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스히코 요시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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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견과 함께
억지웃음
얼짱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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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캐

1. 소개
2. 생애
3. 작품 특징
3.1. 애니메이션
3.2. 만화
4. 경력
5. 수상 경력
6. 작품
6.1. 애니메이션
6.2. 만화
7. 연출, 작화 샘플
8. 관련 인물


1. 소개



'''대표작인 기동전사 건담.'''[1]
安彦良和
(1947년 12월 9일~ ) (76세)
일본애니메이터,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소설가. '''건담의 아버지'''[2]
홋카이도 엔가루정 출신으로, 대학 재학 시절에는 학내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제적 처분당한 이력 을 가진,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운동권' 출신 인물. 하지만 제적 이후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무시 프로덕션의 구인 광고를 보고, 어린 시절 가졌던 만화가의 꿈을 되살려 업계에 뛰어들었다.

2. 생애


박하를 재배하던 농업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렸을 땐 형이 산 소학 잡지를 읽으면서 만화에 흥미를 가져 10살 때 '오다 노부나가'에서 나온 카와나카지마 전투 장면을 노트에 연필로 그리기도 했고, 친구들부터로도 많은 만화를 빌려서 읽었고 직접 공책의 남은 페이지에 만화를 그리기도 했었다고 한다.[3] 또한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강의책의 기법들을 모방해 만화를 그려 모험왕에 투고한 적도 있었다.
중학교로 들어갈 무렵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년 간 입원했으며[4] 1963년엔 형이 대학 진학에 실패해 가업을 잇지 못하게 되자, 형제들과 같이 누나가 사는 곳에 몇 달간 잠시 머물기도 했다. 이전부터 본인이 웅변대회에서 드러낸 연설력과 동아리 행사 사회자 등의 학생회 활동으로 쌓은 명성이 작용해, 고등학교에서 학생회장으로 뽑힌 적도 있었다. 훗날엔 당시 아는 친구가 민청 활동을 하던 중이라 영향을 받아 정치성향을 결정했다고 언급했으며,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같은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졸업 후 가나자와 대학, 히로사키 대학 등에 원서를 넣어 합격한 히로사키 대학의 서양사학과로 입학했다.
재학 중에 민청의 활동에 참여했지만 형식적이고 너무 시시하다고 생각해 얼마 못가 관두고, 1968년 베트남 전쟁 반대 모임 결성 관련 강연 기획 등으로 반전주의 학생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었다.[5] 이듬해(1969년) 9월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본부를 전학공투회의가 점거한 지 3주가 지나서 기동대에 의해 봉쇄가 풀렸는데, 때마침 보름간 학교에 있던 것 때문에 여러 죄목이 적용되어 경찰에 체포당했다. 이후 히로사키 대학에서 제적 처분을 받고, 풀려난 뒤엔 도쿄에 있던 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사식으로 근무했으나 일이 맘에 들지 않아 석달 만에 그만둔다. 이 무렵 신문에 게재된 무시 프로덕션 구인 광고를 보고 어릴 때의 꿈인 만화가를 떠올려 응모해, 면접에서 대학 노트에 그렸던 만화를 보여줘 합격하여 무시 프로덕션 양성소 2기생으로 입사했다.
무시 프로덕션이 파산한 뒤론 프리랜서로 오피스 아카데미, 소에이샤에서 활동했었고, 그 무렵 자신이 애니메이션을 선호하지 않는 것과 더불어 "애니메이션 같은 애들이 보는 매체에 메세지를 담아 세상을 바꿀 수 있을 리가 없다." 라는 생각이 들어 직업에 환멸감을 느끼기도 했었으나 니시자키 요시노부가 "애니메이션은 애들만 보는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세상을 바꿀 수있다." 라고 설득하여 생각을 바꾸었다고 한다. 《안녕히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 제작 이후 일절 야마토와 관련된 제작 과정에서 손을 떼려했으나 니시자키 요시노부의 강한 만류와 반대로 이루지 못해 우주전함 야마토 2 등 TV판의 제작에도 참여하였다. 이후 《기동전사 건담》의 캐릭터 디자인 및 작화 감독을 맡다가 도중에 병으로 쓰러져 5개월이나 입원해 후기 분량의 작업에 참여하지 못했다.[6]
1979년엔 《아리온》을 발표해 만화가로 데뷔하였으며, 아니메쥬에 연재했던 한 에세이에서 당시 논란이 있던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극장판 《FUTURE WAR 198X년》[7]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 뒤 극장판 《크러셔 죠》로 감독으로 데뷔해 이름을 알렸으며,[8] 1989년 《나무지》를 연재함으로써 본격적인 전업 만화가 활동에 들어갔다.
2006년엔 고베 예술공과 대학의 미디어 표현학과 교수로 재임하기도 했었다. 2012년 3월과 2013년 말엔 홋카이도 신문 석간, 주니치 신문, 도쿄신문 석간 등지에서 《내 속의 역사》, 《이 길》을 연재했으며, 이듬해 5월 OVA 《기동전사 건담 THE ORIGIN》의 총감독을 맡는 것이 발표되면서 잠시 건담 제작에 복귀한 바 있다.


3. 작품 특징



3.1. 애니메이션


애니메이션 업계에 종사할 당시에는 표정이 풍부하고 깔끔하게 정돈된 펜선의 작화로, 업계에서도 최고로 꼽을 정도의 실력을 자랑했다. 특히 표정과 미형 캐릭터, 연극 묘사에 있어서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으며 당시 애니메이션 잡지에선 거의 5년 동안 최고의 애니메이터 독자 투표 1위를 했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 특히 여성팬이 굉장히 많기로 유명했으며 그에게 그림을 배우러 들어온 제자들도 상당 수가 여성이었다. [9] 표정을 잘그려 원화나 작화감독으로서는 초일류였지만 액션이나 움직임에 있어서는 좀 뚝뚝 끊어지는 편. 기동전사 건담에서 건담의 움직임이 어색하다는 지적이 자주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10]
우주전함 야마토》같은 선이 굵은 작품에서, 《바람과 나무의 시》같은 여성 취향 작품까지 다루는 작품의 폭도 다양했다.니시자키 요시노부,나가하마 다다오,토미노 요시유키는 그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특히 토미노는 야스히코를 '''최고의 애니메이터'''라고 평하며 2000년대부터는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그림체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하는 야스다 아키라, 요시다 켄이치 두 사람을 자신의 페르소나로 기용할 정도로 그의 그림체를 좋아한다. 토미노 말로는 살다보면 야스히코 정도의 애니메이터를 또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야스히코 말고는 없더라고 한다.'''심지어 미야자키 하야오아마노 요시타카조차 그의 그림을 흉내 낸 적이 있을 정도이며, 그가 직접 가르친 제자 애니메이터이타노 이치로,타카하시 쿠미코가 유명하다.
작화감독을 하던 시절에는, 애니메이터들이 작업한 분량을 나중에 수정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레이아웃으로 거의 스케치 다 된 수준의 그림을 넘겨주고 원화를 그리게 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작화감독이면서도 그의 작업량은 엄청났고, 《기동전사 건담》 TV판 제작 도중에는 이러한 무리가 원인이 되어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 [11] 이를 아쉬워한 토미노는 훗날 극장판을 만들면서 후반부를 야스히코에게 다시 맡긴다.
이후 80년대에는 야스히코 본인이 그림만 그리는 걸 넘어 자신의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애니메이터보다는 감독 겸 작화감독으로서 활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거신 고그. 다만 감독으로서의 작품은 작화는 매우 좋은데 그 외에는 연출이나 스토리 배분에서 문제가 있어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이 그린 만화나 연출,감독을 담당한 작품을 보면 그림은 정말 잘 그리는데 같은 표정이나 구도가 너무 반복되거나 스토리와 무관계하게 작화만 과시하는 것 같은 무의미한 장면이 들어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외 제로 테스터에서는 콘티를 맡았는데 스즈키 요시타케의 각본대로 작성하지 않고 마음대로 각본을 변형시켜 콘티를 작성해 스즈키에게 크게 혼나서 타카하시 료스케가 겨우 겨우 화해시킨 적도 있고, 코가와 토모노리 경험담에 따르면 안녕히 우주전함 야마토 사랑의 전사들에서도 콘티가 마음대로 수정되는 등. 즉 원화가,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특S급의 전설이었지만 연출가로선 보통이었던 셈이다. 야스히코도 이때 예산과 스폰서라는 것에 묶일 수 밖에 없는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에 크게 절망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이후에는 만화가로 전직하게 된다.
그래도 연출가로서의 실력이 아주 없다고 볼 수는 없는데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의 경우 첫 작품부터 우주전함 야마토 새로운 여행까지 야스히코가 대부분의 콘티를 작성하였다. 이거 한다고 토미노의 무적초인 점보트3무적강인 다이탄3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을 정도. 야마토 시리즈에선 야스히코 연출의 평이 좋다. 아무래도 니시자키 요시노부가 전부 자기가 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초전자로보 콤바트라 V에서도 주로 연출로 활동했는데 평이 괜찮았다. 다만 그 이후로는 연출이 많이 퇴보한 바가 없지 않은데 옆에서 말려주고 조언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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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히코 허리, 야스히코 서기 로 불리는 유명한 자세가 있는데 캐릭터가 직립해있는 자세를 그릴 때 자연스럽게 그리지 않고 일부러 허리가 앞쪽으로 튀어나와 S자 형태를 이루게 그린다. 이러면 약간 부자연스럽지만 특이한 매력이 느껴져 애니,만화 업계의 다른 사람들도 따라 그리게 되었다. 죠죠서기의 시조라 여겨지기도 한다. 작붕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야스히코가 멋있으라고 일부러 그러는 것임을 스스로 밝혔으므로 작붕이 아니다.

3.2. 만화


만화가가 된 이후에도 이러한 성향은 여전해서, 그의 작업 스타일은 어시스턴트를 두지 않고 모든 작업을 혼자서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특히 동양화풍 느낌을 물씬 주는 붓터치와 함께 원고 한 페이지의 모든 명암을 그라데이션 톤 딱 한 장(...)으로 붙여서 표현해내는 기법은 혀를 내두를 정도. 사실 이는 그의 엄청난 작업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기법으로 봐도 무방하다. 드래곤볼에서 토리야마 아키라가 초사이어인의 머리를 먹칠을 안 해도 되는 금발로 표현한 것처럼.
특히 무지갯빛 트로츠키는 마치 수묵화의 농담처럼 그려내는데, 무지개빛 트로츠키에서는 주인공의 심상 + 만주 벌판의 광활함 + 작화적 연출 기법의 세 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어쨌든 이처럼 괴물같은 작업량을 혼자서 처리하기 때문에 《모빌슈트 건담 디 오리진》의 작업 당시에야, 그의 건강상태를 우려한 출판사 담당자가 처음으로 어시스턴트를 붙여주었다고.[12] 2012년에는 나이가 63세인데도 불구하고, 컴퓨터 그래픽도 조금씩 도입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열정을 가진 사람이다. [13]
또 다른 작화 특징으로는 디자인한 캐릭터의 상당 수가 M자 이마라는 것. 중년들은 대부분 M자 탈모에 시달리고 있으며 어린 청년이나 마틸다 아쟌,키시리아 자비 같은 여성 캐릭터들도 이마가 M자인 경우가 많다. 거기다 야스히코 본인도 M자 탈모에 시달렸다. (...) 반대로 원형탈모가 있는 사람은 자주 나오지 않는다. 또한 말년으로 갈수록 캐릭터들의 목 둘레가 굵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외에도 《현시연》이라든가 《강철의 라인배럴》, 《81다이버》 등, 자신보다 어린 작가들의 작품을 보며 훌륭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며, 《현시연》의 경우는 작품 내에 등장하는 동인지에도 참가할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81 다이버》에는 자신의 그림으로 잠깐 출연한다. 너의 이름은을 비롯해서 최신작도 다 챙겨보고 있다고 한다. 안노 히데아키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하는 등 후배들에게는 평가가 후하다. 예외로 건담 관련 작품에 대해서는 "건담을 망치고 있다." 라고 할 정도로 굉장히 부정적이다. [14]
2014년 신동아 인터뷰. 양심적인 일본인의 모습을 보여주며, ''' '안중근이토 히로부미보다는, 야마가타 아리토모가쓰라 다로를 죽였어야 했다' '''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발언은 일제의 만행을 변호한 것이 아니라 '죽일 경우 이런 인간을 죽여야 더 효율적이다'는 의미이다.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하얼빈에 안중근의 동상을 만들고, 그의 사상인 동양평화론을 '''반드시''' 새겨놓아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좋은 쪽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일본의 보통국가화는 우경화하고는 엄연히 다름을 생각해야 한다.[15] 더구나 이 작가는 평화헌법 개헌을 반대하는 기사를 기고한 적도 있었다. 물론 일본인 작가가 이 정도의 스펙트럼을 가졌고, 작중 대놓고 '일본의 침략은 잘못되었다'고 적어놓는 것도 대단한 것이다. 적어도 스기이 히카루처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절대 아니고, '일본이 잘못했다'고 분명하게 인식하는 사람이며, 이듬해(2015년) 7월 16일에 중의원 표결에서 안보법안이 날치기로 통과되자, 이를 비판하는 의견을 스포니치(스포츠 닛폰 뉴스)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작가 자신의 근대사 관련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아시아주의[16], 손문 사상(특히 오족공화)이 되겠다. 여기서 오족공화란 아시아주의와 연결점이 있고, 손문 본인도 아시아주의자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국 작가 자신은 근대사에 대해 숙고하며, 아시아 각국의 연대를 깊이 강조하고 있으며, 바로 그 부분을 가장 아쉬워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 때문에 청일전쟁을 언급하며, '일본을 온 아시아 지역에 대한 가해자로 타락시킨, 의롭지 못한 전쟁'이라며 진지하게 자신의 나라를 디스한다.
한편 오족공화는 훗날 만주국에서 건국이념으로 써먹고, 깃발 역시도 오족공화를 나타내는데, 《무지갯빛 트로츠키》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서, 만주국을 "오족협화의[17] 깃발을 내세우면서, 왜 깃발이 가르치는 사상에는 따르지 않냐?"고 비판한다. 또한 《왕도의 개》에서도 아시아주의적 주제를 그렸으며, 아시아주의자인 김옥균, 카츠 카이슈, 손문을 매우 긍정적으로 그렸다.
한편 '왕도'라는 말을 즐겨 쓰고 맹자 사상을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봐서, 맹자 사상 역시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왕도의 개》는 아예 작품 곳곳에서 맹자의 구절을 인용하고, 맹자 사상과 아시아주의를 연결시켰다. 이런 아시아주의자인 만큼 일본 우익들과 전혀 반대의 방향이긴 하지만 한국의 폐쇄적인 민족주의, 순혈주의적 국가주의 또한 비판의 대상으로 본다고 추정된다. 왕도의 개에서 전봉준과 주인공 카노와의 대화도 전봉준을 대륙형 의인으로 묘사하긴 하지만 그는 초목과 같은, 민족 국가 내에서 민족적 이상에 따라야 인류적 발전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카노는 이에 맞서 자신이 동학군을 지원하려고 하는건 일본의 국익이 아니라 순수한 인간적인 전봉준에 대한 지원이라며 보편적인 휴머니즘을 주장하고, 다른 작품인 무지갯빛 트로츠키에서 주인공이 속했던 사문동의 게릴라 세력이 해체되면서 사문동군 내의 조선인들의 리더격인 박기백은 조선인끼리, 한족은 한족끼리, 몽골인은 몽골인들끼리 독립, 혁명을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주인공인 움보르트는 이를 부정하고, 허상이란걸 알면서도 겉으로나마 존재하는 만주국의 오족공화적 이념을 순수하게 설파하려고 한다. 피해자 민족의 민족주의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는 측면은 있어도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적으로 의식하지 않고는 두 작품 연달아 이런 주제를 조선인 캐릭터의 입을 빌려서 부각시켰을 거라 생각되지 않는다. 해당 장면에서 박기백이가 조선인들끼리만 독립운동 하시겠다고 따라가는 집단이 김일성일파 인것만 봐도 우연의 일치나 단순한 연출이라 보기 힘들다.
마르크스주의도 오늘 날에 다시금 돌아봐야 할 정신이라고 하며 잊지 말 것을 여러번 강조한다.
2017년 8월, 당시의 애니메이션과 건담에 대해 소감을 나타냈다. 건담의 창시자가 느끼는 요즘 애니의 의문

요즘 애니는 점차 게임에 지배되고 있지. 스토리의 게임화라는 말을 하려고 해. 게임의 경우 플레이어는 절대자지. 세계는 플레이어 중심으로 돌아. 죽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플레이어는 점점 올라가고, 더 높은 스테이지에 올라 마지막엔 신에게 다가가지. 미녀도 보물도 전부다 얻고서. 그건 내가 이해한 [건담의 세계]랑은 정반대야.

'''불행히도 요즘 건담도 게임화되고 있다고 봐. 건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게임화한 다른 건담이 보급되고 있어. 겨우 애송이가 내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투로 전쟁을 말하고, 세계를 바꾸겠다고 우기지.''' 바꿀 수 있어? 세상은 마물이야.

이렇듯 이데올로기와 이념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이 있는 작가이나 지나치게 이념과 주의에 사로잡힌다는 지적도 있다. 폭력 사건도 일으킨 전공투를 정의로운 집단처럼 정당화시키려고 하고, 폭력을 써서라도 혁명을 해야한다는 자신의 과격한 신념을 자꾸 작품에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물론 세상엔 좌익 사상을 가진 작가는많지만 야스히코는 그중에서도 과격파에 속하기 때문에 비판이 꽤 크다.
건담 에이스 2009년 9월호에서 토미노 요시유키는 "야스히코 씨는 나보다 어리면서 지나치게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 "야스히코 씨는 위험하다." 라고 평하기도 했다. 다만 선을 넘을 것이 우려된다는 선의 걱정이지 [18] 토미노는 오히려 야스히코에게 많은 걸 배웠다고 할 정도로 그의 의견이나 지식에 동조하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토미노가 전공투에 극좌파라는 루머가 오랜 시간 돌았는데 아마 야스히코의 이야기가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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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기동전사 건담으로 인연이 있는 성우 후루카와 토시오가 진행하는 인터뷰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진지하고 정치적인 것만 추구하는 사람같지만 유머러스함도 갖추고 있고 야한 것도 상당히 좋아한다. 특히 애니메이터 시절엔 여자 캐릭터를 그리는 장면만 유독 자신이 하겠다고 해서 이 사람이 담당한 애니메이션은 여자 캐릭터들의 작화가 매우 좋고, 여캐들의 인기도 높다. 사쿠라노 마리판치라 붐을 일으킨 것도 이 사람이고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를 바꿔버린 전설의 양대 샤워신인 난바라 치즈루세일러 마스의 샤워신을 그린 것도 이 사람과 토미노 요시유키다. [19] 과거에 연재한 만화도 섹스 어필 장면은 꼭 들어간다. 단지 말년의 작품인 디 오리진과 역사극에서는 자제했을 뿐이다. 팬들은 애정을 담아서 변태 영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4. 경력


그가 참여한 작품들 중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애니메이션으로는 《용자 라이딘》, 《초전자로보 콤바트라V》,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 《거신 고그》, 《아리온》 등이 있으며, 비단 캐릭터 디자이너나 작화감독으로서만이 아니라, 콘티 면에서도 업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애니메이션 제작에 참여한 마지막 작품은 기획에만 참여한 《기동전사 건담 F91》. 감독작 및 작화로서 참여한 마지막 작품은 《아리온》이 마지막이다. 자신의 작품이 원작인 영화 《비너스 전기》의 흥행 실패 이후 우울증이 와서 애니메이터 활동을 접고 전업 만화가로 전향한다. 다만 그가 애니메이터를 그만둔 결정적인 이유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시끌별 녀석들》을 보고 넘사벽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화가로 전업한 이후, 역사에 대한 깊은 조예를 바탕으로 주로 시대극 만화를 집필하였으며, 일본 만화가들이 거의 다루지 않는 정치적인 내용을 다루기도 한다. 이에 어떤 평론가는 '일본 제일의 아카데믹한 만화가'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 중에는 일본 근현대사의 어두운 면, 특히 일본 우익의 행적을 조롱하고 강력하게 비판하는 작품이 다수 존재한다.[20] 특히 유명한 것은 일본관동군 만주족 부대에 소속된 장교의 이야기를 다룬 《무지갯빛 트로츠키(虹色のトロツキー)》.[21] 국내에서도 해적판으로 간행된 적이 있으며, 2013년 11월에 대원씨아이가 정식 출간하였다.
한편, 이보다 앞서 2012년 6월에 국내에서 대원씨아이가 정식 번역판을 출간한 《왕도의 개(王道の狗)》에서는 김옥균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고 있으며, 여기 나오는 전봉준도 꽤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이 작품의 반향이 상당했던지, 동아일보에서 아예 이 사람을 상대로 독점인터뷰까지 했다. 참고로 김옥균은 망가쟈판 동인지에 수록된 《'''아버지'''》라는 그의 작품에서는 아예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외에도 많은 역사적인 인물들[22]을 다룬 만화를 그렸으며, 《네오 데빌맨》의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2012년부터 러일전쟁 바로 직전의 근대 일본과 고대 일본의 역사를 함께 다룬 역사만화 《하늘의 혈맥(天の血脈)》을 애프터눈에 연재중이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건담 에이스에서 연재하던 《모빌슈트 건담 디 오리진》을 완결, 이후 아마쿠사 시로시마바라의 난을 다룬《여도몽담(麗島夢譚)》이란 시대물을 마무리 지었다.
2018년 11월부터 월간 애프터눈에서 '이누이와 타츠미 -더 바이칼 전기-'의 연재를 시작했다. 작가 자신이 마지막 만화 연재라고 공언했다. 배경은 적백내전기의 시베리아 내전이라고 한다.

5. 수상 경력


'''역대 성운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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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부문'''
'''제11회
(1980년)'''

'''제12회
(1981년)'''

'''제13회
(1982년)'''
오라이 노리요시
'''야스히코 요시카즈'''
나가오카 슈세이

  • 1981년 : 제12회 성운상 예술 부문 수상.
  • 1990년 : 제19회 일본 만화가 협회상 우수상 수상.(《나무지》)
  • 2000년 : 제4회 문화청 미디어 예술제 만화 부문 우수상 수상.(《왕도의 개》)
  • 2012년 : 제43회 성운상 만화 부문 수상.(《건담 디 오리진》)

6. 작품



6.1. 애니메이션


굵은 글씨는 대표작. ★은 캐릭터 디자인

6.2. 만화



7. 연출, 작화 샘플


야스히코 요시카즈는 캐릭터, 메카닉 작화를 전부 혼자 다 한다. 로봇도 직접 그렸다.

무적초인 점보트3 OP. 연출 토미노 요시유키.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원화 시오야마 노리오

기동전사 건담 OP. 콘티 토미노 요시유키 /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크러셔 죠 PV 연출,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거신 고그 OP. 연출, 작화감독 야스히코 요시카즈

비너스 전기 PV 연출 야스히코 요시카즈 / 작화감독 카미무라 사치코

기동전사 건담 THE ORIGIN PV 콘티 야스히코 요시카즈 / 총작화감독 니시무라 히로유키

8. 관련 인물


  • 토미노 요시유키
  • 나가하마 다다오
  • 니시자키 요시노부
  • 츠지 마사키
  • 이타노 이치로 - 제자
  • 타카하시 쿠미코 - 제자
  • 카미무라 사치코 - 제자
  • 오오하시 요시미츠 - 제자
  • 미키모토 하루히코[24]
  • 도키테 츠카사
  • 타카하타 이사오[25]

[1] 주로 캐릭터가 야스히코 요시카즈 작화이며 로봇 쪽은 이타노 이치로가 섞여있다.[2] 다만 보통 건담의 아버지라고 하면 떠올리는 사람은 야스히코가 아니라 감독인 토미노 요시유키다. 디 오리진의 경우에는 야스히코의 작품이 맞다.[3] 이에 부친은 그림을 이웃들에게 보여주는 등 무척 기뻐했지만, 모친은 그런 시시한 걸 하고 있을 바엔 집안일을 하라고 했을 만큼 맘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4]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5] 실제론 형식적인 당시 학생 운동권의 연설, 시위 꺼려 직접 학우들한테 설명하는 방법으로 활동했으며, 이듬해 1월 일어난 도쿄대학의 야스다강당 점거 사건에 참여한 친구가 체포되었으나 교통비가 미치지 못할 만큼 자금이 부족해 도쿄로 가지 못했다고 한다.[6] 기동전사 Z건담 이후로는 키타즈메 히로유키가 ZZ(야스히코는 Z건담의 메인 캐릭터 디자인을 게스트 등장으로 삽입하기 위해 객원 협력 참여)+역습의 샤아(극장판)의 메인 캐릭터 디자이너로 담당하게 되었고, 또 그 이후엔 야스히코가 기동전사 건담 F91(극장판)의 메인 캐릭터 디자이너로 복귀하였다.[7] 《가공스런 미래전쟁》이란 제목으로, MBC에서 90년 초반 명절특선으로 더빙 방영한 바 있다.[8] 원작자인 타카치호 하루카와는 서로 친한 사이여서 부탁을 거절하진 못했으나, 나중에 굳이 극장판 제작을 하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9] 지금이야 로봇 애니메이션이 아저씨의 전유물이지만 예전엔 여자도 많이 보았다. 야스히코가 참여한 용자 라이딘, 기동전사 건담도 방영 당시에는 여자 팬이 더 많았다. 건담의 남성 인기는 나중에 재방송과 입소문, 건프라의 발매로 나중에 촉발된 것이다.[10] 건담 자체가 움직임보다는 원화의 질, 로봇보단 인물 작화를 중시한 작품이라 액션을 잘 그리는 애니메이터들은 별로 투입되지 않았다. 기동전사 건담 극장판에서 건담이 부드럽게 움직이는 장면들은 야스히코가 아니고 이타노 이치로 작화이다.[11] 이 시기에 야스히코는 건담 뿐만 아니라 만화 아리온도 연재했고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도 동시에 담당하는 등 상당한 무리를 했다.[12] 그런데 《디 오리진》 23권의 권말부록으로 실린 인터뷰에 의하면, 그마저도 야스히코 본인의 아들 한 명이었다. 아들 역시 애니메이터 출신.[13] 다만 스스로에게 안 맞는다고 다시 아날로그 작업 방식으로 돌아왔다.[14] 퍼스트 건담과 후쿠이 하루토시가 쓴 턴에이 소설판을 제외하면 모두 실망했다고 한다. 퍼스트 외에는 토미노 조차도 예외로 두지 않고 비판한다.[15] 작가曰, 일본인이 아베를 지지하는 것은 군사대국으로의 회귀보다는 왜곡된 소국주의, 군대 없는 부국이 얼마나 불완전했는지에 대한 반동이라고 생각한다.[16] 대동아공영권 같은 불쏘시개가 된 주장의 변질되기전의, 순수한 의미로서의 아시아주의이다. 사실 안중근도 이 사상의 지지자였고, 이 때문에 작가는 안중근의 사상을 좋아한다.[17] 오족공화와 사실상 같은 말이라고 보면 된다. 다만 오족이 구체적으로 어떤 민족을 뜻하는지는 만주국의 민족구성에 맞게 어레인지 되었다.[18] 야스히코가 사람들이 뉴타입을 이념으로 오해하고 이용할 수 있으니 수정해야 한다고 하자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너무 확대해석 아닌가" 라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19] 이상하게 이런 장면이 나오는 경우 스탭롤을 살펴보면 토미노 요시유키가 있다.[20] 그렇다고 해서 극좌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이력에서도 알 수 있듯, 운동권 출신이기 때문에 운동권의 문제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지적하기도 한다. 《왕도의 개》의 오오이 켄타로 같은 캐릭터 묘사가 그 예. 물론 우익이 저지른 일이 더 커서 상대적으로 가려져 보일뿐. 굳이 정치적인 분류를 하자면, 나카노 시게하루 같은 양식 있는 전향 좌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21] 자신의 이 작품을 언급하면서,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논의가 일어나기엔 현 일본 정치레벨이 너무 낮다고 비판한 사설을 2007년 02월 11일에 발표했다. 개헌론도 까고, 고이즈미 준이치로도 까고, 관동군도 까고, 일본운동권도 까고….(#)[22] 네로, 알렉산더 대왕, 예수 그리스도, 잔 다르크 등. 이 작품들 중 네로와 알렉산더 대왕의 얼굴은 아무로 레이와 비슷하다.[23] 주로 토미노 감독이 담당한 부분에 참여. 15화까진 거의 혼자 작업했다.[24]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그림체를 바탕으로 더 요염하게 발전시킨 디자인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야스히코도 자신과 굉장히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며 제자로 키우려고 했는데 인연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25] 타카하타의 감독작인 알프스 소녀 하이디엄마찾아 삼만리를 "훌륭하다", "충격을 받았다"며 높이 평가했다. 타카하타의 최고 걸작은 엄마찾아 삼만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