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행정구역)
里 / Ri / (Rural) Village
1. 개요
읍, 면의 아래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의 한 종류이다. 동의 아래에는 리가 없으며 대신 통이 있다. 리와 통 모두 하위 행정구역으로 반을 둔다.
단독으로 쓰여도 두음법칙을 예외로 적용하지 않는다. 두음법칙을 적용하면 '이'가 되는데, 이 행정구역을 가리키는 단어에서만큼은 "xx면에는 '''리'''가 3개 있다" 등과 같이 두음법칙을 쓰지 않는다.
2. 역사
리(里)라는 행정구역 자체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나오는 신라 서라벌 근교의 모량리(牟梁里, 지금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이다.)와 같이 고대부터 지명으로 사용되었으며, 자비 마립간 때인 469년 수도의 방(坊)·리(里) 이름을 정했다는 기록으로 리가 행정단위명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형태의 리는 일제강점기 군면 통폐합을 하면서 몇 개의 마을을 묶어 리로 편성한 것이 직접적인 시초이다. 일반적으로 해당 마을 이름 명칭에서 따온 이름을 가진다. 짧게는 1글자(현리, 증리 등)부터 길게는 5글자(등억알프스리와 같이 지명에 현대에 외국어를 넣은 사례는 제외할 경우,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상월오개리,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부용외천리,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동거차도리 및 서거차도리 등)까지 있다.[1]
3. 법정리와 행정리
동의 경우처럼 '''법정리'''와 '''행정리'''의 구분이 있다. 동의 개념이 법정동과 행정동으로 나뉘는 것과 비슷한데, 미묘하게 다르다. 행정동은 읍·면과 대응되는 반면, 행정리는 행정동 아래의 통(統)과 대응된다. 법정동과 행정동은 하나의 법정동에 여러 개의 행정동이 들어가거나 그 반대로 하나의 행정동이 여러 법정동으로 쪼개지거나 반반씩 걸쳐있는 등 꼬이고 꼬여있는 반면에, 법정리는 하나의 'XX리'라는 하나의 법정리에 각각의 여러개의 행정리가 들어가는 경우가 보통이다.
행정리는 보통 자연마을 단위로 구성된다. 마을이 작으면 여러 마을을 합쳐 한 행정리로 삼고 반 단위로 나눠놓기도 한다.
각각의 행정리마다 주민들 중에서 '이장(里長)'을 선출하는데, 통장과는 동급의 직책으로 비슷한 역할을 한다.
행정구역이 읍, 면으로 되어 있는 신도시나 번화한 읍, 면 지역에 위치한 일정 규모 이상의 아파트들도 자연 마을처럼 '행정리'를 구성한다. 아파트 규모가 크면 아파트 단지를 2개 이상으로 쪼개서 각 마을별로 행정리를 구성하고, 역시 '이장'을 선출한다.
가령 나무읍 나무리라는 '법정리'가 있다면 이 곳은 '나무1리 나무마을', '나무2리 위키촌마을'. '나무3리 키위골마을' 등의 자연마을들과 '나무4리 무냐아파트 1~5동', '나무5리 무냐아파트 6~9동 및 상가동'등의 '행정리'들로 구성되는 것이다. 역시 각각의 행정리에는 '이장'이 선출된다.
이러한 사례는 굉장히 많은데 도농복합시의 면이나 읍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대규모로 들어서서 동 단위로 바로 승격을 시켜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 되더라도 주민들 입장에선 농어촌 혜택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읍 단위까지만 승격시키고 거기서 멈추는 걸 원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수도권의 도농복합시에 많이 있는데, 나열하자면 다음과 같다.
- 광주시: 오포읍
- 김해시: 진영읍
- 남양주시: 화도읍, 진접읍, 오남읍, 진건읍, 와부읍, 퇴계원읍
- 부산광역시: 기장읍, 장안읍, 정관읍
- 안성시: 공도읍
- 양산시: 물금읍
-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2]
- 이천시: 부발읍
-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 평택시: 안중읍
- 포천시: 소흘읍
- 화성시: 봉담읍, 향남읍, 남양읍, (2006년 분동.)
사실 집배원들은 그냥 읍, 면이고 뭐고 우편번호고 나발이고 '키위골 홍길동' 등으로 '행정리+수취인 이름'만 써놓아도 기가 막히게 우편물 배달을 잘 해준다. 각종 마을들의 이름과 그 마을에 누구누구가 사는지를 쏙쏙들이 알고있기 때문에(...). 물론 조그만 동네에서 동네 우체국에 맡긴 우편물이나 이게 가능하지 다른 동네에 보내는 우편물에 이렇게 쓰면 반송된다. 자기집 주소도 저렇게 써놨다면(...) 그 우편물은 반송도 못 하고 미아가 된다. 보통 이 사람들에게 지번주소를 물으면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한다. 보통 이런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누군가를 찾아갈 때 '행정리'만 알아도 '지나가던 사람'에게 누구네 집이라고 물으면 누가 어디 사는지 다 알려주신다.
도로명주소를 쓰게 되면서 'XX리' 단위가 빠지게 되자,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지명들을 다 버리려는 것이냐'는 반발도 있었는데, 사실 위와 같은 이유 때문에 'XX리'에 사는 대부분은 사람들은 자기 마을이 아니라 법정리의 대표마을 명칭을 대표 주소로 쓴다. 오히려 기존까지 주소에 안 들어가던 '행정리'의 이름들이 '위키촌길', '키위골길' 등 도로명에 들어가서 쓰이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오히려 도로명주소를 실시하면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지명'이 더 많이 반영된 셈이 된다.[3]
마을 전체가 댐 건설로 수몰되거나 민통선 등 군사지역으로 묶이는 등 여러 사정으로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법정리도 많다.
군이 시로 승격되거나 읍·면 지역이 도시화되어 동으로 전환될 때, 보통은 법정리의 명칭이 그대로 법정동 명칭으로 전환된다. 행정동 명칭으로는 이들 중 몇 개만 선별되거나 새로운 이름이 정해지는데, 규모가 작아서 1~2개의 행정동만 설치될 경우 보통 기존 읍·면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다.(예:당진시 당진X동 주민센터)
행정리 이름이 흔히 보이는 XXO리 식으로 정해지지 않고 특이하게 정해진 사례도 있다. 예를 들면 보성군 보성읍 보성리의 경우 보성1리, 보성2리 하는 식이 아닌 다산1동, 다산2동, 인사동, 부평1동, 부평2동, 신흥1동, 신흥2동 등 7개 행정리가 각각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접미사도 리가 아닌 '''동'''이다. 게다가 현지에서는 상기 7개 리에서 숫자를 뺀 것을 '보성리'를 대체해 법정리처럼 쓰기도 한다. '난 부평동 살아'라고 하는 식으로. 물론 주소를 쓸 때는 보성리로 쓰지만. 이런 경우는 마을 이름에 'XX촌', 'XX동', '원(原)XX', 'XX골'등 흔히 쓰이는 접사가 붙고 이 상태로 정식명칭이 되어버린 것. 물론 저런 접사가 정식명칭이여도 공문서에는 꼭 '리'를 붙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다산1동'도 '다산1리'로 쓰는 식으로. 위와 같은 합천군 합천읍 합천리의 경우도 마을이름 다섯개가 동이란 명칭을 쓰고 있다. 중흥동, 창동, 옥산동, 교동, 정대동 다섯개 마을을 동이란 명칭으로 붙여 부르고, 공문서에는 합천읍 합천리라고 쓰지만 행정상으로도 인정해서 우편번호도 모두 다르고 주소로 흔히 쓰고 있다. 이외에도 특이한 지명/대한민국 항목 중에 법정리 상으로는 없고 행정리 상으로 존재하는 곳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4] ,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5] ,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6] , 제주도 제주시 우도면[7] 등은 특이하게 '''법정리가 1개'''뿐이다. 물론 행정리는 여러 개 있다. 심지어 퇴계원읍은 법정리 퇴계원리 하나에 29개의 행정리가 있으며, 이 중에 12개 리는 아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법정리가 아주 많은 리도 있는데,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이 '''법정리 34개'''로 전국 읍면 중 가장 많다. (이북 5도까지 포함하면, 함경남도 문천군 명구면이 법정리 63개로 가장 많다)
한 법정리 안에 행정리가 아주 많은 리도 있다. 주로 아파트가 몇 단지씩 있는 곳인데 아직 행정구역이 읍면인 경우가 그렇다. 대한민국 역사상 이 분야 최강의 사례는 시흥군 소하읍 광명리(현 광명시 광명동)로, 시승격 직전인 1981년에는 무려 '''광명36리'''까지 있었다. 덕분에 광명리는 시 승격과 동시에 무려 7개 행정동으로 분할되었다. 보통 도농복합시들이 승격될 때 중심읍 지역이 잘해봐야 3개 정도의 행정동 정도로 나눠지는 걸 보면 그야말로 여긴 어디인가.... 옆동네인 철산리도 철산27리까지 있다가 시 승격과 동시에 철산1~4동으로 갈라졌다. 즉, 광명, 철산 두 동네 합쳐 63개 행정리가 11개 행정동으로 개편되었다는 소리다. 아닌게 아니라 소하읍 역시 '''역사상 최다인구읍'''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게 해당 지역의 서울 편입 및 독자 시 승격을 두고 당국이 갈팡질팡하다가 인구가 저 정도로 늘어나버렸기 때문.
일반적으로 행정리 분할 기준은 250세대 정도. 칼같이 지켜지는 건 아니라서 이보다 훨씬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읍면지역 아파트들은 보통 1천세대에 육박하는 아파트 단지 하나를 통째로 하나의 행정리로 편제하곤 하는데, 이렇게 해도 오히려 어중간한 주택가 리들보다 업무가 수월하다. 단지 내에 방송시스템이나 게시판이 잘 되어 있으니 뭔가 공지하기도 편하고 협조를 구하기도 쉽기 때문. 원룸촌 리들이 진짜 행정적으로 매우 골치 아프다. 학교나 일자리 때문에 흘러들어온 주민들이 제대로 전입신고도 안 하고 (특히 학생층의 경우 어디까지나 '임시거처'라는 생각으로 전입신고를 안 하기도 한다.) 외국인 거주민들도 많고, 전입을 해도 주간에 세대구성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주민들 간에 교류도 많지 않기 때문. 게다가 학교나 일자리 등으로 인구가 단기간에 불어나다보니 제도개선이 제때 되지 않아 1천 세대가 넘어가는 과밀리도 종종 나타난다. 더 골치 아픈 것은 그래서 행정리를 분할하려 해도 이에 필요한 동의를 원하는 시간 안에 원하는 만큼 받아내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 사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도 읍면지역에서 자취하는 대학생이나 직장인이라면 이장님 얼굴 본 경험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끔씩 읍면 지역에 '''리사무소'''라고 있는 경우가 있다. 동사무소나 읍면사무소처럼 어떤 행정적인 기능을 하는 건 아니고, 그냥 '''폼 나 보이는 마을회관''' 정도(...) 리사무소 간판 단 곳에 가보면 이장 사무실이 조그맣게 하나있고 그 옆 문으로 들어가면 경로당이나 노인회인 식이다. 좀 괜찮은 마을이면 이장 집무공간과 회관까지 묶어서 '리사무소'로 칭하고 경로당은 별도로 분리된 공간에 두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그저 돈이 장땡이라 리사무소 간판 암만 달아봐야 정말 돈 있는 동네의 삐까뻔쩍한 마을회관이 몇 배는 폼난다. 마을회관이라는 게 법적으로 관공서가 아니다보니 대부분 주민 기금을 기반으로 약간의 지자체 재정을 보태 지어진다. 당연히 부농지역이나 도시화된 지역 마을회관일수록 크기나 기능 등에서 충실하고 빈곤한 지역일수록 낡고 비좁다. 혹은 리사무소 간판 안 단 그냥 마을회관, 복지회관인데도 지역에서 과거 지칭하던 관행에 따라 리사무소라고 부르는 경우도 상당수다(특히 제주도). 이런 곳은 대부분 과거 리사무소로 기능하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마을회관으로 개칭한 경우.
법정동과 행정동이 모두 지도에서 표시되는 것과는 달리(간혹 법정동과 행정동의 이름이 동일한 경우 한쪽만 표시되기도 한다.) 행정리는 지도에서 거의 표시되지 않는다. 또한 행정리는 행정동과는 달리 행정적인 기능이 없다보니 행정구역 코드가 따로 부여되지는 않는다.
3.1. 리가 남아 있는 지명
행정구역은 '동'으로 승격하거나 해서 현재 '리'가 아님에도, 오랜 역사에 따라 여전히 리로 불리는 곳이 여럿 있다.
다만 청량리, 염리는 뒤에 동이 붙어 청량리동, 염리동이 되었음으로 여기에 수록하면 안된다. 재밌게도 둘 다 고양군에 속한 곳이였다.(청량리=숭인면(현 동대문구), 염리=용강면(현 마포구)
이들은 근래 들어 대부분 '동'으로 승격하였으나, 그중 청량리는 동 이름과 역이름에 아직 '리'가 남아 있다. 그 이유는 '발음하기 더 편해서' 라고 한다. 사실 철도역명 등으로 인해 이들은 리를 붙인 이름이 이미 네임드가 된 것도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실례로 공주시에서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하면서 편입된 장기면 남은 지역을 동으로 개편할 때 다른 리는 모두 동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석장리는 국사책 첫장에 항상 등장하는 네임드 이름인걸 고려하여 석장동이 아니라 '석장리동'이라고 이름을 붙였다.[10]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도 '송정리'라고 많이 불린다. 2009년 4월까지 '송정리역'이던 광주송정역의 영향도 클 듯.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동 역시 그냥 '광안리'라고 불린다. 광안리해수욕장이 그 예. 전주시 우아동 지역도 예전의 명칭인 아중리로 불리기도 한다.[11] 그 밖에 시(행정구역)에 속하는 'XX동' 중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동으로 전환된지 얼마 안 되었거나, 시 지역으로 편입된지 얼마 안 된 지역들도 'XX리'라는 명칭이 오랫동안 통용되기도 한다. 여기서 얼마 안 되었다는건 2~30년 이상이 될수도 있다. 관습적으로 'XX리'라고 계속 부르던 지역들을 어느날 갑자기 'XX동'으로 부르자니 입에 잘 안 붙기도 하고, 언어의 '사회성' 때문에 다들 'XX리'라고 부르면 어린 아이들이나 전입해 들어온 사람들도 그렇게 부르게 되는 것.
조선시대에는 기초행정구역에 동, 리, 촌, 부락 등의 명칭이 혼재되어있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을 기점으로 촌과 부락의 명칭을 동과 리로 정리하였는데, 읍·면지역 말단행정구역의 명칭을 '리'로 일원화한 것은 1988년이다. 때문에 현재에도 해당 지역에 평생을 산 노인들이 읍면지역인데도 관습적으로 '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12] 특히 경상북도는 경주, 포항 등 일부를 제외하면 예외없이 리 대신 동을 적용했다. 이북 5도 행정구역상으로는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에서도 도내 모든 읍·면지역에서 리 대신 동을 적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1988년의 리 일원화는 이북 5도에는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북 5도 행정구역 상 평안북도와 함경북도의 읍·면지역의 '동'은 명목상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다부동 전투를 '다부리 전투'라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행정구역은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지만, 한국 전쟁 당시에는 '칠곡군 가산면 다부'''동''''이었기 때문. 그 외에 일제강점기에 승격된 유서깊은 읍들의 경우, 일제가 읍지역에서도 그들의 정(町)제[13] 를 실시했던 탓에 그 잔재가 이어져 거의 예외없이 '동'이 쓰였다.[14] 세종특별자치시 조치원읍에서는 토박이들 사이에서 아직도 서창동, 명동, 교동이라는 이름을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 그중 명동, 교동은 그동네의 초등학교 명칭이다. 심지어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의 중심지인 창선1리(읍사무소 소재지)와 창선2리 는 1988년 일원화 이전까지는 무려 '''창선동1가, 창선동2가'''라는 위엄돋는 이름을 자랑하기도 했다. 심지어 창선동1가라는 명칭이 '''1993년 무렵'''까지도 쓰인 건 덤(...).
참고로, 서울의 왕십리는 행정구역 리(里)와는 전혀 관계없는 지명이며, 조선 건국 설화에서 나온 "이곳에서 십리(十里)만 더 가면(往) 도읍지가 나온다" 라는 말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왕십 + 리 가 아니라 왕 + 10리. 상왕십리동과 하왕십리동도 마찬가지.
서울에 가오리 또는 가오리역이란 이름도 있는도 '5리를 더하다'는 뜻으로 행정구역에서 유래된 이름은 아니다.
4. 관련 통계
리의 목록에 대해서는 읍(행정구역)/목록과 면(행정구역)/목록 항목으로. (법정리 기준)
4.1. 인구 순위
4.1.1. 상위 순위
대체적으로 택지지구로 개발된 곳이 여기에 해당된다.
자세히 보면 유난히 남양주시가 많다. 이는 남양주시의 시가지가 여기저기 분산되어있는데다가 도농복합시이기 때문이다. 시청소재지인 금곡동-다산동 일대의 시내동지구를 제외한 읍소재지 지역(와부, 화도, 오남, 퇴계원, 진접)을 바로 동으로 전환하기에는 현재 이 읍들이 주변 농촌지역을 포함하기 때문에 너무 면적이 넓고, 그렇다고 농촌지역을 기존 읍소재지 지역과 분리시켜 동을 만들어버리면 이 농촌지역 동들은 껍데기만 남아서 행정력이 낭비되기 때문에 기존의 읍/면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 읍이 인구 10만을 넘거나 넘기 직전인 상황이다. 당연히 읍면의 하위 행정구역인 리 역시 유지중이기 때문에 저런 지방 소도시 뺨칠만한 리가 속출하는 것.
2018년 4월 기준이다. 자세한 것은 여기[15] 에서 볼 수 있다.
4.1.2. 하위 순위
법정리 중 인구가 가장 적은 곳은 '''0명'''으로, 법정리의 코드가 있는 곳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 다음과 같이 총 200곳이 있다. 다만 기준 자료인 국토통계지도에서는 6명 미만의 리는 전부 0명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유의할 것. 대부분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지역(🚫)이거나 댐으로 인한 수몰 지역(💧)이다. 이외에도 법정동과 마찬가지로 산업단지(🏭), 군사시설(⚠️), 농경지(🚜), 도로(🛣), 하천(💦), 자연녹지(⛰), 원전시설(☢) 등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장소만으로 이루어진 곳도 많으며, 본래 사람이 거주하다가 떠나서(🧳) 0명이 된 곳도 많다. 특이하게 세종시에는 개발 예정지로(🚧) 주민이 없는 리도 있다.
참고로 †표시 된 곳은 법정리로는 존재하나, 지적공부 상에서는 누락된 곳이다. 주로 해방 직후 38선 북쪽에 있어 북한에 속했으나, 6.25 전쟁 이후 휴전선이 그어져 일부가 남한으로 넘어간 면 중 미수복되거나 극히 일부만 수복된 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지적공부상에는 누락됐지만 실제 휴전선 이남인 땅이 있는 리가 있는 반면, 연천군의 일부 리 처럼 휴전선 이북인데 법정리 코드가 있는 곳도 있다. 그리고 양구군 방산면 문등리의 경우 수입면의 수복지구가 편입되었기 때문에 방산면 관할은 맞으나 법정리 코드도 없고 지적도 되어있지 않아 아래 표에서 빠지게 되었다.[16]
광역단체 별로 분류하면, 부산광역시 2개리, 울산광역시 9개리, 세종특별자치시 5개리, 경기도 52개리(평택시 2곳, 용인시 1곳, 안성시 1곳, 광주시 1곳, 포천시 1곳, 파주시 20곳, 연천군 26곳), 강원도 61개리(강릉시 1곳, 삼척시 1곳, 홍천군 1곳, 횡성군 1곳, 양양군 2곳, 철원군 29곳, 양구군 5곳, 인제군 3곳, 고성군 18곳), 충청북도 32개리(청주시 3곳, 충주시 8곳, 제천시 8곳, 단양군 5곳, 보은군 6곳, 영동군 1곳), 충청남도 9개리(서산시 2곳, 논산시 2곳, 계룡시 4곳, 태안군 1곳), 전라북도 3개리(진안군 2곳, 고창군1곳), 전라남도 21개리(순천시 2곳, 해남군 2곳, 화순군 2곳, 장흥군 5곳, 영광군 4곳, 장성군 6곳), 경상북도 4개리(포항시 1곳, 김천시 1곳, 울진군 1곳, 청도군 1곳), 경상남도 3개리(창원시 의창구 1곳, 사천시 2곳)이다.
인구가 0명인 법정리를 제외하면,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마포리,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대동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덕유리, 충주시 살미면 신당리, 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월산리가 인구 6명으로 실질적인 공동 꼴찌이다. 이외에도 인구 6명인 리들 중 민통선에 걸쳐있는 곳인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리[19] ,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양지리 등이 있다. 참고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는 통계상으로 8명이 살고 있다고 잡힌다.
4.2. 면적 순위
4.2.1. 상위 순위
일반적으로 산 정상 근처에 등산객은 있어도 거주자는 없고, 대한민국의 모든 지점에 행정구역을 부여해도 사람 없는 동네를 의미없이 쪼개지는 않는다. 따라서 산 정상이 경계에 있는 리의 경우 면적이 매우 넓으며, 상위 20개 리 모두 이런 경우이다. 또한, 산골의 경우 인구도 매우 적으므로, 확인을 위해 인구를 병기하였다.(외국인 제외)
[1] 미수복지역까지 포함한다면, 강원도 회양군 내금강면 병이무지리 등이 있다.[2] 같은 단지인데도 유림동과의 경계에 있어 이 분야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도 듣고나면 경계 너머 유림동에 살면 땅을 친다.[3] 근데 오히려 더 근본없이 바뀐 곳도 만만찮아서 케바케. 예를 들어서 보성군 벌교읍의 금곡마을과 금평마을은 인근 마을이 다 자기 마을 이름으로 된 길을 갖고 있는데 여기는 왜인지 길을 따로 부여받지 못해 '녹색로 OOOO-OO'이 돼버렸다. 만약 따로 길을 부여했으면 '벌교금곡길 OO', '벌교금평길 OO' 등이 됐을 것.[4] 본래는 별내면의 일부에 속했으나, 1989년 퇴계원리를 일원으로 퇴계원면으로 분리되었다.[5] 본래 명칭은 송림면이었고, 해방 직후에는 38선 이남인 남한에 속해있어 옹진반도 본토까지 관할했으나, 6.25 전쟁 이후 휴전선이 그어져 면 대부분이 북한으로 넘어가 남한의 송림면은 연평도만 남아버렸고, 결국 1999년에 연평면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6] 본래는 동면(현 화암면)의 일부에 속했으나, 석탄 산업의 호황으로 1973년 사북읍으로 분리된 것을 거쳐 1985년 고한리를 일원으로 고한읍으로 다시 분리되었다.[7] 본래는 구좌읍에 속했으나, 1986년 우도를 일원으로 우도면으로 분리되었다. 다만 이곳은 행정안전부에서 제공하는 행정구역 코드 상에는 다른 리가 더 있는데, 지적공부 상으로는 누락되어 있다.[8] 참고로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마을회관이 남아있다.#[9] 흔히 거제 포로수용소로 알려져 있는 지명은 부산 거제동이 아닌 경상남도 거제시에 있다.[10] 원래부터 석장리는 아니었고, 1914년에 석장리는 장암리에 흡수되었으나 유적이 유명해져서 출범 직전에 장암리에서 개명한 것이다.[11] 우아동 지역을 비롯한 1957년 완주군에서 편입된 외곽 지역의 경우 몇개의 리를 묶어 하나의 법정동으로 만들었는데, 무려 구도심에서나 볼법한 'XX동n가' 식으로 이름을 지었다.[12] 비슷한 사례로는 초등학교를 국민학교로 말하는 노인도 있다.[13] 우리로 치면 ~동/로X가(街). 실제 과거 청주시는 일제강점기 시절 청주군 청주읍이었는데, 읍내에 본정통1정목~5정목이 존재했다. 이 정들은 1946년 시로 승격되면서 북문로1~3가, 남문로 1, 2가로 개칭되었다.[14] 일례로 경기도 안성읍에서는 시 승격 이전인 1990년대 초중반까지도 읍내에 봉산동, 금산동(지금은 안성시 봉산동 및 금산동이다.)이라는 명칭이 있었으며, 안성읍이 동으로 전환되면서 이 리들도 동으로 전환된 것.[15] 국토통계지도 탭을 누른 뒤 하위 설정에 따라 인구를 확인할 수 있다.[16] 참고로 제주도에도 이런 곳이 있는데, 이러다 보니 실제로 제주도에서는 마을 주민들의 불만이 있기도...[17] 2019년 4월에 개칭되었다.[18] 사람이 살던 마을은 꽤 있다. 대표적으로 정찬민 전 시장이자 현 처인구 제21대 국회의원의 출신지.[19] 여기, 지금은 6명인데 옛날에는 인구 11000명 이상이 거주하던 김화읍의 중심이다![20] 인구밀도는 2.42명/㎢로, 몽골, 핏케언 제도보다도 낮다. 리의 대부분 면적을 차지하는 동촌2리는 차량 접근이 불가능하며, 인구는 74명이다.
4.2.2. 하위 순위
리 면적 상위순위와 달리 단위를 ㎢로 하면, 소숫점 세자리부터 숫자가 등장하기에, 편의상 ㎡를 단위로 한다. 대체적으로 읍내로 부르는 곳이 여기에 해당된다.
5. 나무위키에 문서가 있는 리
문서가 생성된 순서대로 정리함.
6. 북한
북한에서는 1954년까지 우리와 마찬가지로 도-시/군-읍/면/동-리로 이어지는 4단계 행정구역 체계를 사용했는데, 1955년까지도 도시 지역에 동과 리가 혼재되어 있었다.
1954년부터 면을 폐지하고 읍/동/리를 동격으로 편제하는 3단계 행정구역을 도입하는 한편 1955년부터 도시지역은 동, 농촌지역은 리로 명확히 구분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북한의 리는 남한의 읍/면/동과 동급이며 개별 리의 규모는 한국의 면보다는 작고 리보다는 훨씬 큰 수준이다. 개별 읍/리는 사실상 하나의 협동농장을 구성하며 리 아래에는 인민반이 구성되어 있다.
성인인구 400명 이상이며 이 중 65% 이상이 노동자로 구성된 리는 로동자구로 승격된다. 북한에서는 로동자구가 리는 물론 동보다 상위로 보고 있다.
7. 해외
대만에서는 한국의 '동'에 해당되는 행정구역을 '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