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도시)

 

[image]
'''유네스코 세계유산'''
[image]
이름
한국어
룩셈부르크 중세 요새 도시
영어
City of Luxembourg[1]
프랑스어
Ville de Luxembourg[2]
국가·위치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4년
등재기준
(iv)[3]
지정번호
699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

룩셈부르크어: Stad Lëtzebuerg
프랑스어: Ville de Luxembourg
독일어: Stadt Luxemburg
1. 개요
2. 역사


1. 개요


룩셈부르크수도가 되는 도시. 수도 이름이 국명과 같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도시 룩셈부르크에 대해서는 '''룩셈부르크 시(市)'''에 해당하는 명칭으로 불린다. 면적은 51.46 km2, 인구는 2018년에 약 11만 명 정도.

2. 역사


고대 로마가 이 지역에 2개의 주요 도로를 놓으면서 요충지가 되었다. 그 뒤로는 서프랑크 왕국의 영역에 들었는데, 이 지역에 아르덴의 지크프리트 백작[4]이 성을 쌓으면서 본격적으로 도시가 형성되었다. 지리적으로 프랑스와 독일을 잇는 주요 거점이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도 큰 시장이 들어서는 등 번영하였으며, 그에 따라 성도 계속 확장되었다.
1443년에는 부르고뉴 공국선량공 필리프가 이 지역을 정복하였으며, 이내 부르고뉴 공국의 대공 자리가 합스부르크 가문에 넘어감으로써 합스부르크 네덜란드의 일부가 되었다. 카를 5세의 퇴위로 합스부르크 가문이 둘로 나눠어졌을 때 룩셈부르크는 베네룩스 영토와 함께 스페인 합스부르크로 상속되어서 스페인령 네덜란드가 되었다.
17세기에 루이 14세에 의해 잠시 프랑스에 병합되었다가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1714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결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귀속되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후 대프랑스 전쟁이 시작되었고, 1794년 프랑스가 벨기에와 함께 룩셈부르크를 점령했다. 그래도 7개월간 버텨서 대프랑스 동맹군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했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 열린 빈 회의에서 오스트리아가 북이탈리아를 얻는 대가로 룩셈부르크와 벨기에의 종주권을 포기했다. 대신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대공을 네덜란드 국왕이 겸하게 된다. 1890년 동군연합이던 네덜란드빌헬미나 여왕이 즉위하면서 방계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의 아돌프 대공에게 상속되어 네덜란드와의 동군연합 관계가 해소되며 독립함으로써 룩셈부르크 대공은 이 도시에 머물게 되었고 룩셈부르크 대공국의 수도로 자리잡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유럽의회 사무국 본부, 유럽사법재판소, 유럽회계감사원, 유럽투자은행 등이 들어서 유럽연합의 중추 기능을 맡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시내에 외국인들이 대단히 많으며, 지역 언어인 룩셈부르크어, 독일어, 프랑스어 외에도 영어가 널리 통용된다.

[1] : its Old Quarters and Fortifications[2] : vieux quartiers et fortifications[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서프랑크 왕국 루이 2세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