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키 요시아키

 

'''일본 문부과학대신'''
'''제12-13대'''
가와바타 다쓰오

'''제14대
다카키 요시아키'''

'''제15대'''
나카가와 마사하루
'''일본 중의원 (나가사키 1구)'''
'''제41대'''
구라나리 마사카즈

'''제42~45대
다카키 요시아키'''

'''제46~47대'''
도미오카 쓰토무
'''일본 제14대 문부과학대신
(たか((よし(あき
다카키 요시아키
'''
'''이름'''
다카키 요시아키 ((たか((よし(あき)
'''출생일'''
1945년 12월 22일 (78세)
'''출생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
'''학력'''
야마구치현립 시모노세키공업고등학교 졸업
'''정당'''

'''의원 선수'''
'''9''' (중)
'''의원 대수'''
39, 40, 41, 42, 43, 44, 45, 46[A], 47[A]
'''지역구'''
나가사키 1구
'''약력'''
미쓰비시 중공업 노동조합 나가사키 조선소 지부 집행위원
나가사키시의회 의원
나가사키현의회 의원 (나가사키시 선거구)
나가사키현 제1구 중의원
민주당 부대표
민주당 국회대책위원장
문부과학대신
민진당 부대표
구 국민민주당 나가사키현 연합회 대표
국민민주당 나가사키현 연합회 고문
'''링크'''

1. 개요
2. 생애
3. 소속 정당
4. 여담


1. 개요


高木義明(고목의명). 일본의 정치인. 1945년 12월 22일생으로, 민주당 대표 대행, 민진당 부대표를 역임했으며, 2018년에 국민민주당에 입당했다. 1990년부터 2017년까지 중의원 의원이었다. 대수로는 '''9선'''. 지역구는 나가사키현 제1구다.

2. 생애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서 태어났다. 야마구치현립 시모노세키공고를 졸업한 뒤에 나가사키에 위치한 미쓰비시 조선소에 들어갔다. 조선소 노동조합 집행위원 등을 거쳤으며 1975년부터 나가사키시의회 의원과 나가사키현의회 의원이 됐다. 1987년에 현의원을 사임하고 1990년에 중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당시 정당은 민사당이었다.
1994년 민사당이 해체되자 신진당의 창당에 참여했다. 1996년부터는 지역구 대신에 규슈의 비례대표 블록에 출마하였다. 1997년 오자와 이치로가 신진당을 해체하면서 민사당계 신진당 의원의 정당은 신당우애에 들어갔다가 1998년 민주당이 창당되면서 당적을 옮긴다.
2005년 마에하라 세이지[1]가 이끄는 집행부에 의해 당 부대표로 임명되고 오자와 이치로 대표 집행부에서는 국회대책위원장에 임명되었다. 2010년 간 나오토 내각 발족으로 문부과학성 대신이 되었다. 문부과학성 대신 중에는 최초로 고졸 출신 대신이 되었다.
노다 요시히코 내각 발족으로 퇴임해 선거대책위원장이 되었고, 가이에다 반리 집행부에서 다시 국회대책위원장이 되었다. 2013년 8월에 민주당 대표 대행을 맡았다. 2016년 3월에는 민진당 부대표를 맡았으며 2018년에 국민민주당에 입당했다. 입당한 뒤 민사협회장은 고바야시 마사오가 되었다. 현재는 나가사키현 연합회 대표를 맡고 있으며, 가을에 욱일대훈장을 수여받았다. 신 국민민주당에서 나가사키현 연합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3.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75 - 1994
정계 입문

1994 - 1997
합당

1997 - 1998
정당 해산

1998
입당

1998 - 2016
합당

2016 - 2018
당명 변경

2018 - 2020
합당[2]

2020
정당 해산

2020 -
창당

4. 여담


  • 한일의원연맹과 한일터널연구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 2002년 스즈키 무네오 사건으로 3월에 중의원 운영위원회에서 민주당을 대표해 스즈키 무네오에 대한 의원직 사퇴 권고 결의안의 취지 설명을 했다. 
  • 2002년 7월 5일, 다나카 마키코 전 외무대신의 비서 급여 관련 의혹에 대해 "우리는 이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국회자리에서 진상 규명 할 것을 호소했다. 여당은 조사와 함께 할 일이지만, 민주당은 예산위원회 등 공개적으로 할 것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 2002년 10월 22일 북한에 의한 납치 사건에 관련하여 아베 신조 당시 내각관방장관이 민주당의 간 나오토 간사장과 사회민주당의 도이 다카코 당수를 얼간이 의원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 아베를 비판하였다.

[A] A B 석패율 비례대표[1] 외무성 대신을 지냈는데 재일 한국인에게 정치 헌금을 받은 게 문제가 되어 사임했다.[2] 희망의 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