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주면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한 면.
화순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 중에서 동면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현재의 화순군 전에는 화순, 동복과 더불어 하나의 고을을 이루고 있었던 곳이다.
북으로 화순읍과 맞닿고, 남으로 춘양면과 맞닿으며 양 옆으로 한천면, 도곡면과 맞닿으며, 화순군 내에서 가장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천이 흐르고 있고 내리, 남정리와 관영리의 연주산 등을 제외하면 정남리, 원지리 일대는 넓은 농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경전선이 지나가며, 능주역이 있다.
사평면과 더불어 버스가 다닌 역사가 오래되었다. 시외버스와 화순교통, 광주광역시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으며, 이중 광주광역시 시내버스는 출퇴근 시간대에만 능주면에 오니, 이 점 유의하기 바란다.
도로 교통은 나쁘지 않은데, 화순군의 중축 국도인 '''29번 국도'''가 능주를 남북으로 가로 질러가며, 822번 지방도는 동서로 가로질러 간다. 다만 능주면소재지로 들어서게 되면 도로변에 주차된 차들로 굉장히 좁아지고 복잡해진다.
총 12개의 법정리가 있다.
이름의 유래는 관동 마을과 영상 마을, 영말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관동은 예전 향사당에 활을 쏘는 과녁이 있어 과녁등이라 부른 걸 한자로 풀어 관혁등이라 한데서 유래했고, 영상, 영말 마을은 원래 영동이란 마을이 나뉘어 불러진 명칭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면사무소가 있는 석고리와는 길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고, 능주고가 있는 잠정리 역시 같은 길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옆으로 한천면, 위로는 석고리, 정남리와 마주한다.
29번 국도가 관영리를 대각으로 가로 질러 가고 지석천이 흐르며, 경전선 철로 역시 지나간다.
이곳도 능주면소재지를 이루고 있는 동네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많은 시설들이 있는데 능주농협, 능주전통시장, 능주우체국, 능주역, 능주파출소가 있다.
또한 이곳에는 영벽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을 보며 마주하는 영주산의 경치를 바라보기 위해 지어졌으며, 옆에는 철길이 있어 열차가 다리를 건너는 사진이 나름 유명하다.
이름의 유래는 유일한 마을인 광사동 마을에서 유래했는데, 지형이 좁더라도 넓게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어졌다.
위로 화순읍 내평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화순읍 감도리, 백암리와 마주한다. 이곳에도 대중교통(200-1, 216-1, 218-2)이 들어오며, 백신산업단지가 있는 화순읍 내평리와 매우 가깝다.
이름의 유래는 남평거리 마을과 정자촌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남평거리 마을은 본래 남평으로 가는 길목이라 하여 지어졌고, 정자촌 마을은 마을에 큰 정자나무가 있다고 하여 지어졌다.
위로는 원지리, 도곡면 죽청리, 미곡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도곡면 대곡리, 정남리, 석고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내리와 마주한다.
822번 지방도가 마을을 가로 지나가고, 이 도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조광조'''가 유배온 유배지가 바로 이곳이며[1] , 유배 당시의 거처와 적려유허비가 있다. 능주향교와 능주119안전센터가 이곳에 있다.
이름의 유래는 내동 마을에서 유래했고, 내동 마을은 안골로도 불린다.
위로는 남정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도곡면, 잠정리, 석고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춘양면과 마주한다. 능주면의 중심인 석고리와 잠정리 바로 옆이긴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산이 가로 막고 있어서 마을로 나는 큰길은 남정리로 들어가 있다. 거기에 능주 곳곳을 다니는 화순교통 버스조차 다니지 않아서 능주 내에서도 대중교통 오지지역에 속한다.
예비군 훈련장 말고는 시설이 없다.
이름의 유래는 만년동 마을과 수동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만년동 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만년 동안 부유한 땅이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수동 마을은 처음에 '수(壽)'동이라고 한 것이 가뭄이 심해서 '수(水)'자로 바꾼 것이 유래이다.
위로는 백암리, 광사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도곡면 죽청리, 능주면 만인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원지리와 마주한다.
29번 국도와 경전선 철로가 나란히 마을의 남북을 가로 질러 들어가며, 예전에는 만수역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역이 되었고 218번, 218-1번, 지원152번[2] 이 이 동네를 지나간다.
화순군 농업기술센터가 이곳에 있다.
이 동네 이름을 거꾸로 하면 수만리가 되는데, 화순읍에는 수만리가 있고 거기에 한자까지 똑같다.
이름의 유래는 만세동 마을과 인량동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만년동 마을은 처음에 이 동네에 인량사라는 절이 있어서 절굴이라 불린 것이 후에 새로 마을이 생겨서 새터라 불렀고, 이후 만년을 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만세동이라 불렸으며, 인량동 마을은 앞서 말한 인량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 절의 이름을 딴 것이 유래이다.
위로 백암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만수리, 한천면과 마주하며 아래로 천덕리와 마주한다.
마을 입구와 만나는 도로는 천덕리지만, 이곳도 지원152번을 제외하고 버스가 다닌다. 218번 중장터행, 200-1번, 218-2번이 다닌다.
이름의 유래는 잠실동 마을과 정자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예전에는 이곳에 누에를 많이 길렀다고 해서 잠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잠실이라는 명칭을 들어봤다면, 우리가 아는 그 잠실이 맞다.
위로 석고리, 정남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관영리, 내리, 남정리, 한천면 모산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춘양면 화림리와 마주한다.
이곳에는 최근 조성한 잠정햇살마을이 자리를 잡았고, 그 옆으로 능주농공단지가 있으며, 전남 명문고 중 하나인 '''능주고등학교'''가 있다. 또 능주고등학교 정문 바로 앞에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능주성당이 있다.[3]
죽수길을 따라 화순교통 218번, 218-1번, 지원152번[4] ]이 다닌다.
이름의 유래는 남평거리 마을과 동정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남평거리 마을은 남정리와 동일하며, 동정 마을은 통정 마을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샘이 통처럼 만들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서 유래했다.
위로 원지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남정리, 천덕리, 석고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남정리와 마주한다. 거기에 남정리와는 이름을 거꾸로하면 같아지며 옆에 이웃하고 있다. 다만 한자는 서로 다르니 주의. 남정리의 정은 '亭'이고, 정남리의 정은 '井'이다.
관영리, 잠정리와 더불어 능주면소재지를 이루고 있는 동네이며 능주면사무소, 능주버스정류장, 동북아지석묘연구소가 있다.
29번 국도가 대각으로 지나가고 822번 지방도가 정남리 밑으로 지나간다.
이름의 유래는 천년동 마을과 회덕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었다. 천년동 마을은 만수리의 만년동 마을의 유래와 동일하게 형세가 천 년 동안 부유한 땅이라 이름 지었고, 회덕은 큰 덕을 품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는데, 파평 윤씨의 분파인 남원 윤씨가 입향하여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군자는 큰 덕을 품고(회덕), 큰 덕을 품는 것은 군자다."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위로 만인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원지리, 정남리, 한천면 가암리, 정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석고리와 마주한다.
앞서 말한 파평 윤씨의 분파인 남원 윤씨가 입향한 동네여서 남원 윤씨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중국에도 없는 주자의 사당인 주자묘가 이곳에 있다. 그 이유는 신안 주씨와 연관이 있는데, 주자의 증손인 주잠이 전란을 피해 도망한 곳이 고려 금성(현재 나주)땅이었고, 그곳에서 거주하며 자신의 딸을 한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능성 구씨'''의 시조였다. 따라서 능성 구씨와 신안 주씨가 서로 연관이 있는 셈. 이후 신안 주씨의 후손들이 현재 위치에 '영모당(永慕堂)'을 세웠고, 이것을 1978년 새롭게 재축하여 현재의 주자묘가 되었다.
경전선이 천덕리를 지나지만 천덕리에는 역이 없고, 대신 218번, 218-1번이 이 동네를 지나간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다 하나씩 있는데, 초등학교를 제외한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화순에 유일하다시피 한 사립학교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모두 부영그룹의 학교법인 우정학원 소속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붙어 있으며, 이중 '''능주고등학교'''는 전남권에서도 장성고, 창평고, 해룡고, 전남과학고, 전남외고, 광양제철고와 더불어 전남권의 명문고로 이름나있다.
1. 개요
전라남도 화순군에 위치한 면.
화순읍을 제외한 나머지 면 중에서 동면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현재의 화순군 전에는 화순, 동복과 더불어 하나의 고을을 이루고 있었던 곳이다.
2. 지리
북으로 화순읍과 맞닿고, 남으로 춘양면과 맞닿으며 양 옆으로 한천면, 도곡면과 맞닿으며, 화순군 내에서 가장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영산강의 지류인 지석천이 흐르고 있고 내리, 남정리와 관영리의 연주산 등을 제외하면 정남리, 원지리 일대는 넓은 농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3. 교통
3.1. 철도
경전선이 지나가며, 능주역이 있다.
3.2. 버스
사평면과 더불어 버스가 다닌 역사가 오래되었다. 시외버스와 화순교통, 광주광역시 시내버스가 다니고 있으며, 이중 광주광역시 시내버스는 출퇴근 시간대에만 능주면에 오니, 이 점 유의하기 바란다.
금호고속에서 운행한다. 일 3회 운행.
모든 노선이 능주면을 경유하며, 218번은 도곡, 도암, 한천 방향으로, 218-1번은 춘양, 이양, 청풍 방향으로 간다.
3.3. 도로
도로 교통은 나쁘지 않은데, 화순군의 중축 국도인 '''29번 국도'''가 능주를 남북으로 가로 질러가며, 822번 지방도는 동서로 가로질러 간다. 다만 능주면소재지로 들어서게 되면 도로변에 주차된 차들로 굉장히 좁아지고 복잡해진다.
4. 하위 법정리
총 12개의 법정리가 있다.
4.1. 관영리
이름의 유래는 관동 마을과 영상 마을, 영말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관동은 예전 향사당에 활을 쏘는 과녁이 있어 과녁등이라 부른 걸 한자로 풀어 관혁등이라 한데서 유래했고, 영상, 영말 마을은 원래 영동이란 마을이 나뉘어 불러진 명칭이 그대로 굳어진 것이다.
면사무소가 있는 석고리와는 길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고, 능주고가 있는 잠정리 역시 같은 길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으며 옆으로 한천면, 위로는 석고리, 정남리와 마주한다.
29번 국도가 관영리를 대각으로 가로 질러 가고 지석천이 흐르며, 경전선 철로 역시 지나간다.
이곳도 능주면소재지를 이루고 있는 동네 중 하나이기 때문에, 많은 시설들이 있는데 능주농협, 능주전통시장, 능주우체국, 능주역, 능주파출소가 있다.
또한 이곳에는 영벽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이곳을 보며 마주하는 영주산의 경치를 바라보기 위해 지어졌으며, 옆에는 철길이 있어 열차가 다리를 건너는 사진이 나름 유명하다.
4.2. 광사리
이름의 유래는 유일한 마을인 광사동 마을에서 유래했는데, 지형이 좁더라도 넓게 생각하라는 의미로 지어졌다.
위로 화순읍 내평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화순읍 감도리, 백암리와 마주한다. 이곳에도 대중교통(200-1, 216-1, 218-2)이 들어오며, 백신산업단지가 있는 화순읍 내평리와 매우 가깝다.
4.3. 남정리
이름의 유래는 남평거리 마을과 정자촌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남평거리 마을은 본래 남평으로 가는 길목이라 하여 지어졌고, 정자촌 마을은 마을에 큰 정자나무가 있다고 하여 지어졌다.
위로는 원지리, 도곡면 죽청리, 미곡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도곡면 대곡리, 정남리, 석고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내리와 마주한다.
822번 지방도가 마을을 가로 지나가고, 이 도로를 중심으로 북쪽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조광조'''가 유배온 유배지가 바로 이곳이며[1] , 유배 당시의 거처와 적려유허비가 있다. 능주향교와 능주119안전센터가 이곳에 있다.
4.4. 내리
이름의 유래는 내동 마을에서 유래했고, 내동 마을은 안골로도 불린다.
위로는 남정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도곡면, 잠정리, 석고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춘양면과 마주한다. 능주면의 중심인 석고리와 잠정리 바로 옆이긴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산이 가로 막고 있어서 마을로 나는 큰길은 남정리로 들어가 있다. 거기에 능주 곳곳을 다니는 화순교통 버스조차 다니지 않아서 능주 내에서도 대중교통 오지지역에 속한다.
예비군 훈련장 말고는 시설이 없다.
4.5. 만수리
이름의 유래는 만년동 마을과 수동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만년동 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만년 동안 부유한 땅이라는 말에서 유래했고, 수동 마을은 처음에 '수(壽)'동이라고 한 것이 가뭄이 심해서 '수(水)'자로 바꾼 것이 유래이다.
위로는 백암리, 광사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도곡면 죽청리, 능주면 만인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원지리와 마주한다.
29번 국도와 경전선 철로가 나란히 마을의 남북을 가로 질러 들어가며, 예전에는 만수역이 있었지만 지금은 폐역이 되었고 218번, 218-1번, 지원152번[2] 이 이 동네를 지나간다.
화순군 농업기술센터가 이곳에 있다.
이 동네 이름을 거꾸로 하면 수만리가 되는데, 화순읍에는 수만리가 있고 거기에 한자까지 똑같다.
4.6. 만인리
이름의 유래는 만세동 마을과 인량동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만년동 마을은 처음에 이 동네에 인량사라는 절이 있어서 절굴이라 불린 것이 후에 새로 마을이 생겨서 새터라 불렀고, 이후 만년을 살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만세동이라 불렸으며, 인량동 마을은 앞서 말한 인량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 절의 이름을 딴 것이 유래이다.
위로 백암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만수리, 한천면과 마주하며 아래로 천덕리와 마주한다.
마을 입구와 만나는 도로는 천덕리지만, 이곳도 지원152번을 제외하고 버스가 다닌다. 218번 중장터행, 200-1번, 218-2번이 다닌다.
4.7. 백암리
4.8. 석고리
4.9. 원지리
4.10. 잠정리
이름의 유래는 잠실동 마을과 정자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예전에는 이곳에 누에를 많이 길렀다고 해서 잠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잠실이라는 명칭을 들어봤다면, 우리가 아는 그 잠실이 맞다.
위로 석고리, 정남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관영리, 내리, 남정리, 한천면 모산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춘양면 화림리와 마주한다.
이곳에는 최근 조성한 잠정햇살마을이 자리를 잡았고, 그 옆으로 능주농공단지가 있으며, 전남 명문고 중 하나인 '''능주고등학교'''가 있다. 또 능주고등학교 정문 바로 앞에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능주성당이 있다.[3]
죽수길을 따라 화순교통 218번, 218-1번, 지원152번[4] ]이 다닌다.
4.11. 정남리
이름의 유래는 남평거리 마을과 동정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은 것으로, 남평거리 마을은 남정리와 동일하며, 동정 마을은 통정 마을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샘이 통처럼 만들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서 유래했다.
위로 원지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남정리, 천덕리, 석고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남정리와 마주한다. 거기에 남정리와는 이름을 거꾸로하면 같아지며 옆에 이웃하고 있다. 다만 한자는 서로 다르니 주의. 남정리의 정은 '亭'이고, 정남리의 정은 '井'이다.
관영리, 잠정리와 더불어 능주면소재지를 이루고 있는 동네이며 능주면사무소, 능주버스정류장, 동북아지석묘연구소가 있다.
29번 국도가 대각으로 지나가고 822번 지방도가 정남리 밑으로 지나간다.
4.12. 천덕리
이름의 유래는 천년동 마을과 회덕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지었다. 천년동 마을은 만수리의 만년동 마을의 유래와 동일하게 형세가 천 년 동안 부유한 땅이라 이름 지었고, 회덕은 큰 덕을 품는다는 뜻에서 유래했는데, 파평 윤씨의 분파인 남원 윤씨가 입향하여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군자는 큰 덕을 품고(회덕), 큰 덕을 품는 것은 군자다."라고 하여 마을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위로 만인리와 마주하고 옆으로 원지리, 정남리, 한천면 가암리, 정리와 마주하며 아래로 석고리와 마주한다.
앞서 말한 파평 윤씨의 분파인 남원 윤씨가 입향한 동네여서 남원 윤씨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중국에도 없는 주자의 사당인 주자묘가 이곳에 있다. 그 이유는 신안 주씨와 연관이 있는데, 주자의 증손인 주잠이 전란을 피해 도망한 곳이 고려 금성(현재 나주)땅이었고, 그곳에서 거주하며 자신의 딸을 한 사람에게 시집을 보냈는데, 그 사람이 바로 '''능성 구씨'''의 시조였다. 따라서 능성 구씨와 신안 주씨가 서로 연관이 있는 셈. 이후 신안 주씨의 후손들이 현재 위치에 '영모당(永慕堂)'을 세웠고, 이것을 1978년 새롭게 재축하여 현재의 주자묘가 되었다.
경전선이 천덕리를 지나지만 천덕리에는 역이 없고, 대신 218번, 218-1번이 이 동네를 지나간다.
5. 교육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가 다 하나씩 있는데, 초등학교를 제외한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화순에 유일하다시피 한 사립학교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모두 부영그룹의 학교법인 우정학원 소속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붙어 있으며, 이중 '''능주고등학교'''는 전남권에서도 장성고, 창평고, 해룡고, 전남과학고, 전남외고, 광양제철고와 더불어 전남권의 명문고로 이름나있다.
[1] 당시 능주면은 ''''능성현''''이었다. 현재의 이름인 능주가 되는 것은 인조 시기부터이다.[2] 출퇴근 시간 한정[3] 1960년에 세워진 능주공소로 시작하여 1995년에 신자수가 적어 폐소했지만, 2006년 다시 공소를 세웠고, 5년 후인 2011년에는 본당으로 승격하여 현재는 화순성당과 더불어 화순군에서 둘 뿐인 성당이 되었다.[4] 출퇴근 시간 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