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상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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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漢相
1922년 4월 25일 ~ 2001년 9월 26일
대한민국의 정치인, 변호사다. 본관은 밀양(密陽).
2. 활동 내역
1922년, 강원도 안변군 신고산면 위북리[1]#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원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 전문부를 거쳤다. 8.15 광복 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군법무관전형시험에 합격, 변호사생활을 하다 정계에 입문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9년 3선 개헌을 막기 위해 10시간 가량 필리버스터를 감행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실패하였다.[2]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의택과 신민당 복수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제2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신과 민주공화당 강병규 후보가 동반 당선되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공화당 강병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79년 6월 신민당 김영삼 총재 체제가 출범하자 신민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했다. 1984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이찬혁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에 입당했다.
그 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통일민주당 장석화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강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최두환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제6대 국회의원 시절이던 1966년 윤필용 방첩부대장에게 테러를 당했다고 한다[3] . 이후 1990년대 원외 정치인 시절에는 통일국민당과 신민당에 몸담았다. 그밖에도 독특한 카이젤 수염이 특징.
필리버스터 연설 신기록을 갖고 있었다. 10시간 15분이었는데 이후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이 10시간 18분동안 필리버스터를 끝내 기록을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