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일수
1. 소개
한국계 일본인[3] , 즉 재일교포 야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포수. 한국명은 송일수(宋一秀).
킨테츠 버팔로즈(1969~1983)와 삼성 라이온즈(1984~1986)에서 활동하면서 한일 양국 프로야구를 전부 경험했다. 1986년을 끝으로 일본프로야구로 돌아가 코치, 스카우트로 일하다, 2013년 시즌을 앞두고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으로 한국프로야구에 컴백, 2014년 1군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나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1년만에 경질되었다.
일본 국적이기 때문에 KBO리그 최초의 일본인 감독[4] 이자, 제리 로이스터에 이은 KBO 리그 2번째 외국인 정식 감독이 되었다.[5] 또한 KBO 리그 선수 출신 최초의 외국인 감독 기록도 갖고있다.
현재는 일본 리세이샤 의료 스포츠 전문학교[6] 여자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2. 선수 경력
2.1. 일본 시절
1950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적지않은 민족차별에 시달리며 평탄치 않은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야구에 발을 들이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훈련에 매진하여 헤이안 고교[7] 시절 주전 포수와 5번 타자로 뛰면서 학교를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4강으로 이끌었다. 고교 졸업 전부터 킨테츠 버팔로즈의 스카웃 제의를 받았지만 당시 규정상 외국인은 드래프트 대상이 아니었고, 게다가 구단당 외국인 선수는 2명까지 밖에 보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미 외국인 선수 T/O를 채운 킨테츠는 재일교포인 송일수를 1969년에 연습생(정확히는 구단 직원 신분)으로 영입하여 송일수는 1년 간 킨테츠의 불펜 포수로 활동했다.
이듬해인 1970년 "일본에서 학교를 나온 외국인도 드래프트에 지원할 수 있다" 고 규약이 수정되면서 송일수는 드래프트 5순위로 킨테츠에 정식 입단할 수 있었다. 당시 감독이던 미하라 오사무는 송일수에게 직접 타격 지도를 해 주었으며, 후임 감독인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도 송일수가 주전 자리를 잡지 못하자 "보석을 썩힐 바에는 차라리 다른 팀에서 뛸 수 있도록 보내주는 게 좋겠다" 며 스스로 나서 트레이드 대상팀을 물색할 정도로 여러 감독이 그의 포수 재능을 아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킨테츠에는 츠지 요시노리, 나시다 마사타카[8] , 아리타 슈조 같은 뛰어난 포수들이 있었는 데다, 송일수는 그에 비해 타격 능력이 낮은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였던지라 주로 백업 포수와 외야 대수비 요원으로 활약해야 했다.
그렇게 14년 동안 백업으로 전전하다 결국 1983년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은퇴를 결심했는데, 그해 10월 21일 한큐 브레이브스 와의 홈경기 때 14대 17로 지고 있던 9회 2아웃 상황에서 대타로 들어섰다. 14년 동안 몇 만개의 불펜 투구를 받아주며 고생한 송일수의 퇴단 사실을 알고 있던 '''세키구치 세이지''' 감독이 마지막을 잘 장식할 수 있도록 배려를 베푼 것이었다. 세키구치 감독은 타석에 들어서기 직전 송일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멋지게 치고 들어오라" 고 당부했는데 이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상대 투수인 모리 코지[9] 를 상대로 프로 데뷔 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홈런을 날렸다. '''프로 마지막 타석에서 친 프로 첫 홈런'''인 셈이다.[10] 이미 순위가 확정된 이후[11] 남은 경기 일정을 소화 중이던지라 홈으로 들어온 송일수를 동료들은 만세를 부르며 환영했고, 그의 사연을 알던 상대팀 한큐 선수들도 박수를 치며 축하해줬다고 한다.
그렇게 유니폼을 벗은 송일수의 일본프로야구 통산 성적은 '''215경기 출장, 72타수 16안타 타율 0.222, 1홈런, 8타점''' 이었다. 출전 경기수에 비해 타석수가 눈에 띄게 적은데, 이는 선발 예고제가 없던 시절 상대 투수가 우완인지 좌완인지 알 수 없을 때 일단 선발 오더에 들어갔다가 상대 선발투수가 확인되면 본 경기에선 교체되는 이른바 '''정찰 오더'''(偵察オーダー)[12] 작전으로 선발 출장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이렇게 안습의 선수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일본에서의 현역 시절 사진은 구글에 검색해봐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유투브에 올라와있는 당시 선수 명단 동영상을 봐야 겨우 볼 정도(...) 그나마 현역 시절의 플레이를 확실하게 볼 수 있는게 하필이면 1980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랑 붙은 일본시리즈 7차전 9회 초에 병살타를 날려 팀의 패배를 결정지은 모습이다. 당시 영상 어차피 점수가 3:8이라서 따라잡기 힘들긴 했지만...
2.2. 삼성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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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리그에서 은퇴한 이듬해인 1984년, 삼성 라이온즈가 재일교포 투수 김일융을 영입하면서 김일융의 전담 포수 겸 트레이닝 코치로 함께 영입되어 한국 무대에 발을 들였다. 내심 주전 포수에 대한 욕심도 있었겠지만, 삼성의 주전 포수이던 '''이만수'''의 입지가 워낙 확고했던지라 삼성에서도 후보 신세를 면하기는 어려웠고, 애초에 플레잉코치 신분이었다 보니 백업 포수 겸 플레잉코치로 활동했다.
1986년까지 3년간 김일융의 전담 포수로 활동하며 1985년 김일융이 25승으로 김시진과 다승 공동 1위에 오르는 데 공헌했고, 한편으로는 이만수의 백업 포수로도 적잖이 활약했다. 그리고 14년동안 일본에서 뛰며 쌓은 포수로서의 경험과 노하우를 동료와 후배 포수들에게 아낌없이 전수해줬고, 불펜 포수가 모자랄 때에는 서슴지 않고 불펜에서 공을 받아주는 등 음지에서 구단을 위해 최선을 다한 바 있다.
1986년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만료되면서 김일융과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다. 한국에서의 3년간 통산 성적은 '''159경기 출장, 351타수 78안타 타율 0.222, 4홈런 40타점.'''
같은 재일교포 선수였던 장명부와는 상당히 친한 사이였다. 한국에 왔을 때 일본에 있던 가족 걱정으로 눈물을 흘리던 송일수를 장명부는 "야 '''울보'''야 또 우냐?" 라고 놀렸고, 한편으로 송일수에게 "넌 언젠가 인생의 승자가 될 것이다" 라고 격려해 줬다고 한다. 뒤에 얘기할 두산 감독 시절의 흑역사와는 상관없이 어쨌든 야구계에서 현장직 최정점인 감독이란 자리를 한 시즌이라도 맡아 봤으니[13] 그 격려가 현실이 된 셈. 장명부 항목에서 보면 알겠지만,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장명부보다 훨씬 성공한 야구인생을 살아 왔다고 할 수 있다.
3. 지도자, 프런트 경력
3.1. 일본프로야구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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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테츠 버팔로즈 코치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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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스카우트 시절[14] .
대개 일본으로 돌아간 재일교포 선수들이 초라한 말년을 보낸 것과는 달리[15] , 송일수는 계속 일본 야구계에서 종사하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생활하였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1988~1989년까지 2년간 친정 팀 킨테츠에서 불펜 포수로 활동했고, 1993년부터 2004년까지 킨테츠의 배터리코치를 역임했다. 이 시절 배터리코치로써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현역 시절 팀 동료이자 라이벌이던 나시다 마사타카가 킨테츠 감독에 부임한 직후 송일수를 배터리코치로 기용했고, "투수 보는 안목은 이시야마(송일수) 코치가 최고" 라면서 송일수를 총애했고 투수 교체나 포수 작전 등에서 송일수의 조언을 많이 귀담아 들었다고 한다.
이후 2004년을 끝으로 킨테츠가 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합병되어 해체, 통합 구단인 오릭스 버팔로즈로의 합류를 거부한 뒤 코치직을 사임하고 2005년부터 신생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소속을 옮겨 아시아 담당 스카우트로 근무했다. 김병현이 오랜 방황을 끝내고 라쿠텐으로 현역 복귀할 때 스카우트였던 송일수가 뒤에서 많이 도와줬다고 하며, 그 외에 스카우트로서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여 신생팀 라쿠텐이 제자리를 잡는데 크게 공헌하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송일수는 배터리코치와 스카우트로써 평가가 좋은 편이었다.
3.2. 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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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시즌이 끝난 후 라쿠텐 내부에서 구단 사장과 스카우트 팀 간의 갈등이 심해지며 송일수는 라쿠텐에 사직서를 던졌고, 2013년에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2013년 2군 경기에서 허리가 안 좋은 고영민을 내외야 유틸리티로, 수비 때문에 제 포지션을 잡지 못하는 김재환을 '''유격수'''로, 입스 때문에 외야수로 전향한 박건우를 내야수로 기용하는 등,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는지 이상한 운용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이 때 선수들이 부상을 당해 다른 선수들로 공백을 메꿔야 하는 상황이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상한 운용인 것은 틀림없었다.
사실 2군 감독 시절에 묻힌 사실이 하나 있었는데, 앞선 시즌에 두산에서 활약했다가 일본 라쿠텐으로 건너갔던 켈빈 히메네스의 재영입을 김진욱 감독과 두산 구단에게 강력추천했다가 히메네스의 개인적인 문제로 계약을 틀어지게 만든 사람이 바로 송일수였던 것.[16] 이는 네이버에 송일수 히메네스만 쳐 봐도 나오니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보기 바람. 때문에 2013 시즌 내내 용병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다. 감히 2군 감독이 1군 감독에게 용병을 추천한다는 것은 2군 감독으로서는 월권이지만, 송일수 자체가 워낙 듣보잡이라 당시에는 묻혔다.
3.2.1. 2014 시즌
2013년 11월 27일, 김진욱 감독이 전격 경질되면서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취임사에서 김성근 감독과 같은 야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링크 이에 국내야구 갤러리 등지에서는 '''송큰'''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3월 11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범 경기 중 초유의 '''부정위 타자 연속 두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다. 당시 상동 야구장에 전광판에 선수 리스트가 표시가 안되는 상태였다고 하나 부정위 타자 사태가 두 번이나 발생한 것은 한국어에 서투른 송일수 감독과 선수단 코칭스태프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방증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결국 송일수 감독은 12일 언론에 감독의 탓이라며 잘못을 시인하였다.
덕아웃 내 의사소통 문제도 상당수 개선된 모양. 우스갯소리를 하신다거나 심지어 자신의 대머리를 이용한 개드립을 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4월 18일 경기에서 대처가 미흡해서 대란을 자초한 것이 의사소통의 문제 때문이란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용병들과의 가족 오락관식 3개 국어 동시통역을 하는 것을 보면 의사소통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경기를 이기면 선수 칭찬을, 지는 경우에는 경우가 좀 나뉘는데, 선수가 원인제공을 확실히 한 경우는 선수 잘못이라고 하지만, 뭘 해보지도 못하고 졌다고도 말하는 등, 늘 선수 탓만 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인다.
2군 감독 경험을 바탕으로, 2군에서 엔트리 제한을 철폐하고 출전 선수 제한만 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2군에서 호성적을 기록중인 김동주를 올리지 않고 있는 부분에서는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고있다. 이에 대해 7월 5일 "늘 말한 것과 같이 필요하면 부를 것이다. 지금은 김동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라고 입장을 밝혔다. 결국 7월 9일자 기사로 김동주 본인이 1주일 후 쯤에 구단에 자신을 풀어달라고 요구할 예정이라 밝혔다. 두산에서는 이제 기회가 없을것 같다는 것이 주된 이유. 이에 대해서는 김동주 콜업 기준을 밝힐 수 없다고 답변했다.[17]
또한 6월 팀이 부진하면서 다시 까이고 있다. 단순히 선수들이 부진하다는 핑계를 대기에는 선수 기용이 석연찮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노경은인데, 누가봐도 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미루다 기어코 2014년 1호 10패 투수가 되고 나서야 2군행을 지시했다[18] . 거기다가 6월부터 시작된 부진은 반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 가운데 8월 4일에는 팀의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에이스인 더스틴 니퍼트마저 등 근육통으로 부상을 당하면서 팬들에게 까이는 수준도 높아져 있는 상황. 여기에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갔다가 복귀한 니퍼트를 올라온지 2경기만에 123구씩이나 던지게 해서 미친 듯이 까이고 있다.
결국 10월 11일,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였다. 이날 2:0으로 앞서있던 LG전 경기에서 8회 '''10실점'''이라는 경악스러운 경기력을 선사한 것은 물론, 이날 계속 부진했던 노경은을 등판시키며 상대팀 팬들에게까지도 욕을 먹고 있다. 이후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두산 프런트는 이 경기를 보고 나서 송일수를 경질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10월 16일 SK전에서 5점차로 팀이 앞서나가자 주전들을 대거 교체하였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교체 때문에 뒷말이 많았다. 클린업 트리오가 이성곤-김재환-오장훈이였으니 말 다했다. 심지어 팀은 7:5로 역전패를 당했고(...) 오죽했으면 해당 경기의 중계방송에서 1일 해설위원을 맡았던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 상임위원장은 이건 팬들을 모독하는 경기다, 감독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경기를 했냐 운운하는 역대급 극딜을 시전했다. 한편 해당 경기에 대해 일부 LG 팬들은 두산이 LG의 4강행을 막기 위해 고의 패배했다고 주장하면서 각종 게시판과 커뮤니티에서 키보드 배틀이 벌어졌다.[19]
고의 패배 논란 다음날인 10월 17일 해명 인터뷰에서 "올 시즌 점수는 60점을 주고 싶다. 내년에는 80점 이상을 받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며 내년 시즌에 대한 각오를 밝혔다. 1년 전 준우승을 하고, 최근 10년간 팀의 중심 김동주가 이탈했던 2006년과 온갖 사건사고 속에 김경문 감독이 사퇴하는 등의 내흥이 있던 2011년을 제외하고 모두 가을야구에 나간 팀이 올 시즌에 6위까지 추락한 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서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밝혀서 두산 팬들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다.
두산 팬들 입장에서는 당장 쫓아내도 시원찮을 인물이지만, 아무래도 이제 임기 1년차라 프런트로서도 오기가 남아있을 법하고, 또한 KIA 타이거즈가 선동열 감독과 2년간 재계약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유임이 유력하다는 평도 나왔지만 결국 2014년 10월 21일 전격 경질됐다. 후임은 전 두산 포수 / 배터리 코치 현 SK 와이번스 배터리코치 출신의 김태형.
그리고 2015년 두산이 14년만에 한국시리즈를 우승하고 2016년에는 정규시즌 1위-한국시리즈 4:0 승리라는 퍼펙트 우승을 해내면서 이 사람의 삽질이 더욱 빛나고 있다.
송일수의 경질이 확정되면서 경질을 예언했던 지피셜 글은 성지가 되었다.
말이 재일교포지, 엄연히 일본 국적에 한국말을 전혀 못하는데도 KBO에서는 역대 외국인 감독 중에 송일수는 제외시킨다. 어찌됐건 법적으로는 재일교포 신분이 맞고 해당 자격으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선수 생활까지 했기 때문.
3.3. 이후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일본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2017년 2월 학생야구 활동 자격을 회복해 아마야구 지도자 자격을 얻었다고 한다.
2018년 기록을 보면 일본 리세이샤의료스포츠전문학교 야구부[20] 코치로 있다고 홈페이지에 나온다. 2020년에는 동 학교 여자 야구부 감독을 맡게 됐다. 70줄이 되어서도 어찌어찌 야구인 커리어를 유지 중.
4. 평가
감독으로서의 장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에 비견되는 수준은 이순철 정도뿐이지만 그쪽은 팀 전력이 안 좋기라도 했지 이쪽은 전후 시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팀을 맡아 놓고서도 비슷한 결과물을 냈으니 더더욱 옹호의 여지가 없다.
4.1. 김진욱과의 비교
2014년 5월까지는 팀 성적이 2위를 유지하고 있어서 팬들은 송일수 감독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팀이 위기에 처할때 해야한다고 보고 평가를 보류하고 있었으나 6월 들어 팀 승률 5할이 붕괴하고 6, 7, 8, 9월 팀 승률이 2할 후반대와 3할 초반대를 맴도는 2014년 시즌과 2013년 시즌 김진욱 감독이 비슷한 시기, 비슷한 상황에서 연승을 거듭했던 상황과 비교되며 가루가 되도록 까이기 시작했다. 특히, 송일수 감독 부임 첫해인 2014년 시즌, 팀 분위기가 막장일 수밖에 없었던 2011년 이후로 3년만에 4강에서 밀려나며 팬들은 송일수 감독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송일수를 옹호하는 일부 팬들은 4강 탈락의 원인을 아래와 같이 말한다.[21]
- 두산은 2010년 이후 5월 들어서 팀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지곤 한다. 올해는 그 시기가 늦춰져 6월에 나타났을 뿐이다.
- 송일수 감독은 감독 초짜고 한국말도 잘 못한다. 높은 기량을 기대하기는 애초에 어려웠다.
- 무분별한 FA로 주요 선수를 다 팔아먹은 바람에 팀 전력이 예전같지는 않다. 올해는 우승을 기대하기 어렵다.
- 팀 사이클이 그렇다면, 왜 김진욱 시절에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비난하였는가?
- 김진욱 감독 또한 초짜감독이지만, 첫 해에는 스탯 면으로든 분위기 면으로든 이 정도로 말아먹지는 않았다. 오히려 김경문 전 감독이 쑥대밭을 만들어놓은 투수진을 하나하나 복구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말을 잘 못 한 게 이유라면 제리 로이스터란 반례면 설명이 필요할까?
- FA로 나간 선수들이 주축으로 보이나, 사실 두산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효용이 크지 않다. 이종욱, 손시헌 등은 거액을 투자하기에 나이도 많거니와 미래 전망이 불투명했다. 또한 이종욱이라면 몰라도 손시헌은 2013시즌에 이미 김재호한테 밀리고 있었다. 윤석민 등은 포지션도 겹치고 당장 필요한 자원도 아니라 놀리기 아까운 선수였다. 이는 김경문 시절 포수장사 하던 것과 유사하다. 김선우는 말 할 필요도 없다. 이런지라, 객관적으로 전력 하락은 크지 않다. 애초에 두산은 현재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두산이 '리빌딩이 필요없는 젊은 팀'이라고 자랑스러워했던 것은 다름아닌 두산 팬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것보다 더 안 좋은 전력으로 다음 해에 우승했다.
5월까지는 팀 성적이 좋으니 번트를 많이 대든 윤명준을 혹사시키는 기미가 보이든 '아직은 괜찮네' 하던 팬들이 6월부터는 못 참게 된 것이다. 김진욱도 번트를 많이 대면서 비판을 받았지만 송일수 정도는 아니었다. 송일수의 야구는 완전한 스몰볼로, 무사 1루는 물론이고 무사 2루에서의 번트 역시 서슴지 않고 있다. 1사 1루에서도 번트니 이건 뭐... 백 번 양보해서 번트 마스터 소리까지 듣고 있는 정수빈 같은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거라면 모를까, OPS 0.9를 넘긴 홍성흔과 리그 타격 4위의 민병헌에게까지 번트를 요구하고 있으니 팬들은 뒷목을 잡을 수 밖에 없다.
송일수가 번트를 대는 것은 두산이 1-2점을 아끼고 불펜에서 막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였겠지만,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김경문 말기부터 이미 두산 전력은 사상누각에 가까웠다. 제대로 된 선발 하나 없고, 김경문의 소위 '발야구'도 약빨이 다 하고, 그저 몇몇 선수의 로또빨 하나로 버티는 게 두산이었다. 임태훈 사건 훨씬 이전부터 몰락이 천천히 시작되고 있었다는 것. 김진욱은 그 욕을 먹어가며 두산의 문제 중 하나인 '선발' 로테이션을 그나마 정상으로 돌려놨다.
사실 김경문 감독 때도 두산 투수진은 그렇게까지 강하지 않았다. 다니엘 리오스와 맷 랜들의 외국인 원투펀치를 제외하면 늘 선발난에 시달렸으며 프런트가 도와주지 못했다는 말도 있지만 기묘하게 영입한 거물급 선발들도 한국인 외국인 가리지 않고 밥값도 못했다. 자체 육성한 선발은 애초에 없었고,[23] 결국 불펜을 갈아넣는 야구가 대붕괴와 감독 경질로 이어지게 된다. 이에 대한 평가는 투수코치의 책임이다 감독의 책임이다 해서 논란이 많았는데, 김경문은 NC에 가서도 최금강, 이민호 등을 죽어라 굴리는 바람에[24] 김경문 감독이 두산 투수진에 깽판을 쳐놓은 것임이 매우 자명해졌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김진욱 감독과 정명원 투수코치 시대에 와서 크게 바뀌었다. 더스틴 니퍼트가 한국에 길게 자리잡으며 믿을 만한 에이스가 생겼고, 2012시즌에는 김경문 시절 이미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던 이용찬의 선발 전환이 성공했으며, 김진욱 감독이 2군 투수코치 시절 손수 키운 노경은도 터졌다. 커리어 하이를 찍으며 등장한 김승회에 예전만은 못했으나 선발 로테이션은 채워준 김선우까지 이전과 전혀 다른 선발 야구가 가능했다. 2012년 두점베어스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역대급 물타선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최종 3위를 할 수 있었던 건 이들의 힘이 굉장히 컸다. 2013년에는 이용찬의 부상과 김승회의 보상선수 이탈, 김선우의 심각해진 노쇠화라는 치명타를 맞았으나 니퍼트의 대체 선발로 올라와 로테이션에 자리를 잡은 유희관의 등장으로 공백을 메울 수 있었다.
가끔 ERA 운운하며 2013년 두산의 투수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으니 송일수 역시 무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냐라는 의견도 있지만, '김진욱이 물려받은 투수진과 송일수가 물려받은 투수진 중 어느 쪽의 전력이 더 강력한가?' 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당연히 송일수라고 답할 것이다.''' 애초에 김진욱이 시즌을 시작할 때 두산 투수진은 그냥 '''무(無)'''에 가까웠다. 밥값하는 선발이 변변찮음은 말할 것도 없고, 임태훈 때문에 많이들 잊고 있지만 불펜도 개판 오분 전이었다. 김경문의 명성에 이바지하던 소위 KILL 라인 중 당시 그나마 살아있던 건 이용찬 혼자 아니었던가? 반면 2014년 두산 투수진은 적어도 '''밥값은 할 것'''으로 예측했다.[25] 그런데 시즌이 망했어요 수준이면 안 봐도 비디오다.
결국 두산의 투수력이 엉망임을 감안하지 않고 경기 초반 1~3회에 번트를 대는 송일수의 야구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빅이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점수 차가 얼마 나지 않으니 불펜들을 죄다 끌어 쓰는 백정짓을 하고 있고 5월의 불 붙은 타격감도 수많은 번트로 야금야금 타격감을 잃어가다 6월, 7월에는 타자들마저 완전히 헤메는 상황이다. 두산의 팀컬러였던 허슬이 사라지고 있고 도루는 성공률이 높음에도 팀도루 시즌 6위를 기록하며 뛰지 않고 있다. 송일수가 하는 두산 야구는 '두산의 야구'가 아니며 그가 하는 것은 두산이라는 팀의 특성에 전혀 맞지 않는 스몰볼이다. 이 스몰볼이 먹히기라도 하면 모를까 결과는 아시다시피 수십 번이나 승부조작을 의심할만큼 막장 오브 막장이다.
지금까지 송일수가 경기에서 보여준 것은 투수진의 소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팬들은 송일수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라고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하면 차라리 낫지... 실상은 퍼져가는 선수단을 짜내기에 급급한 것이 송일수의 야구다. 쉽게 말하면 '''백정짓.'''
게다가 그의 야수 기용은 더욱 황당하다. 6월 들어 김재호가 정신 못 차리고 원데이 원에러 수준의 수비와 시즌 병살 1위를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도 허경민은 덕아웃에서 손만 빨고 있었으며, 이원석은 타고투저 시대에 나홀로 투고타저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음에도 최주환은 덕아웃에서 놀고 있었고, 김동주는 2군에서 '김동주는 필요없다'는 말이나 듣고 있어야 했다. 송일수가 취임될 때 프런트는 '김진욱은 승부사 기질이 부족하다, 송일수가 승부사의 자질을 갖추고 고 있다'고 입을 털었으나, 송일수에게서 승부사 기질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초반에 상대 선발에게 밀려 헤매이다 이미 게임이 넘어가고 난 9회에서야 줄줄이 오재일, 최주환, 김재환 등의 대타를 내고 있는 작태로 두산팬들의 혈압을 올리기 일쑤. 시즌 영봉패만 봐도 두산이 7번의 최다 영봉패를 당하고 있을 정도로 손 놓고 당하는 것이 송일수의 야구이다.
한편 프런트가 만악의 근원이고 프런트에게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물타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두산 프런트가 막장인 것은 사실이고, 김태룡 단장이 막장인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역시 두산 야구를 오랫동안 봐온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최소한 '''선수 운용 면에서는 원래 저런 프런트였다.''' 김동주를 비롯하여 훗날 김현수, 양의지, 민병헌 등을 보면 알듯이 고참 푸대접으로 악명높은 게 두산 프런트다.[26] 그놈의 화수분 야구도 사실은 '''돈 아끼려고 고참들 트레이드시켜 젊은 선수들만 남았기 때문에'''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27] 오히려 김진욱 시절에 팀을 이끌었던 멤버들은 소위 문차일드라 불린 김경문 시절의 주역 선수들에 가려저 빛을 못 보던 선수들이 대거 부각을 나타난 결과였다.
7월 들어 잇다른 불펜 투수들의 혹사, 선발 투수의 불펜 돌려막기,[28] 재활해야 할 선수들을 그대로 1군에 기용하는 것 등 팀이 망가지는 모습이 객관적으로 봐도 분명해지니 김진욱을 그리워하는 팬들이 늘어나고 있다만, 경질한 프런트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김진욱에게만 책임을 묻고 퇴진을 외치던 팬들의 책임도 없다고는 못하니 자업자득일 뿐이다.
거기다가 10월 1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 경기에서는 일부러 져주기 논란까지 보여주면서 두산을 넘어 프로야구 팬 전체한테 논란거리를 안겼다. 이 날 송일수 감독의 선수 기용은 라이벌 LG의 4강행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두산이 SK에 패하면서 정규시즌 4위는 17일 최종전에 결정나게 됐다. 4위 LG가 롯데에 승리할 경우 자력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되는데 5-0으로 앞선 4회에 주력선수를 거의 다 교체하고 막판에는 노경은을 올려 노경은의 시즌 최다실점과 패를 안겨주는 불명예까지 안겨준다. 그날 해설을 맡았던 김인식 감독은 “두산은 팬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선수들은 그렇게 했는데 송일수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경기는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할 정도.
4.2. 진실
사실 송일수가 벌인 일에 비해 욕을 이상하리만치 덜 먹고 있는 '''진짜 이유'''는 2014년 스토브리그에서 두산 프런트가 어그로를 엄청나게 끌었기 때문. 그리고 이에 따른 반사 이익을 얻은 것에 불과하다. 즉 FA도 내치고, 있는 선수 다 내친데다가 거기에 반발한다고 감독까지 내쳤으니 두산 팬들의 분노가 김태룡을 위시한 프런트에게 집중되었고, 이렇게 선수단이 초토화 된 상황이니 두산 팬들도 송일수에게 별 기대를 안하는 상황이 된 것.
김진욱 감독의 경우 구단 내부의 뒷사정은 모른 채 2011년에 임태훈 건으로 김경문 감독이 사퇴하고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선수단의 사기가 떨어져서 일시적으로 성적이 떨어졌을 뿐이라고 생각한 두산 팬들이 앞뒤 사정을 모르고 깠다. 반면 송일수의 경우 애초에 프런트가 선수 팔아먹고 팀을 초토화시켜놓은 뒷사정을 팬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까일 뿐이다. 그나마도 백정마냥 선수진을 쥐어짜낸 주제에 가을야구조차 떨어지면서 그동안 받았던 실드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거기다 팀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정신적 지주 격인 두목곰 김동주를 자리 없다는 식으로 나 몰라라 격의 언플을 날려서 두산 팬들은 더욱 피꺼솟하게 한데다, 노경은을 무식하게 혹사시키면서[29] 타 팀 팬들에게도 비아냥을 듣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 김동주 은퇴 관련 문제는, 김동주의 이후 인터뷰나 행보 등에서 팬들의 호불호가 갈리지만, 사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송일수의 선택이 옳았다고는 볼 수 없다.[30]
그리고 일수강점기가 끝나자마자 2015년에 두산 베어스는 2014년보다 더 답이 없는 외국인들[31] 을 데리고도 김태형 감독 체제로 정규시즌 3위를 달성했고, 가을야구에서도 넥센과 NC를 연파하며 한국시리즈에서 삼성마저 꺾고 우승하면서, 그가 얼마나 무능력하고 답이 없는 감독인지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팀에 대한 졸속 운영 때문에, 일각에선 그를 조롱하기 위해 일본식 이름인 이시야마 카즈히데로 부르거나 혹은 '''일수꾼, 일수 할배, 송노망, 송영감, 쪽동님''' 등으로 부르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명선수가 명감독이 되는 것은 절대로 아니라지만 선수 생활을 할 때에도 눈에 띄지 못했을 뿐 아니라 감독을 맡으면서 더욱 처절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컴플렉스 때문에 조급함을 보인 것은 아닌가 하는 칼럼이 나왔을 정도.
4.3. 결론
결론적으로 성적과 기타 행동을 종합적으로 따져 볼 때 두말할 나위 없는 '''KBO 역대 최악의 1년차 감독'''이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종운과 비교되기도 했지만, 2020년 기준 이종운 '''따위는''' 미치지도 못한다. 이종운도 기형적인 경기 운영과 미흡한 선수 관리로 큰 지탄을 받았지만, 어쨌거나 롯데는 이종운 부임 전에도 2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이었다. 냉정하게 보면, 전시즌에 못한 팀이 다음 시즌에도 못하는 건 딱히 특이한 일은 아니다. 이종운 후에도 조원우가 2017년에 3위 한번 한게 끝.
그러나 두산은 다르다. 송일수 부임 전 김진욱 감독은 2012년 정규시즌 3위, 2013년 정규시즌 4위와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냈으며, 송일수 경질 이후 부임한 김태형 감독은 부임하자마자 팀에게 14년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선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우승'''이라는 성과로 베어스의 황금기를 일궈냈다. 참고로 6회 연속 KS 진출은 이는 왕조시절 SK가 김성근 감독 시절 2007년부터 이만수가 지휘하던 2012년까지 달성했고, 왕조시절 삼성이 선동열 시절 2010년부터 시작해 류중일 감독이 2015년까지 달성한, KBO 역사상 단 두 차례밖에 없는 기록이었다. 다시 말해, 전임자도 후임자도 모두 포스트시즌에 팀을 꾸준히 올려뒀는데 송일수만은 실패한 것. 범위를 조금 더 넓히면, 김인식 감독이 이끈 OB-두산의 황금기가 저물고 김경문 감독이 바통을 넘겨받은 2004년 이래, '''두산이 PS 진출에 실패한건 2006년, 2011년, 그리고 2014년 단 세 차례다.''' 하지만 2006년은 주축 타자 김동주의 장기부상을 비롯한 여러 악재 때문에 부침이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5할 승률을 찍고 단 한 경기 차이로 5위로 밀려난 것이었다. 때문에 보다 직접적으로 비교가 가능한건 김경문이 중간에 탈주한 2011년 정도인데, 성적만 따지면 2011년보다 2014년이 안 좋다. 그리고 아무리 마지막이 안 좋았다 해도 김경문은 재임 기간 준우승을 세 차례 기록하며 송일수는 절대 범접하지 못할 우수한 기록을 쌓았고, 팀 외적으로는 두산의 주축 야수들이 대거 참가한 08베이징 올림픽에서 대표팀을 이끌며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 두산의 인기를 크게 상승시켰고 덤으로 고영민과 김현수의 병역 문제까지 해결했다. 이렇듯 전과 비교하든 후와 비교하든 정말 아무도 따라갈 자가 없을 만큼 독보적인 역대 최악이다. 오죽하면 잠실더비 이후에 송일수에게 '빠가야로!'라고 외쳐가면서 사퇴시위까지 벌였을까.
결국 애초에 바지 감독으로 내세울 작정이었던 프런트조차도 도저히 못 버텨서 1년 만에 경질시켰다. 게다가 그동안 FA 선수 영입에 무관심하다시피 했던 두산이 큰 돈 들여 장원준을 데려오는 직간접적인 계기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운 감독이 들어오자 두산 팬들은 '''누가 들어와도 송일수만 나가면 된다'''고 말할 정도니.[32] 게다가 2015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이 우승하자 다른 의미에서 레전드 취급을 받고 있다. 어쨌든 뛰어난 전력을 가진 팀을 말아먹는 것도 능력이긴 하다(...). 이 쯤 되면 백골프, 순페이까진 아니더라도 충분히 '''금지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33][34] 다른 구단 관계자가 머리에 총을 맞던가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그와 계약을 맺을 일은 '''절대로 없으며''' 감독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야구 생활 자체를 '''아예 접어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35]
결국 계약 기간도 다 못 채우고 1년 만에 경질된 송일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가족과 함께 지낼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 점 때문에[36] 사실상의 명예직인 일본 야구 정보원 자리를 주기로 했다.
김동주의 은퇴와 관련해서도 논란이 있는 상황.[37] 김동주 은퇴 시에 나온 온갖 일련의 기사 때문에 김동주의 명성이 추락할 대로 추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팀 운영이 최악이었기 때문에, 송일수에 대해 좋게 평가하는 두산 팬은 단 한명도 없다. 심지어 극렬 김진욱 안티일지라도 송일수 편을 들진 않는다. 둘다 까면 깠지...
박동희한테 4류 감독이라고 까였다.
오죽하면 두산 베어스 홈페이지의 역대 감독 소개란에서도 대놓고 깔 정도다. 암흑기를 대표했던 이재우 감독도 나쁜 말이 없고, 항명 사태로 불명예 퇴진한 윤동균 역시 부정적으로 소개하지 않았건만...[38]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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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의 현 2군 타격코치인[39] 송재박 코치와 매우 닮은데에다가 둘다 재일교포 출신이고 성이 같아 형제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40] 이것으로 기사가 된 적도 있었다. 심지어 주장인 홍성흔 역시 이 둘이 가끔 구분이 안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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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일 두산 vs KIA 전에서 덕아웃으로 굴러 떨어지는 최재훈을 지켜보다가 파울 타구에 맞았다. 57초부터 제일 왼쪽 주목 왠지 귀엽다는 반응이 많다.
유네스키 마야와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SK 와이번스의 김용희 감독이 재계약에 실패하고 후임으로 외국인인 트레이 힐만이 오자 뜬금없이 제리 로이스터와 함께 외국인 감독의 평가 기준이 되었다.[41] 당연히 이쪽이 실패사례. 앞으로 새 외국인 감독이 올 때마다 IS만 아니면 된다는 얘기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인다.
본 문서명은 여태껏 불러왔던 송일수라는 이름 대신 한동안 일본 이름인 이시야마 가즈히데로 되어 있는데, 재일교포로서 한국에서는 한국 이름을 사용해왔음에도, 송일수를 까기 위해 그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사실을 명분삼아 문서명이 이시야마 가즈히데로 바뀌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KBO에서 뛴 한국계 일본인 야구선수들은 은퇴한지 한참이 지나고도 본명 대신 한국식 이름으로 불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42] 송일수만큼은 팬들이 이시야마 가즈히데나 IS라고 부르는 걸 보면 송일수가 '''얼마나 비호감으로 찍혔는지 알 수 있다.''' 사실 대다수의 재일교포 선수들은 은퇴 후 일본으로 돌아가서 생활하기에 현대에 들어서는 팬들의 관심에서는 다소 벗어나있고, 그러다보니 은퇴 후 무슨 사고를 쳐도 그다지 큰 뉴스가 되지는 못하다보니 딱히 더 호감이 되고 비호감이 되고 그럴만한 일이 없다. 하지만 송일수처럼 현대에 들어 한국 야구계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현역 시절을 잘 모르는 KBO 팬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고 평가받게 되다 보니 이미지가 이렇게나 깎이게 된 것. 사실 비슷하게 재일교포 출신으로 최근까지 국내에서 활동한 사례가 두 명 더 있는데, 하필 다른 두 명이 팬들에게 평가가 좋은 최일언 코치와 송재박 코치다보니 송일수의 삽질이 더 부각된 면도 있다. 어째나저째나 크보에서 감독 1년차에 짤리는 업적은 아무나 달성하는 게 아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6.1. 선수 시절
6.2. 감독 시절
[1] 한국에서는 한국명으로 활동하였으므로 등록명으로 본다. 즉 여기선 한국계라서 한국명이 아니라 외국인 선수의 등록명과 똑같이 취급.[2] 후술하겠지만 삼성 입단 당시 플레잉코치 신분이었다.[3] 다만 일본프로야구 입단 문제를 겪은 걸 보면 꽤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성인이 된 후에 귀화한 것으로 보인다.[4] 롯데 자이언츠의 도위창(도이 쇼스케)이 감독 대행까지는 한 적이 있다.[5] 그러나 일부 팬덤과 나무위키를 제외한 일반적 관점에서는 재일동포 출신 한국인 감독 취급하지, 일본인이나 외국인 감독으로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당장 이름조차 송일수라는 한국 본명으로 현역을 뛰고 감독도 했으니까.[6] 일본 고교야구의 강호 리세이샤 고교와 같은 재단이고 남자 야구부도 있다. 이 전문학교 야구부 출신의 한두솔이 kt wiz에서 뛴 적이 있다. 다만 대학야구가 아닌 사회인야구로 분류되는 학교.[7] 같은 교토 출신으로 가쓰라 고교를 나온 김성근 감독의 당초 지망교였고, 장훈 또한 고향 히로시마의 고등학교로부터 입학을 거부당했을 때 야구를 계속하고자 전학가고 싶어했던 대단한 야구 명문 학교였다(만약 헤이안 고교가 학기 중에도 전학생을 받았다면 장훈은 나니와 상고가 아닌 헤이안에 들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이 학교 출신의 유명 선수로는 역시 재일교포 출신으로 한신 타이거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한 히야마 신지로(황진환) 등이 있다.[8] 야구 감독, 해설가 및 평론가로 킨테츠 버팔로즈의 마지막 감독이기도 하다. 이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감독을 맡았고, 2016 시즌부터 2018년 6월까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즈의 감독 역임.[9] 現 오릭스 버팔로즈의 프로 조사 그룹장.[10] 참고로 송일수의 데뷔 홈런은 생후 12001일에 친 것이다. 여담으로 KBO 기록은 강명구의 11142일이다. 거의 3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다만 이미 오래 전 양대리그 초창기 때 무려 '''35세'''에 데뷔해 마이니치, 한큐 등에서 강타자로 활약한 도쿠라 카츠키 등이 있어서 최고 기록은 아니다.[11] 당시 리그 순위는 세이부(리그 우승)-한큐-닛폰햄-킨테츠-난카이-롯데.[12] 우리말로 하자면 '''위장 오더(위장선발)'''. 아테우마(当て馬)라 불리기도 한다.[13] 더 말할 필요 없이, 송일수는 은퇴 후 코치, 스카우트 등 야구계에서 꾸준히 일을 해오며 오히려 선수 시절보다도 평가가 상승했고, 2020년 현재도 학원야구지만 야구계에서 여전히 종사하고 있다. 반면 선수 시절 송일수보다 훨씬 대단한 커리어를 쌓았던 장명부는 은퇴 후 야구계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못했고, 사기 혐의 피소에 이어 필로폰 투약 혐의로 '''대한민국에서 강제추방'''당함과 동시에 영구 입국금지 처분이 내려졌고, 이후 막노동 등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불안한 말년을 보내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참고로 둘은 1950년생으로 동갑이다.[14] 참고로 이 사진은 이따금씩 페이스북이나 인터넷에서 '''안경닦이 장인(...)'''이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닌다.[15] 지금도 야구 평론가, 해설가로 활약 중인 김일융과 더불어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다른 재일교포 선수의 경우, 장명부는 한국에서 번 많은 돈을 다 날리고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로 일했지만 얼마 못 가 유니폼을 벗은 후 마약 사건에 연루되어 한국에서 영구 추방당한 뒤 일본에서 어렵게 살다가 2005년에 사망했고, 해태 타이거즈에서 뛴 김무종은 삼성 라이온즈 코치까지 지냈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트럭 운전으로 생계를 잇고 있으며 같은 팀에서 배터리를 이룬 주동식은 사업가로 성공하긴 했으나 2012년 성매매 업소를 운영했다는 혐의로 쇠고랑을 차는 흑역사를 남겼다. 더 안습인 것은 김성길은 혹사로 몸이 망가진 상태에서 생활고에 시달리며 주유소 직원으로 일하던 2001년 1월 업무상 횡령 혐의로 구속되었다. 홍문종이나 이영구처럼 일본 복귀 후의 행적이 불명인 경우도 있고.(이영구는 2017년에 뒤늦게 근황이 밝혀졌는데, 도쿄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며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하지만 야구인으로써의 인생만 비교하자면 60대가 될 때까지 계속 지도자나 프런트 업무를 해 온 송일수에 비하면 밀린다.)[16] 참고로 2010 시즌 두산에서 활약한 히메네스를 눈여겨 보고 그를 라쿠텐으로 데려온 사람이 당시 라쿠텐 스카우트 담당이었던 송일수였다. 때문에 본인이 히메네스의 몸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있다며 히메네스의 재영입을 두산 구단에 적극 추천한 것.[17] 기사 내용을 보면 그 와중에 "홍성흔도 몇 년이 지나면 이런 시기가 올 것이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18] 그러나 이 부분은 아무리 송일수라도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한 것이, 노경은이 없으면 선발 로테이션이 아예 돌아갈 수 없다. 물론 송일수의 백정짓으로 인한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결국 새 용병인 마야와 계약하자마자 노경은을 2군으로 보내버렸다.[19] 근데 상식적으로 고의패배를 할거면 10월 15일 sk전도 져줬어야 했는데, 그 경기는 이겼다. 그냥 송일수는 시즌 내내 하던 병신같은 야구를 똑같이 했을 뿐이었고, 그래서 두산이 준우승-6등-우승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20] 전문학교 야구부지만 대학야구가 아닌 사회인야구 팀으로 분류. kt wiz 출신 한두솔이 이 학교 출신이다.[21] 옹호하는 팬들이 있다는 것이 믿기 힘들지만 실제로 있었고, 6월 자멸이 있기 전까진 그 수도 많았다. 애초에 김진욱도 나중에 재평가되었지만 당시엔 욕을 꽤나 들어먹던 감독이었기 때문에, 후임이었던 송일수가 낫다고 생각했던 것. 물론 6월에 폭망하고 2014년 이후 두산의 행보를 보면 옹호할 거리가 없는 감독이다. 이제는 옹호하던 팬들에게도 금지어가 되었다.[22] 사실 김진욱은 투수를 이상하게 오래 끌고 가다 사단이 난 경우가 꽤 있었다. 반대로 송일수는 타이밍이 아니다 싶으면 닥치고 교체하는 성향이 있었고, 초반 타격이 대박친 것과 결부되어 성적이 좋게 나왔던 것이다. MLB파크에서도 초반 송일수 평가가 좋을 때 김진욱의 투수교체 타이밍과 비교해서 평가하는 글과 댓글이 꽤 있었다. 물론, 6월 이후로는 투수교체 면에서도 김진욱보다 더 엉망이라는 게 증명됐지만.[23]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동시대 감독 중 김경문보다 선발 육성을 못 하는 감독은 존재하지 않을 정도.[24] 심지어 이민호같은 경우는 임태훈이 구르던 형국과 너무나도 비슷하다.[25] 올라오면 QS 정도는 장담할 수 있는 선발투수 3명, 볼 때는 똥줄타지만 스탯은 나쁘지 않았던 불펜투수 4명. 뼈대는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26] 사실 김동주는 이후 자업자득이었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27] 물론 고참 선수들이 팀을 떠난 후 젊은 선수들이 그 자리를 제대로 메우지 못하면 그대로 팀 성적은 망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팀 성적이 나오는 것을 보면 두산이 확실히 선수를 잘 발굴해내긴 한다.[28] 니퍼트 본인이 선발 등판일 외에 하는 뭄풀기 공 30개 던지기를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등판한 것이지만 니퍼트가 불펜으로 나서야 할 만큼 얼마나 투수 운영이 개판인지 잘 보여준 사례다. 그리고 니퍼트가 자진등판하여 내보낼 투수가 없어서 3일 후에 다시 선발로 세워야 할 정도였다. 그나마 그 기간에 올스타 브레이크가 포함되어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시즌 중에 퍼질 뻔했다. 그리고 당연히 송일수는 까였다. 그리고 니퍼트는 이렇게 구른 대가를 다음 시즌에 치러야 했다.[29] 노경은은 2013년 정규시즌에서만 180이닝을 던졌고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하면 200이닝을 넘겼던지라 김진욱 감독이 2014년에는 관리를 시킬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곧바로 경질되었고, 뒤이어 부임한 송일수가 무작정 굴리면서 '''시즌 ERA 9점대 선발'''이라는 희대의 막장 투수로 만들어버렸다.[30] 김동주가 2군으로 내려온 초기 의욕 저하로 2군에 불성실하게 있었고, 리포트에 불필요한 선수(전력외)로 냈다. 1군 감독이 된 뒤에는 당연히 2군 감독 시절의 불성실한 김동주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김동주는 성실하게 임하고 있었고, 2군 감독의 인터뷰도 이를 뒷받침했다. 한마디로 자기가 심사가 뒤틀려 안 쓴 거고, 이걸로 송일수의 행보를 재평가한다는 건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김동주가 2군을 맹폭할 때 조범현이 김동주의 정신적인 면에서 괜찮아졌다 판단하여 KT에 기회를 주려고 했던 점까지 생각하면, 두산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선수를 자기 2군 시절 잠시 본 것만으로 판단해서 두산에 큰 해를 끼친 것이다.[31] 기대를 받으며 외국인 최고 계약을 따낸 니퍼트는 시즌 절반을 드러누우며 90이닝을 소화하는데 그쳤고, 이 부분은 사실 일수강점기의 여파라는 데 부정하는 팬이 없을 것이다. 마야는 노히트 노런 이후 급속도로 퇴물화, 스와잭은 시즌 내내 2프로 부족한 모습만 보이다가 가을야구가 시작되자마자 아프다고 드러누워 버렸다. 루츠와 로메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32] 실제로 2011 시즌 후 김태형 당시 코치가 감독 선상에 올라 있을 때에는 별로 좋은 소리를 못 들었다.[33] 즉 이 둘은 해당 팬덤에게 있어 아예 '''감독 취급도 못 받는 신세이다.'''[34] 굳이 더하자면 한화 시절의 김성근이 있다. 뭐 두산 팬들에게야 이시야마 감독이 소위 KBO 3대장을 뛰어넘는 최악의 감독이겠지만, 굳이 수치적인 기준을 제시해보자면 백인천은 8888577, 이순철은 6668587667, 김성근은 5886899678의 핵심이다. 두산이 다행히 빨리 잘라버려서 저런 일을 막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김성근은 LG의 비밀번호에 크게 관여하기까지 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순철이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역시 지분이 크므로 도찐개찐. 그나마 백인천은 롯데에서 역대급으로 말아먹은 탓에 취급이 저렇게까지 떨어진 것이지 LG의 첫 우승을 안겨줬으며, 삼성의 비밀번호를 끊고 이승엽 발굴 등, 리빌딩을 한 공이라도 있다.[35] 이후 두산의 행보 등으로 인해 야구에서 감독의 영향이 별로 없다는 말에 대해 흔히 반례로 이용되는(...) 사례이기도 하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감독이 잘하기는 어려워도 악영향을 끼치긴 쉽다고 보면 될듯.[36] 사퇴가 아니라 경질이므로 당연히 지급해야 한다. 계약 위반을 한 측에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런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37] 이 점에 대해 위의 각주에서도 분명 밝혀 놓은 것이지만, 김동주가 2군에서 변화를 겪은 부분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있고 송일수의 개인적인 판단으로 보이기에 맞다고만 볼 순 없다. 조범현과 황병일 2군 감독의 증언에 따르면 2014년 김동주의 2군은 성실성이 있다 판단되기 때문이다. 사생활과 관련되어 박동희 등의 글 등으로 불확실한 부분까지 확대 재생산된 부분이 크다. 기용조차 않았던 점 또한 송일수의 판단보단 김태룡 단장의 지시였다는 의견도 있다.[38] 이는 KBO 첫 선수 출신 감독이라는 의의도 있고, 항명 사건만 빼고 보면 감독으로서의 성적도 나쁘진 않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좋게 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면 저런 소개 멘트가 나와도 딱히 이상하진 않다.[39] 송일수 시절에는 1군 수석코치였다.[40] 그러나 이 둘이 성이 같고 제일교포 출신이라 해도 송일수 감독의 일본식 성은 石山(이시야마)이고 송재박 코치의 일본식 성은 요시모토(吉本)다.[41] 이쪽은 외국인 감독으로서 한국시리즈 '''우승반지'''까지 획득한만큼 외국인 감독의 또다른 평가 기준이 될지도 모른다. 힐만보다 더 잘했다는 평가를 들으려면 통합 우승은 해야 한다는 식으로.[42] 심지어 순수 일본인인 도이 쇼스케조차도 한국에서 코치로 있던 시절 등록명인 도위창으로 불린다. 보통 외국인 선수나 코치들도 본명이 어떻든 그냥 KBO 등록명으로 불린다. 물론 KBO에서 뛴 적 없는 선수는 한국 국적을 대놓고 유지해도 일본 이름으로 부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