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수아레스(스페인)

 

''' 루이스 수아레스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





''' 루이스 수아레스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color=#373a3c> '''1961 Ballond'or'''
수상
오마르 시보리
2위
'''루이스 수아레스'''
3위
조니 헤인즈
<color=#373a3c> '''1964 Ballond'or'''
수상
데니스 로
2위
'''루이스 수아레스'''
3위
아만시오 아마로
<color=#373a3c> '''1965 Ballond'or'''
수상
에우제비우
2위
자친토 파케티
3위
'''루이스 수아레스'''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06c 1964}}}'''

'''스페인의 前 축구감독'''
[image]
''' 이름 '''
'''루이스 수아레스'''
'''Luis Suárez'''

''' 본명 '''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Luis Suárez Miramontes
''' 출생 '''
1935년 5월 2일 (89세) /
[image]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라코루냐 주
''' 국적 '''
스페인
''' 신체 '''
175cm
''' 직업 '''
축구선수 (공격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감독
''' 소속 '''
<colbgcolor=#1b406e> ''' 선수 '''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53~1954)
에스파냐 인두스트리알 (1954~1955)
'''FC 바르셀로나 (1955~1961)'''
'''인테르나치오날레 (1961~1970)'''
UC 삼프도리아 (1970~1973)
''' 감독 '''
인테르나치오날레 (1975)
UC 삼프도리아 (1975)
SPAL 1907 (1975~1976)
칼초 코모 (1977~1978)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978~1979)
스페인 U-21 대표팀 (1980~1982)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1988~1991)
인테르나치오날레 (1992)
알바세테 발롬피에 (1994)
인테르나치오날레 (1995)
''' 국가대표 '''
32경기 14골(스페인 / 1957~1972)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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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명 '''
건축가 (El Arquitecto)

1. 소개
2. 클럽 경력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은퇴 이후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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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스페인축구선수 출신 감독. 1995년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감독을 맡았다.
스페인 태생 선수 중에서는 최초의 발롱도르 수상자이다.[1] 월드클래스 미드필더를 밥 먹듯이 배출했던 스페인 축구 역사를 통틀어도 그와 동 포지션에서 견줄 만한 선수로는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차비 에르난데스 정도. 선수 시절 바르셀로나와 인터 밀란에서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각각의 클럽에서도 레전드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2. 클럽 경력


갈리시아 지방에서 태어나 1953년 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에서 데뷔했다. 데뷔 전부터 엄청난 유망주로 여겨졌던 선수였고 데포르티보는 수아레스를 중심으로 팀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1년만에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첫 시즌은 주로 바르셀로나의 2군이었던 에스파냐 인터스트리알에서 뛰었고, 1955년부터는 1군 선수로 활약했다.
[image]
1960년 바르셀로나 소속 당시(25세)'''
건축가라는 별명에 걸맞는 완벽한 롱패스와 122경기 61골[2]을 뽑아낼 정도의 득점력을 보여 주면서 당시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페렌츠 푸스카스로 대표되는 저승사자 군단 시절 레알 마드리드 CF에 맞서 1959년 더블, 1960년 라리가 우승과 페어스컵을 거머쥐면서 1960년 발롱도르를 수상했다.[3]
[image]
'''1963년 인테르 소속 당시(28세)[4]'''
1961년 당시 최고의 이적료(14만 2천 파운드)를 기록하며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 세리에에서도 3차례의 우승과 2차례의 유러피언 컵을 들어올리며 라 그란데 인테르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인테르에서의 기록은 323경기 출장 55골. 1970년 UC 삼프도리아로 이적했고 197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1957년부터 1972년까지 32경기 14골을 기록했다. 메이저 대회로는 1962년 칠레 월드컵,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참가했다.
1962년 칠레 월드컵에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호세 산타마리아레알 마드리드 CF의 선수들을 귀화시키면서 참가했으나 조 최하위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1964에서는 아만시오 아마로와 함께 팀을 이끌며 헝가리소련을 연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수아레스는 이 대회에서 베스트 XI에 이름을 올렸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도 참가했으나 여기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5. 은퇴 이후


은퇴 후에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UC 삼프도리아, 칼리아리, 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등에서 감독을 맡았으며, 2014년까지도 인테르의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다. '''나이가 85세이다!''' 특히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스페인 대표팀 감독 시절 한국에게 1-3 패배라는 악몽을 안겨주기도 했다.[5]

6. 여담


한국에서는 우루과이루이스 수아레스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진다. 한국에서는 우루과이의 수아레스와 구분하기 위해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라고 풀네임으로 많이 부른다.[6] 수아레스가 핵이빨이나 다이빙 등의 더티 플레이로 비난받을 당시에는 자신과 엮지 말아달라며 불쾌함을 나타냈지만 수지가 바르셀로나 이적 후 환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는데다 기행도 줄어들어서 이 양반 또한 수아레스를 위대한 스트라이커로 인정하며 추켜세우는 중이다.
수소 페르난데스가 제노아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 전까지 스페인 선수로는 유일하게 세리에 A에서 해트 트릭을 기록한 바 있다.[7] 50여년만에 동향 출신이 해트트릭을 기록하자 수아레스는 그에게 축하한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1] 이전에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가 스페인 국적으로 발롱도르를 수상했으므로 스페인 '태생'으로 한정해야 최초이다.[2] 정확히 2경기당 1골, 경기당 0.5골이다.[3] 페렌츠 푸스카스의 수상이 정당하다고 보는 주장도 있다.[4] 아랫줄 가운데[5] 3골을 모두 미첼 한 명이 넣었으며, 대회 베스트 골 톱5에 선정된 황보관의 시속 114km 프리킥 골(일명 캐넌슛)이 나온 경기이기도 하다.[6] 우루과이쪽은 풀네임이 루이스 '알베르토' 수아레스 '디아스'로 한 자 더 많다.[7] 상대는 수소와 같이 제노아. 1963년 3월 10일자 경기였다. 팀은 6-0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