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키바라 사건

 



神戸連続児童殺傷事件, 酒鬼薔薇事件, 酒鬼薔薇聖斗事件
1. 개요
2. 범인 아즈마 신이치로
3. 사건의 발단
4. 범인의 도전장
5. 첫 번째 사건 (2명 상해)
6. 두 번째 사건 (1명 살해, 1명 부상)
7. 세 번째 사건 (1명 살해)
8. 사건 후
9. 현재의 범인
10. 음모론
11. 창작물에서의 사카키바라 사건
12. 관련 문서


1. 개요



1997년, 일본에서 아즈마 신이치로(東真一郎)[1]가 저지른 사건. 공식 명칭은 '고베 아동연속살상사건(神戸連続児童殺傷事件)'이지만, 범인이 쓴 쪽지에 적힌 酒鬼薔薇(술 도깨비 장미)[2]라는 이름 때문에 '사카키바라 사건', 또는 '사카키바라 세이토 사건'이라고 불린다.

2. 범인 아즈마 신이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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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저지를 때 당시 모습(당시 15세)
이름
아즈마 신이치로((あずま(しん(いち(ろう)
출생
1982년 7월 7일(41세)
범죄유형
연쇄살인
그는 1982년 7월 7일 효고현에서 태어났다. 그한테는 부모 그리고 동생이 있다고 한다.[3]
[image]
6세 때의 아즈마. 그의 할머니한테 안겨 있다.
1993년, 자신의 할머니가 노환으로 사망하자 아즈마는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즈마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선배들이 하라는 짓을 안하면 구타를 하였으므로 아즈마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짓을 했다.[4] 그는 5학년 때 작은 동물을 죽였다. 그 이후 그는 가학성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즈마는 평소 동물이나 곤충을 살해하는것을 즐겼으며 기괴한 행동과 언어를 평소에도 사용하고 다녔다고 한다.

3. 사건의 발단


1997년 5월 27일, 고베시 스마구 도모가오카 중학교 정문 바로 앞에서 검은 비닐봉지 속에 든, 그 당시 초등학교 6학년생[5]이었던 하세 쥰(1986~1997)의 절단되고 참혹하게 훼손된 머리가 발견되었다.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의 가족들은 주변에 전혀 원한을 살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입 안에서 한 통의 쪽지가 발견되었다. 쪽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image]

さあ、ゲームの始まりです

愚鈍な警察諸君

ボクを止めてみたまえ

ボクは殺しが愉快でたまらない

人の死が見たくて見たくてしょうがない

汚い野菜共には死の制裁を

積年の大怨に流血の裁きを

'''SHOOLL''' KILLER

学校殺死の酒鬼薔薇

자,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우둔한 경찰 제군이여, 나를 한번 저지해 보시게

나는 살인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어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싶어 죽겠어

더러운 채소 같은 인간들에게 죽음의 제재를

다년간에 걸친 원한에 유혈의 심판을[6]

'''SHOOLL'''[7]

학교살인의 '''사카키바라'''[8]


4. 범인의 도전장


[image]
범인이 보낸 첫 번째 메시지[9] 및 도전장(뒤쪽의 편지)을 찍은 사진.
[image]
도전장만 찍은 사진
그러던 중 고베신문사에 도전장이 또 한통 날아들었다. 흰색 편지지에 붉은색 펜으로 썼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전에 내가 밖에서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았는데, 아나운서가 내 이름을 잘못 읽어서 '鬼薔薇(오니바라)'[10]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사람의 이름을 잘못 읽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우롱하는 행위이다[11]. 표지에 적혀 있는 문자는 암호도 수수께끼도 아테지도 아니다. 거짓 없는 내 본명이다. 내가 존재한 순간부터 그 이름이 붙어 있었고, 하고 싶었던 일도 제대로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나는 국적이 없다. 지금까지 자신의 이름으로 남한테 불린 적도 없다. 만약 내가 태어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나로서 온전히 있었다면, 일부러 절단한 머리를 중학교 정문에 방치하는 행동 따위는 취하지 않았겠지. 하려고만 마음먹었다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몰래 살인을 즐길 수도 있었을 테지. 내가 일부러 세상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투명한 존재'''로 남아있을 나를, 적어도 당신들의 공상 속에서라도 실재하는 인간으로서 인식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과 동시에 투명한 존재인 나를 만들어 낸 의무교육과, 의무교육을 탄생시킨 사회에 대한 복수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단순히 복수하는 것뿐이라면, 단지 지금까지 등에 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뿐이기에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단 한 명, 나와 같은 투명한 존재인 벗에게 상담을 해보았다.[12]

그랬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참하지 않게 가치 있는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이라면, 너의 취미이기도 하고 존재 이유이기도 한 살인을 교배시켜 게임으로 즐기고, 너의 취미를 살인에서 복수로 바꾸면 되는 거야. 그렇게 하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너만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 나는 이번 살인 게임을 개시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도 나는 왜 내가 살인을 좋아하는가를 알지 못한다. 가지고 태어난 '''자연의 천성'''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살인을 하고 싶을 때만큼은 일상의 증오에서 해방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가 있다. 다른 이의 고통만이 나의 고통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이 종이에 쓴 글을 통해 대강은 이해해 주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나는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해 남다른 집착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 이름을 잘못 읽는다거나, 내 존재가 더럽혀지는 일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경찰의 움직임을 '''보면''', 어쩐지 속으로는 귀찮아하는 '''느낌'''이 있는데 그걸 숨기고 얼버무리려고 한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13]

내 존재를 무마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이 게임에 목숨을 걸고 있다.''' 잡힌다면 아마 목매달려 죽겠지. 그러니 경찰도 목숨을 걸라고까지는 안 하겠지만, 더 분노와 집념을 가지고 나를 추적해 주게. 향후 한 번이라도 내 이름을 잘못 읽는다거나 또 빛바래게 만들려고 하는 일이 있다면, 한 주 사이에 '''야채 세 개를 부숴버리겠습니다'''.[14] 내가 아이들 밖에 죽일 수 없는 유치한 범죄자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에게는 한 인간을 두 번 죽이는 능력이 갖추어져 있다'''.[15]

그리고 친절하게도, 입 안에 있던 성명서가 비에 젖어 알아보기 힘들다며 다시 한 통 보내주었다.
그리고 봉투에는

내 이름은 사카키바라 세이토. 밤하늘을 볼 때 생각하면 좋겠지.

라고 적혀 있었다.

5. 첫 번째 사건 (2명 상해)


그가 일으킨 첫 번째 사건은 하세 준 살인사건이 아니었다.
나중에 밝혀진 첫 번째 사건은 1997년 2월 10일 오후 4시 무렵, 고베시의 길거리에서 초등학교 6학년 여아 2명을 망치로 가격한 것이었다. 뒤에서 접근하여 머리를 노리고 차례차례로 내려친 것. 그 중 한 명은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 2주의 치유기간을 필요로 하는 경상을 입었다.
피해 여학생 중 한 명이 범인은 '블레이저 코트를 입고 학생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래서 피해자의 부친은 아즈마가 당시 다니고 있던 중학교에 연락해 학생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으나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 경찰 측을 통해 요청하라며 거부했다. 그러나 부친이 경찰에 신고한 후 경찰을 통해 다시 연락하였으나 결국 거부당하였고, 나중에 '학교가 범인을 감싼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해당 학교는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때 잡았더라면 나중에 벌어질 사건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아즈마는 이렇게 말했다.

망치로 내려친 순간 이성이나 양심을 잃어버렸다. 이 '''선'''을 넘은 다음에는 무엇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또한 피해자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이 건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자세한 정보가 비공개이다.

6. 두 번째 사건 (1명 살해, 1명 부상)


1997년 3월 16일 오후 12시 25분, 고베시 스마구 류가다이에서 길을 걷고 있던 초등학교(小学校) 4학년생의 소녀 야마시타 아야카(山下彩花, 1987 ~ 1997)에게 "'''손 씻을 곳 없니?(手を洗える場所はないか)'''"라고 물어 학교를 안내 받은 뒤, 손을 씻고 나서는 "'''답례를 하고 싶으니 이쪽을 봐 줘(お礼を言いたいのでこっちを向いて下さい)'''"라고 말한 후 머리를 망치로 내려쳤다. 피해자는 도망쳤으나 뇌좌상(腦挫傷)으로 1주일 후에 사망했다.
아즈마는 아야카 양의 머리를 내려친 후 이동하여, 10분 후 소학교 3학년이던 다른 여자아이의 복부를 13 cm가량 되는 나이프로 찔러 위를 관통하는 전치 2주 상처를 입혔지만, 다행히 죽지 않았다.
아즈마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죽음에 대해 이해하기 위하여 한 번 '사람을 죽여야만 되겠다' 고 생각하여 그 1단계로서 인간을 죽이기 쉬운 급소를 찾기 위한 실험을 하기로 하였다. 내가 다치지 않기 위하여 반격할 수 없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였다. 피해자에게는 어떤 원한 및 감정도 없다.

이 사건은 당시에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아즈마가 자신의 짓이라고 자백함으로써 진상이 밝혀졌다.

7. 세 번째 사건 (1명 살해)


[image]
피해자 '''하세 준(土師淳)'''
5월 24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수차례 동네를 돌아다니며 살인을 할 만한 적당한 사람을 찾던 중 소학교 5년생 하세 준(土師 淳, 1986 ~ 1997)을 발견. 준이라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작기 때문에 쉽게 죽일 수 있으리라 판단을 내렸다.
피해자 준은 아즈마의 동생의 친구였으며, 방사선과 의사의 차남으로 태어난 신체 장애아였다. 준과 아즈마, 아즈마의 동생은 같은 소학교를 다녔으며, 당시 그 소학교에서 장애아동을 위한 '나카요시 학급(なかよし学級)'에 속해있던 준은 아즈마의 동생과 친해지게 되어 종종 집에 놀러왔는데, 그때 아즈마는 준이 거북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즈마는 사건 이전까지 준과 얼굴만 아는 사이라고 진술했으나,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아즈마와 준이 함께 노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고, 겉으로는 친해보였으나 뒤에서 몰래 뺨을 꼬집는 등 괴롭힘이 있었던 것 같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실제로 아즈마의 학급기록을 보면 소학교 때 준을 괴롭혔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즈마는 하세 준에게 "'''산 너머에 거북이가 있다. 같이 보러가자.(向うの山にカメがいたよ。一緒に見に行こう)'''"고 하여 인적이 없는 케이블 안테나 기지국 펜스 밖의 풀숲으로 끌어들여, 지문이 남을 것을 우려해 장갑을 낀 뒤 손으로 목을 졸라 교살을 시도했으나 피해자의 저항으로 쉽게 죽지 않았고, 몇 분 뒤 결국 운동화 끈을 사용하여 교살에 성공하고, 인근 철물점에서 훔친 줄톱과 자물쇠를 이용해 안테나 탑의 자물쇠를 파손한 뒤 그곳에 사체를 숨겼다.
체포 뒤에 아즈마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그 만족감은 그때까지 내가 사람을 죽였을 때를 생각해서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만족감보다 더욱 멋진 것이었습니다.

(その満足感はそれまで僕が人を殺した時のことを考えて、得られるであろうと思っていた満足感よりももっと素晴らしいものでした)

당일 오후 8시 50분. 피해 소년 가족의 실종 신고로 경찰의 수사가 시작된다.
다음날 5월 25일, 집에서 쓰레기용 검은 비닐 두 장과 여분의 칼 세 자루를 챙긴 아즈마는 살해 현장을 찾아와, '영혼의 의식'의 일환으로 나이프로 양 눈에 상처를 입히고 입을 귀까지 찢은 뒤 두세 번에 걸쳐 눈꺼풀을 잘라냈다.
그 후 준 사체의 목 부분을 쇠톱으로 절단,[16] 이때 목 아래에 비닐봉지로 피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고 한다.[17] 그런 다음 배낭에 절단한 머리를 넣고 연못에 가 머리 부분을 한동안 들여다본 뒤[18] 만족하고 연못 뒤 나무뿌리 구멍에 비닐봉투를 숨기고 돌아갔다.
이후의 조사에서,

"남자 아이의 시체의 눈이나 얼굴을 보면서, 그 목을 자르는 데 거부감은 없었는가?" 라고 묻자

(男児の死体の目や顔を見ながら、その首を切るのに抵抗はなかったか?)

"별로 없었습니다. 내가 죽인 시체고, 말하자면 나의 작품이었으니까요."

(別にありませんでした。僕が殺した死体であり、いわば僕の作品だったからです。) 라고 답했다.

5월 26일, 경찰은 공개수사를 실시하여 경찰, PTA, 소방관 등 150여명을 동원 수색하였다.
아즈마는 오후 연못에 가 전날에 숨겨 둔 비닐봉투를 꺼내어 다시 머리를 5분 정도 관찰했다. 그 다음 연못에 범행에 사용한 쇠톱을 버리고, '''집에 머리를 가지고 돌아가 물로 씻었다.''' 돌아가는 중 경찰관에게 검문을 받았지만, 이름과 주소를 정확하게 대답하는 등 수상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5월 27일 오전 1시, '''피해자의 머리를 다시 배낭에 넣어 자전거로 도모가오카 중학교까지 옮겼다.''' 처음에는 중학교 정문 담 위에 머리 부분을 두어보았으나, 금방 떨어져버려 하는 수 없이 정문 중앙에 두고 성명서를 입에 물렸다.

자, 게임이 시작됐습니다.

우둔한 경찰 제군이여, 나를 한번 저지해 보시게.

나는 살인이 즐거워서 견딜 수가 없어.

사람이 죽는 걸 보고 싶어 죽겠어.

더러운 채소 같은 인간들에게 죽음의 제재를.

다년간에 걸친 원한에 유혈의 심판을.

'''SHOOLL''' KILLER

학교살사의 사카기바라(学校殺死の酒鬼薔薇)

아즈마는 이 광경을 몇 분간 바라보며 "'''성적 흥분이 최고조에 달해, 성기에 아무 자극도 주지 않았음에도 몇 번이고 사정했습니다.'''"[19]라고 진술했다. 그 후 오전 6시 40분, 출근하던 수위가 머리를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하였고, 경찰은 기자회견을 열어 수사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범인을 오타쿠 기질이 있는 30대로 가정하고 수사를 하는 헛다리를 짚었다.
6월 4일, 고베 신문사 앞으로 범인의 도전장이 도착하였다. 아즈마는 이 당시, 자신이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증언하였다. 편지를 더 보내면 필적 감정으로 들킬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염려했으면서도 편지를 보냈다. 당시 그는 수사에 더욱 혼선을 주기 위해, 경찰이 착각하여 만들었던 '고등교육을 받은 성인 남성' 범인상에 맞춰서 도전장을 보냈다. 아즈마가 설정한 거짓 범인상은 다음과 같다. 30대 남성, 무직. 학교 때 야구부에 소속되었고 아버지는 없음. 이전에는 교육 관련 직업에 종사했으나 해고당하고 어머니와 함께 산다. 어머니는 어렸을 때 남성을 엄격하게 가르쳤기에 둘 사이의 따뜻한 유대감은 없음. 어렸을 때 심각하게 이지메를 당해 의무교육을 원망하고 있다. 실제로 도전장을 분석한 많은 전문가들이 범인상을 엘리트, 고등교육을 받은 남자로 그렸다. 반면, 프로파일링의 대가로 손꼽히는 로버트 K. 레슬러가 일본에 가서 이 사건의 간단한 프로파일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가 그린 범인상은 사카키바라와 상당히 유사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아즈마의 이 편지로 인해 경찰은 해당 작문 수준을 중학생으로 가정할 수 있었으며, 마침 해당 중학교의 작문 중 아즈마의 《징역 13년》이라는 글이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고 판단한 경찰은 심증을 굳히고 아즈마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원래부터 아즈마 신이치로는 수상한 행동[20]을 많이 하여 요주의 인물이었다. 거기에 도전장 프로파일링 결과가 더해졌고 수사 과정에서 나온 <징역 13년>이라는 범행과 매우 유사한 내용의 글이 더욱 심증을 굳혀준 듯하다.

8. 사건 후


1997년 6월 28일, 스마 경찰서는 사건의 범인으로 아즈마를 임의동행 형식으로 체포한다. 최초에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성명문과 신문사에 보낸 편지를 보여주며 "이게 네가 쓴 거라는 건 명확하다. 필적이 일치했어."라고 말하자, 소년은 울면서 순순히 범행을 자백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은 엄밀히 말하면 편지의 필적 감정 결과가 '간간히 비슷한 부분은 있지만 동일인물이라고 확정하기엔 어렵다.'는 소견이어서, 체포영장을 발부할 수 없어 임의동행을 한 것이다.
아즈마는 다음 날 구속되어 28일에 걸친 수사 끝에, 7월 25일, 고베 지방 재판소에 송치되었고, 10월 17일, 고베 가정 재판소에 넘겨졌다. 1급 살인죄로 사형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아야했지만, 일본의 형사미성년자 연령은 만 16세 미만이었는데, 아즈마는 아무리 높게 잡아도 당시 만 15세였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할 수 없었다.[21] 대신 그가 B급 고어 호러 무비에 빠져 있었던 점 [22] 작은 벌레나 동물을 살해하는 것을 즐기고 기괴한 언동을 보인 점을 들어, 법원은 바로 풀어주지 않고 선도 및 정신 치료를 지시했다.
여담이지만 당시 소년원내에서 남자 청소년들이 여자청소년들을 화장실로 끌고가 매우 난폭하게 강간치상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 무리 가운데 아즈마도 있었다고 한다.[23]
10월 20일, 간토 의료 소년원에 수감된다. 그의 가족들은 준의 가족들에게 약 8천만 엔을 위자료로 지급하였다. 2001년, 치료가 순조롭다고 판단되어 토호쿠 중등 소년원으로 이감되었으나, 2002년, 고베 재판소는 그에게 더욱 면밀한 교육이 필요하다며 수용 연장을 결정한다. 2004년, 가퇴원해 사회복귀과정이 시작되었으며, 2005년 1월 1일, 퇴원 허가를 받아 8여 년간의 수감 생활을 끝낸다. 그는 2005년 5월 24일, 변호사를 통해 피해자 가족에게 헌화하겠다고 했으나 거절당한다. 2007년에는 자신에게 살해당한 소녀 아야카의 부모에게 사죄 편지를 보냈으나, 피해자 가족은 반성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배상에 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아즈마가 워낙 일본을 뒤흔들었던 사건의 범인인지라, 치료 당시에도 파격적인 조치들이 이루어졌다. 특히 병원 속에서 '다시 아기 때부터의 성장 과정을 밟게 하자'는 방법론 하에 병원 관계자와 유사 가족 관계를 맺어 치료가 진행되었는데, 아즈마는 그 중 특히 어머니 역의 의사에 마음을 쏟아, 여의사를 욕하는 소리를 듣고 발광하여 시설 내에서 폭력사건을 일으킨 적이 있다. 실제로도 아즈마는 자신의 어머니에 애증이 깊어, 엄격한 어머니를 무서워한 만큼 이해받고 싶다는 욕구도 강하였다. 사건을 일으킨 당일, 어머니만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눈치 채주길 바랐다고 공술(供述)한 바 있다.
여담으로, 일본 내에서 이 사건에 대해 피고인이 형사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면하자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사형수이자 신일본문학상 수상자인 나가야마 노리오가 이 사건 직후 사형에 처해졌는데, 이러한 논란을 무마하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많았다.
한편 이 사건은 일본에서 소년법 적용 연령이 개정되는 데 큰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 단, 일본의 우경화에 따른 엄벌주의의 채택이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1999년에 발생한 교토 초등학생 살해 사건이 이 사건과 특징이 유사하여 일본 사회를 또다시 충격에 빠뜨렸다. 차이점이 있다면 교토 초등학생 살해 사건의 경우 범인이 오로지 피해 아동 한 명만을 노렸다는 점이다.

9. 현재의 범인


[image]
2016년 주간문춘 보도로 공개된 사진에 우측 과거 사진을 합성한 이미지로 보인다.
현재 아즈마와 가족들은 이름을 바꾸고[24] 일본 모처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아즈마의 사진이 유출되었기 때문에, '성장한 그를 봤다'는 증언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 모양. 그러나 아즈마를 만난 사람들에 의하면, 사람이 상당히 달라져서 사진만으로는 알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범행 체포 당시에는 165 cm에 56 kg정도로 보통 체격에 속했지만,[25] 소년원 안에서 근육을 단련하여 덩치가 커지고 키도 자라,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26]
시설 안에서 용접술을 배웠기에 현재 용접공으로 살고 있다는 설이 우세하다. 시설 안에서 몸을 키워 상당히 건장한 체격이 되었다거나, 담당 법조인과 양자 결연을 맺어성을 바꾼 뒤 180도로 달라진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설도 있다. 2004년, 가퇴원 시, 피해자의 유족들은 부디 그가 제대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며 갚을 길 없는 죄를 보상해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기원하였다. 아즈마의 부모 역시 아들의 범죄로 절망하여 차라리 자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으나, 평생 아들과 함께 죄를 보상해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살겠다고 심정을 토로하였다. 아즈마의 어머니는 《소년 A, 이 아이를 낳고…》라는 책을 출판하여(실은 암암리에 대필작가를 썼다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그 돈을 모두 피해자 보상금으로 지불하였다. 그러나 피해자의 유족들은 아즈마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품고, 태도를 지적하며 헌화도 거절한 적 있으나, 2012년이 되어서는 그나마 변화가 조금씩 보이고 있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아즈마 신이치로가 가진 사디스트 기질이 치료를 받는다고 사라질 종류는 아니며, 어떤 식으로 촉발될지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목소리도 크다.
2015년 6월, 자신의 범행을 수기로 써서 출판하였다. 당연히 다들 반응은 분노 그 자체. 2ch 등에서조차 반성이 전혀 없다고 혀를 차고 있다. 참고로 수기의 제목은 《절가(絶歌)》. 다행히도(?) 서문에 유가족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히는 등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은 남아있는 듯 보이나, 수기를 출간한다는 것 자체가 그가 아직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에[27] 욕먹어도 할 말은 없는 상황. 물론 이후 재범을 일절 하지 않은 거로 봐서는, 어느 정도 폭력성이 완화되는 등 최소한의 교정은 됐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책 제목인 절가[28], 책에 적힌 살인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서술[29] 등이 사이코패스로서의 자기중심성을 보여준다. 아동 잔혹 연쇄살인마 아즈마 신이치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프로파일러 배상훈은 이를 ''''피해자에 대한 조롱'''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피해자 하세 준 군의 부친은 인터뷰에서 ''''내 아들이 (아즈마가 범행 당시 편지에 썼던 대로) 두 번 살해당한 기분''''이라고 밝혔다. 다른 유족들의 심정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정말로 교화된 사람의 행동일까?'''
어쨌건 이런 부류의 책이 대개 그렇듯이 욕하면서도 보는 게 보통이라, 15만부 이상이 팔려 아마존닷컴 도서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등 단기간에 범인에게 12억원 이상의 인세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범인 자신이 저지른 범죄 행위로 이득을 얻는 것을 제한하는 샘의 아들법[30]을 일본에도 도입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이미 피해 보상을 한 데다 법의 소급적용은 도덕적으로 당연한 상식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만 적용되기 때문에, 아즈마 본인에게는 소급적용되지 않는다.
2016년 2월, 주간문춘에서 소년 A의 근황을 공개했다. #
여담이지만 의료소년원 출소 이전인 2001년에 신장은 177 cm, 좌우 시력은 0.01~0.025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출소 이후 풍속점이나 성매매 업소를 드나들고 있으며 자신이 지정한 여성 접대원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변태적인 짓들을 한다고 한다. 또한 직관상 능력이 있다고 한다.
이런 행동을 하고도 뉘우침이나 처벌이 없다는 점에서, 식인은 안 했지만 사가와 잇세이하고도 유사하다.

10. 음모론


일단 첫 번째 초등학생 6학년 여학생 2명 및 4학년 학생 살인미수사건, 그리고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 살인사건은 유죄라는 데 이견이 없다. 문제는 세 번째 범행.
이 사건을 두고 여러가지 음모론이 존재한다. 먼저 고베 신문사로 보내진 장문의 편지에서 나타나는 문장 구사력과 어휘력은 상당한 수준이라서, 당시 14세의 소년인 아즈마가 썼다기엔 큰 무리가 있다고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준의 머리가 처음 발견되었던 5월 27일, 학교 정문 앞에 검은색 닛산 블루버드가 정차하고 있었다는 트럭 운전 기사의 증언이 있었고, 검은색 비닐봉투를 들고 서성이던 20~40대 남성을 목격했다는 노부인과 신문 배달원의 증언이 있었다.[31] 또한 아즈마가 변호사와 대담 시 울먹이며 ‘나는 속았다, 당했다’고 진술했다는 이야기도 있다.[32]
또한 준의 머리를 놓아둔 상황에서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처음 경찰에 신고한 중학교 수위에 의하면 머리는 학교 정문 중앙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1시간 전 머리를 목격한 노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명이 써진 금속 플레이트 아래에 놓여있었으며, 6시 30분경에 목격한 신문 배달부는, 머리가 플레이트와 반대로 정문으로 향하고 좌측에 놓여 있었다고 증언한다. 아즈마는 머리를 맨 처음 학교 담 위에 올려놓았다가,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해 교문 앞에 놓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담의 높이는 2 m로, 160 cm중반의 소년인 아즈마가 무게 6 kg짜리 머리를 올려놓는다는 건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33]
그리고 이 사건은 아무런 물증도 범행 증인도 없이, 오로지 아즈마의 자백만으로 범행이 인정되었다. 물론 아즈마가 자백한 곳에서 흉기가 나오기는 했는데, 실제 흉기의 종류와 칼날의 길이 등이 아즈마가 자백한 사실과 달랐으며, 시체에는 분홍색 시반이 나타났는데, 이는 주로 독살이나 가스 유출 현장, 혹은 시체가 추운 곳에 있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준은 질식사이므로, 독살 등으로 분홍색 시반이 나타날 수 없으니 사체가 추운 곳에 있었다는 소리. 하지만 범행은 5월에 일어났으므로 사체를 냉동시켰다는 소리인데, 아즈마가 냉동 시설을 이용할 수 없었으므로 자기 집 냉동고에 보관했다는 소리가 된다. 또한 자백에 따르면 준과 심한 격투 끝에 살해했다고 했으나, 준의 시체 어디에도 격투의 흔적은 없었다. 부검 결과 범인은 왼손잡이로 추정되나, 아즈마는 오른손잡이, 협박장의 필적도 아즈마의 필적과 동일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검찰은 믿을 수 없는 아즈마의 진술 및 추정 증거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기로 보면, 2000년대 초반까지 소년 A 무죄설은 심도 깊게 다루어졌다. 특히 소년이 쓴 작문 《징역 13년》에서 나온 문구 상당수가 영미권의 책이나 영화에서 따온 것임에 비추어 보아, 일련의 사건이 미국과 정치적 관련이 있음을 주장하는 음모론도 있다. 대표적으로 극좌조직 혁마르파는 사건 당시부터 자신들의 기관지에서 사건을 분석하면서 '소년A는 무죄이며, 진범은 따로 있다'는 주장을 싣고, 공개집회를 벌이기까지 했다. 이외에 진범이 실존하며 그 진범이 몇 건의 다른 살인사건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괴문서도 암암리에 돌아다녔다. 또한 범인의 도전장에 뒷장이 있다는 음모론도 있다. 사진을 보면 스테이플러 자국이 있는데, 경찰이 중요하지 않은 앞장만 공개하고 정작 중요한 뒷장은 숨겼다는 설이다.
하지만 아즈마 체포 후, 부모가 입회한 가택수사에서 범행과 관련된 물품들, 특히 아즈마가 준의 머리를 집 다락에 몰래 숨겼을 때 남았던 핏자국 등이 발견되었던 점, 아직 아즈마가 범인이라고 밝혀지기 전에도, 제2의 도전장을 미디어에서 본 아즈마의 동급생들이 아즈마의 필체와 유사하다는 것을 지적했다는 점, 아즈마 본인이 하세 준 사건 이전의 살상사건을 주변에 자랑하듯 흘리고 다녔다는 점, 하세 준 살해 직후 친구들 두 명과 만났는데, 아즈마의 옷과 흰 운동화가 흙범벅이고, 머리가 샤워를 한 듯이 엄청나게 땀에 젖어있었다는 등 아즈마의 차림새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고 그 두 명이 증언했다는 점. 무엇보다도 본인이 강력하게 자신이 범인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보아, 아즈마 신이치로=범인이라는 증거가 충분한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이 사건의 범인임이 재판에서 인정된다면, 남은 인생 반은 종칠 것이 분명한데 무고하다면 굳이 범인이라고 우겼을까? 게다가 일본 검찰이 아무리 막장이라도 무죄가 의심되는데도 기소하는 일은, 대중에 대한 파급력이 큰 성범죄나 성범죄 결합 살인죄가 아니고서는 찾기 힘들다. 그런데 성범죄와 전혀 관련이 없는 그냥 묻지마 살인이었는데, 과연 검사 커리어를 아예 포기할 각오를 하고[34] 기소할 만큼 생각이 없는 검사가 있을까?
또한 소년은 중학교 시절 학교에서도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아였다. 소년이 동네 길고양이들을 육교에 올라가 차도로 던진다든가 '해부'라는 명목 하에 잡아 죽여서 씨를 말린 사실은 학교 안에서도 암암리에 퍼져 있었다. 또한 죽인 고양이들의 혀를 소금에 절여 병에 보관하여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보여주고, 동물을 죽이기 위해 마트에서 온도계를 훔쳐 수은을 모았으며, 친구를 폭행하는 등 일진 짓도 하여, 해당 피해자가 소년과 마주치기 싫어 공포에 떨며 전학을 갈 정도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문제아로 교사들의 시선을 끌었던 소년은, 중학교에 가서는 교사들도 손을 떼고 부모에게 상담받기를 종용할 정도였다. 실제로 부모는 소년을 데리고 뇌검사까지 받았고, 제3의 살인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소년은 부모와 함께 상담을 다니고 있었다. 전혀 소용없었지만….
이 때문에 현재 일본 사회에서는 아즈마의 단독범행이라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무엇보다 아즈마 본인이 지능이나 사회성 등에 별 문제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35] 지금까지 한 번도 무죄를 주장한 적이 없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1. 창작물에서의 사카키바라 사건


CLAMP는 《X》의 연재중단 요인으로 이 사건을 들고 있다. 물론 CLAMP의 핑계일 수도 있지만, 《X》에 나오는 잔혹한 표현들을 미뤄보면, 좀 사회적으로 안 좋은 시선을 받을 듯해서 연중했을 수도 있다.
야마다 후타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OVA 《마계전생》은 이 사건의 여파로 외압을 받아 결국 제작이 중단되었다.
저널리스트 오쿠노 슈지는 이 사건을 계기로, 1969년에 발생했던 유사 살인 사건을 추적,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를 집필하기도 했다.
일본의 록 밴드 the GazettE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14세의 나이프(十四歲のナイフ)》를 발표했다.
어나더》의 남주인공의 성이 사카키바라이며 작중에서도 이 사건이 언급된다.
간츠》의 니시 죠이치로의 모델이기도 하다. (아즈마,東 → 니시,西, 신이치로,真一郎 → 죠이치로,丈一郎)
경향신문 1997년 6월 7일자에서도 언급되었던 적이 있다.# 다만 사카키바라의 이름이 '사카키 바라세 이토' 라는 기묘한 띄어쓰기로 나와 있다.[36]

한국에서는 2004년 6월 22일과 29일에 《실화극장 죄와 벌》 71~72화에서 이 사건의 내용을 재연 드라마 형식으로 방송했으며 아즈마는 '야마자키'라는 가명으로 처리되었다. 아즈마가 정신병원에서 나온 뒤 "설마 네가 진짜로 그런 거니?" 라고 묻는 어머니에게 말 대신 썩소로 대답한 그의 모습이….[37]
《먼나라 이웃나라 한국편》에선 메이와쿠 문화를 중시하는 일본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흉악범죄가 일어난다는 일례로 '중학생이 초등학생을 살해한 사건' 정도로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당시 한국에 준 충격은 대단했고, MBC 뉴스데스크는 이웃나라 연쇄살인범의 체포에 잠시 속보를 내보낼 정도였다.
오리하라 이치의 소설 《실종자》의 모티프가 되었다.
2015년 7월 30일, 《경찰청 사람들》에 이 사건이 소개되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투명하다"라는 표현은 사카키바라 사건의 협박장에서 유래한 것이다. 《돌아가는 펭귄드럼》에서는 '투명해져서' 아무 것도 되지 못한 채 살아가게 되는 시설 '어린이 브로일러'가 나오고, 《유리쿠마 아라시》에서도 몰개성한 보통 사람과 같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자주 사용된다.

12. 관련 문서


  • 후쿠오카 미용사 토막 살해 사건
  • 큐슈 의대 전쟁포로 생체실험 인육사건
  •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38]
  • 가문에 흐르는 악의 피
  • 교토 초등학생 살해 사건[39]
  • 나고야 여대생 살인사건[40]
[1] 1982년 7월 7일생[2] 榊原라는 성과 발음이 같다. 흔한 성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있는 성이다.[3] 피해자 하세 준의 친구가 아즈마의 막내동생이다.[4] 이일이 나중에 그가 살인을 하게 한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5] 한국과 일본은 초등학교를 만 6세에 들어가기 때문에 만 18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다. 한국도 법정 공식 나이는 만 나이다.[6] '다년간의 대범한 유혈의 나' 로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읽는다면 미야시타 아키라의 만화 《마라문의 가족(瑪羅門の家族)》에 나온 대사인 "다년간의 대범한 작렬의 나를(積年の大怨に灼熱の裁きを)!"의 인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설에 의하면, 범인이 나중에 잡혔을 때 그 만화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7] SCHOOL(스쿨)의 오타가 아니라 실제로 저렇게 쓰여 있었다. 일본 웹에서는 이 범인의 무식함을 조롱하는 네타로 쓰인다.[8] 酒鬼薔薇聖斗는 현재 '사카키바라 세이토 (さかきばらせいと)' 라고 불리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범인의 이름인가, 필명인가, 어떻게 읽는 것인가도 불분명하였다. SHOOLL KILLER도 일부러 저렇게 적은 것인지 스펠링을 몰라서 적은 것인지 논란이 있었다. 쪽지가 젖어서 글자를 알아보기 힘들 뿐 아니라, 조악한 문장으로 작성되어 있고 글을 자를 대고 써놓아 글씨가 엉망이어서 해석이 여러 방향으로 갈리는 경향이 있다.[9] 밑에도 나오지만, 입에 들어있던 쪽지가 젖어서 알아보기 힘들었다면서, 도전장을 보낼 때 같은 내용을 다시 같이 넣어 보냈다.[10] 는 보통 오니라고 읽는다.[11] 이런 연유로, 범인인 아즈마를 조롱하기 위해 일부러 '사케오니바라 세이토'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12] 이후 프로파일링 결과에 따르면, 이 벗은 자신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했다. 즉 범인은 친구 따윈 없었단 소리.[13] 이 문장이 범인 검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로파일링 결과 범인은 수사진과 접촉한 적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고 이전부터 범죄 현장에 자주 (수상한 차림으로) 나타나 이상한 행동을 하여 의심을 받고 있던 아즈마 신이치로가 유력 용의자로 떠오르게 된 것. [14] 위에서 ''''더러운 채소 같은 인간들\''''이라고 표현한 걸 기억하자.[15] 훗날 범인 아즈마 신이치로가 수기를 출간하였을 때 희생자 하세 준 군의 아버지는 '내 아들이 두 번 살해당한 기분'이라 표현하였다. 편지를 쓸 때는 그냥 허세였겠지만.[16] 후일 정신 감정에서 그는 이때 발기, 사정했다고 한다.[17] "나의 피는 더러워져 있으므로 순수한 아이의 피를 마시면 더러워진 피를 맑게 할 수 있다" 고 진술했지만, 프로파일링 과정에서는 이 말도 거짓말일 거란 추측을 내렸다고 한다.[18] 이때에도 성적 흥분을 느낀 것 같다고 한다.[19] 원문에서는 行く(가다, 사정하다)라는 단어를 써서 말했다.[20] 범행 당시 신고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신발과 옷을 그대로 착용하고 사건 현장 근처에서 얼쩡대며 범인의 도전장 내용을 정확히 기억해 말하는 등의 행동. [21] 물론 이 사건 이후 바로 하향조정된다.[22] 하세 쥰을 죽인 당일 날도 탱크산을 내려온 직후 '비블로스'라는 매장에서 포르노와 호러 비디오를 훔쳤으며 가택수사 당시 아즈마의 방 벽장은 만화,소설,비디오,게임CD등의 공포물로 온통 빼곡했다.[23] 또한 그가 사카키바라 사건의 범인이란 것이 알려지며 소년원 내에서 괴롭힘을 당했는데 이때 아즈마는 반나체 상태로 을 들고, 자신의 성기를 괴롭힌 아이들의 몸에 새겨야 한다면 난동을 부린 적도 있다.[24] 이 바뀐 이름이 아즈마 신이치로라는 말도 있다, 여담으로 히가시 신이치로라고 개명했다는 말도 있다.[25] 14살 아이가 165cm인 것은 우리나라 기준으로도 꽤 큰 키이다. 더군다나 한참 성장기라는 점을 감안하면....[26] 최근까지도 복싱을 수련하면서 거르지 않고 로드웍과 푸시업,복근운동 700개, 척추운동 500개 등을 한다고 한다.[27] 수기 작성 과정에선 자신의 살해 과정과 피해자에 대한 묘사가 나올 수밖에 없으며, 당연히 유족들과 고인에게 엄청난 2차 가해이다.[28] '끊는(절)' 것이 유족 기준이 아닌 살인마 본인 기준이다. [29] 살인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지금도 모르나, 살인을 한다면 '''자신이 (처벌을 받아) 괴롭게 되니''' 절대 하지 말라고 10대의 자신에게 알려주겠다는 내용이다. 결국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고려는 조금도 존재하지 않는다. [30]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범죄행위를 토대로 만든 지적재산물을 판매할 경우, 그 수익금을 피해자 배상을 위한 배상금으로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법률이다.[31] 다만 노부인과 우유 배달원은, 소년의 머리를 단지 마네킹으로 한 끔찍한 장난으로 생각해 신고하지 않았다. 사실 상식적으로 아무리 불량한 인간이라도, 미야자키 츠토무처럼 어딘가 맛이 가지 않고서야 어린아이를 죽이고 머리를 전시하는 미친 짓은 잘 하지 않는다.[32] 이건 '범인의 편지가 네 필적이라는 증거가 나왔다'는 수사관의 거짓말에 속아 자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던 아즈마는 수사관이 그렇게 다그친 뒤에야 울음을 터뜨리며 모든 범행을 자백했었다. 필적 감정 결과 자체는 '유사한 필체가 많이 보이지만 동일한 사람의 필적이라고 단정할 순 없다'였다. 자백 이후 아즈마의 어머니가 '정말 네가 한 일이 맞니?'라고 물었지만, 아즈마는 자신이 모든 범행을 저질렀다고 인정했다.[33] 아즈마 본인이 기억에 혼선을 빚거나 거짓 진술을 했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확실하게 드러난 건 교문 앞에 피해자의 머리가 놓였다는 사실뿐이다. 아즈마의 말로는 뛰어올라 올려놓은 게 아닌 던져서 올려놓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신빙성은 충분하다.[34] 처벌이라도 기대할 수 있으면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었다.[35] 지적장애나 자폐성 장애가 아니라도 평소 호구 취급 받았다느니, 남의 말을 잘 믿는다느니 하는 등의 진술이 나왔다면 재조사를 했을 것이다.[36] 당시 한총련 관련 사건에 묻혀서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국에서 이 사건이 보도된 것은 경향신문이 유일하다.[37] 실제로는 어머니의 "네가 누명을 썼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는데, 정말 그렇니?" 라는 질문에 눈물을 글썽이며 "그럴 여지는 전혀 없어" 라고 대답했다 한다.[38] 미성년자 사이코패스의 끔찍한 아동 대상 살인과 시체 훼손 사건이라는 점이 유사하다.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발발 이후 이 사카키바라 사건이 국내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39] 사카키바라 사건이 발생한 지 불과 2년 후에 발생했다. 대낮에 벌어진 아동 대상 살인사건이었고, 범인이 현장에 남긴 '성명문'이 사카키바라 사건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일본 사회를 다시금 경악하게 만들었다.[40] 사건의 범인이 중학교 시절 인터넷에서 사카키바라 사건을 접하고 나서 아즈마 신이치로에게 경도되었다. 범인의 증언으로는 아즈마가 사건 당시 자신과 비슷한 나이였는데 그런 일(사카키바라 사건)을 저지른 것이 존경스러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