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위창
1. 개요
'''일본인'''[1] 프로야구 선수, 지도자. 본명은 도이 쇼스케(土居章助).[2]
2. 현역 시절
1937년 일본 고치현 태생으로, 죠토 고등학교(현 고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6년 고쿠데츠 스왈로즈에 입단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 다이마이 오리온즈를 거치며 1963년 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주 포지션은 유격수였으며 프로통산 성적은 '''526경기 출장, 177안타, 타율 0.194, 10홈런, 47타점, 51도루'''.
3. 지도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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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오리온즈 코치 시절[3]
은퇴 후 오사와 케이지, 카네다 마사이치 감독 휘하에서 롯데 오리온즈의 스카우트와 코치, 2군 감독으로 재임했고, 1974년 롯데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한 몫 했다.
1975년 한국 롯데그룹이 실업야구 롯데 자이언트를 창단하면서 일본인 코치 파견을 요청해 왔고, 일본 롯데에서 이듬해인 1976년 도이 코치를 보내면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실업 롯데 코치 시절 그는 도이 쇼스케 라는 본명을 썼지만, 1984년 롯데 자이언츠의 수석 코치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부터는 '''도위창'''[4] 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선수들을 지도하였다.
1980년 일본으로 돌아간 도위창은 다시 롯데 오리온즈의 스카우트와 2군 감독을 역임했고, 한국 프로야구 출범으로 실업 롯데가 해체되고 프로팀으로 재편된 롯데 자이언츠가 도위창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1984년 시즌 정식 감독에 취임한 강병철[5] 이 코칭스태프를 구성하면서 한국생활 경험이 있는 도위창에게 코치로 오지 않겠냐며 제의했는데, 도위창은 이를 수락하여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도위창은 선수들의 기술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며 롯데가 그 해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두기까지 수석 코치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다.[6] 당시 감독이던 강병철이 이후에도 "1984년의 우승에는 도위창의 역할이 컸다" 고 공공연히 말했고, 선수로 뛰던 김용희 또한 "도위창 코치는 누구보다도 야구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고, 야구를 보는 눈이 굉장히 예리했다" 라고 존경의 뜻을 표할 정도였다.
1986년 시즌 후 강병철이 계약 만료로 물러나면서 감독으로 취임한 성기영 밑에서 1시즌을 더 코치로 활동한 도위창은 1987년 시즌을 마치고 일본 롯데로 복귀하여 1988~1989년 수석 코치를 맡았지만 팀은 2년 연속 최하위에 그쳤다(...). 이후 1990년 롯데 자이언츠 코치로 다시 한국에 왔는데, 감독이던 김진영이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으로 중도 퇴진하면서, 도위창이 감독 권한대행으로 잔여시즌을 마무리 하였다.
그 해 시즌 후 롯데의 후임 감독으로 일본과 한국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도위창을 정식 감독으로 올리려는 구단측의 검토가 있었고 실제로 롯데가 KBO 측에 "규정 상 외국인이 감독을 맡으면 안된다는 내용이 있는가?" 라고 정식 문의하여 KBO는 없다고 회답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지만 당시 야구계 정서상 외국인 특히 '''일본인'''이 감독 자리에 오르는 것은 용납이 어려웠던 시기라[7] 결국 빙그레 이글스 코치를 그만둔 강병철이 감독으로 재영입 되었다. 도위창은 다시 강병철과 함께 2년을 롯데에서 활동했고, 1992년 두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맛본 후 그 해를 마지막으로 한국 야구와의 인연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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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프로야구 슝디 엘리펀츠 코치 시절.
1993~1997년까지 슝디 엘리펀츠 타격 코치 등 대만 프로야구에서도 지도자로 활약하며 한국, 일본, 대만 3국의 프로야구를 전부 경험하기도 했다.
4. 여담
한국에서의 지도자 시절 도위창은 한국어를 곧잘 해서 선수들과의 의사소통에 큰 문제는 없었고 동료 코치, 선수들과 같이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인다든가, 다같이 낚시도 갈 정도로 스스럼없이 잘 어울리며 지냈다고.
한편으로 경기 도중 화장실 앞에서 상대팀 선수와 잡담하던 선수에게 "'''상대선수는 적이다.''' 너같은 정신상태의 선수는 백전백패" 라고 꾸짖으며 숙소로 돌려보내는 공사(公私)에 엄격한 면도 있었다.
그를 아는 야구인들은 하나같이 도위창은 한국인보다도 더욱 한국 문화를 잘 이해했으며 소주와 곱창, 마늘과 고추장을 굉장히 좋아하는 일본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2011년 9월 방영된 KBS 스페셜의 고 최동원 추모 특집 방송에 출연하여 1984년도를 회상하는 인터뷰를 했는데 고령임에도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내는 듯.
[1] 도위창이라는 한국식 등록명으로 활동했기 때문에 송일수처럼 재일교포 혹은 한국계 일본인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순수 일본인이다.'''[2] 토사(현재의 고치현) 이치죠가의 가신인 도이 소산과 성이 같다.[3] 1969~1972년 당시 롯데의 유니폼은 팔 왼쪽의 오리온즈 로고와, 앞면의 LOTTE 로고를 빼곤 아무것도 없는 단색 유니폼이었다(...) 이후 1973년 시즌부터 지바 롯데 마린스로 바뀌기 전 까지 롯데 자이언츠와 같은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했다. [4] 한자는 都偉彰. 성과 이름의 앞글자는 본명 발음에서, 뒷글자는 본명의 이름자에서 따온 것.[5] 1983년 시즌 중 박영길이 감독에서 해임되며 권한 대행으로 그해 시즌을 마쳤다.[6]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7차전 당시, 경기 막판 도위창 코치에게 '''"코치님 배가 고프네요"'''("힘이 드네요" 라는 의미로 말한 듯) 라고 하자, 도위창 코치가 '''"아 그래?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단다. 힘을 내거라!"''' 라고 격려해 주었다고 한다.[7] 그래도 롯데는 도위창 이후 1990년 초반 미국인 코치 조 알바레즈를 영입했었고, 후일 제리 로이스터를 감독으로 영입하고 래리 서튼을 2군 감독으로 영입하는 등 감독의 문호를 외국인에게도 열어젖히는데 '''그나마'''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볼 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