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야 여대생 살인사건

 



名古屋大学女子学生殺人事件[1]
1. 개요
2. 사건 경위
3. 오오우치 마리아는 어떤 인물이었나
4. 재판
5. 기타


1. 개요


2014년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범인의 사이코패스적인 성향, 그리고 범인이 명문대 재학중인 여대생이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준 사건이다.

2. 사건 경위


2014년 12월 나고야시 치쿠사 경찰서에 모리 토모코(森外茂子, 당시 77세)라는 여성이 실종되었다는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자는 토모코의 남편으로, 독실한 여호와의 증인 신도였던 그녀는 평소 전도 활동에 열심이었다는데, 그런 그녀가 전도 활동을 하던 중 갑자기 실종되어 한 달이 넘도록 행방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찰 수사 결과, 실종 1개월 후인 2015년 1월 나고야의 한 아파트에서 토모코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도끼로 수 차례 난타당한 처참한 모습이었으며, 부검 결과 도끼로 가격당한 후 목이 졸려 살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곧 체포된 범인은 토모코의 시신이 발견된 아파트에 거주중이던 오오우치 마리아(大内万里亜, 당시 19세)라는 나고야대학[2] 이학부 재학중인 여대생이었다. 마리아의 진술에 따르면 그녀는 여호와의 증인 모임에서 토모코를 알게 되었고, 사건 당일인 2014년 12월 7일 모임이 끝난 뒤 토모코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다"며 토모코를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들인 뒤, 미리 준비해 둔 도끼로 토모코를 수 차례 가격한 후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밝혔다. 또한 마리아는 토모코를 살해한 뒤 '실험 결과를 남기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사망한 토모코의 시신 사진을 4, 5장 정도 촬영했고, 사건 다음 날 시신을 그대로 아파트에 방치한 채 센다이시의 부모님 집에서 1달 가량 지냈다. 그리고 사건 발생 전후 자신의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메이다이(名大)[3]

출신 사형수는 아직 없지?(名大出身死刑囚ってまだいないんだよな)

12월 5일

'''드디어 저질렀다(ついにやった)'''

12월 7일(사건 당일)

범행 동기에 대해서는 단지 '''사람을 죽여보고 싶어서'''였으며,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는 동기가 소년범죄에 많기 때문에 자신도 아직 (법률상)소년일 때 해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한 조사 과정에서 여죄도 다수 드러났는데,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3. 오오우치 마리아는 어떤 인물이었나


오오우치 마리아는 1995년 미야기현 센다이시 출생으로, 고교 시절의 지인들에 따르면 다소 괴짜같은 면은 있지만 친구도 많고 명랑한 여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모습은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살인에 대해 비정상적으로 흥미를 보였으며, 초등학교 6학년 때는 평소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담임교사의 급식에 지우개가루와 스테이플러의 철심 등을 넣는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4] 또한 중학교 시절에는 사카키바라 사건의 범인 아즈마 신이치로에게 경도되어[5] 인터넷으로 서바이벌 나이프를 구입하는 등의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중학교를 졸업한 마리아는 성 우르술라 학원 에이치 고등학교(英智高校)[6]에 진학했다. 이 시기의 마리아는 비슷한 또래의 소녀들과 달리 숏컷[7] 가쿠란을 입는 등 보이시한 옷차림을 즐겼고[8] 일인칭도 남성 일인칭인 보쿠 또는 오레를 사용하는 등 남성적인 언동을 보이기도 했지만, 우등생인데다 반에서 겉도는 일은 전혀 없이 오히려 인기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마리아의 살인충동은 이미 폭발 직전의 상태까지 와 있었다. 그녀는 인터넷으로 탈륨을 구매한 뒤 학교 동급생과 중학교 동창의 음료수에 몰래 탈륨을 탔고, 이 음료를 마신 동급생과 동창의 증상을 관찰하여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했다.[9] 이 탈륨 독살 시도 사건은 2005년에 일어난 이른바 '탈륨소녀 사건[10]'의 영향이라고 전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고야대학에 진학한 마리아는 살인 충동을 억누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고, 2014년 8월 29일에서 30일에 걸쳐 센다이시의 한 가정집 창문을 화염병으로 파손하는 사건을 저질렀다. 심지어 동년 12월 7일 모리 토모코를 살해한 지 불과 1주일 남짓 지난 12월 13일에 화염병 테러를 저질렀던 그 가정집의 우편함에 인화성 물질인 디에틸에테르를 이용해 불을 지르기까지 했다.
마리아는 체포되어 조사를 받는 내내 어떠한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은 채 시종일관 담담하게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고 하며, 게다가 재판 중에 법정에서 대놓고 '''"검사와 변호인도 죽이고 싶다"'''는 발언을 해서 사람들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또한 위에 인용된 모리 토모코 살해 전후에 올린 것 외에도 마리아의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트윗들 중에는 일본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살인범들의 생일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축하 메세지를 올리는 등, 비정상적인 사고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들이 적지 않았다. 아래는 그 중의 일부.

오늘(4월 28일)은 모리 다이스케[11]

님 생일이야~♪ 미야기 출신이래~♪ 다같이 축하하자(^^)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지만 '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죽이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죽여보고 싶은' 사람은 많이 있다.

오늘은 사세보 소학교 동급생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가해자는 츠지 나츠미 양. 귀여워요(진짜로!).

7월 7일! 사카키바라 세이토[12]

군 32세 생일 축하해요♪(///▽///)

오늘(8월 21일)은 미야자키 츠토무의 생일입니다.

일상을 잃지 않고 살인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4. 재판


2017년 1월 16일 나고야지방법원에서 1심 재판이 진행되었다. 마리아의 변호인 측은 피고인의 매우 심각한 정신장애를 이유로[13] 책임능력이 없었다며 토모코 살해 사건을 비롯한 모든 사건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으나,[14] 3월 24일 재판부는 복수에 걸친 중대하고 악질적인 범죄임을 감안할 때 유기형은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다는 취지로 검찰의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마리아 측은 이에 불복하여 2017년 4월 5일자로 항소했으나, 2018년 3월 23일 나고야고등법원은 피고인과 변호인의 항소를 기각했다. 결국 마리아는 4월 5일자로 최고재판소에 상고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되면서, 2019년 10월 22일자로 1, 2심 판결이 유지되어 최종적으로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5. 기타


  • 마리아가 사건 당시 19세로 소년법 적용 대상이었기 때문에 실명 보도가 되지 않았으나, 주간문춘이 이를 무시하고 마리아의 사진과 성장 과정 등을 그대로 실명으로 보도해서 논란이 있었다.[15]
  • 마리아는 2015년 12월 시점에서 나고야대학에서 제적되었다. 정황상 학교 측에서 출교 처분한 듯하다.
[1] 나고야대학 여대생 살인사건[2]제국대학 중 하나로 제국대학 중에서는 가장 마지막에 설립되었으며, 전국에서 손꼽히는 명문 대학이다.[3] 나고야대학의 약칭[4] 원래는 교사의 급식에 '''붕산'''을 넣으려고 친구에게 맡겨 두었는데 친구가 붕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단순한 이물질 혼입 테러 선에서 그쳤다고 한다.[5] 아즈마가 당시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그런 사건을 일으킨 것이 존경스러웠다'''고 한다.[6] 미야기현에서 손꼽히는 명문 고등학교 중 하나다.[7]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많이 하는 숏컷 스타일이 아니라 남자 헤어스타일이다.[8]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마리아의 사진들 거의 대부분이 가쿠란을 입은 모습이다.[9] 이 사건에서는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피해자 중 한 남학생은 같은 탈륨 중독 피해를 2번이나 당해 탈모 및 시력 저하 등의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되었다.[10] 시즈오카현에서 영국의 연쇄살인마 그레이엄 영에게 경도된 한 여고생이 그의 살인 수법을 모방하여 탈륨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독살한 사건.[11] 전직 간호사. 2000년 자신이 근무하던 센다이시 소재의 호쿠료 클리닉에서 환자들에게 근육이완제를 투여하여 1명을 사망시키고 4명을 중태에 빠뜨린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중이다. 하지만 모리 본인은 엔자이를 주장하면서 계속 재심을 청구했다가 번번이 기각당했고 2018년 최고재판소에 특별항고를 신청한 상태.[12] 아즈마 신이치로의 별명. 왜 이런 별명인지는 사카키바라 사건 참조.[13] 정신감정 결과 자폐 스펙트럼 장애양극성장애 판정을 받았다.[14] 이 변호인은 1심부터 줄곧 무죄를 주장해 왔는데, 이런 태도에 대해 일본 인터넷상에서는 "정신장애가 있으면 무슨 범죄든 다 용서가 되는 줄 아느냐"는 등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애초에 자폐 스펙트럼과 양극성장애 판정을 받았다고는 하나 중, 고등학교 때부터 우등생이었고 전국 유수의 명문대 중 하나인 나고야대학에 진학했을 정도로 수재인 마리아에게 책임능력이 없다는 주장 자체가 말이 안 된다.[15] 다만 주간문춘의 실명 보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성인으로 간주해도 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