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에하라 세이지

 

'''일본 중의원 (교토 2구)'''
'''제41대'''
오쿠다 미키오

'''제42~48대
마에하라 세이지'''

''현직''
'''마에하라 세이지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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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대신'''
'''제137~138대'''
오카다 가쓰야

'''제139대
마에하라 세이지'''

'''제140대'''
에다노 유키오[9]
-
'''일본 국토교통대신'''
'''제11대'''
가네코 가즈요시

'''제12~13대
마에하라 세이지'''

'''제14대'''
마부치 스미오
-

-


'''일본 제12~13대 국토교통대신'''
'''일본 제139대 외무대신'''
'''제5대 민주당 대표'''
'''(まえ(はら (せい(
마에하라 세이지
'''
'''이름'''
마에하라 세이지((まえ(はら (せい()
'''출생'''
1962년 4월 30일 (62세)
[image] 교토부 교토시 사쿄구
'''국적'''
[image] 일본국
'''학력'''
교토대학 법학부
'''정당'''

'''의원 선수'''
'''9''' (중)
'''지역구'''
교토 2구
'''현직'''
중의원
'''약력'''
교토부의회 부의원
민주당 5대 대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일본국 국토교통대신
일본국 외무대신
국가전략담당장관
민주당 정책조사회장
민진당 3대 대표
국민민주당 대표 대행
'''홈페이지'''

1. 개요
2. 정치 활동
3. 료운카이
4. 정치적 입장
5. 한국에 대한 태도
6. 철덕
7. 소속 정당
8. 기타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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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국민민주당의 정치인, '''전 민진당 대표.''' 1962년 4월 30일생. 교토대학 법학부 졸업. [1]
정치인으로서는 꽤 잘생긴 축에 드는 얼굴이었으나 최근 수년간 노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다. 일본의 현 총리인 아베 신조와는 상당한 친분이 있어서, 원래 둘이 술 친구이기도 했고, 지금도 휴대폰 번호를 서로 교환할 정도의 사이라고 한다. 민주당 내에서는 노다그룹 다음으로 보수적이고, 총리 자리를 노렸을 정도로 야심이 있는 정치인이다. 좌파~중도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민주당 내에서 중도보수 포지션으로 정치 커리어를 쌓으면서 활동중이다. 평화헌법 개헌론자다. 정치 파벌인 료운카이(凌雲会)를 이끌고 있는데, 일본 정당 파벌 수장으로서는 상대적으로 젊은 편이다.

2. 정치 활동


2009년 ~2012년 민주당 정권 3년 동안 국토교통대신(장관), 일본 외무대신(장관)을 지냈다.
2011년 3월 재일교포 한국인으로부터 25만 엔(원화 환산시 약 230만 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던 것이 드러나 외무대신(장관)직을 사임했었다.
2011년 여름에는 다른 파벌 소속 노다 요시히코를 지원해서 총리로 올리는데 공헌했지만, 2012년 가을에는 노다의 사퇴를 압박하기도 했었다.
2011년 11월부터 로운카이라는 당내 계파(파벌)의 리더로 취임해서 계속 파벌을 이끌고 있다. 파벌의 성향은 중도우파 정도다.
마에하라 세이지는 2015년 11월초에는 민주당을 해산하고 유신당과 합당하자는 의견을 내놓았었는데 # 유신당이 맥을 못추고 오사카 유신회가 오사카 선거이후 부상하자 지금은 오사카 유신회와 연대를 모색중이다. 만약 그가 파벌 구성원들을 이끌고 탈당한다면 민주당에게 중도표 일부이탈이란 큰 피해를 주게된다. 하지만 그의 의사대로 민주당이 유신당과 합당해 민진당을 창당함에 따라 탈당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6년 7월 제24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를 앞두고, 마에하라는 2015년 11월 창당한 개헌파 우익정당 오사카 유신회와 선거제휴를 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움직임은 당 주류의 방침과 어긋난다. 그리고 렌호, 다마키 유이치로 등과 대표 경선을 치뤘으나 패배한다.
2017년 9월 새로운 민진당의 대표에 선출되었다.
대표 취임 직후부터 기존에 있었던 야당연합을 파기하고 유신회와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당내에 보수 성향이었던지라 다른 당보다도 공산당과의 연대가 아무래도 껄끄러웠던 듯하다. 이에 대해 전통적인 야당 성향의 유권자들은 유신회자민당 2중대로 여기고 있고, 또한 지금까지 의석 확보 및 지자체장 선거 승리를 기존 야당 연합의 연대로 인해서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민진당은 실력도 없으면서 주제파악도 못한다'고 반발하는 중이다.
2017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희망의 당에 선거 승리를 위해서 흡수통합 당하는 형식으로 합당을 결정했다. 그의 이런 정치적 결단은 선거 결과에 따라서 평이 갈리겠지만 전권을 잡은 고이케 유리코가 당내 리버럴 성향의 의원들에게 무자비한 공천학살을 하자, 구 민진당의 핵심 지지층이었던 리버럴 성향 시민들에게 원수와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2]
그리고 총선거가 끝나고 여당의 개헌선 도달 압승이라는 결과가 도출된 지금 마에하라는 야권의 역적이 되었다. 연립 여당만으로도 개헌이 가능해진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야권에서 표가 갈렸기 때문이다.[3][4] 마에하라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이케 지사에게 백기 투항하는 바람에 그녀가 입헌민주당에 자객을 보내는 등의 야권 분열을 일으켰고 이걸 가능하게 만든 마에하라는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고이케는 전국 조직이 없고 선거는 갑작스럽게 열리기로 결정되어서 사실 그녀 자력으로는 야권 분열을 시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2012년에 민주당을 대대적으로 집단 탈당해 노다 총리가 카미카제 총선을 열 수밖에 없어 야권을 패망하게 만든 오자와 이치로의 뒤를 따라갈 가능성이 이야기 되고 있다. 카미카제 총선 이후에 오자와는 두 번 다시 메이저 정당에 가입할 수 없었다. 마에하라는 지역구의 지지는 탄탄하니 평생 무소속 중의원을 할거라고 비웃음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선거가 끝난 이후 판세 분석이 어느정도 이루어지자 민진당의 전현직 의원들과 지지자들은 '''이게 다 마에하라 때문이다'''라고 연호하고 있는 상황. [5] 그가 이번 정치적 모험을 한 이유에는 공산당과 연대하는 것이 정말로 싫어서라는 설이 있다. 그는 공산당 세가 강한 교토에서 특이하게 반 공산당 표를 받아서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는 케이스로 그가 공산당과 연대하는 것은 의원직를 버리는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후 이 때의 결정에 대해 산케이 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자신은 그 인터뷰에서 "공산당에 혼을 팔지는 않았다."라면서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일본 공산당과의 연대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며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했다.
선거가 끝나고 그는 희망의 당에 입당하기로 결심을 한듯하다. 현재 그의 입장상 희망의 당이 존속해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황. 희망의 당이 소멸해서 입헌민주당으로 야당 세력이 결집할 경우, 입헌민주당이 그를 받아줄 리가 없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본인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총선에서 살아남았지만, 선거에서 반아베-호헌 성향의 야당 지지층의 민심이 에다노 유키오입헌민주당에 힘을 실어줬음이 확인됨에 따라 정치적 입지가 상당히 곤란하게 됐다. 당장 민진당 당 대표에서도 축출당하게 생긴 상황. 결국 2017년 10월 23일 미명에 기자회견을 열어, 참의원과 지방조직 처리 문제를 결론 짓고 난 후에 물러나겠다고 표명하였고 결국 일주일 후인 10월 30일 민진당 대표직 사임을 표명했다. 그리고 2일 민진당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6일에는 희망의 당에 입당원서를 제출해서 14일에 승인되어 현재는 희망의 당 중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2018년 5월 7일 오쓰카 고헤이 대표와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의 견의로 민진당과 희망의 당이 국민민주당으로 합당하여, 국민민주당 소속이 되었다.
2020년 6월에 일본 유신회와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또한 2020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유신회가 지지하는 오노 다이스케 후보를 지지했다.
2020년 8월 15일, 입헌민주당국민민주당의 합당을 놓고 국민민주당 내 분당 논의가 계속되자 자신은 합류하지 않고 당에 잔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가장 큰 이유는 입헌민주당과 선거 협력 중인 공산당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한다.

3. 료운카이


료운카이(凌雲会)는 마에하라 세이지를 중심으로 한 계파이다. 대체로 마츠시타 정경숙 출신들과 신당 사키가케, 일본 신당 출신의 신진, 중견급 의원들이 모인 계파다. 성향은 현실주의적인 외교를 주장하는데 중국과의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견제론을 취하는 입장이라 친중적인 성향인 오자와 그룹과는 차이가 있다. 정책적인 면에서는 대체로 사회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띈다. 이런 탓에 신정국 간담회쪽과는 으르렁거리는 편이다. 중요 인물로 마에하라 세이지 외에 에다노 유키오 등이 있다. 다만 현재 에다노는 입헌민주당으로 가면서 마에하라와 결별했다.
2015년 11월 현재 파벌 소속 의원은 중의원 13명, 참의원 4명이다. 파벌 소속 참의원중 2019년까지 임기가 보장되는 의원은 1명이다. 파벌 소속 참의원 4명은 대체로 호헌파다. 다만 파벌 소속 참의원 오가와 카츠야(小川勝也)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호헌파이긴 하지만, 일본의 핵무장에 대해서는 "미래에 검토해야 한다"라며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중의원에서는 아즈미 준(安住淳), 후루카와 모토히사(古川元久), 와타나베 슈(渡辺周), 카미야마 요스케(神山洋介) 4명이 개헌론자이다. 마에하라 본인도 개헌론자니까 파벌소속 중의원 5석이 개헌론자인 것이다. 현재 아즈미 의원은 입헌민주당으로 가, 마에하라와 결별했다.

4. 정치적 입장


마에하라 세이지는 헌법 제9조의 개정의견을 피력한 바 있고 집단적자위권 행사도 주장했었고 중국위협론도 그의 지론이다. 외국인 참정권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국론이 분열되어 있고 위헌이라는 논란도 있다."라면서 법안제출에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안보법을 무효화시키자는 민주당 내의 의견에 대해서 "이미 통과된 법을 무효화시키긴 어렵다" 라면서 사실상 안보법 반대에 딴죽를 걸고 있기도 하다.

5. 한국에 대한 태도


언론 기사를 통해 노출된 바로는 친한 성향의 인물로 분류된다.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가 재일 한인이셔서 그렇다. 위에서 나온 정치자금 수수 얘기는 이 아주머니와 관계 있다.

6. 철덕


정계에서는 꽤 유명한 철덕이며 실력도 상당 수준이라고 한다. 일단 프로필부터 SL사진촬영 및 관련 수집이라고 언급하고 있을 정도인데. 토리테츠로서의 실력도 수준급이라 철도 잡지에 사진이 실리거나 개인 사진전을 열기도 한다. 특히 SL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서 같이 활동하는 철도 전문 잡지사의 편집장도 그의 지식력과 사진 실력에 놀랄 정도라고 한다. 국토교통대신 시절 치지부 철도를 일부러 시찰한 일화는 유명할 정도.
이후에도 간간히 철도를 주제로 하는 방송에 출연하거나 같은 덕후인 이시바 시게루[6]와 함께 버라이어티 방송에 출연하기도 한다.

7.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1991 - 1992
정계 입문

1992 - 1994
입당

1994
당내 노선 차이로 탈당

1994 - 1996
입당

1996
민주당 창당을 위한 탈당

1996 - 1998
창당

1998 - 2016
합당[7]

2016 - 2017
당명 변경

2017
희망의 당 합류를 위한 탈당

2017 - 2018
입당

2018 - 2020
합당[8]

2020
정당 해산

2020 -
창당

8. 기타



9. 둘러보기




[1] 취소선이 그려져 있지만, 그가 민진당을 2017년 총선에서 사실상 해산시키고 희망의 당과의 합류를 결정하면서 아베를 대항할 정당을 없앴기 때문에 야당 지지층에게 그렇게 비추어지지만, 감사하게도(?) 그의 잘못된 결정으로 더 진보적이며 자민당을 대항할 수 있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가능성이 높은 입헌민주당이 창당되었다. [2] 유세 현장에서 '거짓말쟁이','꺼저라','배신자'등의 야유가 만무하고, 선거 중에 그가 연 민진당의 정책 포럼에서는 민진당 장례식장이라고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3] 이것은 민공 연대가 성사되어 이긴 부분과 분열되어서 진 상반되는 케이스가 뚜렷히 존재한다. 입헌민주당이 지역구에서 승리한 선거구 중 당선자가 많은 도쿄(4곳)-가나가와(3곳)-홋카이도(3곳)의 모든 선거구에서 공산당이 야권 연대를 위해 자발적으로 후보를 내렸다. 특히 도쿄-가나가와에서는 도쿄 7구를 제외하고 공산당이 후보를 냈으면 7 개구 중 6 개구는 전멸한다. 1~3% 차이의 선거구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각 자민당이 승리한 지역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야권연대가 이루어졌다면' 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역구가 상당하다. 단순히 연대한다고 모든 지지율 합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민당이 승리한 지역구 중 접전지가 제법 많았기 때문에 야권 분열의 상황이 커보인다.[4] 선거를 이기고 나서 시행한 어느 인터뷰에 노다 세이코 총무대신이 이번 선거는 '절대 평가가 아닌 상대평가. (야당이) 분열해준 덕에 의석을 지켰다'고 발언 했다.[5] 하지만 이 사람은 김민석과 다르게 정치공학자는 아니다(...). 게다가 어디까지나 김민석은 대선후보 단일화를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민주당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하지 않고 본인만 탈당했기 때문에 김민석을 아예 당을 무너뜨린 이사람과 비교하는 건 모독이다.[6] 다만 이시바 시게루의 경우 철도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둔 덕후이며. 철도에서는 타는것을 중점으로 두는 노리테츠 쪽에 가깝다.[7] 민정당, 사회시민연합, 신당우애와 신설 합당[8] 민진당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