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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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의 보디가드 출신이자, 성룡의 스턴트 팀인 '성가반'의 前 멤버이자 배우, 무술가, 스턴트 배우 겸 연출 기획가. 우리에게는 취권 2에서의 최종보스 역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철권의 백두산이나 화랑의 게임에서나 볼법한 발차기를 맨몸으로 보여준 발차기의 대가이기도 하다.[3]
액션영화 팬이라면 너댓번 이상 봤을법한 무술영화 역사상 최고의 발차기 액션의 소유자. 와이어 없이 실제 발차기라 알려졌으나, 사실 와이어를 차고 만든 장면이다. 물론 노혜광이 와이어 없이도 현란한 발차기가 충분히 가능한 사람이지만 이러한 동작을 와이어 없이 실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피격시의 리액션 및 각종 타격효과, 무협영화 특유의 과장된 동작구성 등을 유려하게 구현하기 위한 영화적 테크닉을 좀 더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기 위함이다.
1959년 3월 17일 라오스에서 태어났다. 모친이 라오스인이며, 부친이 중국인인 혼혈.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난을 피한 보금자리를 얻기위해 5살때 캄보디아로 이주했으나, 크메르 루주때문에 1975년에 태국의 우돈타니로 또다시 이주해야만 했다. 태국으로 이주한뒤에 생계를 위해서 어린나이임에도 무에타이를 배워 시합에 나갔는데, 노혜광은 타고난 골격과 강골에 신체조건이 현지 태국인보다 월등했으며, 8살부터 캄보디아에서 킥복싱을 수련해왔기 때문에 실력이 비약적으로 일취월장하여 중량급[4] 스타선수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거기다가 부수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하였다.
태권도를 배우게 된것은 그도 이소룡의 열렬한 팬으로서 쿵후를 배우고 싶었지만,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정통 쿵후를 배운 화교출신들이 없어 낙심하다가 이소룡이 태권도를 연마했다는 사실을 알자, 수소문 끝에 우돈타니에 거주하는 탈북자 출신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ITF로 추정)을 찾아 수련했다고 한다.
1980년. 무에타이 챔피언을 해도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부족하여, 지인이 홍콩에서 운영하는 여행사에 태국여행 현지 가이드로 일하게 된다.
이 시절 노혜광의 무시무시한 실전 격투실력을 증명함과 영화계로 데뷔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는데, 당시 80년대 홍콩에는 '자유격투기'라는 격투기 시합이 있었는데 이 경기는 발리 투도를 방불케하는 무규칙의 무시무시한 룰로 진행되는 시합이었다.
노혜광은 이 무시무시한 자유격투기 대회에서 무려 7회나 우승을 한 저력이 있으며, 시합을 구경하던 서극감독에게 눈에 띄게되어 1985년 '타공황제'에 킥복싱 선수 역할로 영화계 진출을 하게 된다.
1986년. 가이드 일을 그만두고 홍콩의 한 나이트 클럽의 보안 책임자로 일하며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던 중이였는데, 평소 노혜광이 근무하는 클럽에 자주 들르며 노혜광의 격투기 팬이였던 이수현이 성룡에게 노혜광을 소개해 준다. 성룡 역시 노혜광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당시에 인기가도를 누리고 있는 성룡이 개인 경호원이 되어줄 수 없냐는 제의에 노혜광은 흔쾌히 이를 수락하며 이때부터 성룡의 신변 보호를 맡으며 함께하게 된다.
성룡은 노혜광의 뛰어난 무술실력에 감탄하여 자신의 영화나 홍금보의 영화에도 출연을 시켰는데 원체 무에타이로 다져진 탄탄한 무술실력이 베이스로 깔려 있고 무술 센스도 뛰어나서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성룡의 성가반 스턴트 멤버로서도 활동하게 된다. 그의 출세작으로 알려진것은 누가 뭐라 해도 상술한 취권 2(1994). 이 작품에서 노혜광은 발차기 하나는 레전드급으로 기억되며, 오늘날 격투액션 영화 최고의 대결장면중 탑5안에 항상 드는 명장면을 연기했다.[5]
과거에 경호원과 성가반을 그만둘 때 월급도 못 받고 내쫓겼음을 폭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노혜광이 이에 대해 해명하기로는 경호원 역할을 하면서 배우와 성가반의 스턴트를 하려니,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성룡에게 정중히 휴식을 요구하며 퇴사 요청을 했다고 한다. 허나 성룡은 그때 당시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를 하며 심기가 불편하던 시기였다. 그때 의지하던 노혜광마저 그만둔다고 하자 그의 감정이 상했고, 결국 말다툼 끝에 성룡이 썩 꺼지라는 듯이 쫓아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연락을 한동안 끊은 것은 맞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 성가반의 소속은 아님에도 꾸준히 성룡과 성가반 멤버들이 출연하는 영화에도 참여하고 있고, 성가반에서 무술지도를 해주고 있을 정도로 경호원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성룡과 꾸준히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사실상 경호원만 완전히 그만둔 셈이고 배우로서는 아직도 성룡의 측근이다.
연예티비에서 노혜광을 인터뷰 하던 도중 성룡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성룡과 금전적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노혜광은 경호원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시기가 하필이면 성룡이 좋지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던 시기였다고 하였다. 자신의 스턴트맨 수당과 경호원 월급이 너무 늦어졌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생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룡과도 자주 다투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룡에게 섭섭함을 느낀다라고 했을 뿐인데 성룡이 노혜광을 퇴직금도 안주고 일방적으로 쫓아냈다고 보도되었다며 이것은 명백한 오보라고 해명하였다. 성룡 역시 방송에서 노혜광과의 일을 회자했고 '한때 내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형제나 다름없던 그를 그렇게 대하고 나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고, 사과할 기회를 자꾸 놓쳐버렸다'라고 말했다. 그 때 노혜광이 스튜디오에 나타났고, 성룡은 폭풍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며 서로 울었다. - 유튜브에 영상이 있었는데 삭제됨.
성룡의 영화뿐만 아니라 홍금보, 이연걸, 견자단 등 유명 액션배우들의 영화 혹은 기타 범죄영화에 조연 내지 단역으로 출연하여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몇번정도는 준 주연급을 맡은 적이 있긴한데 그 작품들은 아쉽게도 흥행에 실패했다. 90년대 초중반까진 악역 및 최종보스의 이미지로 카리스마가 넘쳤는데, 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이미지 탈피를 위해 코믹한 악당을 주로 연기했다. 근데 죄다 잘 싸우는 것 같다가 몇 대 맞고 멍들어 아파하거나, 안습하게 기절하는 굴욕적인 씬이 많아졌다.
1990년대에 그 대전액션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대박을 치자 전세계 영화인들이 너도나도 그걸 영화로 만드는 것이 유행했고 전세계 만화가들이 너도나도 그걸 만화로 그리는 것이 유행했다.[6] 이에 따라 홍콩에서도 그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초급학교패왕이다. 여기서 노혜광은 최종보스인 장군 역을 했다.
국내에는 노혜광은 취권2 정도, 혹은 정말 홍콩 액션 마니아가 아닌이상 인지도가 극히 낮지만, 홍콩의 액션영화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성룡도 결코 무시못할 수준이며 서구권에서는 취권2의 현란한 발차기로 인해 그를 추종하는 매니아들도 있을 정도.
현재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인지라 머리도 장발에서 단발로 바뀌고 체격도 많이 줄고 액션의 빈도도 줄었지만, 여전히 조연과 단역으로 출연하여 코믹함이든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항상 액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극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성룡이 정극 영화에 계속 도전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할 듯. 코믹 액션은 특수경찰: 스페셜 ID(2013), 정극 연기는 뉴 폴리스 스토리나 살파랑2 등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특수경찰에서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한 무에타이 실력, 특히나 유연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작을 밟고 넘어지며 다리를 180도로 찢는 장면은 가히 압권.
영화 뿐만 아니라 특히 격투기 선수였던 경험을 살려 사실감 있는 격투장면 연출과 무술지도 또한 맡고 있다.
1. 개요
성룡의 보디가드 출신이자, 성룡의 스턴트 팀인 '성가반'의 前 멤버이자 배우, 무술가, 스턴트 배우 겸 연출 기획가. 우리에게는 취권 2에서의 최종보스 역으로 유명하며, 실제로 철권의 백두산이나 화랑의 게임에서나 볼법한 발차기를 맨몸으로 보여준 발차기의 대가이기도 하다.[3]
액션영화 팬이라면 너댓번 이상 봤을법한 무술영화 역사상 최고의 발차기 액션의 소유자. 와이어 없이 실제 발차기라 알려졌으나, 사실 와이어를 차고 만든 장면이다. 물론 노혜광이 와이어 없이도 현란한 발차기가 충분히 가능한 사람이지만 이러한 동작을 와이어 없이 실행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피격시의 리액션 및 각종 타격효과, 무협영화 특유의 과장된 동작구성 등을 유려하게 구현하기 위한 영화적 테크닉을 좀 더 관객들에게 강하게 어필하기 위함이다.
2. 생애
1959년 3월 17일 라오스에서 태어났다. 모친이 라오스인이며, 부친이 중국인인 혼혈. 지독하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가난을 피한 보금자리를 얻기위해 5살때 캄보디아로 이주했으나, 크메르 루주때문에 1975년에 태국의 우돈타니로 또다시 이주해야만 했다. 태국으로 이주한뒤에 생계를 위해서 어린나이임에도 무에타이를 배워 시합에 나갔는데, 노혜광은 타고난 골격과 강골에 신체조건이 현지 태국인보다 월등했으며, 8살부터 캄보디아에서 킥복싱을 수련해왔기 때문에 실력이 비약적으로 일취월장하여 중량급[4] 스타선수로 수차례 우승을 거머쥐었다. 거기다가 부수적으로 태권도를 수련하였다.
태권도를 배우게 된것은 그도 이소룡의 열렬한 팬으로서 쿵후를 배우고 싶었지만,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정통 쿵후를 배운 화교출신들이 없어 낙심하다가 이소룡이 태권도를 연마했다는 사실을 알자, 수소문 끝에 우돈타니에 거주하는 탈북자 출신 한국인이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ITF로 추정)을 찾아 수련했다고 한다.
3. 홍콩으로 이주, 데뷔
1980년. 무에타이 챔피언을 해도 생계를 꾸려나가는데 부족하여, 지인이 홍콩에서 운영하는 여행사에 태국여행 현지 가이드로 일하게 된다.
이 시절 노혜광의 무시무시한 실전 격투실력을 증명함과 영화계로 데뷔하게 되는 계기가 만들어지는데, 당시 80년대 홍콩에는 '자유격투기'라는 격투기 시합이 있었는데 이 경기는 발리 투도를 방불케하는 무규칙의 무시무시한 룰로 진행되는 시합이었다.
노혜광은 이 무시무시한 자유격투기 대회에서 무려 7회나 우승을 한 저력이 있으며, 시합을 구경하던 서극감독에게 눈에 띄게되어 1985년 '타공황제'에 킥복싱 선수 역할로 영화계 진출을 하게 된다.
4. 성룡과의 만남
1986년. 가이드 일을 그만두고 홍콩의 한 나이트 클럽의 보안 책임자로 일하며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던 중이였는데, 평소 노혜광이 근무하는 클럽에 자주 들르며 노혜광의 격투기 팬이였던 이수현이 성룡에게 노혜광을 소개해 준다. 성룡 역시 노혜광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당시에 인기가도를 누리고 있는 성룡이 개인 경호원이 되어줄 수 없냐는 제의에 노혜광은 흔쾌히 이를 수락하며 이때부터 성룡의 신변 보호를 맡으며 함께하게 된다.
성룡은 노혜광의 뛰어난 무술실력에 감탄하여 자신의 영화나 홍금보의 영화에도 출연을 시켰는데 원체 무에타이로 다져진 탄탄한 무술실력이 베이스로 깔려 있고 무술 센스도 뛰어나서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성룡의 성가반 스턴트 멤버로서도 활동하게 된다. 그의 출세작으로 알려진것은 누가 뭐라 해도 상술한 취권 2(1994). 이 작품에서 노혜광은 발차기 하나는 레전드급으로 기억되며, 오늘날 격투액션 영화 최고의 대결장면중 탑5안에 항상 드는 명장면을 연기했다.[5]
과거에 경호원과 성가반을 그만둘 때 월급도 못 받고 내쫓겼음을 폭로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노혜광이 이에 대해 해명하기로는 경호원 역할을 하면서 배우와 성가반의 스턴트를 하려니, 육체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성룡에게 정중히 휴식을 요구하며 퇴사 요청을 했다고 한다. 허나 성룡은 그때 당시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를 하며 심기가 불편하던 시기였다. 그때 의지하던 노혜광마저 그만둔다고 하자 그의 감정이 상했고, 결국 말다툼 끝에 성룡이 썩 꺼지라는 듯이 쫓아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당시에는 연락을 한동안 끊은 것은 맞다고 하였다. 그러나 현재 성가반의 소속은 아님에도 꾸준히 성룡과 성가반 멤버들이 출연하는 영화에도 참여하고 있고, 성가반에서 무술지도를 해주고 있을 정도로 경호원 시절만큼은 아니더라도 성룡과 꾸준히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나가고 있다. 사실상 경호원만 완전히 그만둔 셈이고 배우로서는 아직도 성룡의 측근이다.
연예티비에서 노혜광을 인터뷰 하던 도중 성룡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성룡과 금전적 관계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노혜광은 경호원을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 시기가 하필이면 성룡이 좋지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던 시기였다고 하였다. 자신의 스턴트맨 수당과 경호원 월급이 너무 늦어졌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생겼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성룡과도 자주 다투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룡에게 섭섭함을 느낀다라고 했을 뿐인데 성룡이 노혜광을 퇴직금도 안주고 일방적으로 쫓아냈다고 보도되었다며 이것은 명백한 오보라고 해명하였다. 성룡 역시 방송에서 노혜광과의 일을 회자했고 '한때 내 개인적인 문제로 인해 형제나 다름없던 그를 그렇게 대하고 나서 마음이 편하지 못했고, 사과할 기회를 자꾸 놓쳐버렸다'라고 말했다. 그 때 노혜광이 스튜디오에 나타났고, 성룡은 폭풍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며 서로 울었다. - 유튜브에 영상이 있었는데 삭제됨.
5. 그 이후 활동
성룡의 영화뿐만 아니라 홍금보, 이연걸, 견자단 등 유명 액션배우들의 영화 혹은 기타 범죄영화에 조연 내지 단역으로 출연하여 커리어를 쌓아 나갔다. 몇번정도는 준 주연급을 맡은 적이 있긴한데 그 작품들은 아쉽게도 흥행에 실패했다. 90년대 초중반까진 악역 및 최종보스의 이미지로 카리스마가 넘쳤는데, 90년대 중후반 이후부터는 이미지 탈피를 위해 코믹한 악당을 주로 연기했다. 근데 죄다 잘 싸우는 것 같다가 몇 대 맞고 멍들어 아파하거나, 안습하게 기절하는 굴욕적인 씬이 많아졌다.
1990년대에 그 대전액션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2가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대박을 치자 전세계 영화인들이 너도나도 그걸 영화로 만드는 것이 유행했고 전세계 만화가들이 너도나도 그걸 만화로 그리는 것이 유행했다.[6] 이에 따라 홍콩에서도 그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영화로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초급학교패왕이다. 여기서 노혜광은 최종보스인 장군 역을 했다.
국내에는 노혜광은 취권2 정도, 혹은 정말 홍콩 액션 마니아가 아닌이상 인지도가 극히 낮지만, 홍콩의 액션영화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성룡도 결코 무시못할 수준이며 서구권에서는 취권2의 현란한 발차기로 인해 그를 추종하는 매니아들도 있을 정도.
현재 곧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인지라 머리도 장발에서 단발로 바뀌고 체격도 많이 줄고 액션의 빈도도 줄었지만, 여전히 조연과 단역으로 출연하여 코믹함이든 카리스마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항상 액션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극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성룡이 정극 영화에 계속 도전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할 듯. 코믹 액션은 특수경찰: 스페셜 ID(2013), 정극 연기는 뉴 폴리스 스토리나 살파랑2 등에서 엿볼 수 있다. 특히 특수경찰에서는 전성기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전한 무에타이 실력, 특히나 유연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마작을 밟고 넘어지며 다리를 180도로 찢는 장면은 가히 압권.
영화 뿐만 아니라 특히 격투기 선수였던 경험을 살려 사실감 있는 격투장면 연출과 무술지도 또한 맡고 있다.
6. 출연작
6.1. 영화
- 2013년 엽문:4 종극일전(위패천 역)
- 2018년 무간도 외전
7. 여담
- 영화에서는 발차기가 주력이지만 실제로는 복싱 실력도 프로 선수급이다. 실제로 경력에서 가장 빛나는 취권2의 하이라이트 액션신에서도 복싱스킬을 어필하기도 했다.
- 취권 2(1994)의 마지막 결투 씬은 당시 감독이었던 유가량이 계속 지휘했다면 절대 볼수 없었다. 원래 유가량의 각본대로라면 노혜광과 그의 부하로 연출한 재미교포 스턴트맨인 박호성과 함께 협공으로 공격하는 것이고 시간도 5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성룡은 노혜광의 발차기 실력을 썩혀두고 싶지않아 유가량의 각본에 개입했고 그와 다투면서 지금의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씬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 홍콩에서 무에타이 체육관도 운영 중인데, 홍콩에서 열리는 무에타이나 킥복싱, 그외 격투기 시합은 의외로 그의 영향력이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실제로 홍콩에서 열리는 격투기 시합에 항상 그의 사진이 찍혀있을 정도이며, 자신이 격투기를 지도하여 시합을 보낸 연예인들도 있고 현역 격투기 선수들도 그의 문하생으로 수련 중이다.
- 영화 살파랑2를 기획할 때 토니 쟈의 무에타이를 홍콩액션에 맞게 보정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토니 쟈가 그 무렵까지 찍었던 옹박 시리즈와 비교해보면 비슷하면서도 적잖이 다른 것을 파악할 수 있다.[7] 토니 쟈에 의하면 노혜광은 의외로 태국 현지 무에타이계에서도 알아주는 선수인데, 노혜광은 중량급 최강자로 유명했다고 한다. 아무렴 전부 라자담넌은 아니더라도 7회나 우승했던 인물인데.[8] 실제 노혜광은 무에타이 선수로 활동 당시, 키가 180이 넘고 평균체중이 80kg이라 당시 중량급 최고 한계인 72kg급[9] 인 미들급으로 감량해서 뛰었다. 사실 현재도 그렇고 당시에 무에타이 미들급엔 중량급 선수층이 매우 빈약했다. 왜냐면 태국 무에타이 선수들도 대부분 평균 62kg체중의 경량급 선수층이 많았기 때문이다.[10]
- 영화배우 주비리와의 접점이 몇번 있었다. 그 이유는 서로 같은 업계에서 선수로 출전 한 적이 있고 스카웃 제의도 비슷하고 커리어의 시작도 악역과 조연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같이 촬영한 작품은 없어도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존중해주는 사이이다. 그렇게 그래서 주비리가 45세의 나이에 킥복싱 시합에 출전하자 전소호 & 전가락[11] 과 같이 시합을 보러갔고 응원한다는 인터뷰를 남겼다. 차이점이라면 주비리는 계속 선수로 뛰었을때 노혜광은 영화계에 입문하면서 선수 생활을 그만 두었다. 노혜광은 배우로 전업하며 이미지 변신까지 시도하면서 색깔이 뚜렷한 조연배우로 자리잡았지만, 주비리는 배우활동을 하며 킥복서로서의 활동을 함께 병행하며 체육관도 운영했기 때문에 배우로서의 평가는 그리 좋지 못한체 은퇴하였다.[12]
- 2020년 기준으로 예전과 같이 코믹액션이나 느와르물은 물론이고 SF영화나 정극영화에도 출연하며 액션배우로서의 이미지는 꽤 많이 벗었다. 하지만 지금도 웬만한 격투장면과 스턴트는 본인이 직접할 정도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
- 현재는 연예기획사를 운영하여 배우양성에도 힘쓰는중이다. 체육관 사업도 잘 돼서 현재 태국에도 분점을 진출했다. 태국에서도 유명한 쁘아까오나 남삭노이같은 레전드들과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다.
[1] 북경어 발음은 루 훼이광, 광동어는 라우 웨이 궝[2] 배우로서 2006년 합의하 이혼[3] 철권 개발팀이 백두산의 캐릭터를 처음 만들 때 노혜광의 발차기를 많이 참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 철권 5에서 모델이 된 사람은 황수일 사범.[4] 현재 라자담넌 최고중량급인 72kg이하 미들급에서 활약했다.[5] 해외 무술영화 팬들뿐만 아니라, 액션배우들도 최고의 격투장면을 꼽으면 반드시 거론된다.[6] 헐리우드에서도 장 클로드 반담이 가일로 출연하는 스트리트 파이터 영화를 찍었고 뒤이어 크리스틴 크룩이 춘리로 출연하는 스트리트 파이터: 춘리의 전설을 찍었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서도 잡배우들을 모아다가 스트리트 파이터 가두쟁패전를 찍었다.[7] 전매특허인 올라타서 팔꿈치로 머리 찍기는 그대로 나오지만 옹박 시리즈 당시의 넉넉한 자세 잡기나 엉덩이로 발차기 막기(…)는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해당 작품이 개그물은 아니기도 하고.[8] 농담이 아니라 예나 지금이나 태국 본토 무에타이 판에서 -비록 인접국인 캄보디아 출신이라지만- 외국계가 우승하기는 힘들다. 노혜광 정도의 경력이면 입식 격투가로서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고 할 수 있을 것.[9] 72가 넘으면 뛸수있는 시합자체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건 태국정부에서 인정하지 않는 불법도박 무에타이 시합일것이다. 공식적인 현지 무에타이 선수중엔 UFC에서 볼법한 근육질의 거인선수가 없다.[10] 그리고 180이 넘는 키임에도 경량급으로 감량을 안한 이유는 당시 키 188에 60kg 초반대의 체중으로 경량급을 제패하던 무패의 무에타이 제왕 디젤노이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11] 홍금보 무술과 스턴트 팀인 홍가반 출신 형제 영화배우. 인지도와 인기는 형인 전소호가 압도적 이였다. 형은 젊은 시절 사진을 보면 얼굴도 잘생겼고 무술도 뛰어났고 주연으로 나온 영화가 있지만 동생 전가락은 조연과 스턴트 대역으로 많이 나왔다.[12] 현재는 캐나다로 돌아가 킥복싱 체육관을 운영중이며 선수양성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