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노 시게토

 

'''육상자위대의 역대 육상막료장'''
13대 다카시나 다케히코

14대 '''나가노 시게토'''

15대 스즈키 도시미치
'''일본 법무대신'''
'''제56대'''
미카즈키 아키라

'''제57대
나가노 시게토'''

'''제58대'''
요시다 유키히사
[image]
永野茂門 (ながの しげと)
1922년 6월 28일 ~ 2010년 1월 4일
1. 개요
2. 생애
3. 소속 정당


1. 개요


일본군인, 자위관. 14대 육상막료장국회의원, 법무대신 등을 지냈다.

2. 생애


1922년 6월 28일 오이타현에서 태어났다. 1941년에 55기로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1945년 패전 당시 계급은 대위였다.
1951년에 경찰예비대에 입대했고 병과통신이었다. 1978년에 다카시나 다케히코에 이어 육상막료장에 오른다. 통신 특기로는 몇 안 되는 육상막료장이다.[1] 1980년에 미야나가 간첩 사건[2] 으로 방위청장관이었던 구보타 엔지(久保田円次)와 사직했다. 육막장 후임자는 스즈키 도시미치였다.
퇴직 후에 1986년에 제1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 자유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비례대표로 당선됐다.[3] 1993년에는 탈당하여 신생당에 참여했다. 1994년에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사임하자 하타 쓰토무가 취임하면서 법무대신을 맡았는데 자위관 출신 장관이 나오는 게 문민통제에 맞지 않단 지적이 나왔다. 그리고 법무대신이 되자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난징 대학살 사건은 꾸며낸 것 같다"는 개소리를 해 11일 만에 파워경질당했다.[4] 신진당 해산 이후 자민당으로 복당했다.
2010년 폐렴으로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가와사키구에서 사망했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86 - 1993
정계 입문

1993 - 1994
입당

1994 - 1997
합당

1997 - 1998
정당 해산

1998 - 2010
복당

[1] 일반적으로 육자대에서 보통과, 기갑, 특과가 육막장이 되고 해자대에서는 수상함 항해항공이 된다. 공자대는 대부분이 조종이나 항공정비, 방공관제, 고사특과에서 항공막료장이 나온 바 있다.[2] 소련군의 정보기관인 GRU가 육자대에 간첩행위를 한 사건. 당시 육장보였던 미야나가 유키히사(宮永幸久)가 소련군 관계자와 만나 중국군 관련 정보를 넘겨줬다. 미야나가 본인은 소련에게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 기브 앤드 테이크로 했다곤 하지만 현금을 받은 것 때문에 문제가 되었고 경시청(일본 경찰)에게 걸려 잡혔다. 미야나가는 징역 1년을 받았다. 미야나가가 적발되고 2달 뒤인 1980년 3월에 모스크바 방위주재관들이 독이 든 보드카를 권유받다가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났다.[3] 자민당의 대승으로 비례대표 순번 25명 중 21번인데 당선됐다.[4] 최단 재임은 아니다. 1988년에 4일 만에 법무대신에서 사임한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