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연도구분'''
1391년

'''1392년'''

1393년
'''연대구분'''
1380년대

'''1390년대'''

1400년대
'''세기구분'''
13세기

'''14세기'''

15세기
'''밀레니엄구분'''
제1천년기

'''제2천년기'''

제3천년기
'''세계 각 지역의 표기'''
서기
1392년
단기
3725년
불기
1936년
황기
2052년
이슬람력
794년 ~ 795년
간지
신미년~임신
일본 북조
메이토쿠 3년
일본 남조
겐추 9년
히브리력
5152년 ~ 5153년
명나라
홍무 25년
조선
건무 원년
1. 개요
2. 사건
2.1. 실제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4.2. 가상
5. 기타


1. 개요


한국사의 500년을 거슬러 온 '''조선의 역사가 시작된 해'''인 동시에, 태조 왕건 이래로 가장 위태로웠던 '''고려가 멸망한 해'''이기도 하여, 한민족에겐 아주 중요한 해가 아닐 수 없다.

2. 사건



2.1. 실제


  • - 3년간의 내전에 지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 블라디스라브 2세 요가일라가 사촌이자 반란을 일으킨 비타우타스에게 대공 작위를 대가로 평화를 제의하였다.
  • 4월 26일 : 정몽주선죽교에서 살해당함. 정몽주의 굳건한 정신을 담은 시 '단심가'가 쓰인 날이기도.[1]
  • 8월 2일 - 요가일라와 비타우타스 간의 오스트루프 평화 협정이 체결되며 리투아니아 내전이 종식되었다. [2]
  • 8월 5일 : 태조송경 수창궁에서 공양왕으로부터 선위의 형식으로 임금 자리를 물려받음으로서 고려가 34대 474년만에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함.
  • 음력 8월 8일 : 태조정안군을 자신의 고조부인 목조가 묻힌 동북면 지역에 파견해 태조의 4대조에게 제사를 올리게 하고, 각 무덤마다 능호를 붙였다.[3]
  • 음력 10월 19일 : 일본 축주 태수 장충가가 승려 장주·종순 등을 파견해, 사로잡혀 있던 조선인들을 돌려보내고 친선 도모를 청함.
  • 음력 10월 28일 : 덕릉 주위의 민가 몇 호와 권무 2명을 수릉호(守陵戶)로 두어 능지기 역할을 맡게끔 함과 동시에, 그 옆에 재궁(齋宮=재실)을 함께 마련했다.
  • 10월 15일 : 일본 남조의 마지막 덴노인 고카메야마 덴노가 화친파의 주장에 따라 아시카가 요시미츠에게 평화를 요청한다. 이후 교토로 돌아와 당시 북조의 덴노였던 고코마츠 덴노에게 3종신기를 건네며 양위하였다. 이로써 56년에 걸친 남북조시대가 막을 내린다.[4]
  • 12월 1일 : 조선에서 인재의 천거 등과 같은 시무책을 정한다.
  • 음력 11월 29일 : 예문관 학사 한상질명나라 금릉에 보내, 조선화령 중 어느 것을 국호로 고칠지 결정을 청하였다.[5]
  • 음력 11월 : 조선이 승려 각추를 무로마치 막부에 파견해, 왜구 소탕, 포로 귀환, 친선 도모를 요청했다. 당시 쇼군이였던 아시카가 요시미츠는 사신과 함께 포로 100명을 송환하여 조선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말와 술탄국이 독립하였다.
  • 지도자와 그의 사촌 간 집안싸움 격이었던 리투아니아 2차 내전이 종결되다.
  •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에 있는 능주향교가 지어졌다.[6] 또한 면천향교[7], 김산향교, 문경향교, 함안향교, 광주향교, 동래향교, 구호서원 등의 교육 기관이 전국적으로 지어지게 된다.[8]
  • 고려 성리학의 대가 이색의 아들 이종학이 정도전의 사주를 받은 손흥종과 김여지에 의해 암살당함.
  • 호조#s-3 소속[9]의 관서 내부시[10]가 설립된다.[11]
  • 정도전요동#s-1 정벌을 계획하기 시작함.[12]
  • 베네치아 공화국알바니아 왕국의 항구 도시 두러스를 수중에 넣었다.
  • 도교 관련 관청이었던 복원궁, 신격전, 정사색, 소전색, 태청관, 태일전, 구요당, 청계배성소 등을 소격전에 통합한다.[13][14]
  • 고려 때 있었던 광흥창의 예를 그대로 이어받아 다시 짓는다.[15]
  • 왕이 탈 말, 수레, 마구와 목축을 관장하는 사복시를 설치한다.
  • 실레시아 (슐레지엔)의 귀족 블라디슬라브 오폴치크가 신성 로마 제국, 튜튼 기사단, 실레시아, 헝가리에 의한 폴란드 분할을 제기하였으나 거절되었다.
  • 무함마드 7세가 나스르 왕조의 술탄으로 즉위하였다.
  • 잉글랜드 의회가 '교황존신죄법'을 제정한다.[16]
  • 토머스 우드스톡 제1대 글로스터#s-1 공작이 아일랜드 주 지사 작위를 수여받으나, 그와 동시에 그곳으로의 여행을 금지당한다.
  • 루이 드 발루아가 초대 오를레앙 공작이 되었다.
  • 독일의 에어푸르트 대학이 세워졌다.

2.2. 가상



3. 탄생



3.1. 실제



3.2. 가상



4. 사망



4.1. 실제


  • 2월 2일 - 아그니스 합스부르크 :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
  • 4월 26일 - 정몽주 : 고려의 문신, 유학자.
  • 율리우스력 8월 18일 : 조선의 중추원사 김인찬.김인찬 졸기.
  • 12월 10일 - 배극렴 :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무신, 문신, 정치가이자 조선의 개국공신
  • 일자불명
    • 이종학 : 고려 말기의 문신, 시인
    • 이숭인 : 고려 말기의 시인, 대학자[17]
    • 조리그투 칸[18] : 몽골 제국의 18대 대칸
    • 김진양 : 고려 말기의 문신[19]
    • 마쓰다이라 노부시게 :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영주[20]
    • 이반계 :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조선의 추증 영의정[21]
  • 논란
    • 목인길 : 고려의 무신이자 재상. 고려 대에 반역죄로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이후 풀려나 고향인 사천에서 생을 마쳤다는 이 있는가 하면, 유배된 해인 1380년 유배지에서 죽었다는 도 있다.

4.2. 가상



5. 기타


무한도전 TV특강 특집에서 멤버들이 직접 역사 강의를 했을 때, 노홍철이 조선이 건국된 1392년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년도인 1492년, 그리고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을 묶어 1492±100년으로 조선의 굵직한 일을 설명했었다.

[1] 헌데, 일각에서는 이 시가 정몽주의 창작물이 아니고, 전해져 내려오는 시구를 적절히 인용한 것이라고도 본다. 단심가 문서 참조.[2] 비타우타스가 리투이니아 대공으로, 스킬갈리아는 키예프 공작이 되었다.[3] 목조의 능에 '덕릉', 그 부인인 효공왕후의 능에 '안릉'이란 이름을 붙인다.[4] 당시 평화 조약의 조건으로 남북조 덴노들이 각각 왕좌를 교대로 계승하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1412년 파기된다.[5] 근데 명나라 황제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했던 감이 없잖아 있다. 일부 학자들은 명나라 황제가 '기자조선설(상나라 귀족인 기자가 고조선 지역을 책봉 받아 국가를 세웠다는 설)'에 의거해 조선이라는 국호를 고른 것이라 하기도 한다.[6] 원래는 능주 서쪽에 있었으나, 선조 33년(1600년)에 하응도가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7] 정확한 건설년도는 불명확하나, 태조 원년에 지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8] 대부분의 향교태조 대에 지어졌는데, 이는 1392년 태조가 각도의 안찰사들에게 교육의 개혁을 명령하면서 비롯되었다.[9] 정확히는 1405년 육조#s-1.3 직무를 나눌 때 호조#s-3에 소속된다.[10] 태종 1년(1401년)에 내자시로 고쳐진다.[11] 왕실의 재물을 넣어두던 부고(府庫)의 출납, 궁궐 내 등불의 점멸(點滅)을 담당하였다. 훗날 태종 대에 들어서면서 의성고와 병합되어, 왕실에서 사용되는 쌀, 국수, 술, 간장, 기름, 꿀, 채소, 과일, 꽃 및 내연직조(內宴織造) 등도 관장하는 한편, 왕자를 낳은 왕비의 권초례(捲草禮)를 봉안하는 일도 도맡았다.[12] 명나라에게 보내는 경고였을 뿐이라는 해석이 강하다. 실제로 이루어지진 못했다.[13] 세조 12년(1467년)에 소격서로 이름을 고친다. 도교의 영향을 받아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내던 관청이었다.[14] 녹화사업#s-2국군기무사령부로 대표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소격동의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15] 모든 관리들의 녹봉 수입, 지출을 관리하는 관청으로 호조 소속이다. 지금의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했었는데, 그래서 이 부근에 생긴 지하철역에 광흥창역이란 이름을 붙인다.[16] 헨리 8세 시절인 1529년, 토머스 울지가 이 혐의를 뒤집어쓰고 실각한 것으로 유명한데, 곧 '교황을 국왕보다 높은 존재로 여기고 행동을 실행한 죄' 이다.[17] 고려육은(高麗六隱) 중에 한 사람이며, 길재 대신 삼은으로 꼽히기도 하는 인물. 허나 조선 건국 이후 장형을 받고 죽는다.[18] 묘호는 공종(恭宗).[19] 정몽주의 지시로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으나 도리어 반격당해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20] 미카와 국 마쓰다이라 향.[21] 조선 개국 이후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단식해 결국 7일만에 숨을 거뒀다. 이를 가상히 여긴 태종이 그의 절의를 기려 훗날 영의정에 추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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