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룡

 

[image]
[image]
'''과거'''
'''말년'''
1. 개요
2. 상세
3. 작중 행적
3.1. 과거
3.2. 현재
4. 강함
5. 관련 문서


1. 개요


[image]
웹툰 고수의 등장인물이자 주인공 강룡의 스승. 작중 시점으로부터 약 30여년 전[1] 파천문이라는 문파와 홀연히 나타나[2] 불과 3년만에 천하무림을 통일 직전까지 갔으며 별호는 '''파천신군'''(破天神君). 본명은 '''독고룡'''이다. 작중에선 본명보다는 주로 패왕 내지는 파천신군이라고 일컬어진다.

2. 상세


사파 무림의 절대자로 군림했으나 스승으로서 전작의 주인공이었던 용비의 스승 육진강보단 훨씬 모범적이다. 스승보단 사육사에 가까웠던 육진강과는 달리 독고룡은 강룡을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어받은 후계자로 여겼다.[3] 강룡 역시 스승을 소중히 여겨 강자와의 대결에는 흥미가 없음에도 스승의 원수와 관련된 일에는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인다.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트라우마에 사로잡혀 사는 용비와 별다른 인격적 결함 없이 살아가는 강룡만 비교해 보아도 두 스승의 차이는 확연하다. 용비는 육진강을 떠올리면 이를 박박 갈지만, 강룡은 귀신으로라도 다시 한번 스승님을 만나고 싶다고 그리워 하는 모습을 보면 가장 이상적인 사제 관계였다.[4]
한편으로는 한창 파천문을 이끌 시절에는 강룡이 아는 모습과는 달리 상당히 냉정하고 잔인한 인물이었던 듯 하다.[5] 강룡이 백마곡을 공격했을 때, 진짜 파천신군이었다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하는 양정학의 말을 보면 파천신군의 과거 행보는 확실히 강룡보다 잔인했던 듯하다. 막사평이 언급하기로는 '''자신이 아는 한 무고한 이들을 누구보다 많이 죽인 자가 파천신군'''이며,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해 온 다섯 마을과 하나의 성에 있는 자들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단지 본보기만을 위해 학살했다고 한다.[6]
막사평의 증언과 교룡갑이 보여준 기억이 있는 그대로 사실이라면 과거의 파천신군은 용비불패-고수 세계관에서도 손꼽히는 악인인 셈이다. 진가령 또한 "적어도... '그(파천신군)'로 인해 죄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는지 정도는 알아!" 라고 막사평과 비슷한 말을 했다.[7][8]
이런 증언들이 사실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다른 사천왕들이 보여주는 복합적인 면모[9]로 인해 절대악과도 같은 평가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이런 저런 언급들을 종합해보면 파천문을 이끌던 시절에는 무림과 관계없는 민간인'만' 건드리지 않았을 뿐이지 자신에게 반항하거나 힘을 두려워 해 항복한 자들은 거리낌 없이 학살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악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듯 하다.[10] 그러다 사패천과의 대결에서 얻은 후유증을 계기로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스포일러] 복수의 도구로써 강룡을 거두었지만 그를 키우고 가르치면서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회의감이 생겼고 나중에는 용이가 자신의 복수보다는 강룡 개인의 삶을 살길 바라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전수하고 숨을 거둔,전성기의 패왕인 파천신군 독고룡의 모습과 용이의 부모와도 같은 스승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3. 작중 행적



3.1. 과거


50년 전[11] 아수라혈교와의 전쟁인 대마교전으로 인해 중원의 정파와 사파가 크게 힘을 잃고 무림맹도 기울면서 강호는 중심축을 잃고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군소문파들의 잔류세력들이 결합해 새로운 정파연맹, 신 무림맹이 출범한다. 이들이 출범하고 20년을 넘기지 못한 시점에서 남방[12]을 거점으로 하던 새외무림의 고수 독고룡이 무림의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는 명목 하에 파천문을 이끌고 무림을 침공한다.[13]
무림출사 이후 혈교그들과 싸운 이들 혹은 독특한 무공을 쓰는 은거기인[14]들과 싸워보기를 바랐으나 혈교는 생존자가 있는지조차 불투명했고 혈교와 맞서 싸웠던 이들 중 생존자들은 속세를 떠나버렸고, 은거기인들은 찾지도 못했다. 결국 남은 자들은 이름만 거창한 자들이었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구 무림의 강자였던[15] 암존 사패천은 이미 대마교전 당시 입은 혈맥 파열 부상으로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고, 때문에 제대로 된 싸움을 펼치지 못했다. 패도의 야망도 야망이었지만 진정한 고수를 만나고 싶었던 순수한 무인으로서의 마음도 있는 듯 하고 그런 고수들을 만나지 못한 것을 상당히 안타까워했다.[16]
독고룡은 형편없이 약해진 무림맹을 압도적인 힘으로 3년만에 제압하고 중원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중원의 새로운 절대자, 패왕 파천신군으로 군림하게된다. 그렇게 무림일통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었으나 사패천을 제압하다가[17]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자신의 제자이자 파천문 사천왕혈비, 귀영, 환사, 막사평의 급작스러운 배신으로 깊은 내상을 입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채 변방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후 파천문은 사천왕의 내분으로 와해된다.
[image]
[image]
이후 강룡을 만나 그를 자신의 한을 풀어줄 제자로 키운다. 복수의 일념으로 마지막 제자인 강룡을 절대고수로 키우는데 성공하고 자신의 복수와 파천문을 세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문제는 강룡이 무림에 출두했을 때 이미 파천문 사천왕은 서로 파천문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다가 결국 모두 자멸하고 말았다고 한다.[18] 파천문 재건도 당부했건만 강룡 본인은 그럴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는 상황.

3.2. 현재


시작부터 고인이 되어 회상에서나 등장할 것으로 보였으나, 고수의 세계관에는 영혼의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끔 등장하고 있다. 송예린의 말이나 작중 묘사를 보면 현재는 유령 상태로 강룡에게 붙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으로 처음 묘사된 것은 58화. 사천왕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강룡은 복수행에 앞서 망설이고 있는 자신을 질타하는 독고룡의 환상을 보며 자신을 채찍질했지만, 진짜 독고룡은 실제로 혼백을 보는 예린에게 오히려 '''복수행을 떠나는 강룡을 말려달라고''' 송예린에게 부탁한 것으로 보인다. 예린 역시 강룡이 내심 떠나는 걸 원치 않았지만 강룡이 믿지 않을 거라며 말리지 못한다.
이후 71화에서는 사패천과 싸우면서 불살주의 때문에 힘을 제대로 쓰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리던 강룡의 뒤에서 혼령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걸 본 사패천은 놀라워하면서도 '망령 따위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라면서 물러가라고 일갈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image]
[image]
74화에서 처음으로 정정하던 시절의 모습이 한 컷 공개되었다. 여태껏 파천신군은 배신당한 뒤 늙은 모습(동굴에서 강룡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모습) 혹은 실루엣으로 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파천신군이 맞는지 아닌지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19] 일단 가로막는 적들을 죽이는 잔혹한 패왕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나름 평범하게 생겼던지라... 75화에서 본인임이 확정되었다.
76화에서 사패천과의 대결이 묘사되었다. 파천신군이 우위를 점한 모양새였지만 사패천이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한 대결이었기에 그것을 눈치챈 파천신군이 배려를 해서 제대로 된 대결은 다음으로 미루자고 제안한 상황이었다.[20] 그러나 이때 자존심 때문에 사패천이 독비철주편으로 뒤에서 공격을 해 다리에 상처를 입혔지만 바로 반격을 가해 그를 격파했다.
이후 내력을 끌어올리는 강룡을 본 사패천은 파천신군이 수명을 단축시켜가며 제자에게 여태껏 모아온 내공을 모두 전수해 준것 아닌가 추측한다. 사패천의 추측이라 확실한건 아니지만 사실이라면 강룡에게 모든 것을 물려줬다고 해도 무방하다.

'''"나…로 인해 너무 많은 목숨들이 죽어갔어…. 혈겁은…내 대에서 끝내야 한다. 그러니…이, 이것이 내 마지막 유언이니라. 새겨듣거라. 나 때문에 가 살겁을 저질러서는 안 돼…."'''

'''"가 익힌 무공은…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사용하거라. 그리고 내가 남긴 힘은…내…속죄를 위해 사용해 다오….'''"

'''강룡이 불살을 추구하는 원인이 된 인물'''[21]
'''처음에는''' 프롤로그에 나온 것처럼 강룡을 통해 자신을 배신한 4명에게 복수하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말년에 들어선 자신이 일으킨 혈겁과 그로 인해 죽어간 수많은 목숨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오직 패도만을 추구했던 자신의 과거를 후회한 듯 하다. 패권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의문을 갖거나 뒤를 돌아봐서는 안되지만 자신은 그것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패도는 실패했고 제자인 강룡의 성품 역시 패도의 길을 추구하기에 어울리지 않기에 결국 과거와 복수에 대한 미련을 접고 강룡에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라'''고 유언을 남겼다.
비록 치매 때문에 어떨 때는 철저하게 4명을 응징하라고 했다가 또 잠시 후 혈겁은 자신의 대에서 끝내야 한다고 말하는 둥 하루에도 몇 번이나 유언이 바뀌긴 했지만 그가 입버릇처럼 항상 말하던 본심은 '''"나 때문에 네가 살겁을 저질러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22] 강룡은 사부의 말대로 복수 같은 건 잊어버리고 원수를 찾지도 않을테니 빙벽이 녹으면 이곳을 나가서 자신과 만두집을 차리자고 했고 파천신군은 거기에 대해 알겠다고 했으며, 임종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도 강룡에게 자신이 죽거든 이곳을 나가 바깥세상에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살아가야 한다 타일렀고 자신이 강룡에게 남긴 힘을 자신의 속죄를 위해 사용해 달라 부탁했었다. 그리고 강룡을 좀 더 빨리 떠나게 했어야 했는데 자신이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강룡을 묶어두었다면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것이 죽기 직전 파천신군이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이후 파천문의 사천왕 중 한 명인 막사평과의 싸움에서 파천신군의 과거가 조금 드러난다.[23] 강룡이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키는 막사평을 규탄하며 죽음으로 조금이나마 죄업을 덜라고 하자 강룡을 비웃으면서 '''자신이 아는 한 무고한 이들을 누구보다 많이 죽인 자가 파천신군'''이라고 막사평은 되받아친다.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해 온 다섯 마을과 하나의 성을 단지 '''본보기만을 위해 괴멸시킨''' 학살자가 바로 파천신군이며, 지금 막사평과 강룡이 싸우는 장소가 바로 그때 괴멸된 그곳이라고. 막사평이 그 말을 한 직후 강룡이 잠시 동요할 때 기습을 가하자 강룡은 역시 자신을 흔들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며 무시하고 막사평을 죽이지만 강룡의 일방적인 결론일 뿐 정황상 딱히 거짓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강룡이 막사평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하고 교룡갑이 막사평을 벗어나 강룡을 감싸자 교룡갑에 감싸인 강룡이 우연히 들여다보게 된 막사평의 기억에선 파천신군이 바닥에 엎드려 석고대죄한 막사평의 머리를 발로 짓밟고 잔혹한 미소를 짓는 장면까지 나왔다.
[image]
[image]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막사평을 작살내고 만류하는 듯한 사천왕으로 보이는 자들 역시 막사평처럼 무력화시키고 기억을 보는 강룡을 통과하고 나아가는데, 마지막까지 말리는 수하들을 뒤로 하고 강룡이 본 기억은 말 그대로 지옥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수많은 시체들로 가득한[24] 성이였으며 파천신군은 그 시체들이 가득한 성채 지붕 위에 서있었다. 곧이어 성은 붕괴하며, 악마와도 같은 눈빛의 독고룡을 보여준다. 이후 더 나온 묘사에 의하면 아예 무기를 버리고 주저앉아 항복한 자들을 말 그대로 '''지워버리며''' 두려움에 도망가는 자들 역시 모조리 죽여버리고 주변을 말 그대로 초토화 시켜버린다. 이것이 멀리 있는 누군가가 강룡에게 환술을 거는 걸로도 보였으나 그 자가 송예린의 용안에 쫓겨난 뒤로도 기억은 지속된데다가, 전후 묘사로 보아[25] 강룡을 뒤덮은 교룡갑 속의 막사평의 혼령이 보여준 기억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이어진 기억 속에서도 항복하여 목숨을 살려달라는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사부의 모습이 자신에게 겹쳐지면서 강룡은 절망해 교룡갑을 뿌리치지만 교룡갑은 다시 강룡을 감싸고 다시 감싼 교룡갑 속에서 막사평의 망령(?)이 강룡에게 '내 말이 맞지? 자신들(사천왕)이 말렸음에도 항복해온 이들을...' 이라며 다시끔 기억을 환기시키자 강룡은 사부님이 무슨 일을 했건 네놈들이 저지른 죄가 정당화될 것 같냐며 죽었으면 지옥으로 꺼져버리라고 외치며 주변을 기공으로 아예 소멸시킨다.[26]
2부 39화에서 드러난 바로는 독고룡은 강룡에게 "패도를 추구하면서 무고한 자들이나 무림에 적을 두고 있지 않는 이들에게는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말한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막사평뿐만 아니라 진가령 역시 파천신군의 손에 무고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지적했으며, 죽기 전에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시절에는 정작 독고룡 그 자신도 "나로 인해 너무 많은 목숨이 죽었다" "자신에 대해 의문을 품고 뒤돌아보았다"는 식으로 피를 토하듯 말한 것을 보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더 높은 편.
근데 애초에 독고룡이 말한 것과 다른 이들이 말한 것은 다를 수 있다. 왜냐면 전자는 패도를 행하며 적(무림인)들은 죽여도 민간인은 죽이지 않았다는 말이고 후자는 무림인들을 죽였다는 말로 파천 입장에서는 패도를 행함에 있어 방해되는 적들이 죽은 것이지만 다른 이의 입장에선 충분히 학살이고 나중에 패도를 후회하게 된 독교룡에게도 죄책감이 들 행동이기 때문이다. 강룡 입장에서도 막사평에게 듣기 전에 이미 파천이 많은 이를 죽였음을 본인에게 직접 들었으니 파천이 학살자인 것과 별개로 민간인 마저 죽였는지 어떤지는 모른다. 물론 본인이 인정했듯이 민간인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파천신군이 학살이라는 큰 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다.
종합해보면 과거엔 명실상부한 악인이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아무래도 강룡을 가르치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심경에 변화가 생겨 자신이 얼마나 미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아 후회하며 자책하고 자신의 비참한 몰골을 학살과 악행에 따른 자업자득이자 인과응보로 여기게 된 듯. 교룡갑이 보여준 민간인에게 저지른 학살의 진위는 몰라도 사실일 경우 자신의 과거를 잘 모르는 강룡에게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되었다. 네가 그렇게 결정했다면 그것으로 된 게야.'''

'''기억하거라. 이 사부가 마지막에 한 말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강룡이 해당 사실을 알게 된 뒤로 점점 전의를 잃어가며[27] 제운강과의 싸움 도중 쓰러진 탓에 다시 나타나 일어나라, '''사부의 복수는 이대로 그만 둘 것이냐'''라며 전부터 해온 말을 언급하지만, 강룡은 '''드디어 그의 일침을 거절하면서''' 그제서야 마음이 바뀌게 된 그를 보고서 더 이상 내 지도는 필요없다는 것을 알게 되며 사라진다. 이제 그는 판단하는 것을 스승의 힘 없이 본인이 판단했기에 이제 스승 없이 향하는 강룡의 목표는 불확실하게 되었다.[28]
고수 2부 75화에서 충격적인 떡밥이 던져지는데, 뜻이 맞는 동료들과 성실한 삶을 살아가던 '''강룡의 아버지'''를 뜻을 달리한단 이유로 살해하고, 그런 남편이자 아이의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한 '''강룡의 어머니'''를 살해한 인물이 바로 '''파천신군 본인'''이었음을 암시하는 듯한 묘사가 나왔다. 심지어 그렇게 살해당한 강룡 어머니의 무덤 역시 파천신군과 강룡이 은거하던 동굴 한 구석에 있는 상황. 파천신군은 그게 누군인지 확실히 말해주진 않으면서 너무나 강한 그 사람에게 복수하려면 힘이 필요할테니 파천신공을 전수받겠냐고 묻고, 강룡은 받아들인다. 어쩐 연유인지 강룡은 이 당시의 기억을 거의 잊어버린 상태로 보인다.[29][후에]
위의 학살 당시의 회상이 다시 나오는데, 파천신군이 학살한 이들은 다름아닌 '''귀의'''한 자들. 파천신군은 이들을 본보기로 죽인 것이고, 자신의 뜻에 회의를 품은 파천문 사천왕 네 명을 때려눕히고 학살을 시작한다.[30] 다만 환사의 독백에 따르면 교룡갑이 보여준 환상은 대체로 사실은 맞지만 중요한 부분을 누락하여 보여준 것이라서 숨겨진 진실이 있음이 암시되었다.
환사에 의해 조작된 기억을 송예린이 복구시켜주며 해동검문의 참사는 사천왕이 배후였음이 밝혀져서 두고봐야 할 듯.
그리고 환사의 과거 회상에서 파천신군에 대한 '''진짜 진실'''이 드러난다. 사실 파천신군이 패도를 걸은 이유는 단순히 정복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패도를 걷기로 한 이유는, 당시 썩어빠진 무림계의 환부를 도려내고 자신의 새로운 질서를 새우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이에 환술사라는 이유로 무림계에서 핍박받았던 환사는 파천신군이 자신의 '무림 파멸'이라는 비원을 이루어줄 귀인으로 생각하고 파천문 사천왕들과 함께 그를 따르게 된다.
하지만 파천신군은 해동검문의 수장이자 강룡의 아버지인 '강윤'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감화된 건지 패도를 지체하기 시작한다. 그러자 초조해진 환사는 강윤을 제거한다면 파천신군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패도를 추구할 것이라며 혈비를 비롯한 사천왕들을 설득하고, 결국 사천왕은 강윤을 죽이고 해동검문을 멸문시키고 만다.
하지만 당연히 파천신군은 크게 분노하고 사천왕들을 때려눕힌다. 그리고 자신이 패도를 추구한 이유는 무림계의 '정화'를 위해서였지 파멸을 위해서가 아니라며 환사에게 일갈한다. 즉 이전에 강룡이 교룡갑이 보여준 과거 속에서 파천신군이 사천왕들을 냉혈한처럼 짓밟는 모습은 사실 제자들이 학살을 자행하는 스승을 말리는 장면이 아니라 반대로 무고한 자들에게 학살을 저지른 제자들을 스승이 질책하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이에 환사는 파천신군이 자신의 귀인이 아니라 생각하고, 옥천비의 '조언'에 따라 몰래 사천왕들에게 환술을 걸어 파천신군을 증오하게 만들고, 그들로 하여금 결국 파천신군을 배신하게 만든 것이었다. 결국 파천신군이나 사천왕이나 환사에게 놀아난 피해자 위치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다만 파천신군 역시 피해자라 해서 완전한 선인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일단 파천신군이 패도를 추구한 것 자체는 사실이며, 파멸이 아닌 정화라는 나름의 명분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무리하게 정벌을 시도한 것도 사실이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건드리지 않은 건 사실인 듯 하지만 작품 내에서 어느 정도 악역으로 묘사되는 부활 파천문의 천곡칠살이 역시 무리한 무림 정벌을 시도했는데, 이 상황을 무림계의 전설의 구원자이자 영웅들인 신선림 측에서 지적하며 책임을 물을 것이라 한 것을 보면 똑같이 정벌을 시도한 파천신군 역시 목적이 어쨌든 무림계 측의 관점에서는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애초에 무림계라 해서 무조건 힘으로 모든 걸 결정하고 질서를 바로잡으려는 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파천신군 또한 그것을 패도라 여기고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해왔으나, 말년엔 그런 급격한 무림 정벌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살생 자체를 후회했다.'''

4. 강함


[image]
[image]

'''"만일 저기 있는 자가 패왕 파천신군이라면, 아마도 현무림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야."''' ▶우대장

'''"제가 끌어들인 자가 파천신군이었다면 어땠을 것 같습니까? 지금 이 백마곡에 살아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양정학

패림당 당원들에게 구 무림 시기 천하를 삼분했다고 하는 삼존 중 한명이자 '''무공만'''으로는 최강인 암존 독수마황 사패천을 꺾을거라는 기대를 갖게 했던 유일한 인물이자 사패천 본인 또한 대마교전 이후 유일하게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며,[31] 일평생 패배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당대의 무적자이자 절대고수. 그의 무공인 파천신공 중 천원진은 옥천비나 구휘도 기공의 극치라며 높이 평가할 정도로 뛰어난 무공이었다.
팬덤 사이에선 대체로 구 무림(용비불패) 시절의 최고수들인 열두존자들과 대등한 수준으로 짐작하는 편. 자꾸 틀리는 소리만 해서 환펠레라며 희화화되는 환사의 평가[32]는 제쳐두더라도 강룡은 열두존자 중 한 명인 암존 사패천의 투기가 파천신군 이상이라고 평가했으며[33], 혈비는 마도환생 전의 자신이 파천신군을 넘어섰다고 자평하면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파천신군과 대등한 힘을 가졌던 귀영의 힘을 가늠하지 못했던 사제를 비웃었다. 파천신군 본인부터가 혈맥 부상이 회복된 사패천을 시작으로 구 무림 시절의 열두존자라면 자신과 기량을 겨뤄볼 수 있겠다고 기대하고 반대로 사패천 역시 멀쩡한 몸상태나 하다 못해 피해를 입은 혈맥이 절반이라도 회복된다면 파천신군에게 지지 않았으리라고 가늠하기도 했다.[34]
다만, 애초에 파천신공 중 절반만을 받아냈기 때문에 사패천 또한 파천신군의 전력을 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천존의 강한 것만을 추구한다면 언젠가 더 강한 것을 만났을 때 부러질 수밖에 없다는 말 직후 파천신군을 떠올리는 사패천의 모습을 봤을 때 무공 수위에서조차 파천신군을 능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리고 작중에서 파천신군을 넘어섰다고 혈비를 추켜세우던 환사는 파천신군을 나중에 '''본인이 아는 인물 중 유일하게 '그 문'을 열어 자신의 비원을 이루어줄 재목'''으로 보았으나 혈비는 혈비의 재능과 집념은 높이 사나 '그 문'을 열기는커녕 마도환생의 경지를 넘어설 수 있는지를 불확실하게 봤을 정도로 혈비와 파천신군의 강함을 몸소 체감한 환사가 혈비를 파천신군보다 한참 아래의 그릇으로 봤다는 점에서 혈비의 말 또한 신뢰성이 간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환사는 똑같이 단을 가진 파천신군은 옥천비를 상대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상기했듯이 이는 아직 불확실한 내용이므로 파천신군의 강함은 아직까지 미지수라고 봐야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렇듯 무공 수위는 작중 최상위권으로 추측되나, 육진강과 마찬가지로 '''목숨을 건 사투에 대한 실전 경험이 부재'''하다는 큰 약점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35]
한편 마호산에 중독되고 배신까지 당해 폐인 수준이 된 몸인데다가 상당한 고령의 나이 때문에 몸 상태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던 상황에서도 성장중인 강룡을 압도했으며, 저 몸 상태인데도 강룡이 '최강의 상대'라고 말하는 등 무공의 숙련도나 노련함에 있어서 강룡보다는 뛰어났던 것으로 보인다.[36] 또한 사술에 집착하는 막사평은 까내리는 반면 귀영은 좋게 평가하는 등 꾸준한 무공의 정진을 강조하고, 정상적인 승부가 아니었던 사패천과의 일전엔 별 가치를 두지 않았던 걸 보면, 패왕 시절의 잔악한 행동과는 별개로 무공에 대한 마음가짐만은 훌륭한 인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즉 용비불패-고수 시리즈에서 거듭 강조되듯 무공의 고하가 곧 강함의 절대적인 척도는 아닌 것을 유념하면, 무공의 고하를 떠나 진정한 의미의 고수였던 것으로 보인다.

5. 관련 문서



[1] 2부 52화의 당간의 대사로 보아 대마교전이 고수 시기로부터 50년 전에 일어나 구 무림이 쇄하고 신 무림맹이 성립, 그 이후 20년을 넘기지 못한 시점에서 파천문이 득세했으니 약 30여년 전이 된다.[2] 이전까진 그리 알려지지 않은 문파로 보이며, 파천신공 자체가 독고룡 본인이 창시하였을 가능성이 있다.[3] 다만 육진강 역시 용비를 후계자로 생각하고는 있었다. 흑색창기병대를 토사구팽 하면서도 대장이었던 용비만은 대장군부의 중요 인물로 키워내기 위해 호위대까지 보내서 살려두었다. 물론 용비는 부하들이 토사구팽당한다는 사실에 격노해 죄다 없애버렸지만...[4] 파천신군이 강룡을 어렸을 때부터 키워준 것을 보아 단순히 사제 관계를 넘어서 부모로 보일 정도.[5] 작중에선 이것이 패도를 걷는 이의 기본자세라고 나온다.[6] 이를 볼때, 적어도 전성기에는 상당히 인격파탄자였을지도 모를 노릇.[7] 아이러니한 것은 진가령 역시 납치나 청부살인을 하는 살수 집단의 수장이라는 것. 다만, 진가령의 백마곡은 구휘의 직계인 만큼, 과거 사흑련이 무고한 양민들을 조직의 사적인 이익으로 죽이는 일이 없었던 것처럼 백마곡도 어느정도 지킬 선은 철저히 지켰을 것이라 예상된다.[8] 하지만 가우복이 자신이 과거 백마곡 소속이었던 출신을 밝히자 사람들의 반응이 그야말로 놀람, 혐오, 경멸 등의 감정이었던 것과 신 파천문 때문에 피난가던 백마곡의 근처 이웃 황룡촌 사람들이 파천문이 아니라 백마곡을 원망하는 것을 보면 세간의 백마곡에 대한 평가는 무서운 살수집단 이상의 평가는 못 받는 듯하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더러운 일 따위나 처리하는 집단이 그 의도를 제대로 지킬 수 있겠는가. 실제로 백마곡에는 사람 죽이는게 좋아서 있는 단원들도 있다.[9] 귀영은 배신했지만 이후에 파천문을 등지고 내선향에서 생활하였으며 환사는 본인의 비원 때문이라지만 무림맹을 포섭하고자 하였고, 혈비는 패도를 추구하면서 적어도 독고룡처럼 복종하는 세력까지 몰살하지는 않은 점과 진가령, 소진홍, 도겸이 합공을 해도 자신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자 살려줄테니 돌아가라고 하는 점.[10] 2부 114화에서 파천신군이 얼마나 악명이 높은지 드러났는데, '''송예린을 만나기 전에, 제자인 강룡이 어느 한 마을에 들렀다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파천신군에게 원한을 가진(추정) 사람들이 쫒아와 아무 죄도 없는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를 보고 분노한 강룡은 마을 주민들을 학살한 이들을 몰살시켜버렸다. 이를 보면, 강룡은 송예린을 만나기 전까지는 파천신군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에게 쫒기는 삶을 살았던 듯 하다.[스포일러] 강룡의 아버지인 해동검문의 강윤을 만나 패업이 중단되자, 환사가 나머지 셋을 '''설득'''해 배신한 것.[11] 고수 2부 52화에서 당간이 말하길 50년 전에 대마교전이 있었다고 한다.[12] 이 남방이 도대체 어디까지를 가리키는 것인지 불분명하긴 하다. 단순 중국 남방까지를 말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이렇게 잡을 경우 중국 동남 지방(산동,허난,장쑤,후난,후베이,저장,푸젠,광둥,구이저우 등)/서남 지방(티베트 자치구,칭하이,쓰촨,윈난성) 중 어딘가(...) 쯤이 그의 출신지라고 추측 가능.) 넓게 보면 동남아인 베트남 쪽까지도 잡을 수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중국 남부 중 서남부는 베트남과 맞닿아있기 때문. 실제 수하였던 막사평은 남황 출신이라고 자칭하여 베트남 인근의 중국 국경 지방 즈음이 출신일 가능성이 있다.[13] 어째서 열두존자와 비슷한 강함을 가진 무인이면서 마교와의 싸움에 참여하지 않았는지 추측 할 수 있다. 애초에 중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남방 출신의 인물인 것이다.[14] 가우복의 스승인 팔공진인 양소 등의 인물들. 덧붙여 팔공진인 양소도 열두존자중 한 명이다.[15] 그것도 단순한 강자도 아니고 단순 무공만으로는 '''천존과 지존을 뛰어넘는''' 최강자급의 거물이었다.[16] 반대로 말하면 파천신군은 전성기 시절엔 용비불패 외전의 육진강 처럼 맞수와 싸워본 경험이 끝까지 없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천원진에서 강룡을 수련시킨 것을 보면 최소한 호적수나 모든 걸 쏟아부어야 하는 강자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전혀 모르진 않았던 모양이다.[17] 다만 위에도 쓰여 있듯이 부상을 입은 상태긴 했다. 파천신군이 부상을 회복한다면 다시 싸울 기회를 주겠다며 물러나려 했지만 자존심 강한 사패천이 물러나려는 파천신군을 공격해 부상을 입히고, 분노한 파천신군이 사패천을 제압했다.[18] 사건 이후 정복했던 곳곳에 반란의 조짐이 있었고, 이때 귀영은 사태 수습은 커녕 사천왕과 틀어지기 시작했으니 혈비 혼자 반란을 진압해야했을 것이다. 반란도 반란이고 파천신군이 없어지자 정-사를 가리지 않고 파천문 잔당을 정벌했던 걸 보면 당시 혈비가 혼자 감당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훗날을 기약하며 사천왕끼리 자멸한 걸로 위장해 몸을 숨긴 모양.[19] 베댓의 추측으로 '''파황신군 현재양'''이라는 말도 있었다.[20] 당시 사패천은 파천십이신공 중 6개를 받아냈다고 한다.[21] 실제로 강룡은 사패천과의 전투 이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살초를 사용하지 않았고 심지어 사패천에게 죽기 직전까지 몰렸음에도 살초를 쓰느니 결투를 포기해버리려는 모습까지 보였다.[22] 강룡이 사패천과의 일전에서 밀리고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진 뒤에야 '죄송해요, 스승님! 죽여야겠어요!' 라며 진심으로 사패천을 상대하며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도 스승의 저 유언 때문일 것이다.[23] 파천신군을 설득해 무언가를 막으려 하는 사천왕들을 자신의 제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막사평을 시작으로 차례로 밟아버린다. 정황상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려 하는 파천신군을 막으려 했던 게 아닌가 추측 중.[24] 심지어 시체 사이엔 '''어린 아이'''와 아이를 감싼 자세로 죽어있는 여자도 있었다.[25] 강룡은 마치 기억에 저항이라도 하듯이 교룡갑을 떨쳐내려하고, 그럴 때마다 다시 교룡갑이 덮치면서 기억을 보여주려하는 모습이 반복된다. 결국 교룡갑을 완전히 흩어버릴 정도의 공격을 펼치고 나서야 멈췄다.[26] 이후 묘사를 보면 그 장소가 무슨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이 되어버렸다.[27] 파천신군에 대한 태도 역시 달라지는데, 전과 다르게 옆에서 파천신군이 혼령 상태로 꾸짖자, 짜증난다며 중얼거리고는 그냥 무시한다.[28] 일단 그 전까지 목표였던 혈비환사를 죽이러 가기는 했다만...[29] 마도환생으로 엄청나게 강해진 혈비에게 당해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교룡갑이 강룡을 치료해주며 현재의 기억을 대부분 잊어버린 강룡에게 무의식 속의 강룡의 과거를 보여준다.[후에] 밝혀진 대로 학살의 현장은 패도를 걷는다는 명분으로 사천왕이 벌인 짓으로 밝혀진다.[30] 그런데 막사평은 파천신군이 나타나자 그나마 변명이라도 해보는 다른 3명과 달리, 혼자서만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다. 그리고 다른 3명은 손으로 떄려눕히는데 막사평은 그냥 밟고 간다(...) 귀영이나 혈비에 대해선 어느정도 경고도 하고, 최소한 무시하진 않았는데 '''막사평은 무공보다 잡술에 의존하는 놈이니 언급할 가치도 없어'''라며 개무시를 한다(...)[31] 다만 사패천과의 일전을 기준으로 파천신군의 강함을 추측하는 건 무의미하다. 이 부분은 사패천이 혈맥 부상으로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한 상황이었던지라 파천신군 스스로가 "승부라고 부를만한 것도 아니었다"고 단언한 사실이다.[32] 환사는 옥천비를 무림사에 적수를 찾기 힘든 강자라 보면서도 똑같이 단을 가지고 있다면 파천신군이나 강룡이 어찌 상대할 수 있으리라 추측했다. 문제는 과거회상을 통해 밝혀진 바론 환사는 일평생 파천신군 이외에 열두존자급의 무인을 만난 적이 없고 옥천비도 식령수에 묶인 시체나 다름없는 상태였는지라 그의 판단엔 아무런 신빙성이 없다. 실제로 환사를 포함한 사천왕은 신선림은 커녕 늙은 사패천의 실력조차 완전히 오판하고 있었다[33] 강룡을 가르치던 말년의 파천신군은 이미 사패천의 독, 제자들의 배신 때문에 내상을 입은 뒤였긴 했지만 사패천 역시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고는 해도 전성기 시절의 강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게다가 강룡은 막사평과의 대전에서 독고룡이 얼마나 강한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 바 있다.[34] 물론 하술하듯 무공 수위가 승패의 전부는 아니므로 사패천이 자신한 마냥 진짜 이길 수 있었을지는 불명이다.[35] 작중에서 육진강은 용비불패 시점의 용비를 크게 상회하는 무공 수위를 지니고 있었으나, 실전 경험의 부재로 용비에게 패배했을 정도로 무공 수위에 따라 승부의 판가름이나 강함의 척도가 나뉘는 세계관이 아니다. 파천신군 또한 무공 수위는 굉장히 높지만 실전 경험이 부재하다는 것이 큰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36] 다만 이 최강의 상대 운운은 사부이기에 강룡의 습관이나 버릇등을 전부 알고 있다는 것도 염두해야 한다. 비장의 수나 성격 전부 알고 있는 스승인만큼 비슷한 수준으로 놓고 비교하면 어떤 상대보다 까다로운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