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공

 

1. 개요
2. 상세
3. 왜 그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나?
4. 이로 인해 발생하는 병폐들
4.1. 이산가족
4.2. 제노포비아와 차별적 인식
5. 참고 문서


1. 개요


중국이 마술을 부리듯 G2가 된 것은 공산당이 정치를 잘해서가 아니었다. …(중략)… 2억 5천만여명의 '''농민공'''이라는 사람들이 그보다 더 헐값의 돈에 그들의 솜씨를 판 결과였다.[1]

- 조정래, 정글만리 2권 213p에서.

'''农民工'''(農民工)
중국에서 농민의 신분이지만 실제로는 도시에 와서 노동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하며 민공이라고도 한다.
중국은 철저한 도시/농촌 분리 호적(중국어로 戶口, hùkǒu)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한 도시인구집중화 현상을 막기 위해 호적을 주지 않는 경우가 다수였다보니 농촌 호적을 갖고 있음에도 도시에 와서 일하며 먹고 자고 생활한다. 과거에는 불법이었지만 지금은 적당한 절차만 밟으면 합법이다. 과거에는 농민공들에게 잠주증(暂住证, 임시 거주 증서)이라는 것을 발급하면서 관리하다가 2015년에 폐지되었고 2016년부터는 공회법이라는 걸 만들어서 관리하고 있다.
농촌 거주민들 중 좀 목돈이 있는 경우에는 해외에 나가서 일한다. 한국의 공사현장을 보면 수십 명 단위의 대규모 현장의 경우 중국인이 없는 걸 보기가 힘들다. 이들 중 몇몇은 극히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거쳐야 하는 일본까지 건너가 일한다. 대부분 비자 문제 때문에 가장 혼자 대륙을 떠나고, 임금을 자신의 최저생계비 몫만 남기고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며 생활한다.

2. 상세


전세계 233개국 중 27위의 많은 인구수를 갖고도 경제규모는 60위권에 불과하고, 1955년 아시아에서 가장 1인당 GDP가 낮았던 한국이 단기간 급성장으로 끝내 경제규모 10위권대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며 벌어진 도시 집중화 현상과 매우 유사하다.
중국은 전 세계 인구의 1/4.5, 세계 1위의 압도적인 인구 대국이었지만 대약진운동문화대혁명으로 다른 국가의 경제는 성장할 동안 중국의 경제는 침체일로를 달렸고, 대약진운동 이전에는 세계 5위였던 경제규모도 1981년에 호주에 밀린 13위에 그쳤다. 이렇게 성장이 정체된 만큼 1인당 GDP는 1955년의 한국처럼 바닥을 기었던것은 당연지사.[2] 그러다가 경제개방 이후로는 경제력이 급속 성장세를 타더니 2010년 들어 숙적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고 2017년 현재 중국의 국가 전체 GDP는 일본의 약 3배에 달하고, 세계 1위 경제 대국인 미국의 70% 수준이다.
이런 식으로 유사한 급성장을 거친 한국중국은 시기 차이만 좀 날 뿐, 여러가지 비슷한 사회 현상을 겪게 되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촌향도(離村向都)현상이다.
중국은 홍콩, 마카오, 대만 등 명목상 영토 혹은 실효지배하지 못하는 몇몇 지역과 티베트, 위구르 같은 곳을 제외하면 일단 이동과 여행은 자유다. 그러나 거주 이전에는 까다로운 조건과 복잡한 절차 등 상상초월의 제한이 걸려 있다. 도시에서 일하는 농민공들은 원래 호적(戶口)에서는 '농민'이고, 원래 거주지에서 농사를 지으며 국가의 식량 자급자족을 담당해야 했다. 그러나 초기 경제성장 과정에서 외국기업들이 접근성이 좋은 동남부 해안 도시들에 자본과 공장들을 세웠고, 내륙지역은 발전이 더뎠기에 내륙의 시골과 해안의 도시간의 경제 격차를 갈수록 키워 갔고, 농업의 기계화 및 세련화가 이루어지며 중국 14억 인구 중 5억에 달하는 '농민'들 사이에서 농업만으로 자급자족하는 것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중국의 경우 본격적인 개혁개방 이전까지 특유의 폐쇄된 경제구조 속에 갇혀 지내며 대약진운동이나 문화대혁명 같은 마오쩌둥이 싼 거대한 똥에 휘둘려야 했고 결국 마오쩌둥이 사망할 때 까지 최빈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개혁개방 이후 수도인 베이징이나 동남부 해안 도시인 상하이, 선전이 재빠르게 성장하며 이미 1990년대에 중진국급의 경제력을 나타냈지만 성장에서 소외된 내륙지역은 성장에서 뒤쳐지며 여전히 소득수준과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저개발국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도시와 농촌 간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저임금으로 골머리를 앓던 농민들은 자연히 돈을 벌 곳을 찾아 부유한 도시로 발길을 옮겼다. 그리고 호적(戶口)상 "도시 거주민"이 아니고 "농민"이었던 그들은 도시 안에서 거주하고 여러가지 공공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신세였다. 이러한 호구제도가 개혁개방 이후로도 유지되는 이유는 과도한 이촌향도 현상을 통제해서 대도시로의 인구집중과 농어촌의 황폐화를 조금이나마 막을려는 의도가 담겨있으며 농어촌 인구가 10%에 미달하여 지방이 텅텅비어가는것이 현실인 일본이나 한국에 비하면 중국의 농어촌 인구비율은 아직도 40%대를 웃돌아서 지방 황폐화는 덜하지만 개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호구제도로 인해 기회의 손실을 봐야하니 엄청난 족쇄가 채워진 셈이다. 그럼에도 고향을 등진 수많은 농민공들은 도시의 각종 3D 직종에 종사하며 조금이나마 돈을 벌어갔다. 2010년대 전반기까지는 이 돈이 선진국 기준에서 매우 적은 돈이었지만 고향에 남아 일해서 버는 돈보다는 훨씬 많았기에 농민공들은 쪽방이나 지하방에서 살거나 판자촌을 형성해 생명줄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중국 정부가 최근 내륙 지역에도 경제 발전을 이루려고 하나 워낙 넓은 국토, 부패한 공무원 및 기타 여러가지 변수에 가로막혀 지금까지 중국 내륙의 발전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라고 하기에는 형편없다. 2016년 통계에 따르면 2억 8100만 여 명의 농민공들이 도시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
그래도 중국의 소득수준이 아직은 지속적으로 상승하다보니 도시지역의 인건비도 만만치 않게 올랐기 때문에 농민공들의 삶이 이전보다 많이 나아지기는 했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 농민공들을 중산층들로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으며, 기존 공장들이 도심지역의 땅값과 인건비 상승으로 내륙이나 농어촌 지역으로 다수 이전하며 농촌 빈곤율도 줄어들고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동부와 서부간 경제격차, 혹은 도농격차는 매우 큰것이 현실이며 중국내 주요 대도시에서 농민공들을 푸대접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는것이 현실로 2017년 말에 베이징 시에서 이루어진 기습철거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3. 왜 그들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나?


중국은 도농이원제라는 특이한 제도를 시행해 도시/농촌을 분리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중국 관련 경제 통계에서 현실과는 동떨어진 황당한 수치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단적인 예를 들어,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하는 중국 도시의 지니계수는 약 0.29이다. 그리고 중국 농촌의 지니계수는 약 0.35다. 이는 매우 큰 착시를 불러오는데, 빈부격차로 유명한 도시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도시 요하네스버그의 지니계수는 무려 약 0.75에 달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지니계수를 약 0.69 근처로 추정하는데, 중국의 도시와 농촌은 이에 비하면 '통계에서는' 훨씬 양반이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0.29~0.35[3]이고, 일본의 지니계수는 약 0.30~0.36이다. 그럼 이걸 "중국 도시의 빈부격차는 한국과 비슷하고, 농촌의 빈부격차는 일본 정도구나"라고 해석해야 할까?
틀렸다. 접근이 잘못되었다. 미국 CIA에서 추정하는 실제 중국 전체의 지니계수는 약 0.46이다. # 이는 세계 여러 국가들 중에서 상당히 높은 축에 속하며 BRICs 친구들 중에서도 러시아, 인도보다 높다. 중국은 가뜩이나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가 심하다고 지적받는데, 왜 도시들과 농촌들 각각 따로 묶어서 지표를 내야 할까?
중국 도시들의 평균 1인당 GDP(PPP)는 약 $40,000 정도이고, 내륙 농촌들의 평균 1인당 GDP(PPP)는 약 $5,000 정도다. 단순히 비교해도 8배 정도 차이가 난다. 이해가 쉽도록 한국의 사례를 비교해보면 1위 울산의 1인당 GDP(PPP)는 80,058달러로 25,431달러인 최하위 광주의 3.1배, 서울은 62,096달러로 광주의 2.4배, 인천 및 수도권은 광주의 1.8배 차이가 난다. # 울산의 경제력이 다른 지역을 특출나게 압도하는 상황에서도 3배 차이가 나는데, 중국의 8배 차이라면 격차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이러한 예시는 부적절하다.중국은 도시와 농촌을 비교하면서 막상 한국은 울산이나 서울,광주등 도시를 비교하고 있다. 한국도 도시와 농촌을 비교해야 적절하다.
주변 국가들의 상황을 보자면 홍콩의 1인당 GDP(PPP)는 약 $58,000이고, 마카오는 약 $96,000, 대만은 약 $50,000, 한국이 $38,000이고, 북한이 $1,700, 일본이 $39,000이다. 특히 대만은 인구수 2,500만이나 되는데 평균을 내도 중국 도시들만 골라 낸 평균인 4만 달러를 25%나 웃돈다.# 중국 도시들의 생활 수준은 한국, 일본 전국 평균과 엇비슷하거나 미세하게 높지만 농촌을 이들 국가와 비교하면 넘사벽…이 된다.
중국은 국가 전체 1인당 GDP(PPP) 평균을 내면 약 $15,000 정도다. 동남부 도시들이 쌓아올린 평균 1인당 GDP를 농촌들이 다 까먹고 있다.
이렇게 도농격차가 크다보니 농촌 지역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도시에 올라와서 일하는 게 이득이다. 이들은 당연히 배운 게 별로 없다보니 단순노동에 주로 종사하며 수입 역시 중국 평균보다 낮다. 농민공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시대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2019년 기준으로는 월 3,962위안(약 67만원)이다.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에서 중국 농민공이 한 끼 식사를 하는 데 드는 비용은 2위안(약 320원)이라는 언급이 있는데, 정글만리가 2010년대 초에 쓰여진 소절인 만큼 물가차이를 어느정도 감안해야되겠지만 이 정도가지고는 도시지역에서 여유있게 생활하기가 힘들어서 지하방이나 기숙사 같은곳에서 생활하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농민공들은 도시를 떠나지 못한다. 도시에서 풍족하게 살기에는 그야말로 턱도 없는 금액이지만 시골에서 월 수백~천 수백위안 정도 벌며 사는것보다는 몇배 이상 받기 때문이다.

4. 이로 인해 발생하는 병폐들


외국인 노동자야? 도시 호적 없는 中농민공 ‘하류인생
젊어지는 중국의 이주노동자 농민공
현재 중국 사회가 지닌 문제중에서 가장 위험한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수억명에 달하는 빈곤층인 이들이 본격적인 복지, 자유, 경제적 혜택을 요구하면 중국 정부의 지금의 재정 능력으로는 역부족에 달해 이를 슬기롭게 해결하지 못할 경우 동남아, 중남미 국가들처럼 전형적인 중진국 함정의 테크를 탈 가능성이 높다.

4.1. 이산가족


기본적으로 중국의 아이들은 자신의 호적(戶口)이 속해있는 학교에 다니게 되어 있다. 물론 호적에 속해있지 않아도 다닐수있는 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이런곳은 대부분이 영리목적으로 지어진 사립학교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교육비가 많이 들며''', 비용이 저럼한 국공립학교로 보낼수는 없다. 이 말인 즉슨, 아이가 있는 부부는 도시에 가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는 학교에 보내기 위해 무조건 고향에 남겨놔야 한다는 얘기다. 아이와 같이 살려면 교육비로 많은 돈을 지출해야되는데 이렇게 여유가 있었으면 굳이 힘들게 이별생활을 할 필요가 없을것이다.
보통 아버지 홀로 도시로 떠나서 송금해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고, 심한 경우 아이만 남겨놓고 부부가 둘 다 도시로 떠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조부모가 아이를 돌본다. '''근데 아이만 남기고 부부 둘 다 도시로 떠나는 경우가 정말 많다.''' 대륙의 기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려 그 수가 약 6,000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무려 한국 총 인구보다 더 많다.(...) 게다가 도시로 올라간 부부는 불륜 등의 유혹에 빠져 가정이 파탄날 가능성이 높고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는 쉽게 성매매 등 범죄의 유혹에 빠진다고 한다. # 심지어 돈을 벌기 위해 아이는 한국에서 낳았다가 시간이 되면 중국으로 보내고 부부 같이 한국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는 중국가정도 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자녀들이 농민공 부모와 함께 도시에서 생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교육 문제도 나름 심각하다. 이하 언급될 차별적 인식 때문에 일반적인 학교에서 공부하긴 힘들고, 대개는 농민공 자녀들을 위한 전문 교육시설이 있지만 자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환경도 열악한 편이다.
고향에 남은 아동은 ‘유수아동(留守兒童)’이라고 부른다. 위 기사의 왕푸만 역시 마찬가지로, 추운 날씨에 먼 거리의 학교로 걸어오느라 머리와 눈썹에 온통 서리가 붙어 하얀 눈송이 소년으로 2018년 중국 전역에서 유명해진 소년이다. 중국 네티즌들의 적극적 후원으로 왕푸진은 지역 사립기숙학교에 아픈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갈 수 있게 되었고, 문맹 아버지 역시 지역에서 취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과 언론이 유수아동의 대표 격으로 떠오른 왕푸진을 관리하느라 학교가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어 쫓겨났고, 아버지 역시 일방적으로 거부 통보를 당했다. 이렇게 부모가 문맹, 저임금 등 어려움에 처한 가족은 모두가 고통을 겪는다.

4.2. 제노포비아와 차별적 인식


한국에서 막노동꾼, 외노자에 대한 인식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나마 같은 중국인이라서 인종차별 같은 건 하지 않지만, 비매너를 자주 저지르고 민폐를 끼친다는 인식은 대체로 널리 퍼져 있다.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것이기는 하지만, 농민공들이 자라면서 받은 교육과 접촉한 문화, 그리고 열악한 거주와 작업 환경을 생각한다면 사실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이 있는데[4] 그저 불쾌하다는 이유로 비난에만 급급한 건 도시인들의 오만과 비뚤어진 우월감이라고 할 수 있다. 관영언론이나 문학 등에서는 대체로 순박하고 부지런하며 성실한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하지만 실질적인 처우 개선은 미비하여 실제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미천한 직종 정도로 여긴다.

4.3. 임금체불 문제


농민공들이 법적으로 꿀리는 신분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갑을관계라서 악덕 업주들에게 임금이 떼이는 경우가 많다. 고향 등지고 외지에 온 농민공들은 의지할 데가 없는 반면, 어느 정도 재력이 되는 업주들은 관료들과 결탁하고 있으니 농민공들은 임금을 떼여도 호소할 데가 없어서 결국 대규모 시위나 자살 소동 같은 것으로 언론의 주의를 끈다. 여하튼 매체들에서도 자주 보도하는 걸 보면 꽤나 심한 모양.#

4.4. 유령도시


중국이 2000년대 들어 동남부 해안 도시로 떠나는 농민공들이 늘어나자 서부대개발 정책을 세워 내륙 농촌 지역에 대규모 신도시를 세우고 있는데, 집값이 해당 지역 주민들 소득에 비해 너무 비싸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나고 있다. 중국 농촌 주민의 소득은 위에서 서술했듯 거의 후진국 수준으로 낮다.
2016년 기준으로 농촌은 정확한 통계가 안 나와 있으나 '광군(光棍)' 즉 농촌 노총각 계층의 평균 '''연봉'''은 1만 위안. 한화로 계산하면 약 170만 원(...) 정도라고 알려져 있다.[5]
주민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건물과 시설이 가득해도 도시가 될 수 없다. 이런 곳에 지어진 아파트는 대개 한국 돈으로 5000만 원 ~ 1억 원 정도에 살 수 있는데, '''평균 월 소득 55만 원의 농민공이나 연봉 170만 원의 농촌 노동자가 언제 저런 큰돈을 모을 수 있겠는가?''' 월 소득 250만 원이더라도 저런 집을 장만하는 데 한푼도 안써야 2~3년이 걸린다.
이런 유령도시의 대표적인 사례는 중국 내몽골 자치구어얼둬쓰시. 부동산 미분양이 백만 채 단위로 쌓여서 아예 유령도시가 된 지역이다. 중국의 미분양 주택 물량은 통계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나마 가장 최근에 추산되는 수치가 2015년 6월의 6540만 채(...)기사
그리고 중국 정부는 공들여 이런 유령도시를 하나 만들면 또 똑같은 걸 만들려고 새 부지를 찾아다닌다. 왜냐면 이런 투자가 계속 이어져야 건설경기가 살아나고 경제성장률이 오르기 때문. 하지만 이런 식의 정책은 끝에 가선 결국 자기 목을 죄게 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경제 문서에서 더 잘 다루고 있으니 참조.

5. 참고 문서



[1] 사실 틀린 말도 아닌 것이, 중국이 고도의 경제 성장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비결은 바로 헐값으로 국내의 값싼 노동력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갈아넣을 수 있어서였다.[2] 1977년의 중국 1인당 GDP는 150달러 정도로, 1000달러 정도였던 한국과 큰 차이가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과 아시아 꼴지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수준이었다.[3] 추정방법에 따라 지니계수는 달라질 수 있다.[4] 일례로 농민공들의 거주 환경과 위생 시설을 개선하려 한다면 그만큼 관련 비용이 올라간다. 그리고 그 비용은 최종적으로 도시인들이 감당하게 된다.[5] http://www.kbs.co.kr/1tv/sisa/worldreport/view/vod/2465984_118510.html?dataType=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