과 드래프트에서 지명된 선수들은 이러한 체격조건을 충족시키는 선수들이 뽑혔다.[26] 신인드래프트가 끝나고 조계현 단장이 박흥식 2군 감독과 술 마시면서 "요구하는대로 다 뽑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
3.5.5. 2019년
해당 문서로.
3.5.6. 2020년
맷 윌리엄스 감독이 선임되면서 다시 퓨처스 2군 감독 자리로 복귀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냥 내쳐진 건 아니라서 구단이 예의는 갖췄다는 평. 자신이 타격폼을 바꾸게 한 최원준이 자신의 타격폼을 되찾은 이후 갑자기 잘 하기 시작했고, 타격폼을 손댄 박민, 이우성, 이진영, 최정민이 타격에서 부진하면서 비판이 높아지고 있다. 스윙폼 개악으로 만들어진 최원준의 잃어버린 3년, 수비 하나는 프로에서도 통한다는 평을 받는 유격수였던 박민의 3루 기용[27] 등으로 팬들에게 비판받고 있다.
현재까지의 평가는 2019년 한 해 팀을 잘 수습해 준 건 고맙지만, 야구관이 낡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게 대세다. 물론 같은 세대 중에서는 상당히 진일보한 인물은 맞지만 현대의 야구관과는 이제는 맞지 않다라는 의견이 주류. 물론 성향이 2군 감독이 천직임에는 확실하나 선수들을 가르치는 코치로서의 능력은 이제는 슬슬 물러날 때가 아닌가 하는 의견들이 많다. 실제로 KIA 타이거즈에 있는 동안 기대하는 선수가 많다고 한 적은 있지만 실제로 성공시킨 타자들도 없고, 선수의 의사를 존중하지만 사실상 방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태도들 때문. 물론 선수의 의사를 존중해야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도하려는 방향이 무엇인지도 알려줘야 하고, 선수가 하려는 것이 너와는 맞지 않다라고 말해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실제로 류승현이 외야로 나가고 나서 내야는 사람이 없고 외야는 사람이 넘쳐나기 때문.
2021 시즌 2군 감독 시스템이 폐지되고 이제는 KIA에서 후배 지도자들이 자리를 잡았으면 한다고 말하며 용퇴를 선언했다. 2군 감독은 맷 윌리엄스가 병행한다. 다만 은퇴는 아니고, 다른 팀에서 자신을 지도자로 원하는 팀이 있다면 그 팀을 위해 일할 생각은 있다고.
이후 12월 7일부로 대구고등학교 야구부의 인스트럭터로 활동하고 있다.#
4. 여담
- 대구중학교 시절 야구에 제법 소질을 보이던 박흥식이었지만,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하면서 박흥식은 마음 한 편으로 '미국에서도 야구를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 속에 이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신일고의 한동화 감독이 박흥식의 아버지를 찾아와 "아들을 저에게 맡겨 주시면 훌륭한 선수로 키워 보겠다"[28] 라며 그를 신일고로 전학시켜 달라고 간청했다. 아버지는 처음에 반대했지만 한국에 혼자 남더라도 야구선수로 열심히 뛰겠다는 박흥식의 결심에 어쩔 수 없이 아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렇게 박흥식의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갔고, 한국에 홀로 남은 박흥식은 한동화 감독의 호의로 그의 집에 기거하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보냈다.
- 신일고 재학 시절, 미국으로 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이 사무칠 때 마다 박흥식은 슬픈 감정을 달래려 크림빵을 먹었고, 주변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박흥식에게 빵식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고 한다.
- 프로 은퇴를 전후로 두번이나 가족들이 사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지만, 그 때마다 스승 백인천의 부름으로 다시 KBO에 돌아왔다. 제시된 내용은 약간 달라도 백인천이 박흥식을 부른 말은 둘 다 거의 같았다고 한다.
1989년 시즌 후 한때 은퇴를 결심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형님의 세탁소 일을 돕고 있던 박흥식에게 LG 트윈스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백인천이 전화를 걸었다.
>백인천. 빵식아, 요새 뭐하냐?
>박흥식. 네 감독님, 세탁소 하고 있습니다.
>백인천. 야 이놈아 세탁소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당장 짐 싸서 한국으로 건너와라. 나랑 같이 뛰자.
>박흥식. ...알겠습니다.
>백인천. 빵식아, 요새 뭐하냐?
>박흥식. 네 감독님, 세탁소 하고 있습니다.
>백인천. 야 이놈아 세탁소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당장 짐 싸서 한국으로 건너와라. 나랑 같이 뛰자.
>박흥식. ...알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선수 생활을 계속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아내는 결사 반대했지만 박흥식은 아내 몰래 혼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탔고, 미국의 아내에게 전화로 미안하다고 하자 아내는 어쩔 수 없으니 열심히 잘 하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이후 선수생활을 완전히 마감한 박흥식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를 경영하던 중, 1996년 삼성 라이온즈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방문했다가 백인천 감독과 다시 조우하였다.
>백인천. 빵식아, 요새 뭐하냐?
>박흥식. 네 감독님, 세탁소 하고 있습니다.
>백인천. 야 이놈아 세탁소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당장 짐 싸서 한국으로 건너와라.
>박흥식. 저 은퇴한 지 3년이나 됐는데요?
>백인천. 누가 선수로 뛰래? 이번엔 타격코치야. 나랑 같이 뛰자.
>박흥식. ...알겠습니다.
이후 선수생활을 완전히 마감한 박흥식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세탁소를 경영하던 중, 1996년 삼성 라이온즈의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를 방문했다가 백인천 감독과 다시 조우하였다.
>백인천. 빵식아, 요새 뭐하냐?
>박흥식. 네 감독님, 세탁소 하고 있습니다.
>백인천. 야 이놈아 세탁소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당장 짐 싸서 한국으로 건너와라.
>박흥식. 저 은퇴한 지 3년이나 됐는데요?
>백인천. 누가 선수로 뛰래? 이번엔 타격코치야. 나랑 같이 뛰자.
>박흥식. ...알겠습니다.
박흥식이 또다시 한국행을 선언하자 아내는 자식 교육도 생각하라며 만류했지만, 결국 백인천의 호출을 받아들여 귀국한 박흥식은 지금도 KBO의 지도자로 활동 중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겠지만 여러모로 백인천의 안목이 오늘날의 명코치 박흥식을 만들어낸 셈이다.
- 2019시즌 도중 감독대행 취임 이후, 본 항목의 내용이 올라오면서 갸갤에서의 별명은 빵동님이 될 듯 하다.
- 소대수캐스터와 김동영 스타뉴스 기자가 진행하는 <오! 마이 타이거즈> 방송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흥식 감독대행 부임 이후 선수들에게 팬들을 위하여 싸인을 잘 해주라고 이야기했다 한다. 배신감을 가지면 야구장에 안 오는 팬들이 나올 수 있다고 했으며, 오늘 날의 팬 서비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 5월 17일부로 임명.[2] 1983년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 우승#[3] 서울특별시 출신이 아님에도 서울팀의 1차 지명 신인이 된 것은 그가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박흥식처럼 타 지역 출신임에도 서울팀의 1차 지명을 받은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박흥식과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대구초등학교 선배 '''김재박'''이다.[4] 유니폼 목 뒷편에 있는 KBO 패치를 봐선 2003년이다. 2003년 한 시즌만 저 글꼴의 패치를 부착했기 때문.[5] 먼저 미국에 이민을 가 있던 형님이 운영하던 세탁소에서 기술을 배워 독립했다고 한다.[6] 1990년(박흥식이 LG 소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던 그해) 신시네티 레즈를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감독이다.[7] 당시 타코마에서 활동했던 선수들 가운데는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있었다.[8] 박흥식과 백인천은 LG 시절 선수와 감독으로 한솥밥을 먹은 바 있다. 또한 박흥식이 코치 연수를 받던 시절 삼성 선수단과 애리조나 윈터리그에서 만나게 된 것도 있다.[9] 물론 삼성의 핵타선을 이끌던 이승엽이 일본으로 진출하고, 마해영도 FA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 외국인 타자 틸슨 브리또가 부상으로 인해 퇴출된 탓이 있었겠지만, 적어도 까다롭던 삼성 타선은 양준혁과 박한이를 제외하면 2006년부터 완전히 물타선으로 바뀌어버렸다.[10] 이는 1군 감독 선동열의 요청. 하지만, 토사구팽[11] 더군다나, 선수가 이전부터 아픈데 경기 당일 그것도 출전 1시간 전에야 구단에 호소 할 지경이였고 조범현 감독도 엄창나게 지분을 까였었다.[12] 훗날 허문회도 2020년에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다.[13] 그런데 원래 박정태는 시즌 끝나고 자진사퇴했다. 아무래도 이 문장에서는 김시진이 자기 인맥을 데려와 박정태를 내친걸로 오해하기 쉽다.[14] 다만 타격이 답이 없는 건 FA로 김주찬과 홍성흔이 이탈한 탓이 크다. 주축 타자 중 뇌진탕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진 강민호를 제외하면 적어도 2012 시즌보다 못하는 타자는 없다. 한마디로 아무리 못해도 박정태처럼 비난받기는 이르다는 얘기다.[15] 신본기는 아직 신인이니 여기 포함시키기는 애매하다. 박종윤, 이승화는? 그들의 최근 5년 성적을 확인해보라. 그들이 얼마나 꾸준한 타자인지(...) 알 수 있다. 이들은 심지어 그 최악의 타격코치라는 박정태의 영향도 안받았다. 흠좀무[16] 강민호의 뇌진탕 후유증, 김문호의 부상, 황재균을 백업할 내야 유틸의 부재 등등[17] 2013년에는 롯데를 상대로 등판 기록이 없다. 하지만 윤성환이 부진했던 2012년에는 롯데를 상대로 거의 악마 수준이었는데 너무 급이 높은 선수인 탓인지 엔하위키 로나쌩 클럽 회원으로는 등록되어 있지 않다. 2012 시즌 초 2경기 무실점과 그 경기에서 오승환의 부진으로 롯데 한정으로 '''오승환보다 무서운 윤성환이라고...''' 2012 시즌 이전에도 롯데 상대 성적이 좋은 편.[18] 2008년 기아 1군 타격코치로 부임했었으나 2009년 조범현 감독이 황병일 타격코치를 1군으로 선임하면서 자연스레 코치 명단에서 사라졌었다.[19] 타격이 답이 없는 건 군대로 안치홍과 김선빈이 이탈한 탓이 크다. 주축 타자 중 자기관리 실패로 완전히 망해버린 나지완을 제외하면 적어도 2014 시즌보다 못하는 타자는 없다. 라고 하면 2013 롯데의 상황과 꽤 비슷해지긴 한다만 박흥식 코치의 취향에 맞는 타선을 구축할 수 있었던 넥센, 롯데와 달리 기아에서는 1년 더 해도 나아질 가능성이 높아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흥식 코치에 호의적이었던 타팀 팬들도 기아 팬들에게 유임 권유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20] 정우람이나 손승락은 오버페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박석민은 야수였고 게다가 WAR 측면에서 봐도 특급이었다. [21] 다만 김기태 감독은 박석민보다는 뒷문 강화를 위해 손승락을 FA로 잡아주길 구단에 요청했다고 한다. 박석민이야 뭐 이범호가 건재했으니까.[22] 일단 해당 구단 팬들에게 직접 물어봐도 평범한 코치라는 의견와 좋은 코치라는 의견이 대립하지만 실패한 코치라는 의견은 상당히 찾아보기 어렵다.[23] 또다른 롯데의 명 타격코치였던 김무관이 SK에서 망하고, 한화에서 별볼일 없는 타격코치였던 장종훈 코치가 롯데에서 뻥야구로 어느 정도는 흥한데다 넥센은 이보다 더해서 허문회, 심재학 등 그냥 타격코치를 막 갈아대도 언제나 잘 치고 있기 때문에 그냥 팀빨이라는 의견. 하지만 애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코치는 없는데다 박흥식 부임 이전보다는 박흥식 부임 이후가 성적이 좋다는 것은 확실하다.[24] 박병호 강정호는 말할 필요가 없고, 서건창 김민성의 중용과 그 이전 2군 감독시절부터 서건창을 발굴한 것, 무툴이라던 김민성의 성장 방향 설정, 롯데에서는 만년 1.5군이던 정훈의 포텐 폭발과 황재균의 볼삼비 개선( 황재균은 항목을 보면 알지만 3루수 백업이 없던 롯데에서 혹사로 근육이 말라붙어 장타력이 줄어든 것이다. 그런데 커리어 내내 별로였던 선구안이 13~14년에 크게 향상되고 15년에 웨이트 트레이너를 바꾸면서 확실하게 터졌다.) 등 업적이 상당히 많다. 강민호조차 2014년 후반기부터 회복 조짐을 보인 것은 덤.[25] KIA 2군에 145 이상 던지는 투수들이 많지 않고, 야수들은 삐쩍 마른 우투좌타들이 많기 때문에 퓨처스 경기에서 좌투수가 나오면 대타로 내보낼 만한 우타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26] 장지수 같은 경우에는 키는 작지만 대신 구속이 빠르다.[27] 다만 이 부분은 의견이 다소 엇갈린다. 박민이 신체능력은 좋지만 반응속도가 느리고, 당장에 유격수보다 더 급한 게 3루라서...[28] 물론 한감독의 집에서 숙식 일체제공 이라는 조건도 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