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워들로

 


'''Guiness World Reco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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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llest man ever
가장 높은 신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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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크기'''
로버트 워들로
Robert Wadlow
272cm
'''등재 날짜'''
'''출처'''
1940년 6월 27일
#

'''로버트 퍼싱 와들로우'''
'''Robert Pershing Wad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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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18년 2월 22일
'''사망'''
1940년 7월 15일[1] (향년 22세)
'''신장'''
'''272cm'''
'''체중'''
'''199kg'''
'''손 길이'''
'''32.4cm'''
'''발 길이'''
'''47cm'''
1. 개요
2. 생애
3. 사망
4. 성장차트
5. 여담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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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가운데 위치한 사람이 바로 워들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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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182cm[2])와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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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진.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태어난 거인증 인물. 공식적인 키는 '''272cm'''로 기록됐다. 여담으로 사망 직전에는 285cm라는 루머가 있다. 출처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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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의 로버트 워들로.[3]
1918년 일리노이주 얼턴(Alton)에서 5명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때까지는 정상이었으나, 갓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는데 에 이상이 생겨 생후 4개월부터 성장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그의 키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는데, 8살 때 이미 그의 아버지보다 키가 컸다고 하며 그의 키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그를 위해 새로운 책상을 준비했다고 한다.
9살 때부터 그는 유명인사가 되어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을 상대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때 한 서커스단에서 서커스 단원 입단 제의도 받았지만 가족들은 로버트가 한낱 서커스단원에서 고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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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때는 유명세를 듣고 온 당시 복싱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던 프리모 카르네라와 함께 포즈도 취했는데, 205cm인 프리모보다 키가 컸을뿐만 아니라 체격도 비슷할 정도였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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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때 그의 키는 224cm에 육박하였는데, 이 때 보이스카우트에 입단하게 되면서 그는 가장 키가 컸던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 기록되게 되며 이 사실이 신문에도 실리게 된다.[5]
또래보다 거의 2배는 큰 키에 의해서 많은 놀림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교우관계는 원만했다. 그는 11살 때 지역 YMCA에 들어가 수영과 농구를 즐겨했으며 도장 수집도 했다고 한다. 로버트는 키만 컸을 뿐이지 관심사는 대체로 그의 또래들과 비슷했다. 사진 찍기, 읽기, 우표 수집, 그리고 라디오 듣기가 그의 취미였다. 그는 학교에서 대체로 좋은 성적을 받았으며, 다른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에서 그의 성적은 더욱 좋아졌다. 물론 성적만 좋은 범생이는 아니었고 여러가지 부활동도 참여하였다. 1936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때 그의 키는 257cm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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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그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이 때 키가 너무 큰 나머지 다리가 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리 보호대를 착용하며 다니게 되었다. 그는 이 때부터 지팡이나 목발만 이용했으며, 휠체어는 일생동안 단 한번도 쓰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점점 걸어다니기 힘들어지면서, 결국 그는 대학을 자퇴하게 된다.
자퇴 이후 로버트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의 41개 주 800여 곳의 도시를 방문하는 행보를 보였다. 1938년에는 한 신발 회사를 위한 홍보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구두를 공짜로 받았다고 한다. 이것을 포함하여 그가 신었던 신발들은 정말 컸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미국의 몇몇 신발가게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1939년에는 이전의 기록 보유자인 존 로간의 키[6]를 초월하였으며, 사망 1달 전 그는 마의 272cm를 달성하고야 말았다.

3.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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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장례식의 모습. 묘비의 크기도 상상을 초월했는데, 무려 '''길이만 328cm, 무게는 450kg'''에 육박했다.
1940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한 축제 현장에서 그가 착용하고 있던 다리 보호대가 발목에 염증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패혈증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다 7월 15일, 22세라는 젊은 나이에 결국 요절하고야 말았다. 즉, '''거인증으로 인해 사망한게 아니며''' 사망 직전에도 성장 중 이었음을 감안하면 단 1년만 더 살았더라도 9피트를 넘겼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그의 장례식에는 27,000여명이 참석해 애도를 표했고 그는 자신의 고향인 일리노이주 얼턴에 안장되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도시인 얼턴에 생전 그의 키와 같은 그를 본딴 상이 있다. 미시건 주의 한 박물관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이곳에는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의 키를 비교해 보고는 한다.
미국인들 사이에서 그는 난폭할 거라는 거인에 대한 생각과는 다르게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별명이 젠틀한 거인이었다고 한다.

4. 성장차트


출처
'''나이'''
'''신장'''
'''체중'''
출생
51cm
3.8kg
생후 6개월
88cm
14kg
1세
107cm
20kg
5세
163cm
48kg
8세
183cm
77kg
9세
188cm
82kg
10세
196cm
95kg
11세
201cm
101kg
12세
213cm
109kg
13세
218cm
116kg
14세
226cm
137kg
15세
234cm
161kg
16세
239cm
170kg
17세
244cm
143kg[7]
18세
254cm
177kg
19세
257cm
218kg
20세
262cm
221kg
21세
268cm
223kg[8]
22세
272cm
199kg

5. 여담


  • 그와는 다르게 그의 가족들은 당시에도 지금도 장신이긴 하지만 정상 범위 이내이다. 출생 직후 그 수술만 아니었으면 그도 정상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182cm, 동생들은 190cm였다고 한다.

  • 거인이었던 만큼 여타 다른 신체부위도 매우 거대했다. 손바닥 길이는 32.4cm, 발 크기는 47cm였으며 윙스팬#2이 288cm였다고 한다.

  • 엄청난 대식가였다. 하루에 8000kcal 정도의 음식을 먹었다. 이건 거인증 환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 또한 9살 때 소파에 앉은 아버지를 1층에서 2층까지 소파채 들고 올라갈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 성장호르몬은 근육 발달에도 굉장한 영향을 미치는데, 근력 자체는 키워주지 않지만 근육의 전체적인 양을 늘려주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헤비급 보디빌더들이 종종 사용하는 약물들중에 하나가 성장호르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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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술했듯이 주변 사람들은 그를 "신사적인 거인"(gentle giant)라 불렀다고 했다. 생전 그의 친절한 성격을 보면 어울리는 별명이다.
[1] 패혈증으로 22세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2] 현 대한민국 20대 남성 평균 키인 173.8cm보다 훨씬 크며, 현 미국 백인 남성 평균 키인 178cm보다도 큰 편이다.[3] 당시 그의 몸무게는 30파운드(14kg)였으며 이는 '''2세''' 영아의 평균 체중에 해당한다. 이 때부터 그는 또래에 비해 빠른 성장력을 보여줬다.[4] 위의 사진 속에서 왼쪽 인물이 '''12세''' 때의 로버트 워들로, 오른쪽 인물이 카르네라이다.[5] 로버트가 보이스카우트에서 활동하던 모습을 담은 영상에선, 아이들이 놋다리 밟기와 비슷한 놀이를 하던 중 로버트의 차례에서 넘어가지를 못해 당황하다 이윽고 다리사이로 신나게 지나가는 모습이 나온다.[6] 1868~1905.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키가 8피트 8인치~8피트 9인치(264~267cm)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게 측정된 자료가 존재하지 않고 기네스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연도를 생각하면 사진이 비싸던 시절이고 흑인이 사람 대접 받지 못하던 시절 사람이다. 1897년 캔자스 시티 저널이 그의 키와 몸무게를 재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다리가 엄청 메말랐음을 알 수 있다. 몸무게가 겨우 93kg인데 어릴적에 가난해서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그 키로 훨체어를 만들어 그걸 타고 다녔으며 신문 파는 노점 일을 하고 살아갔으니 어려울 수 밖에 없었지만, 서커스 쇼이니 프릭스 쇼에서 돈 많이 줄테니 와서 구경거리로 일해라고 하는 걸 죽을 때까지 싫어하고 거부했다. 또한 자신의 키를 가지고 구경거리로 삼은 걸 매우 싫어해 제대로 측정하기도 어려웠다. 참고로 존 로간 다음으로 큰 키를 가진 사람은 1932~1969, 존 F. 캐롤(264cm)이다.[7] 이 당시 건강 악화로 인해 체중이 감소하였다.[8] BMI 지수로는 고도비만이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절대 비만이 아니며 오히려 저 키의 기준으로는 정상 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