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 파시즘

 



1. 개요
2. 천황제 파시즘이란?
3. 논쟁
3.1. 천황제 파시즘은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파시즘이다
3.2. 천황제 파시즘은 파시즘이 아닌 군사독재이다
4. 참고문헌
5. 관련문서


1. 개요


天皇制ファシズム / Shōwa Statism[1]
쇼와 연간,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일본 제국에 관련된 이론이다. 흔히 한국과 중국에서는 일본 제국을 의심할 바 없이 파시즘 국가로 생각하지만 서구 학계에서는 일본이 파시즘 국가였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며 오히려 일본 학계에서 <위로부터의 파시즘>, <천황제 파시즘>이라는 개념을 주장하며 일본 제국이 파시즘 국가였다고 주장하고 있다.[2] 본 문서는 천황제 파시즘의 정의와 이를 놓은 학술적 논쟁에 다룰 것이다.

2. 천황제 파시즘이란?


일본 파시즘을 말할 때, 일본 사회 전반에서 군대의 가치가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앤터니 제임스 죠스.

최초로 일본을 파시즘 국가로 분석한 이들은 1930년대 소련 학자들과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연합국 선전원들이었다. 1930년대 소련의 일본학 학자 타닌 오스카르 타르카노프와 요한 예브게니 욜크는 일본 파시즘을 일본의 사회구조와 일본군의 봉건 제국주의과 잘 융화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일본 파시즘론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이 뿌리내리게 된 중요 요인은 다음과 같다.
  • 1. 1930~1940년대 일본 사회에 가장 두드러진 특징인 군대의 파급력.
  • 2. 미숙한 일본 민주의회구조의 취약성.
  • 3. 다른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확연한 대조를 보이는 일본 근대화의 속도와 성공.
  • 4. 일본의 이념적 영향력.
마루야마 마사오의 견해에 따르면, 일본 파시즘은 기타 잇키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왕도, 유교사상, 니치렌의 종교철학, 무사도 정신과 서양 파시즘을 결합하여 군국주의, 근대화, 범아시아주의를 근간으로 한다는 것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 파시즘은 1919~1931년에 걸친 시민들 사이의 우익운동이 첫 단계이며 만주사변이 군대가 파시즘의 원동력이 되게 한 두번째 단계, 중일전쟁에서 태평양 전쟁 시기가 일본 파시즘을 단순한 운동에서 국가구조로 전환시킨 절정기로 보았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또한 일본 파시즘의 주요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 1. 가족 제도: 국가 체계는 천황을 종가로 하는 가족(家, いえ)의 연장선.
  • 2. 토지 균분론: 도시 산업 생산력 확장을 막기 위해 농촌 자치권 실시.
  • 3. 범아시아주의: 유럽 식민지로부터 아시아인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이상론.

3. 논쟁


자국 학파가 부정하고 영미 학파가 있다고 주장하는 프랑스 파시즘과는 반대로 여기서는 자국 학파가 있다고 존재하고 영미 학파는 그 존재[3]를 부정하는 양상이다.

3.1. 천황제 파시즘은 대중의 지지에 기반한 파시즘이다


천황제 파시즘이 파시즘이라고 보는 쪽은 일본 학계와 더불어 허버트 빅스, 베링턴 무어 등의 학자들이다. 일본 학자 마루야마 마사오와 야마구치 야스시는 파시즘 체제를 위로부터의 파시즘과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으로 구분했다. 통상적으로는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지만 일본에서는 파시즘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려면 기존 보수주의 권력과 동맹을 맺어야 한다는 <동맹이론>의 결정적이고 극단적인 예시였다는 것이다.
천황제 파시즘 부정론에 대해서 일본 학계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의 권력구조가 군부, 의회, 혁신관료로 분산되었지만, 거국일치 내각이 1932년에 이미 형성되었으나 천황은 실질적 지도자가 아니었음에도 대중들에게 절대적 카리스마를 행사했다. 또한 쇼와연구회의 핵심 멤버인 류 신타로, 미키 기요시, 료야마 마사미치 등은 정책 고안에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 왕국에서 깊이 영향을 받았으며 오카와 슈메이, 기타 잇키, 니시다 미쓰기, 다치바나 고자부로 등의 폭력을 옹호하는 민간 우익이 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학계 역시 아래로부터의 파시즘이 2.26 사건을 계기로 소멸[4]되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5.15 사건진주만 공습 등에 대한 일본 대중의 반응 등을 예시로 들어 일본 대중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1935~1936년 국체명징운동으로 일본 정치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완전히 일소되었을 때 대중적 운동단체 7곳과 언론이 개입한 것 역시 일본 대중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는 증거로 파악했다.
사상적인 측면에서 일본 파시즘은 파시즘의 본질을 충족했다는 주장도 있다. 일본 제국의 자기 우월적이고 스스로를 도덕적이라 믿는, 나치의 레벤스라움과 흡사한 '광역권'을 바탕으로 한 팽창적 민족주의는 구조적으론 몰라도 사상적으론 파시즘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학자론 재니스 미무라, 존 다우어 등이 있다. 특히 브라이어 마이어스는 존 다우어의 논의를 확장하여 북한 체제를 일본 제국의 체제로 보는 시각을 제시하면서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원제: The Cleanest Race)를 출판하였다.
한국, 중국, 일본, 서양 내 진보 학계가 이 견해를 따른다.

3.2. 천황제 파시즘은 파시즘이 아닌 군사독재이다


서구 학계는 천황제 파시즘, 즉 일본 파시즘이 파시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선 서구 학계는 파시즘과 같은 20세기형 전체주의 체제의 성립은 단순히 소수의 악당들이 다수를 억압해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정치과정에서 동원되는 민주정치가 어느 정도 발발한 국가에서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서구 학계는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제국이 파시즘이 아니었다고 본다.
서구 학계는 세계 대공황만주사변으로 일본의 민주주의는 붕괴되기 시작했으며 기타 잇키를 비롯한 일부 서구식 파시스트들이 등장했으나 쇼와 덴노 자기 자신이 2.26 사건을 진압하라고 지시함에 따라 소멸되었으며 이후 권력을 잡은 고노에 후미마로 등은 대중 정치가가 아니라 정당 정치를 반대하고 귀족 계급의 이익을 보장하는 보수 권위주의자였다고 보고 있다.[5] 또한 이후 권력을 잡은 도조 히데키 등의 일본의 권력자들은 동방회[6] 지도자 나가노 세이고 등을 가택 연금시키는 등 파시즘 운동을 탄압했으며 이들의 싱크탱크를 맡았던 쇼와연구회에서 내놓은 조언들 중에서 사회 연대주의, 반자본주의 요소는 철저히 묵살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로버트 팩스턴은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라 파시즘의 도구를 일부 취사선택한 국가로 보고 있으며 일본 제국을 파시즘으로 보는 것은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타도된 결과로 파시즘 국가가 설립된 것이나 다름없는 주장이라고 본다. 또한 일본 제국은 당시 일본 제국 지도층의 생각과는 별개로 독일이나 이탈리아와는 달리 볼셰비즘 혁명의 위협에 결정적으로 노출되지 않았으며 지도자들과 경쟁을 벌이는 공식 정당이나 자생적 대중운동이 끝내 궤도권에 들어서지 못했으므로, 일본은 파시즘 국가가 아니며 어디까지나 대중운동이 적당히 가미된 군부 독재, 단순 제국주의 국가라고 결론내린다.
보수 학계(동서양을 막론하고)가 이 견해를 따른다.

4. 참고문헌


  • 파시즘, 로버트 팩스턴, 교양인.
  • 기타 잇키 평전, 마쓰모토 켄이치, 교양인.
  • 파시즘, 케빈 패스모어, 교유서가.
  • 파시즘, 장문석, 책세상.
  • 장제스와 국민당 엘리티스트, 정두음, 도서출판 선인.
  • 왜 북한은 극우의 나라인가?, B.R 마이어스, 시그마북스.
  • 비교사의 시각에서 본 한국의 파시즘과 권위주의, 채오병, 경제와사회 111집, 비판사회학회.
  • 열광의 정치: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 박한규, 대한정치화회보 14집 3호,

5. 관련문서


[1] 쇼와 국가주의[2] 그런데 서양 학계에서도 진보 성향 학자들은 일본을 파시즘 국가로 본다. 반대로 동양 학계 내 보수 성향 학자들은 일본을 파시즘 국가가 아닌 단순 제국주의 국가로 보고 있다. 결국 지역뿐 아니라 정치 성향도 일본 제국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세계사 교과서를 예로 들면, 보수 계열에서 편찬한 교과서에선 "이탈리아 파시즘→독일 나치즘전체주의의 침략"순으로 서술하지만, 진보 계열 교과서에선 나치즘과 침략 사이에 "일본 군국주의 파시즘"이 들어가 있다.[3] 다만 여기서는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를 불러온 극단주의가 파시즘의 형태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것이지,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가 옳은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파시즘이 아니라고해서 일본 제국의 사상이 옳은 것이 되는 것이 아니다.[4] 그러나 4년뒤 고노에 후미마로가 주도하는 신체제운동의 주도로 대정익찬회가 설립되면서 일본이 잠시 파시즘 국가였던적은 있었지만 이마저도 1년만에 고노에가 사임하고 통제파 도조 히데키가 집권하면서 일본 파시즘은 실질적으로 끝장났다.[5] 설령 고노에가 파시스트라 해도 1년안가 사임했으니 무의미하다.[6] 일본에 있었던 나치즘 단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