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에다 반리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2012년 12월 25일부터 2014년 12월 15일까지 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다. 간 나오토 내각에서 경제산업성 장관을 맡았으며, 노다 요시히코와 총리 자리를 놓고 경쟁한 적이 있으나 노다에게 패하였다. 현재 입헌민주당 내 계파 아카마츠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
2. 상세
1949년 2월 26일, 도쿄도 스기나미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이니치 신문 기자였으며, 아베 신타로의 상사였다. 도쿄도립 사기노미야 고등학교를 거쳐서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탤런트 겸 경제평론가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 상당히 우호적인 인사로 알려져 있다. 일단 2012년 12월 16일 중의원 총선에서 완전히 몰락해버린 민주당을 재건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지만, 가이에다 대표가 2013년 7월 일본 참의원 선거까지 제대로 당을 수습하고 선거에서 선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고, 실제로 민주당은 아베노믹스가 서서히 보이고 있던 악재에도 불구하고 선거에 연거푸 대패했다.
가이에다가 대표로 선출되면서 오자와 이치로가 일본 미래당을 탈당한 것 봐서는 일본 미래당과 합당하는 등의 당 수습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망과는 달리 오자와 이치로의 복당을 불허하면서 오자와 이치로 계파와의 연을 끊으려는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3년 7월 예정된 제23회 일본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패배하면 사임하겠다는 선언을 하고 선전을 다짐했지만, 선거 전망은 어둡다 못해 암울한 수준이다. 결국 예상대로 참의원 선거는 민주당의 기록적 참패로 끝났다. 선거전에 패배하면 사임하겠다던 약속과는 달리 개혁은 진행중이라면서 사퇴의사가 없음을 드러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민주당 대표직을 맡고 있다가..
2014년 12월, 약간 갑작스러운 중의원 해산으로 실시된 선거에서 소선거구 낙선-비례대표로도 국회 입성하는데 실패했다. 당대표가 의원선출도 안되었다는 점에서 입장이 난처해졌고, 선거 다음날 빠르게 사임을 발표했다.
여담으로 인터넷을 비롯한 컴퓨터 IT 분야에 상당히 서먹하다고 한다. 가이에다 대표가 인터넷에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일본에서 인터넷 선거가 해금되었음에도 일본 민주당이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다행(?)히도 현재는 의원실에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이용해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중.
2017년 10월,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가 열리면서 민진당에서 나와 에다노 유키오 의원이 창당한 입헌민주당 소속으로 공천을 받았다. 선거 결과 자민당 야마다 미키 후보[1] 에 3021표, 1.3%라는 아슬아슬한 차이로 중의원에 당선되었다. 2009년 이후로 첫 소선거구 당선이다. 감회가 새로울 듯. 비단 48회 중의원 선거 뿐 아니라 선거의 승패와 관계없이 늘 표 차이가 크지 않은 힘든 선거를 치러왔다. 42회 중의원 선거에서 2,633표(1.2%)차로, 43회 중의원 선거에서 1,437표(0.6%)차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됐다. 반면 46회 중의원 선거에서는 1,134표(0.4%)차로 낙선했다.
3. 한국 관련
일본 정계에서는 친한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시절이던 2014년에는 유흥수 주일대사와 회담을 하기도 했으며,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민단 협회의 신년회에 참석해 원로 및 회원들과 자리를 함께하기도 했다. 또한 2019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된 한글날 행사에서 송영길, 김부겸 의원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