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의 시대

 


「坊っちゃん」の時代 凜冽たり近代なお生彩あり明治人
1. 개요
2. 특징
3. 권별 개요
4. 읽어볼만한 글


1. 개요


일본만화. 세키카와 나쓰오와 다니구치 지로1987년에서 1999년까지 연재했다. 부제는 '혹독한 근대 및 생기 넘치는 메이지인'
제목의 '도련님'은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도련님에서 따왔다.
메이지 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며,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고난과 생각 등을 잔잔하게 보여주는 만화이다.
제12회 일본 만화가협회상과 제2회 데즈카 오사무 문화상 대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서는 세미콜론에서 출판했다. 역자는 오주원.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을 그대로 가져와서 내레이션세로쓰기가 적용되었다. 덕분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세로쓰기의 압박을 견더야 한다.

2. 특징


원래는 도련님의 시대가 1권에서 끝날 예정이었으나, 호평과 인기를 얻어 5권까지 연재되었다. 1권과 5권 마지막에만 검은 바탕으로 된 내레이션이 있는것이 그 흔적이다. 이를 반영한 건지 정식발매판 초판본에는 1권이라는 표기가 없다.
작중 배경은 나쓰메 소세키가 도련님을 지었던 1905년에서 고토쿠 슈스이와 간노 스가코가 처형된 대역 사건이 일어난 1911년 사이다. 예외적으로 2권은 독일인 여성 엘리제가 모리 오가이가 귀국한 직후 일본에 1개월동안 머무르다 떠난 1888년을 다룬다.
작중에는 안중근도조 히데키 등을 비롯해서, 일본 제국과 얽혀있던 주변국들의 인물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당시 일본의 대중문화, 시대상,평범한 시민들의 삶과 생각을 잔잔히 보여준다.
고증상은 탁월하지만. 고증오류가 있다. 가령 도조 히데키와 안중근, 나쓰메 소세키가 우연히 한 자리에서 만나는 장면과 안중근이 나쓰메 소세키를 만나는 장면은 명백한 허구. 그 당시에 안중근이 일본에 없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또한 안중근이 자동권총으로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암살하려다가 작동불량으로 실패하고 이쥬인 가게아키의 권유로 리볼버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실제로는 자동권총인 FN M1900를 사용했다.[1] 또한 5권에서 나쓰메 소세키와 히구치 이치요가 약혼자였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나쓰메 소세키의 형과 혼담이 오갔다. 다만 이러한 고증오류 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된 것이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욱일기가 있지만 세키카와 나쓰오가 친한파인데다, 다니구치 지로도 열네 살에서 반전주의를 드러냈고, 태평양 전쟁이 작중 모든 사건의 근원인 것을 볼 때 단순히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만화 내용도 안중근을 '또 다른 도련님'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위시한 일본 우익을 비판하는 면이 있다. 아니, 애초에 메이지 시대에 대한 평면적인 '영광과 번영의 시대'로 미화하는 성향은 심지어 일본 전후 좌익, 자유주의자들도 오랫동안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던 시류인데[2] 이런 사조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했다는 점에서 애초에 우익 논란 운운하기에 미안할만큼 심도 있는 고찰이나 역사의식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애초에 아나키스트이자 천황 암살 혐의로 누명쓰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고토큐 슈스이를 주인공 중 하나로 칭송하는 작품이 단순히 욱일기가 나온다고 해서 역사관 논란에 시달리는거 자체가 원작자들 입장에선 당황스러울 것이다.

3. 권별 개요


순서
부제
주인공
제1권
나쓰메 소세키 편
나쓰메 소세키
제2권
무희 편
모리 오가이
제3권
다쿠보쿠의 일기 편
이시카와 다쿠보쿠
제4권
메이지 유성우 편
고토쿠 슈스이, 간노 스가코
제5권
거북한 소세키 선생 편
나쓰메 소세키

4. 읽어볼만한 글


[도련님의 시대 ①] 흉포한 근대와 불안한 개인
[도련님의 시대 ②] 우리 근대의 도련님은…
[도련님의 시대 ③] 근대로 가는 길
[도련님의 시대 ④] 근대의 거울
메이지시대의 일본 문학과 역사를 그린 『도련님의 시대』와 같이 읽으면 좋을 책
언론에서 소개된 『도련님의 시대』
[굽시니스트가 꼽은 2015 올해의 책-만화] 도련님의 시대

[1] 다만 일각에서는 이토 히로부미보다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암살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사실 이토 따위(...)가 아니라 훗날 천황제 파시즘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군국주의의 기틀을 놓았다는 점에서 안중근을 높게 사되 '차라리 이토보다 야마가타를 쏴죽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주장, 혹은 염원은 당장 야스히코 요시카즈 화백부터 시작하여 일본 좌익에선 종종 하던 말이다. [2] 훗날 쇼와 시대의 반체제 인사들도 메이지 시대는 헌법 제정과 근대적인 정부 각료, 의회 체계 도입 등으로 일본이 전체주의, 군국주의의 길을 피하고 소위 '정상 국가'로서의 근대화를 걸을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들도 나름대론 메이지 시절을 좋게 기억할 이유가 있었다. 물론 이것도 메이지 시절 당시 대만, 조선 등지에서 저지른 침탈 과정에서 저질러진 폭력, 강제 동원 같은 훗날 일제식 파시즘의 씨앗이 되는 부분은 철저하게 선택적으로 기억에서 배제했기에 가능했던 입장이긴한데, 애초에 대외 원정 과정에서 저지른 짓거리란게 원래 자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법이니 이런 선택적 역사적 기억이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