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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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의택(金義澤)
'''출생'''
1909년 2월 6일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 신계리
'''사망'''
1983년 2월 1일 (향년 73세)
'''본관'''
나주 김씨
'''학력'''
광주농업학교 4학년 중퇴
'''의원 선수'''
'''4'''
'''의원 대수'''
'''3, 4, 5, 8'''
'''호'''
인암(仁庵)
1. 개요
2. 생애
3. 선거이력


1. 개요


대한민국의 관료, 정치인이다.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인암(仁庵)이다.

2. 생애


1909년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 신계리에서 아버지 김용대와 어머니 전주 이씨 사이의 4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20세의 늦은 나이에 5년제 광주농업학교에 입학했으나 4학년 때 중퇴하였다.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8.15 광복 이후 경찰공무원이 되어 충청북도 경찰국장, 전라남도 경찰국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함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민주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정헌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한상과 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출마하였으나 박한상과 민주공화당 강병규 후보에 밀려 3위 이하 득표로 낙선하였다. 1974년 4월 신민당 유진산 총재가 별세하자 같은 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총재 후보로 출마하였다. 2차 투표까지 갔으나 과반수 득표자가 없던 상황에서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3차 결선투표는 치러지지 않았고 그나마 최다득표자인 김영삼이 총재로 선출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관제야당민권당을 창당하여 총재가 되었다. 1981년 제1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다 낙선,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김정수, 임채홍 등 두 명의 당선자만 배출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전국구 국회의원 1번으로 입후보하였으나 낙선하였다.
1983년 2월 1일 별세하였다.

3.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선거종류
소속정당
득표수(득표율)
선여부
비고
1954
제3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함평군)

'''10,637 (26.94%)'''
'''당선(1위)'''
'''초선'''
1958
제4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함평군)

'''21,832 (50.30%)'''
'''당선(1위)'''
'''재선'''
1960
제5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함평군)
'''29,195 (63.27%)'''
'''당선(1위)'''
'''3선'''
1963
제6대 국회의원 선거 (전라남도 함평군-영광군)

13,703 (17.19%)
낙선(2위)

1971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

'''4,969,050 (44.40%)'''
'''당선 (5번)'''
'''4선'''
1973
제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영등포구 일부)
21,465 (10.47%)
낙선 (3위)

1981
제12대 대통령 선거

26 (0.5%)
낙선(4위)

1981
제11대 국회의원 선거 (전국구 국회의원)
1,088,847 (6.7%)
낙선(1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