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길릭

 

'''로렌스 패트릭 데이비드 길릭
(Lawrence Patrick David Gillick) '''
'''출생'''
1937년 8월 22일
'''소속팀'''
휴스턴 콜트 45s. 어시스턴트 팜 디렉터 (1964~1965)
휴스턴 애스트로스 스카우팅 디렉터 (1974)
뉴욕 양키스 스카우팅 디렉터 (1975~1976)
토론토 블루 제이스 부단장 (1977)
'''토론토 블루 제이스 단장 (1978~1994)'''
볼티모어 오리올스 단장 (1996~1998)
시애틀 매리너스 단장 (2000~2003)
시애틀 매리너스 특별 단장 보좌 (2004~2005)
'''필라델피아 필리스 단장 (2006~2008)'''
'''명예의 전당 헌액자'''
[image]
'''팻 길릭'''
헌액 연도
2011년
헌액 방식
베테랑 위원회 추천
1. 소개
2. 경력
3. 볼티모어 오리올스
4. 시애틀 매리너스
5. 필라델피아 필리스
6.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7. 평가


1. 소개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명단장으로, 빅마켓 클럽을 운영하는데 매우 뛰어난 단장이었고 통산 3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끈 인물이다. 2008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 201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등 이젠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지금도 경험과 결단력에서 그를 뛰어넘는 인물이 마땅치 않기에 여러 강팀들이 추파를 던지고 있어서 현역 복귀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2. 경력



2.1. 젊은 시절


프로 진입 이전에만 해도 나름 이름을 날린 좌완투수로서 대학리그 월드시리즈를 제패하기도 했으며, 이후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피츠버그 파이리츠 마이너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빅리그에 진입하지는 못하고 은퇴했다. 대신 은퇴 후 스카우트로 일하면서 구단 프런트 업무를 익혔다.[1]

2.2. 토론토 블루제이스


1977년, 캐나다에 새로 창단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건너가 GM 어시스턴트를 맡았고, 이듬해 GM으로 임명되며 본격적인 프런트 커리어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신생팀들이 다 그렇듯이 고전하긴 했지만, 명장 바비 콕스 감독을 데려와서 처음으로 디비전 우승을 따냈고, 시토 개스턴 감독을 데려온 뒤 라지에타가 터져버렸다. 길릭 재임기 토론토는 디비전 우승 5회와 1992~93 백투백 월드시리즈 우승을 따냈다. 데이브 윈필드, 데이비드 콘, 잭 모리스 등을 데려오며 1992년 우승을 따냈지만 길릭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시즌 종료 후 폴 몰리터, 리키 헨더슨 등을 과감하게 질렀으며, 이게 대성공을 거둬 다시 한 번 리그를 제패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93년 월드시리즈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조 카터가 때려낸 6차전 시리즈 끝내기 홈런은 이 당시 토론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장면. 그리고 1994년 파업시즌 이후 은퇴를 선언했으며, 이후 캐나다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이지만 캐나다 국적을 취득했다. 다만 필라델피아 단장직을 맡은 후로 시애틀로 이주했다고.
'''1993년 월드 시리즈 우승 이후 토론토가 다시 한 번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기 까지는 22년이 걸렸다.'''

3. 볼티모어 오리올스


하지만 길릭은 1995년 말 뜬금없이 현역 복귀를 선언하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단장으로 취임한 길릭은 데이비 존슨 감독을 영입한다. 그리고 1995시즌 71승 73패를 기록했던 볼티모어는 길릭과 존슨이 부임한 1996년 타선의 힘을 앞세워 88승 74패로 AL 동부지구 2위에 오르며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합류하고, ALDS에서 핵타선을 자랑하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2]와 맡붙은 창과 창의 대결에서도 3승 1패를 거둬 ALCS까지 진출하는 위업을 세웠다.
이어 1997시즌에는 타선의 힘은 다소 떨어졌지만 그만큼 투수진이 대활약하며 내친김에 '''지구 1위'''까지 달성했고, ALDS에서 시애틀 매리너스를 격파하고 다시 한번 ALCS에 올라섰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존슨 감독이 피터 안젤로스 구단주와의 불화로 짤리고, 레이 밀러를 감독으로 선임해 1998시즌을 맞이했으나 부진을 겪으며 다시 승률이 5할대 밑으로 내려앉았다. 결국 시즌 종료 후 길릭은 은퇴를 선언하고 팀을 떠났다.
'''그리고 명단장과 명감독을 모두 내보낸 댓가로, 볼티모어는 2011년까지 14시즌 연속으로 5할 승률에 실패했다.'''

4. 시애틀 매리너스


2000년, 길릭은 은퇴를 다시 번복하고 시애틀 매리너스의 GM으로 부임했다. 허나 이 즈음 매리너스는 팀의 주축 랜디 존슨이 팀을 떠나고 켄 그리피 주니어 역시나 팀을 떠나길 원한 상황인데다, 여기에 팀의 차기 간판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페이롤 문제로 잡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길릭은 흔들림 없이 팀을 재정비했다. 그리피가 팀을 떠나는건 막지 못했지만 존 올러루드를 영입해 공백을 조금이라도 줄였고, 애런 실을 영입해 선발을 보강했다. 그리고 NPB에서 '대마신'이라는 별명으로 활약하던 사사키 가즈히로와 볼티모어 시절 잘 써먹었던 좌완 불펜 아서 로즈를 영입해 불펜진도 강화했다. 그 결과 직전 시즌 79승 83패를 기록한 시애틀은 91승 71패로 반등, ALDS에서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꺾고 ALCS까지 팀을 올려보냈다.
오프시즌에 A-ROD가 팀을 떠나면서 팀 전망에 암운이 드리우나 했으나, 길릭은 2001시즌을 앞두고 준수한 공격형 2루수 브렛 분[3]을 영입하며 공백을 줄였고, 사사키 앞에 배치할 셋업으로 양키스 전성기를 지탱한 최고의 셋업맨이던 제프 넬슨을 영입했다. 그리고 사사키로 재미를 본 길릭은 일본을 평정한 한 외야수를 과감히 큰 돈을 들여 영입했다. 그리고 이 영입은 전부 대성공으로 돌아가, 브렛 분은 OPS 9할 2루수가 되고 넬슨은 로즈와 함께 사사키의 바로 앞을 완벽히 틀어막았으며, 그 일본인 외야수는 신드롬을 일으키고 '''신인왕+MVP+골드글러브를 동시석권'''했다. 거기에 '더 락' 프레디 가르시아가 훌륭한 1선발로 자리매김하고 제이미 모이어는 38살에 20승 투수가 되었으며, 그리피를 보내고 받아온 마이크 캐머런은 커리어하이를 찍고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등 기존 선수들의 선전 역시 빛났다. 그 결과 2001시즌 시애틀은 '''116승 46패'''라는 역사에 남을 성적을 남기고 ALDS에서도 승리했다. 다만 이번에도 ALCS에서 그 행진을 멈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2002년에도 93승 69패로 좋은 성적을 냈지만 당시 AL 서부가 103승의 오클랜드와 99승의 애너하임이 몰려있던 상황이라 저 성적으로도 아쉽게 포스트시즌행에는 실패했다. 3할대 승률이 세 팀이나 있어서 승률 인플레가 일어난 결과물. 더구나 당시에는 지금처럼 와일드카드 1, 2위가 결정전을 치러 ALDS에 가는것도 아닌, 와일드카드 1위가 ALDS로 직행하는 시스템이었던 점도 아쉬웠다. 당시 시애틀은 애너하임에 이어 와일드카드 공동 2위였기 때문에, 현재 규정대로라면 적어도 보스턴과 타이브레이커 게임이라도 치룰 수 있었기 때문. 하지만 이 해 길릭은 뛰어난 스카우팅 능력을 백분 발휘해 큰 업적을 남겼는데, 7월즈음 베네수엘라에서 16살 꼬맹이 우투수를 아마추어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것. 이 투수가 다름아닌 '''펠릭스 에르난데스''였다.
뒤이은 2003년에는 신임 감독 밥 멜빈 체제에서 다시 한 번 93승 69패를 기록했지만, 당시 전성기를 달리던 오클랜드에 밀려 지구 2위에 랭크되었고 와일드카드에서도 보스턴에게 2경기차로 밀려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현재 시스템이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움을 남기게 하는 결과물. 그러자 매리너스는 길릭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보고 길릭을 일선에서 퇴진시켰다.
'''그리고 길릭의 후임 단장으로 한 대인배가 선임되었고, 이후 시애틀의 상황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5. 필라델피아 필리스


그간 아메리칸리그에서만 주로 활동하였던 길릭은 나이도 많이 들었음에도 은퇴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증을 느꼈고, 결국 2005년 시즌 종료 후 에드 웨이드 단장을 자른 필라델피아 필리스 단장으로 취임했다. 극성스러운 만패 필라델피아 팬들은 93년 자신들을 엿먹였던 그 팀의 수장을 모셔오다니 자존심도 없냐며 분통을 터뜨려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만.
여튼 필리스에 부임한 길릭은 당시 고비용 저효율로 악명 높던 필리스의 페이롤을 줄이기 위해 선수단을 정리하기 시작 했다. 부상으로 시즌을 말아먹은 짐 토미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보내고 애런 로완드와 지오 곤잘레스를 받아오며 스타트를 끊었고, 비센테 파디야도 연봉조정에 부담을 느끼고 텍사스 레인저스로 트레이드했다. 이후 시즌 중에는 바비 아브레우도 양키스로 보내고 베테랑 불펜 라이언 프랭클린도 내보냈다. 이렇게 고액 연봉자들을 정리하는 한편 팜 출신 선수들을 중용해 셰인 빅토리노, 라이언 하워드, 체이스 어틀리, 콜 해멀스, 카를로스 루이즈, 라이언 매드슨 등이 팀 주전으로 자리매김했고, 외부에서도 LA 다저스에서 부상 우려 때문에 논텐더로 풀린 제이슨 워스를 데려와서 내셔널리그 최고의 외야수로 키워낸다거나, 휴스턴에서 급격한 하락세를 겪던 브래드 릿지를 부활시키고 이젠 정말 한물 간 것처럼 보였던 제이미 모이어를 잘 써먹는 등 팀을 안정적으로 꾸려나갔다. 물론 FA로 데려온 애덤 이튼[5]이라던가, 시애틀 시절을 생각해 트레이드로 데려온 프레디 가르시아[6]같은 실패 사례도 있었지만.
아무튼 길릭이 꾸려낸 필리스는 최강팀으로 성장, '''새로운 왕조 탄생'''을 알렸다. 2006년 동부지구 2위를 기록해 지구 우승을 기록한 메츠와 함께 존 슈어홀츠 단장이 일군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NL 동부 장기 독재를 멈춰세웠고, 이어진 07년 어메이징 메츠를 뒤엎고 지구 우승을 차지하여 14년만에[7] 필리스를 포스트시즌에 진출시켰다. 비록 락토버를 외치며 폭주하던 콜로라도 로키스에게 NLDS에서 스윕당하며 시즌을 마쳤지만. 절치부심한 필리스는 이듬해인 2008년, 1993년 이후 15년만에 처음 90승 시즌을 만들어내더니 탬파베이 레이스를 꺾고 월드시리즈까지 우승하며 통산 세번째 우승반지를 획득하며 명예롭게 루벤 아마로 주니어에게 GM 자리를 물려주며 퇴단했다. 필리스 팬들은 15년 전 우릴 울렸던 사람이 결자해지를 하고 떠났다며 칭송해 마지 않았다.[8]
앞서 길릭 이후 여러 이유로 팀이 망가지며 포스트시즌을 오랫동안 나가지 못한 타 팀들과 달리, 필리스는 워낙 쌓아온게 탄탄하고 시장 규모도 커서 꽤 오랫동안 강력함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결국 라이언 하워드의 악성계약 등 여러 문제가 몰려터지며 2010년대들어 급격한 추락을 겪었다.
은퇴한 이후에도 필리스 구단에 Senior adviser 자격으로 직함을 갖고 있다. 1937년생의 고령으로 현장에 직접적으로 복귀하긴 어렵겠지만 구단과 관계는 유지하는중. 그렇지만 은퇴하고 나서도 은근히 구단일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고 베테랑들의 계약도 어느정도 주도한것으로 알려졌다.

6.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


[image]
유럽계 투수 통산 최다승을 기록한 버트 블라일레븐, 재임 시절 토론토 블루 제이스의 우승을 함께 이끌었던 최고의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 두 선수와 함께 2011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베테랑 위원회가 결정하는 알로마의 동판 모자에 블루 제이스 마크가 새겨진 데에는 알로마 본인이 원한 것도 있지만 같은 해에 베테랑 위원회의 투표로 헌액된 길릭 단장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7. 평가


흔히 '''돈만 많이 주면 나라도 우승하겠다'''는 개념 없는 니트들이 한국에나 미국에나 널리고 널렸는데(...) 그 니트들과 달리 길릭은 선수를 보는 안목이 남다르며 '''그 많은 자금 지원을 흥청망청 쓰지 않고 적재적소에 타이밍을 맞춰 투자'''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또한 스카우트 출신으로서 유망한 선수를 보는 안목도 뛰어나서 그간 해외 자유계약 대상자들 중에서 좋은 유망주들을 많이 스카우트했는데 그들 중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카를로스 델가도, 아스드루발 카브레라, 펠릭스 에르난데스, 그리고 추신수다. 한국의 최동원이 연세대에 재학 중일 때 관심을 보였다는 카더라도 있다.
다만 단점으로는 빅마켓 단장답게 트레이드로 즉시전력감을 데려오는 대신 유망주를 퍼주는 성향 때문에 팜이 황폐해진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블루제이스, 오리올스, 매리너스 등이 길릭 이후 가을야구와 담을 쌓고 있는 점은 팜의 황폐화와 무관하다 볼 수는 없다는 것. 팀을 떠나 대성한 선수들도 존재하는데, 비교적 옛날인 블루 제이스 시절엔 선발투수 데이빗 콘을 얻기 위해 제프 켄트를 내준 사례가 있고, 최근인 필리스에서는 브래드 릿지 트레이드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내준 마이클 본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례에서 그렇게 팜을 투자한 대가로 당장의 승리를 이끌어내는 면에 있어서는 그보다 탁월한 이가 없었다.
그리고 길릭은 팜을 소모하는 대신 그만큼 끊임없이 원석을 캐낸 후 다듬어서 트레이드 떡밥으로 쓰거나 빅리그 콜업해서 써먹었다. 다시말해 소모한 만큼 보충했다는 것. 꼭 필요한 유망주는 어지간해서는 지켜뒀다가 콜업하여 제대로 기용하면서 좋은 선수로 길러냈기 때문. 숀 그린, 콜 해멀스, 라이언 하워드가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앞서 언급된 켄트와 본 역시 로베르토 알로마셰인 빅토리노라는 더 괜찮은 대안이 존재했기 때문에 굳이 끌고 갈 이유가 없었다. 즉, 길릭은 그만큼 발굴하는 유망주들이 많고, 그 때문에 로스터를 정리하기 위해서 어차피 내보내야 하는 선수들을 내보내면서 A급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써먹은 것이니, 팜을 황폐화 시킨다고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기도 하다. 그리고 블루제이스 중반기까지만 해도 길릭은 오히려 '''트레이드를 거의 안하는것으로 더 유명했었다'''[9]. 이 당시 하도 새로운 영입을 안해 진절머리가 났었던 일부 팬들이 지어준 별명도 "Stand Pat"(대충 "아무것도 안하며 그냥 서있다" 정도의 뜻인데, 길릭의 이름인 Pat을 사용한 일종의 말장난이다)이었을 정도. 이 고정관념을 깬 것은 1991년 시즌 전에 팀의 핵심이였던 프레드 맥그리프와 토니 페르난데스를 내주고 로베르토 알로마조 카터를 대려온 대형 트레이드였고, 이후부터는 우승하기 위해 매년 거침없이 대형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다.
또한 길릭의 후유증이라고 보기에는 길릭의 후임 단장들이 하나같이 영 좋지 않았다. 블루제이스는 길릭 이후로도 몇년간 상당한 유망주들을 길러 냈지만 리치아디 단장 시절 상당한 삽질로 팀의 상승세를 몇년이나 늦췄고, 오리올스의 경우 길릭의 사임부터가 안젤로스 구단주의 영향이 컸고 사임 이후에는 그 깽판이 더더욱 심해지면서 팀이 무너졌다. 매리너스의 경우 길릭 다음 단장이 '''대인배 빌 버베이시'''였으니 말할 필요도 없고. 필리스에서 길릭의 뒤를 이은 루벤 아마로 주니어의 경우 부임 직후 11시즌까지는 길릭의 뒤를 이은 신세대 빅마켓 스타일 단장으로 칭송받았지만. 라이언 하워드 장기계약을 시작으로 팀이 노령화되는 것을 막지 못해 이쪽도 평판이 추락했다.
나이 든 할아버지답게 '''신세대 단장'''에 속하는 빌리 빈이나 테오 엡스타인마냥 전화 한 방 때려서 사기치는 짓(...)을 즐기기보다는 직접 상대방에게 찾아가서 거래에 대한 성의를 보이며 마음을 움직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올드 스쿨 스타일의 거래를 주로 했는데, 실제로 휴대전화를 지금도 젊은이들마냥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세이버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최근의 대세에도 익숙치 않아 여전히 스카우트 시절처럼 툴이나 선수의 마인드 등 선수를 평가하는데 있어 고전적인 평가요소 위주로 본다는 아쉬운 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역 젊은 GM 중에서도 길릭만큼 빅마켓 프랜차이즈 운영에 있어 통달한 단장은 보기 드문 편으로, 실제 그의 역량을 따라갈 젊은이들이 없어서 아직도 현역 복귀에 대해 많은 제안을 받고 있다고 한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던 7월에도 시카고 컵스가 짐 헨드리 단장을 내보내고 단장 자리를 주겠다는 진지한 제안을 했을 정도. 현역 중 길릭의 명성을 따라갈 수 있는 빅마켓 단장으로는 밤비노의 저주를 깨부순 걸로 모자라 레드삭스에서 우승과 유망주 육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테오 엡스타인,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와 그 아들내미들의 온갖 병크와 잔소리를 견뎌내며 양키스를 최고의 명문구단으로 키워낸 브라이언 캐시맨 단장 정도가 꼽히고 있다.

[1] KBO 구단들의 프런트 오피스가 대체로 모기업에서 발령받은 인물들이 대부분인 것과 달리 MLB 구단들의 프런트 오피스는 이렇게 선수로서 경험이 있는 인물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유명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빌리 빈 역시 선수로 활동하다가 스카우트로 출발하여 전설이 되었다. 물론 프로 경력이 없거나 아예 비선출 출신인 인물들도 적잖게 있다.[2] 짐 토미, 알버트 벨, 매니 라미레즈가 모두 훌륭한 성적을 냈고, 여기에 A급 리드오프 케니 로프턴과 여전한 노익장을 과시한 훌리오 프랑코가 힘을 보탰다. 하다못해 외야 백업으로 주로 나오던 제로미 버니츠가 OPS 9할대였고, 에디 머레이와 DH 슬롯을 나눠먹던 브라이언 자일스는 50경기 뛰고 OPS가 1이 넘었다.[3] 다만 이전에 비해 매리너스 시절 갑자기 성적이 올라 의혹이 있었고, 결국 '''약빨'''이었음이 드러났다.[4] 짧게 요약하자면 2003년 93승을 기록한 시애틀은 이듬해 '''63승'''으로 30승이 사라졌고, 이후 단 한 차례도 90승을 기록하지 못하고 '''17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라는 굴욕을 맛봤다. 버베이시가 성적은 물론이고 잘못된 FA 계약과 트레이드, 페이롤 관리 실패를 모두 저지르면서 메이저 팀도 팜도 폭망한 탓에 암흑기가 지나치게 길어져버린 것. 심지어 2020시즌은 단축시즌이라 포스트시즌에 8팀이 올라갈 수 있었는데도 못 올라갔다. 그리고 이 기록은 '''현재진행형이다.'''[5] 1977년생 투수. 1988년생 외야수 애덤 이튼과는 동명이인.[6] 이 트레이드로 화이트삭스에 지오 곤잘레스를 돌려주고 가빈 플로이드도 보냈다. 플로이드는 화이트삭스 선발진의 한 축이 되었고, 지오 곤잘레스는 그를 매의 눈으로 지켜보던 빌리 빈에 의해 닉 스위셔를 댓가로 오클랜드로 트레이드 되었다.[7] 다시 말해 마지막 포스트시즌이 1993년 월드 시리즈였다. 글을 잘 읽어왔다면 알겠지만, 1993년 당시 필리스를 꺾은 상대팀은 토론토였고, 그 토론토의 단장이 길릭이었다.[8] 우승이 확정된 뒤 장내 아나운서가 인터뷰를 하면서 은퇴 여부에 대해 물을 때에 "내일 걱정은 내일 하자"는 쿨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9] 실제로 1985년에서 90년 까지 블루제이스의 로스터를 보면 핵심 선수들은 거의 같았다는걸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