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 스위셔
1. 선수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던 前 야구선수.
2. 선수 경력
2.1.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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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볼 드래프트로 유명한 오클랜드가 뽑은 2002년의 7명의 1라운더 중 하나다. 당시 오클랜드의 머니 볼 드래프티들 중 유명한 선수로는 조 블랜튼이 있다.
이 해 드래프트는 심각한 계약금 문제로 인해 여러 팀들이 검증된 1라운더감이 아니라는 평을 듣거나 세이버메트릭스의 시각으로 저평가된 선수들을 상위픽으로 데려가는 경향이 강했고, 특히 스몰 마켓 팀들은 이런 성향이 더 강했다.[1] 하지만 그런 1라운더 가운데 닉 스위셔만은 기존의 시각으로 봤어도 충분히 1라운드에 뽑혔을 만한 인재라고 빌리 빈마저 인정했다. 머니볼에서 닉 스위셔에 대해 한 장을 할애하고 있을 정도.
마이너리그에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2004년 처음 메이저 무대를 밟은 스위셔는, 2005년 개막로스터부터 팀의 주전 우익수로 합류해 풀타임을 소화했다. 이듬해인 2006년에는 댄 존슨의 부상과 부진으로 공백이 생긴 1루수 자리를 좌익수와 겸업하며 35홈런을 기록해 에릭 차베즈나 프랭크 토마스의 뒤를 받쳐주는 5번 타자로서 제 역할을 다 했다. 2007년에도 클래식 스탯은 다소 하락했지만, OPS+는 오히려 상승하는 등 좋은 활약을 이어갔다. 스위셔는 딱 20경기 뛴 데뷔 첫 시즌을 포함한 오클랜드에서의 4년간 458경기에 나와 타출장 .251/.361/.464로 준수한 활약을 하고, 홈런도 80개를 쏘아올리며 팀의 중심 타선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안그래도 스몰 마켓이던 오클랜드는 2007년 마이크 피아자의 영입 실패로 인한 재정 문제로 파이어 세일 모드에 접어들었으며, 스위셔 역시 그 대상자중 한명이었다.
2.2. 시카고 화이트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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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8년 1월 3일, 트레이드를 통해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팔려가게 된다. 반대급부로 라이언 스위니, 파우티노 데로스산토스, 그리고 '''지오 곤잘레스'''가 오클랜드로 넘어갔다.[2] 당시 시삭스는 코너외야진이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었는데, 좌익수 자리는 스캇 포세드닉이 스피드만 남고 타격은 처참한 수준으로 전락했고, 포세드닉의 부상을 메우던 맥코비액은 트레이드로 떠나 구멍이 크게 뚫려있었으며, 우익수 자리는 저메인 다이가 2006년에 비해 OPS만 2할이 떨어지는 급격한 하락세를 보여 노쇠화 우려가 만연한 상태였다. 코너 뿐만 아니라 중견수 자리 역시 포세드닉마냥 발만 빠른 제리 오언스를 주전으로 써야했을 정도로 문제가 있었다. 다시 말해 외야 전체가 불안요소로 가득한 상태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코너외야 뿐만 아니라 중견수도 볼 수 있던 스위셔를 영입한 것.
그러나 스위셔는 시카고에서 잘 적응하지 못했다. 저메인 다이가 부활하더니 좌익수는 카를로스 쿠엔틴이 등장하며 맹활약한 탓에 스위셔는 오클랜드 시절 자주 보지 않았던 중견수를 주로 봤고, 그 영향인지 타격이 무너져버렸다. 그나마 폴 코너코의 부진으로 1루 자리를 꿰찬 후 어느정도 살아나나 싶었지만, 결국 정체된 성적으로 카를로스 쿠엔틴이 부상당한 좌익수 땜빵도 보는 등 포지션을 오가다가 결국 타출장 .219/.332/.410으로 망했다. 펀치력은 살아있어서 홈런은 24개를 때려냈지만, 다른 스탯이 저래서야 의미가 없다.
안그래도 연봉조정 기간에 들어가서 이미 $3.6M을 수령하던 스위셔는 이듬해 연봉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았고, 이를 부담스럽게 여긴 시카고는 결국 2대3 트레이드를 통해 스위셔를 양키스에 팔아버렸다. 이 당시 스위셔의 가치가 하도 떨어진 탓에 시삭스는 더블A 클로저를 맡던 22살 유망주 카네코아 테셰이라를 추가로 얹어줬음에도 굉장히 미미한 보상만을 받아올 수 있었다. 그나마 윌슨 베테미트 정도가 괜찮은 칩이었지만 시삭스에선 부상으로 딱 20경기 뛰고 팀을 떠났으며, 같이 받아온 제프 마르케스와 쟈니 누네스는 언급하기도 뭐할 정도로 미미한 기록만 남기고 사라졌다.
2.3. 뉴욕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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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는 스위셔를 데려오면서 바비 아브레우의 공백을 메우려고 했지만, 이미 지난 시즌 괜찮은 활약을 보여준 재이비어 네이디가 있어서 스위셔는 유틸리티 백업 정도로 쓰일 것으로 예측되었다. 하지만 네이디가 토미 존 서저리로 이탈하자 스위셔가 우익수 자리를 꿰찼고, 놀랍게도 부활에 성공하면서 팀 타선에 힘을 크게 보탰다. 150경기에 나와 타출장 .249/.371/.498 29홈런을 기록하며 특유의 눈야구와 펀치력을 보여줬고, 특히 초반에 타선이 집단 부진일 시절 홀로 분전하며 양키스가 초반에 주저앉지 않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뿐만 아니라 특유의 유틸리티성을 십분 발휘해 외야수가 구멍나면 어디든 다 메꿔주고 마크 테세이라의 휴식일엔 1루도 맡았으며, 개털리는 경기에선 '''투수'''로도 무실점 활약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땜빵에 비해 수비력이 별로였어서 WAR은 1.9를 기록하는데 그쳤지만, WAR로는 집계할 수 없는 유틸리티의 알토란같은 활약은 팀에 분명 큰 도움이었다. 그리고 초반의 부침을 극복한 양키스는 103승을 거두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미네소타와 에인절스를 연파하고 오른 2009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마쓰이 히데키의 전설적인 활약으로 필리스를 꺾고 월드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스위셔도 이 때 포스트시즌 엔트리에 포함되었고 비록 가을에는 부진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2010년에는 타출장 .288/.359/.511 29홈런으로 커리어하이급 성적을 기록하고 아메리칸리그 올스타에도 선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초반에 심히 부진했지만 이후 성적을 끌어올려 타출장 .260/.374/.449 23홈런을 기록했다. 유틸리티성과 눈야구, 그리고 한방 있는 펀치력은 팀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었고 이에 양키스는 스위셔에게 있던 1년 10M의 연장옵션을 실행했다.
2012년에도 타출장 .272/.364/.473 24홈런을 기록하며 쏠쏠한 활약을 해줬다. 하지만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ALCS에서는 1차전 연장 이닝에 아쉬운 수비로 공을 놓치더니, 그 다음 경기에서 양키스타디움 블리처석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야유에 멘붕을 일으킨듯 SNS로 "나 예민한 남자야"라는 투의 말을 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예민택에 비견하는 팬들까지 있을 정도. 결국 양키스가 졸전끝에 디트로이트에게 완패하면서 팬들에게 을사오적 격인 양키 4적이라고 까였다.
사실 이 해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스위셔는 유난히 큰 경기에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렇게 욕먹은 2012년 ALCS에서 기록한 OPS .724가 스위셔가 단일 포스트시즌 매치업에서 기록한 성적중에서는 괜찮은 편이었을 정도. 나중에 클리블랜드에서 기록한 4타수 무안타를 포함한 통산 포스트시즌 OPS가 .575일 정도니 말 다했다. 물론 이 때 양키스 중심 타선은 소녀시대 서현 닮은 모 2루수라든지, 수비형 1루수라든지, 노동자라든지 어째 하나같이 큰 경기에 약하긴 했지만. 때문에 꾸준히 8할대를 찍는 OPS와 유틸성을 가졌음에도 낮은 타율과 큰 경기 약점이 결부되어 몸값이 생각보다 저평가받았다.
2.4.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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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3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4년 5600만 달러의 계약을 맺고 2013시즌부터는 인디언스 소속으로 뛰게 되었다. 당초 추신수의 트레이드로 자리가 빈 우익수를 맡을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추신수 트레이드때 신시내티에서 데려온 드류 스텁스를 우익수로 기용하면서 스위셔는 클블의 또 다른 구멍이던 1루수를 맡게 되었다.
원래 2006년만 해도 클리블랜드는 나름 1루수 자원이 풍족하게 있는 편이었지만 그 중에서 트래비스 해프너는 사실상 전업 지명타자가 된 상태라 논외로 쳐야했고, 실질적으로는 29살의 벤 브루사드와 36살 베테랑 에두아르도 페레스가 주전급이었고 팜 유망주로 22살의 영건 라이언 가코가 있었다. 헌데 시애틀의 모 대인배가 커리어 하이를 찍던 브루사드와 백업으로 잘 하던 페레스를 데려가겠다고 접촉했고, 클리블랜드는 이 둘을 순차적으로 보내며 추신수와 아스드루발 카브레라를 털어오는 역대급 스틸을 작렬, 자연스레 가코가 1군 주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7년 커리어 하이를 찍은 가코는 2008년 하락세를 겪고 2009년 반등하는 기미를 보이자마자 트레이드로 샌프란시스코로 넘어갔고, 그 자리는 밀워키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올대 출신 A급 유망주 맷 라포타에게 넘어갔다. 문제는 라포타가 처참하게 망하면서 1루에 구멍이 뚫려버렸고, 결국 탬파베이에서 선전한 케이시 코치맨을 영입했지만 2012년 코치맨은 풀타임 1루수로 뛰면서 OPS .612(...)라는 성적으로 클블 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그나마 우익수 자리는 트레이드로 데려온 스텁스 말고도 적당히 굴려볼 자원이 조금 있던데 비해, 1루는 진짜 씨가 마른 수준이라서 스위셔를 1루수로 써먹게 된 것. 카를로스 산타나가 있었지만, 이때만 해도 산타나는 아직 포수/지명타자 자원이었다.
아무튼 팬들의 기대 속에서 클리블랜드로 이적한 스위셔지만 타출장 .246/.341/.423 22홈런으로 기대에 못미치는 성적을 냈다. 클리블랜드가 큰맘먹고 지른 마이클 본과 똑같이 하락세를 겪은 탓에 쌍으로 묶여서 돈 값 못 한다고 까인건 덤. 여기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4타수 무안타를 기록하며 또다시 포스트시즌에서 못한다는 기록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즌 내내 왼쪽 어깨 부상에 시달리다가 시즌 막판 40경기에서 타출장 .269/.356/.506을 찍으며 반등하는 기미를 보여줬기 때문에, 다음 시즌을 기약할만한 성적이었다. 그러나...
2014년, 부상 여파에 시달린 탓에 반등은 온데간데 없고 시즌 초반부터 열심히 삽질만 하다가 결국 풀타임 첫 해인 2005년 이후 가장 적은 97경기에 출전해 타출장 .208/.278/.331 8홈런으로 최악의 성적을 찍으며 먹튀로 전락했다. 1:2 정도의 비중을 유지하던 볼삼비도 무너지고 장타력까지 무너지고 노쇠화로 1루 수비력마저 감퇴하며 애물단지로 전락했으며, 1루 자리는 카를로스 산타나가 포변해서 꿰찼다.
워낙 노쇠화가 뚜렷한 탓에 반등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많았고, 결국 2015년에도 1할대 타율로 먹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5. 이후
결국 고액 연봉자 스위셔를 처분하기로 한 클리블랜드는 8월 7일 마찬가지로 먹튀가 된 마이클 본과 현금을 엮어 크리스 존슨을 받아오는 댓가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스위셔를 트레이드했다. 애틀랜타에서도 반등하지 못하면서 망한건 덤.
2016년 스위셔의 연봉은 $15M이었고 클리블랜드의 연봉보조를 빼더라도 애틀이 10M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리빌딩을 준비중인 애틀랜타는 본과 함께 연봉보조를 해서라도 15시즌 이후 오프시즌에 스위셔를 처분하고자 했지만, 하향세가 완연하면서 가격도 세다보니 데려가는 팀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스프링 트레이닝 명단에 들었지만 반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이후 마이너 계약으로 양키스에 입단했지만 AAA서 타율 0.256, 출루율 0.297이라는 상당히 저조한 성적을 내면서 양키스의 1루 자원들이 줄부상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도 끝내 콜업되지 못하고 시즌을 마쳤다. 높은 출루율이 장기이던 선수가 타율과 출루율 차이가 채 5푼도 나지 않는 상황이라 향후 전망은 매우 암울했다.
결국 2017년 2월 18일에 은퇴를 발표했다. 이후 양키스의 스프링 캠프 게스트 인스트럭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3. 플레이 스타일
빌리 빈이 좋아할만한 전형적인 OPS 히터. 볼넷을 매우 잘 골라 출루율이 대부분 타율보다 1할 가량 높고, 장타력도 우수해 악명 높은 오클랜드-앨러메다 카운티 콜리세움을 홈으로 30홈런을 때릴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오클랜드에서 주축 타자로 활약할 수 있었고, 스위셔 이후 오클랜드에서 OPS 8할을 기록한 선수가 맷 홀리데이와 잭 커스트 단 둘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스위셔가 오클랜드에서 얼마나 잘 했던건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스윙을 정말 아끼는 선수이기도 하다. 13시즌 초반을 기준으로 팬그래프 분석결과 스위셔가 타석에서 스윙할 확률은 평균 39.9%로, 상대 투수가 10번 던지면 4번밖에 스윙을 안한다는 것이다. 리그 평균이 50%대니까 그보다도 10% 이상 낮다. 컨택이 다소 좋지 않으니 이를 만회하기 위해 스윙을 자제하고 눈야구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케이스로, 이 때문에 통산 타율은 .256으로 낮은 편이고 루킹 삼진도 꽤 많다. KBO로 치면 심재학과 유사한 타입.
수비력은 한 두 시즌을 제외하면 평균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어깨도 보통 수준이고 발도 빠르지는 않은 평균 수준이지만 타구 판단 능력이 그럭저럭 괜찮아서 외야 전 포지션을 오갈 수 있었다. 오클랜드 시절부터 1루 겸업도 자주 했고 아예 1루수로 전업한 시즌도 있었는데, 1루 수비력도 중간은 가는 편.
4. 기타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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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과 붙임성이 유명하다. 이 덕분에 2009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자 마자 덕아웃에서 치어리더급 존재로 발돋움하여 A.J. 버넷과 더불어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가 덕아웃에서 조바 체임벌린과 로빈슨 카노와 함께 개그치고 이런 것을 보면 유무형의 팀캐미스트리에 아주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스위셔의 이런 성격은 미국 현지에서도 유명하다. 아래는 그 사례들.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의 마무리 투수 조나단 파펠본과 함께 찍은 필립스 전기면도기 광고. 미국에서도 스위셔의 개성넘치는 캐릭터가 인기를 얻는다는 증거.
시트콤 <How I met your mother>에도 출연한바 있다. 까메오로 나왔는데 머리 웃기다고 놀림받았다고...
'메이저리그에서 한 부문에서 1위를 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을 1등 해 보고 싶나?' 라는 질문을 여러 타자들에게 했을 때, 다른 타자들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를 대며 '타자의 생산성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OPS' '타자는 살아서 누상에 진출하는 게 야구의 기본 명제고 그 점에서 타율보다 더 정확한 출루율' 등의 발언을 했는데 닉 스위셔는 혼자서 '''당연히 홈런이죠! 여자들은 홈런에 환장한다구요!''' 라는 지극히 그다운(...) 인터뷰를 한 적 있다. 후에 WAR에 대해 인터뷰어가 설명해주자 '''아, 그럼 그걸로 할 게요!''' 라고 하기도.
한때 그 외모 때문에 해외야구 갤러리의 신으로 자리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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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최근 해외야구 갤러리에 잡신이 많아진 관계로 입지가 많이 좁아진 게 사실. 은퇴 이후엔 언급도 안된다.
2010년 배우 조안나 가르시아와 결혼했다. 이후 2013년 6월 딸을 봤다.
한국 웹에서는 스케이트보드 지그재그 타임어택 기록자라는 낭설이 돌아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해당 선수는 영국의 마틴 스위니(Martin Sweeney)라는 사람으로 닉 스위셔와는 관련이 없다.
2021년에 명예의 전당 후보로 처음 동록 되자마자 한표도 받지 못한 채 광탈했다. 사실 기록 수치와 누적 둘 다 부족했기 때문에 예상되는 상황이긴 했다.
5. 연도별 성적
6. 관련 문서
[1] 1라운더 한명에게 줄 계약금을 7명에게 나눠준 드래프트라고 불린다. 머니볼 드래프트가 있었던 해의 신인중에서 투수중 최대어로 꼽히던 스캇 카즈미어가 15순위까지 밀리고, 1픽을 가지고 있던 피츠버그 파이리츠는 자타 공인의 최고 유망주였던 B.J. 업튼의 지명을 포기하고 즉전감 투수 브라이언 벌링턴을 지명했으며, 드래프트 5픽 몬트리올 엑스포스가 지명한 유격수 클린트 에버츠는 전체순위 평가중에 10위권으로 평가한 사람이 한명도 없었을 정도로 계약금 문제는 심각했다.[2] 원래 시삭스 소속이던 곤잘레스는 2005년 말 짐 토미 트레이드에서 애런 로완드 등과 함께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갔다가, 363일만에 켄 윌리엄스 단장이 프레디 가르시아로 사기를 쳐서 '''개빈 플로이드'''와 패키지로 묶여 시삭스로 돌아왔다. 그냥 거기서 끝냈다면 윌리엄스 단장은 명성을 떨칠 수 있었지만, 스위셔를 내세운 콩단장에게 낚여 1년여만에 지오를 조공해버렸다.[3] 3번째의 상황은 사실 2009 월드시리즈에서 앤디 페팃의 안타에 홈으로 들어오고나서 뒷구르기를 하는 장면을 거꾸로 돌린 것이다(...) 원본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