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웰스
David Wel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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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양키스 스프링캠프에 [1] 모습을 드러낸 웰스 옹.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전직 좌완 투수이자 '''퍼펙트 게임''' 피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가장 오래 있었으며, 뉴욕 양키스 시절에도 퍼펙트 게임 (1998년)을 거두어 임팩트를 남겼다. 그러나 오랜 저니맨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양키스의 철천치 원수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뛴 시절도 있었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는 박찬호의 자리를 본의아니게 빼앗기도 했다. 별명은 "승리 분위기를 띄우는 남자"라는 뜻의 부머 (Boo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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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에서 학교를 마치고, 1982년 드래프트에서 토론토로부터 2라운드로 지명을 받는다. 하지만 팔꿈치 통증으로 몇년 간 고생했고[2] , 메이저리그에는 1987년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초창기에는 불펜 투수로 활약하면서 이닝을 꾸역꾸역 먹어가다, 1990년부터 선발로 전향해 11승을 거둔다. 그 이듬해에는 15승 10패, 3.72의 평균 자책점으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정작 토론토의 리즈시절로 팀이 WS까지 진출했던 1992년에는 삽질했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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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에서 웰스는 1993년 ~ 1994년 동안 16승 16패, 4.10의 평균자책을 남겼다. (그래도 5할 승률은 기록했다. 쩝..) 그렇지만 1995년에는 디트로이트에서 10승 5패와 3.04의 평균자책을 세우며 올스타전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쏠쏠한 활약을 하다.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되어 16승 8패로 시즌을 마쳤다. 디트로이트에 있던 시절 그 유명한 '''마리아노 리베라'''와의 트레이드가 거론되기도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야깃거리"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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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레즈에서 시즌을 마친 웰스는 커티스 굿윈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1996년에는 볼티모어에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11승 14패의 영 좋지 않은 성적을 남겼고 볼티모어에서의 커리어는 그것이 끝. 이 해에 웰스는 FA 자격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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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자격을 얻은 웰스는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였다. 1997년에는 16승 10패, 1998년에는 18승 4패를 찍는 등 좋은 성적을 냈으며, 1998년 5월 18일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에서는 15번째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듬해에 같은 팀으로 온 데이비드 콘이 다시 퍼펙트 게임을 기록) 1997년에는 양키스가 한창 리즈시절을 달리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발리는 바람에 가을 야구는 못 했지만, 1998년에는 팀이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성공. 그리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에이스 [3] 케빈 브라운을 발라버리고 포스트 시즌에서만 4승을 거두는 등 맹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동시에 두 번째 WS 우승 반지도 획득!
웰스는 로저 클레멘스가 낀 대규모 트레이드에 끼여 1999년 다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돌아왔다. 1999년에는 17승 10패를 거두더니, 2000년에는 20승 8패를 거두면서 20승 고지에도 올랐다. 다만 평균자책이 4점대인 것은 안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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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왔지만 부진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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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양키스로 다시 돌아와 40세에 가까운 나이에 19승 7패, 15승 7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와 함께, 2003년 양키스에서 통산 200승 기록을 세운다. 이 때만 해도 많은 야빠들이 웰스의 은퇴가 머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웰스는 이후에도 몇년 간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
2004년 샌디에이고에서 12승을 거둔 뒤
2005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왔는데, 당시 보스턴은 2004년 WS에서 우승한 뒤 외계인과 데릭 로우 등을 쫓아낸 뒤라 웰스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웰스는 시즌 초반에 부상으로 고생하며 보스턴의 골을 때리게 만들었다. 2005년에는 그래도 15승을 거두긴 했지만, 2006년에는 2승 3패와 4.98의 평균자책으로 제대로 삽질을 하면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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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샌디에이고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승수를 조금씩 쌓다가 2007년 변변한 은퇴식 없이 조용히 은퇴. 21시즌 동안 통산 239승, 157패, 4.13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덩치 때문에 파워피쳐로 보이지만 사실은 볼끝이 좋은 이른바 알콜 커브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기교파이다.[5] 제구력이 뛰어나서 1998년에는 BB/9가 1.2로 리그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고, 2003년에도 0.8의 BB/9를 기록하기도 했다. [6]
트위터에서 2020년 현재 '''본인과 가장 비슷한 스터프를 가진 선수는 '''류현진''''''이라고 직접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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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양키스 스프링캠프에 [1] 모습을 드러낸 웰스 옹.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전직 좌완 투수이자 '''퍼펙트 게임''' 피쳐.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 가장 오래 있었으며, 뉴욕 양키스 시절에도 퍼펙트 게임 (1998년)을 거두어 임팩트를 남겼다. 그러나 오랜 저니맨 생활을 반복하다보니 양키스의 철천치 원수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뛴 시절도 있었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는 박찬호의 자리를 본의아니게 빼앗기도 했다. 별명은 "승리 분위기를 띄우는 남자"라는 뜻의 부머 (Boomer).
1. 커리어
1.1. 블루제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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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에서 학교를 마치고, 1982년 드래프트에서 토론토로부터 2라운드로 지명을 받는다. 하지만 팔꿈치 통증으로 몇년 간 고생했고[2] , 메이저리그에는 1987년에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초창기에는 불펜 투수로 활약하면서 이닝을 꾸역꾸역 먹어가다, 1990년부터 선발로 전향해 11승을 거둔다. 그 이듬해에는 15승 10패, 3.72의 평균 자책점으로 괜찮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정작 토론토의 리즈시절로 팀이 WS까지 진출했던 1992년에는 삽질했고, 결국 시즌이 끝나고 디트로이트로 트레이드 된다.
1.2. 디트로이트와 신시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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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에서 웰스는 1993년 ~ 1994년 동안 16승 16패, 4.10의 평균자책을 남겼다. (그래도 5할 승률은 기록했다. 쩝..) 그렇지만 1995년에는 디트로이트에서 10승 5패와 3.04의 평균자책을 세우며 올스타전에도 이름을 올리는 등 쏠쏠한 활약을 하다.
신시내티로 트레이드되어 16승 8패로 시즌을 마쳤다. 디트로이트에 있던 시절 그 유명한 '''마리아노 리베라'''와의 트레이드가 거론되기도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아래 "이야깃거리"를 참조.
1.3. 볼티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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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레즈에서 시즌을 마친 웰스는 커티스 굿윈과의 트레이드를 통해 1996년에는 볼티모어에서 뛰게 되었다. 하지만 11승 14패의 영 좋지 않은 성적을 남겼고 볼티모어에서의 커리어는 그것이 끝. 이 해에 웰스는 FA 자격을 획득한다.
1.4.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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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자격을 얻은 웰스는 뉴욕 양키스로 이적하였다. 1997년에는 16승 10패, 1998년에는 18승 4패를 찍는 등 좋은 성적을 냈으며, 1998년 5월 18일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메이저리그에서는 15번째로 퍼펙트 게임을 기록한다. (그리고 이듬해에 같은 팀으로 온 데이비드 콘이 다시 퍼펙트 게임을 기록) 1997년에는 양키스가 한창 리즈시절을 달리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게 발리는 바람에 가을 야구는 못 했지만, 1998년에는 팀이 월드 시리즈에 진출하는 데 성공. 그리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에이스 [3] 케빈 브라운을 발라버리고 포스트 시즌에서만 4승을 거두는 등 맹활약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동시에 두 번째 WS 우승 반지도 획득!
1.5. 이후의 저니맨 생활
웰스는 로저 클레멘스가 낀 대규모 트레이드에 끼여 1999년 다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돌아왔다. 1999년에는 17승 10패를 거두더니, 2000년에는 20승 8패를 거두면서 20승 고지에도 올랐다. 다만 평균자책이 4점대인 것은 안습.[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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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왔지만 부진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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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양키스로 다시 돌아와 40세에 가까운 나이에 19승 7패, 15승 7패의 성적을 거두었다. 이와 함께, 2003년 양키스에서 통산 200승 기록을 세운다. 이 때만 해도 많은 야빠들이 웰스의 은퇴가 머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웰스는 이후에도 몇년 간 꾸준한 성적을 거둔다.
2004년 샌디에이고에서 12승을 거둔 뒤
2005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왔는데, 당시 보스턴은 2004년 WS에서 우승한 뒤 외계인과 데릭 로우 등을 쫓아낸 뒤라 웰스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웰스는 시즌 초반에 부상으로 고생하며 보스턴의 골을 때리게 만들었다. 2005년에는 그래도 15승을 거두긴 했지만, 2006년에는 2승 3패와 4.98의 평균자책으로 제대로 삽질을 하면서 샌디에이고로 트레이드된다.
[image]
그 후 샌디에이고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승수를 조금씩 쌓다가 2007년 변변한 은퇴식 없이 조용히 은퇴. 21시즌 동안 통산 239승, 157패, 4.13의 평균자책을 기록했다.
2. 플레이 스타일
덩치 때문에 파워피쳐로 보이지만 사실은 볼끝이 좋은 이른바 알콜 커브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기교파이다.[5] 제구력이 뛰어나서 1998년에는 BB/9가 1.2로 리그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고, 2003년에도 0.8의 BB/9를 기록하기도 했다. [6]
트위터에서 2020년 현재 '''본인과 가장 비슷한 스터프를 가진 선수는 '''류현진''''''이라고 직접 언급하였다.
3. 이야깃거리
- 여러 팀을 전전한데다 웰스가 있던 시즌의 팀들은 나름대로 잘 나갔기 때문에 포스트 시즌과 인연이 많았다. 그리고 웰스 본인도 포스트 시즌에서 삽질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 맥주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CC 사바시아나 류현진처럼 체격이 뚱뚱했다. 거의 불룩한 배로 마운드에 서다 보니 웰스의 불룩한 배는 그를 상징하게 되었을 정도. 2003년에 살을 빼서 올라온 적이 있는데 에피드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2007년 당뇨병 진단을 받고는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한다.
- 베이브 루스의 광팬이다. 몸에 문신으로 그렸을 정도. 양키스에 올 때 루스의 등번호 3번을 달고 싶어했지만 이미 영구결번이었기 때문에 달지는 못했다.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33번을 달았던 것이다. 심지어 베이브 루스가 실착한 모자를 직접 사서 착용하고 등판하는 용자짓을 했다. 이 모자는 나중에 다시 팔았다고 한다.
- 퍼펙트 게임을 만들어냈다는 임팩트는 있지만, 저니맨인데다가 성적도 같은 해 은퇴한 커트 실링[7] 에 비해 승수(239승) 말고는 특출난 부분도 없고, 사생활 문제 까지 겹쳐 명예의 전당에선 2013년 첫해 0.9% 득표율로 시원하게 탈락했다.
- 디트로이트에서 양키스로 트레이드되어 올 때 양키스는 마리아노 리베라를 트레이드 보상에 끼워넣으려고 했다. 지금이야 리베라는 세계구 수호신이라지만, 이 당시만 해도 평범한 2군 유망주였다. 거기다 리베라가 데뷔할 무렵 양키스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데려온 존 웨틀랜드가 마무리로 괜찮게 활약하고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3.1. 구설수
- 2003년 3월에 낸 자서전에서, 1998년 퍼펙트 게임을 하던 그 전날에 술을 마셨고, 경기날에도 술이 덜 깬 상태였다는 드립을 쳤고, 거기다 메이저리그 선수 60%는 스테로이드를 사용하거나 사용했다는 글까지 써놓아 구설수에 올랐다. 웰스는 그 때 양키스에 있었기 때문에 이 드립은 양키스의 이미지에도 제대로 똥칠을 해놓았고,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양키스 선수들과 계약할 때 책을 못 쓰게 하는 조항을 넣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스테로이드 드립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로이드 논란이 불거지면서 재조명을 받기에 이른다. 말은 항상 조심해서 하자.
- 본인은 양키스가 좋고 최고의 팀이라고 말했지만 위에서처럼 캐시먼 단장과 사이가 안 좋았을 뿐더러 구단주 스타인브레너 영감님을 자주 까댔다. 그도 그럴 게 유니폼을 풀어헤치고 수염을 기르는 등 사이가 좋을래야 좋을 수가 없었다.
- 첫 팀이던 토론토 블루제이스에서도 팻 길릭과 사이가 안 좋았다고 직접 트위터에서 말했다. 당시 웰스가 살 찌는 것을 관리하기 위해 타깃보다 살이 찌면 1파운드에당 $100 벌금을 물어댔다고(...). 그리고 커리어 중 가장 암울했던 날이 1999년 토론토로 재트레이드 됐던 날이라고 해서 블루제이스 팬들에게 신랄하게 까였다.[8]
[1] 양키스에서 우승을 하긴 했지만 보스턴에서 뛰었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그래도 웰스 본인은 루스 광팬이고, 양키스가 최고의 팀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보스턴에서 그렇게 뛰어나게 활약하지 못한 채 트레이드되었을 뿐더러, 웨이드 보그스나 로저 클레멘스처럼 WS에서 대놓고 우승을 한 것도 아니다.[2] 토미 존 서저리의 역사상 세번째 피시술자로 기록되었다. 지금이야 이 수술이 아마추어 선수들도 자주 받는등 재활치료만 착실히 한다면 해볼만한 도박이라고 인식되곤 하지만 토미 존 다음 수술자가 재활에 실패한 것을 봐도 웰스가 수술받던 시절엔 성공을 장담하기 힘든 로또였다.[3] 케빈 브라운은 약빨고 성적이 더 떨어졌다. 브라운이 성적이 좋던 때는 약 빨기 전이다.[4] 하지만 그 당시 타고투저시대였으며 타자구장에서 뛴 걸 감안해야하다 덕분에 BWAR 4.8 FWAR 6.3이라는 웬만한 에이스급 성적이다.[5] 재미있게도 류현진이 메이저로 향할 당시 미국의 MLB 전문가들은 비교대상으로 웰스를 많이 찍었다. 일단 좌완 거구 투수이자, 묵직한 직구가 주무기가 아니었으니까. 또한, 제구력이 좋다는 점도 비슷하다.[6] 하지만 매덕스와 웰스의 통산 성적을 비교하기엔 넘사벽이 너무 크다.. 무엇보다 매덕스는 시즌별 평균자책이 웰스보다 훨씬 빼어났다.[7] 둘이 견원지간인걸로 보이는데 웰스가 트위터에서 동료들이 가장 싫어했던 선수는 실링이라고 디스하자 둘이 키배를 뜬 적이 있다.[8] 다만, 이후 웰스는 토론토 도시 자체와 팬들은 좋았는데 당시 프런트와 구단 자체가 싫었던 것 뿐이라고 해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