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바 체임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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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의 투수. 미국 현지 발음으로는 "자버"라고 한다.
한편으로 이름이 이렇게 된 경위가 복잡하다. 이름이 저스틴이었을 적에 2살짜리 친척 여동생이 다른 친척 동생 조슈아(Joshua)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서 "조바"라고 했는데, 저스틴의 아버지가 이 이름을 다이나믹하다고 여겼고 저스틴도 그걸 좋다고 해서 법적으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언론에서 '챔벌레인'이라고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외래어표기법상 맞지 않으며 원 발음과도 동떨어진 잘못된 표기법이다.
평소 멜키 카브레라, 닉 스위셔, 로빈슨 카노 등 팀 동료들과 활달하게 노는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가족사는 매우 불우하다. 부모님이 결혼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혼전임신을 하여 그가 태어난지 18개월째에 부모님이 갈라섰고(결혼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조바가 4~5살 무렵일 때부터 마약을 복용했고[1] 아버지는 인디언[2] 보호구역에서 태어났지만 소아마비로 인해 보호구역을 떠나 병원, 입양 가정 등을 전전해야 했으며 여자도 잘못 만나는 바람에 몸 왼쪽을 거의 쓰지 못하는 처지에서 아들 조바와 여동생을 홀아비로 키웠다고 한다.
이런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가정 형편도 어려워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년간은 링컨시 시설관리부에 취직하여 사실상의 여러가지 잡일을 맡아하는 비정규 일용직으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다행히 아마추어 야구단을 거쳐 주립 대학(University of Nebraska at Kearney)에 진학할 수 있었고, 200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뉴욕 양키스에 지명받아 110만불의 계약금[3] 을 받으면서 가정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아무튼 이렇게 힘든 과거를 겪었지만 프로에 입단하여 2006년 하와이 윈터리그에서 본격적인 피칭을 시작했는데, 97~8mph, 심지어는 102mph까지 찍을 정도로 폭발적인 패스트볼과 칼날 같은 제구력을 앞세워 '''46/3'''이라는 흠좀무한 K/BB 기록을 찍으며 양키 팬들에게 범상치 않은 시선을 받기 시작한다.
루키 시절의스카우팅 리포트
콜업 전 6월 인터뷰, 콜업 후 데뷔 직전 인터뷰
그렇게 그는 2007년 양키스에서 본격적으로 마이너를 시작했다. 특히 자신의 영웅인 로저 클레멘스가 2007년 여름 양키스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을 때 탬파에서 함께 훈련할 때는 그야말로 어쩔 줄을 몰랐다고.
그렇게 8월 초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된 조바. '''모자를 푹 눌러쓴 동글동글한 얼굴에 동글동글한 체형과 동글동글한 옷걸이에 걸쳐진 핀스트라이프 저지. 그리고 폭발적인 패스트볼'''[4] '''까지'''. 양키스 팬들은 투구폼도 비슷한 이 제2의 '''로저 클레멘스'''에 환호했다. #
이런 제2의 로켓맨을 보호하기 위해 양키스는 그 유명한 '''조바 룰'''(Joba Rules)을 발표했는데, 간단히 말해 투구수에 따라 일정 휴식을 보장하며 연투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제2의 마이크 무시나인 이안 케네디에 이어 나타난 제2의 클레멘스가 불펜으로 던지게 되자 양키 측은 조바를 최대한 보호하려 했다. 꼭 선발이 아니라도 마침 그 해에 마리아노 리베라가 주춤했기 때문에 위력적인 구위의 클로저 가능성까지 갖춘 조바는 리베라의 후계자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었다.
2007년 비록 24이닝이었지만 34K 6BB 12피안타라는 경악스러운 성적을 찍은 조바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양키스는 그를 제2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급 활약을 기대하며 8회 셋업맨으로 내정했는데...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의 투수. 미국 현지 발음으로는 "자버"라고 한다.
한편으로 이름이 이렇게 된 경위가 복잡하다. 이름이 저스틴이었을 적에 2살짜리 친척 여동생이 다른 친척 동생 조슈아(Joshua)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해서 "조바"라고 했는데, 저스틴의 아버지가 이 이름을 다이나믹하다고 여겼고 저스틴도 그걸 좋다고 해서 법적으로 이름을 바꿔버렸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언론에서 '챔벌레인'이라고 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외래어표기법상 맞지 않으며 원 발음과도 동떨어진 잘못된 표기법이다.
2. 어두운 어린 시절
평소 멜키 카브레라, 닉 스위셔, 로빈슨 카노 등 팀 동료들과 활달하게 노는 모습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가족사는 매우 불우하다. 부모님이 결혼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혼전임신을 하여 그가 태어난지 18개월째에 부모님이 갈라섰고(결혼한 것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조바가 4~5살 무렵일 때부터 마약을 복용했고[1] 아버지는 인디언[2] 보호구역에서 태어났지만 소아마비로 인해 보호구역을 떠나 병원, 입양 가정 등을 전전해야 했으며 여자도 잘못 만나는 바람에 몸 왼쪽을 거의 쓰지 못하는 처지에서 아들 조바와 여동생을 홀아비로 키웠다고 한다.
이런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가정 형편도 어려워서,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년간은 링컨시 시설관리부에 취직하여 사실상의 여러가지 잡일을 맡아하는 비정규 일용직으로 일하며 돈을 벌어야 했다. 다행히 아마추어 야구단을 거쳐 주립 대학(University of Nebraska at Kearney)에 진학할 수 있었고, 2006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에 뉴욕 양키스에 지명받아 110만불의 계약금[3] 을 받으면서 가정 형편이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3. 커리어
3.1. 뉴욕 양키스 시절
아무튼 이렇게 힘든 과거를 겪었지만 프로에 입단하여 2006년 하와이 윈터리그에서 본격적인 피칭을 시작했는데, 97~8mph, 심지어는 102mph까지 찍을 정도로 폭발적인 패스트볼과 칼날 같은 제구력을 앞세워 '''46/3'''이라는 흠좀무한 K/BB 기록을 찍으며 양키 팬들에게 범상치 않은 시선을 받기 시작한다.
루키 시절의스카우팅 리포트
콜업 전 6월 인터뷰, 콜업 후 데뷔 직전 인터뷰
그렇게 그는 2007년 양키스에서 본격적으로 마이너를 시작했다. 특히 자신의 영웅인 로저 클레멘스가 2007년 여름 양키스에서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을 때 탬파에서 함께 훈련할 때는 그야말로 어쩔 줄을 몰랐다고.
그렇게 8월 초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게 된 조바. '''모자를 푹 눌러쓴 동글동글한 얼굴에 동글동글한 체형과 동글동글한 옷걸이에 걸쳐진 핀스트라이프 저지. 그리고 폭발적인 패스트볼'''[4] '''까지'''. 양키스 팬들은 투구폼도 비슷한 이 제2의 '''로저 클레멘스'''에 환호했다. #
이런 제2의 로켓맨을 보호하기 위해 양키스는 그 유명한 '''조바 룰'''(Joba Rules)을 발표했는데, 간단히 말해 투구수에 따라 일정 휴식을 보장하며 연투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제2의 마이크 무시나인 이안 케네디에 이어 나타난 제2의 클레멘스가 불펜으로 던지게 되자 양키 측은 조바를 최대한 보호하려 했다. 꼭 선발이 아니라도 마침 그 해에 마리아노 리베라가 주춤했기 때문에 위력적인 구위의 클로저 가능성까지 갖춘 조바는 리베라의 후계자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었다.
2007년 비록 24이닝이었지만 34K 6BB 12피안타라는 경악스러운 성적을 찍은 조바는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양키스는 그를 제2의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급 활약을 기대하며 8회 셋업맨으로 내정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