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남(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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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2월 2일 (74세) ~
1. 개요
2. 조폭 시절
3. 이후
4. 저서
5. 참고 자료


1. 개요


金龍男
대한민국조직폭력배 출신 목사. 본명은 김용남이지만, 별명용팔이로 많이 불리며, 1987년에 일어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의 주범으로 유명하다.

2. 조폭 시절


1950년에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3남 4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중학생 때 서울특별시로 상경해 싸움질을 벌이다 퇴학당한 바 있었지만,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서 남산공전에 유도 특기생으로 입학해 유도선수로서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고졸 이후 '전주파' 결성에 참여해 행동대장을 맡다가 25세 되던 1975년부터 두목이 되어 세력을 확장해 전주파를 일약 국내 최대 폭력조직으로 키웠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 집권 이후 삼청교육대로 끌려가기도 했지만, 출소 후 두목을 또다시 맡았다. 사실 그는 정치 자체에도 관심 없던 순수 조폭이었으나,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 사건이용구 신한민주당 총무국장을 만나게 된 것을 계기로 그의 운명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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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사건 당시 모습.
당시 야당 분열 공작을 획책하던 국가안전기획부장인 장세동의 사주를 받은 신한민주당 이택돈, 이택희 등의 지시로 통일민주당 당사에 폭력배들을 이끌고 들어가 창당을 방해했다. 결국 통일민주당 창당식은 식당에서 약식으로 진행되었다. 1988년 검거 이후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1991년에 출소했다.
1997년에 '김용팔'이란 필명으로 <용팔이: 소설 한국주먹현대사>란 책도 썼는데, 여기서 회고한 바로는 이철승 등의 야당 거물급 인사들이 직접 불러 "김 동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 주셔야겠소."라며 정중한 대접을 해 주자 자신은 그 말을 철썩같이 믿고 따랐으나 이게 안기부의 공작임을 알게 되자 엄청나게 분노했었다고. 2005년작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선 이한위가 배역을 맡아 연기했는데, 여기서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의 목적인 의원 내각제 개헌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김영삼씨나 김대중 선생님이 주장하는 대통령 직선제가 민주주의에 맞지 않느냐?"라고 말했다가 결국 설득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3. 이후


1991년 출소 후 이듬해 '버거잭' 운영사 뉴한라통상 전무를 맡다가 1994년에 유천통상 사장도 맡았으나 경험 미숙과 대기업들의 패스트푸드 시장 진출 등으로 실패했다. 이후 경기도 가평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다 1998년에는 대전 피카소관광호텔을 인수했고, 1999년에는 서울역도협회 부회장도 맡았으나 피카소호텔 운영권과 관련된 폭력 혐의로 옥살이를 한 바 있다.
출소 후 조직으로 돌아가려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작곡가 조운파의 도움으로 2002년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의 설교에 감화받고 개신교에 귀의하여 전도사로서 사역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신앙 간증 수기도 냈다고... 국민일보 기사. 또한 주먹이 운다 시즌 2에도 출연했다.
신앙 간증과 생애는 여기를, 사회 생활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 2012년 학생폭력예방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렇게 진짜 갱생하면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2013년 7월, 담임목사 오정현의 논문 표절 논란과 관련하여 불만을 품고 사랑의교회에서 경유를 뿌리는 등 방화 난동을 부리다 불구속 입건되었다. 저게 오정현 목사를 비판하기 위해 한 행동이 아니라 '''오정현 목사를 응원하기 위해''' 한 짓이라 '''역시 정치깡패 어디 안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다만 1 ~ 2년이 멀다하고 툭하면 사회적 물의를 빚은 조양은이나 김태촌과 달리 김용남의 경우 개신교에 귀의했던 2002년부터 방화난동을 부렸던 2013년까지는 이렇다 할 만한 사회적 물의를 빚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2014년 5월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으나 3일만에 위에 언급한 방화사건으로 인해 법정구속 되었다.
2014년 12월 김용만 목사가 평신도시절 다니던 서초사랑의교회이름과 비슷한 강남사랑의교회라는 개척교회를 설립했다. 교단도 완전히 다르고 거의 무관한 교회지만, 오정현 목사가 축하영상을 보내오고 사랑의 교회 목사를 보내 축하 인사를 했다고 한다. 현재는 강서구 화곡동으로 이전했으나, 그래도 교회 이름은 여전히 강남사랑의교회.
EBS "화해프로젝트 용서"에서 방영된 조직원 길정운[1]과의 화해 에피소드가 나름 레전드. 방송에 의하면, 자신을 대신해 감옥에 간 길정운의 가족들을 수감기간동안 챙겨주기로 하였으나 김용남은 약속을 어겼다고 한다. 출소 후 복수하겠다며 벼르는 길정운과 김용남을 만나게 한 EBS측에서는 화해대책으로 함께 히말라야 등반을 할 것을 제안한다. 등반도중 쌍칼이 저체온증으로 쓰러지자 김용남이 열심히 간호하다가 자신마저 탈진해 쓰러졌다. 그 모습에 마음이 열린 길정운은 김용남을 용서하고 둘은 화해했다는 이야기.
2015년 세상을 떠난 김영삼 前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을 갔다. 이때 “생전에 직접 사죄하고 싶었지만 만나지 못했다. 정말 죄송하고 많이 후회한다”며 소회를 밝혔다. #

4. 저서


  • 용팔이: 소설 한국주먹현대사(전 5권) - 한뜻. 1997.
  • 나는 매일 눈물로 성경을 쓴다 - 천국을만드는사람들. 2009.
  • 용팔이(전 3권, 유광남과 공저) - 스타북스. 2015.

5. 참고 자료


[1] 별명은 쌍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