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키 산주고(문호와 알케미스트)
1. 소개
2018년 7월 18일 신규 추가된 문호. 이름 자체는 요시카와 에이지의 사서실 대사에서 먼저 언급되었고[1] 2017년 신쵸샤 콜라보 기획에서 향후 추가 예정 문호들 중 하나로 거론되었다가 유혼서 이벤트로 선행 등장했다. 보통은 '나오키'로 통하지만 쿠메 마사오는 '우에무라'라고 부르는데, 본명인 우에무라 쇼이치(植村宗一)를 가리킨다.[2]
좋게 말하면 느긋하고 나쁘게 말하면 게으른 듯 지내는 것이 평상시 모습. 심지어 글을 쓸 때도 드러누워서 쓰는 습관이 있는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이런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하면서 자기도 따라해 보려고 하기까지 했다. 마이페이스 속성답게 남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라 주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한 타인의 가십거리를 찾아내는 것에도 흥미가 있는 모양인지 '문단 가치 조사표'라는 것을 만들어서 다른 문호들의 스탯을 자기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다. 본인은 나름대로의 독자 서비스 차원에서 만들고 있다는 모양이지만 반응이 영 좋지는 않은 듯.[3] 심지어 이 조사표를 본 요코미츠 리이치는 비방, 중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며 분노하면서 갈기갈기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이 평가표는 실제의 나오키도 만들었던 것으로, 요코미츠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몸담고 있던 신흥 문예지 '문예시대'와 키쿠치 칸의 '문예춘추' 동인들이 심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나오키가 당시 문단에서 활동 중인 문인들을 여러 항목별로 평가한 일종의 흥미기획 비슷한 가십성 기사였다. 그런데 이것을 본 요코미츠가 격노해서 당시 키쿠치와 사이가 나빴던 작가 콘 토코와 함께 나오키의 평가표를 실은 문예춘추와 이를 허가한 키쿠치를 심하게 비난했던 일이 있었다.[4] 요코미츠와의 회상은 이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추정되며, 실제로는 요코미츠가 한때 키쿠치를 비롯한 문예춘추 계열과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기 직전까지 갔으나 가와바타의 꾸준한 설득으로 절연 자체는 면할 수 있었다.[5]
'무슨 일이든 적당한 게 최고'라는 신조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공식 독본 2권에 따르면 보케 담당을 가장한 츳코미라고(...). 기본 의상의 문양과 배색은 실제 인물이 생전에 흰색과 검은색을 좋아했다는 데서 유래했고, 하오리의 여밈 부분 장식도 실제 인물이 문진 대용으로 사용했다는 코등이 장식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실제 인물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 시나리오에도 틈틈이 손을 대고는 있지만 다른 문호들의 반응은 영 미적지근한 모양.[6] 2019년 8월 7일부터 진행된 이벤트 '은하철도 태평기'의 스토리가 미야자와 겐지의 원안을 바탕으로 나오키가 쓴 영화 각본이라는 설정으로, 여러 문호들[7] 이 배우로서 열연(?)했지만 촬영을 마친 뒤 결과물을 본 요코미츠 리이치는 초반부터 너무 급전개라서 연기하는 코바야시씨가 보기에 안쓰러웠다고 혹평했고[8] , 겐지는 자기가 써준 원안이 완전히 다른 스토리로 변했다고 풀이 죽었으며[9] , 야마모토 유조는 자신과 쿠메가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10] 그 외에도 몇몇 출연 문호들은 낚였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11] 심지어 속편에 해당하는 은하철도 태평기 2 이벤트에서는 겐지가 기껏 짜 놓았던 각본 원안을 멋대로 바꿔버리는 바람에 겐지를 울리기도 했고(...) 차장 역으로 출연한 마사오카 시키의 극중 취급에 분노한 타카하마 쿄시와 카와히가시 헤키고토, 이토 사치오가 나오키에게 따지러 가는가 하면[12] 2편에서 등장하지 못했던 전편의 출연 문호들[13] 이 분개해서 '나오키 산주고 피해자 모임'을 결성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14]
공식 트위터에서 키쿠치 칸과 연관이 깊은 문호라고 소개된 것처럼[15] 키쿠치를 본명인 '히로시[16] '로 부르는 유일한 문호이며[17] , 게임 내 대사에서도 키쿠치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하는 편이다. 다만 도감 소개문에도 있듯 키쿠치에게 상당한 액수의 돈을 빌려 놓고 제때 갚지는 않았는지, 편지가 왔을 때 키쿠치가 보낸 청구서인 줄 알고 긴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는 자기 도박 판돈까지 키쿠치 앞으로 달아놓는 일도 종종 있는 모양(...). 심지어 2021년 생일 회상에서는 혹시 채무 소멸이 되냐고(...) 말하려다 말기도 한다.[18]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관계는 양호한 편으로, 말하자면 악우인 셈. 이런 점 때문인지 소속 파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서들 사이에서는 신사조파와 함께 묶이는 경우가 많다.
생일 회상에서 이름 관련 드립을 치는데, 이제는 생일이 돌아오더라도 나오키 산주로쿠(三十六)로 개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불길해서(...).[19]
2. 성능
3. 입수 방법
- 유혼서 : 2시간 12분[20]
4. 회상
4.1. 유애서
4.2. 식단
4.3. 탄생일
5. 편지
6. 대사
- 추가보이스
- 도서관(계절한정)
- 모약・상실시
7. 기타
일각에서는 헤어스타일 때문에 같은 성우가 연기한 도검난무-ONLINE-의 코기츠네마루가 생각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1] "나오키? 그 녀석과는 몸 단련하는 방식이 달라."[2] 필명인 나오키는 성씨의 우에(植)를 파자해서 지은 것이다(直+木=植).[3] 요코미츠 리이치와의 회상을 보면 그나마도 당사자 몰래 작성하고 있는 듯.[4] 정확히는 콘이 평소부터 키쿠치를 싫어하다가 문예시대 창간을 계기로 대놓고 키쿠치에 대한 비방에 더욱 열을 올렸고, 이에 키쿠치도 지지 않고 응수하면서 문단 전체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대립이 격화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나오키의 평가표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요코미츠까지 이 대립에 끼어들게 된 것에 가깝다.[5] 이 일련의 파문을 몰고 왔던 콘 토코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가와바타는 요코미츠만 붙들고 열심히 설득을 했는데, 그 이유는 요코미츠가 당시 노모와 아내를 부양해야 하는 신인 작가였기 때문에 키쿠치의 지원 없이는 생활이 힘들다는 점도 있었고, 무엇보다 콘이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데다 감정 기복이 심한 성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콘 쪽은 진작에 포기하고 대신 요코미츠를 설득했다는 설이 여러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가장 유력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6] 실제의 나오키 산주고도 ''영화 연합 예술가 협회'라는 단체를 창설하여 영화 제작에 몰두했던 시기가 있었으나 실적이 영 좋지 않았고, 결국 '영화 따위는 애들 장난'이라는 말을 남기고 영화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7] 코바야시 타키지, 이와노 호우메이, 쿠니키다 돗포, 마사오카 시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야마모토 유조, 쿠메 마사오, 미야자와 겐지[8] 여기에 더해 극중 화면이 열차 내부만 나오고 그 외의 우주 배경은 전혀 나오지 않는 점을 지적하면서 좀 더 우주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이야기가 되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2편 마지막 회상에서는 아예 대놓고 나오키에게 '''그 차마 못봐줄 영화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거냐'''고 깠다가 싸우기 직전까지 가기도.[9] 자신의 대표작인 은하철도의 밤 같은 분위기의 시나리오를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10] 쿠메: 우에무라는 어차피 상대가 나니까 아무 생각 없이 갖다 썼겠지.[1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曰,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된다고 하길래 왔는데....나오키 씨한테 또 속았네." 심지어 2편에서는 비록 엎어지기는 했지만 류노스케의 극중 배역이 안드로이드라는 초기 설정까지 있었던 바람에(당초에는 지문에 '''"배에 구멍이 났으나 안드로이드여서 부상은 입지 않았다"'''라는 대목이 있었다) "나오키씨는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한 걸까..."라며 푸념을 하기도 했다.[12] 2편에서 마사오카의 비중이 적었던 것도 그렇지만 이렇다 할 활약이 없이 총에 맞는 역할만 했던 게 컸다. 코멘터리 회상에서 쿄시와 헤키고토, 사치오가 열불이 날대로 난 표정으로 어디론가 가는 모습을 본 류노스케가 마사오카의 극중 취급에 대해 항의하러 가는 것임을 직감하고 조용히 '''"나오키씨...힘내."'''라고 한 마디 했을 정도.[13] 야마모토 유조, 쿠메 마사오, 이와노 호우메이, 쿠니키다 돗포 등.[14] 피해자 모임에 직접 가입하지는 않았지만 사카구치 안고도 숨은 피해자 중의 한 명이었다. 안고 曰, 다자이 때문에 억지로 끌려가서 전편만 내리 5번(...)을 봤다가 다자이의 류노스케 빠심 작렬에 지옥을 봤다면서 "영화라길래 기대하고 봤는데 못볼 꼴을 다 봤다"라고.[15] 실제로 아쿠타가와상과 함께 나오키상을 제정한 사람이 키쿠치였다.[16] 필명인 '칸'은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음독한 것이다. 요코미츠 리이치와 비슷한 사례.[17]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나 쿠메 마사오도 보통은 칸이라고 부른다.[18] 정확히는 "생일인데 이제까지 진 빚은 소멸.......안 되려나."[19] 실제 나오키 산주고의 필명은 본인의 나이에 맞춰 지은 것으로, 처음에 산주이치(31)로 시작해서 매년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다가 산주고(35)에서 고정되었다. 이렇게 된 데는 본인이 그만뒀다는 설도 있고, 키쿠치가 태클을 걸어서(...) 중지했다는 설도 있다.[20] 실제 인물의 생일에서 따 온 시각이다.[21] 유혼서 이벤트와 함께 한정 회상으로 선행 추가되었다. 회상을 한 번 본 뒤, 류노스케와 나오키를 팀에 넣어서 레몬에 1회 잠서하면 도감에 등록된다.[22] 실제로 썼던 필명들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산주고(35)까지 갔다가 키쿠치의 태클로 결국 중단.[23] 키쿠치 칸의 본명.[24] 귀적이란 원래 불교 용어에서 유래한 말로 과거장(過去帳)이라고도 하며, 죽은 사람의 이름과 사망연월일 등을 적는 장부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