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선수 경력/프로지명
1. 개요
류현진의 프로 지명 당시 에피소드. 본래의 류현진 문서나 한국프로야구/2006년/신인드래프트에서 정리하기엔 너무 길어 여기서 다룬다. 지금도 류현진이 한 번 호투할 때마다 커뮤니티 게시판 마다 "SK는 왜 류현진을 걸렀나요?", "롯데는 왜 류현진을 걸렀나요?" 라는 어그로 글이 올라오는 데 이 문서는 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2. SK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
2.1. 포수가 필요했던 SK
최초 류현진에게 접촉한 스카우트는 연고지역이기도 했던 SK의 스카우트들이었다. 하지만 SK의 스카우트는 수술의 후유증이 있는 류현진보다는 당시 타자로서도, 포수로서도 재능이 뛰어난 이재원에게 눈길을 주게 된다. 게다가 SK의 연고지역인 안산시에는 2학년때부터 두각을 나타낸 김광현이라는 또 다른 걸출한 좌완 투수가 있었다. SK 내부적으로도 주전 포수인 박경완의 FA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고 대형 포수로 기대를 모으며 입단한 정상호가 수비 등에서 아쉬운 면을 보여 즉전감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으며 상무에 입대했기 때문에 박경완 차후를 대비할 포수 자원이 필요했다. 후일 밝혀진 비하인드 스토리에 의하면 당시 SK 감독이던 조범현의 포수 중시 성향도 한몫을 했다고 한다. 물론 그 다음해 김광현을 지명할 수 있었던 것도 있고….
2.2. 동산고 출신에 대한 불안감
두번째로 SK가 동산고 출신을 뽑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고 한다. 그 시기에 스포츠동아 SK 담당 기자였던 이재국 기자가 2016년 6월 27일 라디오볼에서 밝힌 바로는 SK는 동산고 위주로 픽을 했는데, 생각보다 성장세가 더디는 경우가 많자, 당시 SK 구단 고위 간부가 동산고 지명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었다고 한다.
류현진의 동산고 선배[1] 이자 2003년 1차 1지명으로 SK에 입단한 송은범의 사례도 한 몫했는데, 송은범은 성적 문제는 둘째치고, 풍류은범이니 송은밤이니 하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풍류를 즐기는 것이 심해서 구단에서 제대로 통제를 하지 못할 정도였다. 게다가 류현진 또한 송은범처럼 노는 과로 스카우트 사이에 소문이 나 있었고, 결국 이는 SK나 롯데가 그를 포기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사실은, SK가 류현진 선수를 그때 지명하지 않았던 이유중에 하나도 그 이전에 SK가 동산고 출신들 계속 뽑았잖아요. 정상호 선수라던지 송은범 선수라던지. 그때만 해도 그 선수들이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은 거에요. 그러니까 윗선에서..그때 사장님이 좀 약간 다혈질이셨는데 "앞으로 동산고 뽑지마!" 이런식으로 나와가지고 동산고와 인연이 조금 안 좋았어요. 류현진 선수가 물론 수술도 한 전력도 있고 이러겠지만, 동산고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스카우트들이) 또 잘못 뽑았다가 (구단 고위직에게) 또 혼날수도 있으니까 그랬던 부분이 사실 있었거든요.
ㅡ 2016년 6월 27일 라디오볼.
2.3. 팔꿈치 수술 경력
마지막으로 투수에게 치명적인 팔꿈치 수술 경력[2] 까지 있었고 수술 이후 1차 지명 이전에 활약이 없었기에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필 류현진이 그나마 이름을 알린 청룡기는 '''1차 지명 이후에''' 열렸다. (류현진/청룡기 항목 참조)
2.4. 결론
결국 SK는 '성장이 더디고 군대까지 가버린 정상호를 대체할 선수가 필요하다.'란 이유로 류현진을 지목하지 않고, 대신 이재원이 1차 지명을 받았다. 정확히는 1년뒤에 프로입단하는 '''김광현'''이란 확실한 카드를 바탕으로 이재원을 고를 수 있었다는 걸 봤을 때 류거이가 아닌 류거김이라고 볼 수도 있었을 정도. 사실 SK가 김광현을 지명한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을 4회나 거머쥐었고 이 우승 4회에 모두 김광현의 지분이 상당히 컸다는 것을 생각하면 김광현을 믿고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은 선택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지만, 그 이재원이 1차 지명이라는 기대치만큼 성장을 하지 못하고 정체된 것이 문제. 김광현은 SK 와이번스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팀의 황금기를 주도했으나 류현진을 능가했다고 보기는 객관적으로 힘들게 되었고, 류현진은 MLB에서도 연 2000만 달러의 연봉을 수령하는 영예를 누리는 대한민국 동시대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으며 이재원은 2018년 이후 급격하게 하락세를 겪으면서 2020년 현재는 최악의 포수 먹튀 중 하나로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김광현이 거의 SK 와이번스를 상징하는 투수가 된 것을 고려하면 지금도 류거김이라는 말은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며, 이재원이 FA 계약 이후 초상집 발언 등을 시작으로 제대로 무너지면서 현재까지도 류거이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3. 롯데는 왜 류현진을 지명하지 않았나
그러나 청룡기를 치르면서 류현진은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해졌고, 2차 지명 순위 1번을 가진 롯데의 스카우트들은 류현진을 영입하려고 했다. 롯데팬들도 류현진의 미니홈피에 미리 환영인사로 도배를 하는 등 류현진이 롯데에 들어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2차 지명 직전에 열린 봉황대기에서 류현진이 부진을 거듭하고, 대신 광주일고의 나승현이 좋은 성적을 보이자 롯데 스카우트들은 나승현과 류현진을 놓고 고민하게 된다.
당시 고교 4대 메이저 대회의 결과를 보면, 대통령배는 한기주의 광주동성고, 청룡기는 류현진의 인천동산고, 황금사자기는 강정호와 나승현의 광주제일고가 차지했고, 마지막 대회인 봉황대기는 배장호의 갑툭튀한 활약으로 수원유신고에 우승을 내주긴 했지만, 나승현은 팀을 결승전까지 이끌었다.
후에 99쇼에 출연한 부친 류재천 씨가 밝힌 일화로 "전에 처 조카가 결혼을 하는데 같은 예식장 2층에서 조폭의 결혼식이 있었다. 조카 결혼식이 1층이었고, 결혼식 양쪽 입구에서 조폭들이 죽 서 있어서 들어갔는데 그분들이 내가 손님인 줄 알고 인사를 해 인천의 주먹이라 소문이 났다. 그리고 그게 마침 롯데 자이언츠 스카우트들 귀에 들어갔다"라고 말했는데, 류현진은 송은범처럼 노는 걸 즐겨하는 선수인데 조폭들과도 인연이 있다하면 롯데 외 어느팀이라도 그 선수를 영입하는데 주저했을 것이다. KBO 역사상 최악의 단장이라고 해도 할 말 없는 이상구조차도 류거나를 한 이유가 실적 때문이 아니었으니 류현진이 얼마나 대형 신인이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2차 지명 며칠 전, 롯데는 류현진 대신 나승현을 지목한다는 기사를 내놓았고, 이에 당시 2차 2번 지명권을 보유하고 있던 한화는 곧바로 류현진을 지명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결국 롯데의 2차 1순위 지명은 나승현이 받았고, 류현진은 2차 2번으로 한화에 입단한다.
이 당시 롯데 팬들은 류현진의 입단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던 터라 나승현으로 지명선수가 바뀌자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4. 지명 이후, 여담
이 1차 지명과 2차 지명으로 인해 2006시즌 후 SK와 롯데의 스카우트진은 모두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심지어는 조범현이 2006시즌 직후 SK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유가 부진한 성적과 더불어 류현진 대신 이재원을 선택한 1차 지명 때문이었다는 루머가 돌 정도다.[3] 후임인 김성근 감독도 SK가 류현진을 1차 지명했다면 자기가 아니라 조범현이 아직도 감독일 것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롯데의 경우 나승현이 첫 시즌에 나름 성공적인 데뷔를 하면서 SK만큼 까이진 않았지만[4] 후에 나승현이 완전히 망가지면서 엄청나게 까이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롯데의 절망적인 유망주 육성능력을 예로 들며 어차피 롯데로 갔으면 못컸을 것이라고 결과론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한화 역시 롯데에 가려졌을 뿐 짠돌이와 무능한 운영으로 유명했고[5] , 허약한 지역연고라는 불리함도 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롯데에 다음 가는 절망적인 유망주 육성 능력을 가진 팀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런 팀에서 데뷔 한 해에 MVP를 찍고, MLB에 진출해서도 확고한 선발 투수로 자리잡은 확실한 탈크보급 재능인데, 롯데로 갔다고 해도 류현진에게는 별 장애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류현진이 미국 진출 후 첫 완봉승을 거뒀을 때 SK 팬들은 자기들이 류거원을 해서 키웠다는 드립을 쳤다. LG 팬들은 LG가 류현진 기록을 만들어 줬다고 묻어가고. 그리고 이재원과 나승현은 현재까지도 류현진과 비교당하면서 까이고 있다. 이재원이야 2014시즌 타격에서 각성해서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나승현은…'''
SK는 류현진을 대신해서 인천고의 원투펀치인 김성훈과 김용태를 각각 2차 1라운드, 4라운드에 지명했다. 그러나 김용태는 1년 만에 방출되었고 김성훈도 부상과 구단과의 불화가 겹치며 입단 2년 만에 팀을 떠났다. 김성훈은 병역을 마친 후 삼성과 한화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실패했고 중학교 야구부 코치로 있다.
그리고 롯데 스카우터진은 이 때 류거나를 한 이유가 수술 경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는지, 이후에도 수술 경력이 있는 김원중을 바로 지명했다. 오랜 기간 재활을 한 덕분에 김원중은 한동안 사이버 투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나승현이 류거나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1] 3년 선배여서 학창시절을 같이 보내지는 않았다.[2] 당시 상황에 대해 류현진이 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설명한 바에 따르면 처음에 류현진의 아버지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을 때 3개월 정도 쉬라는 말을 듣고 쉬었으나 낫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찾아가 검사를 받은 결과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밝혀지자 이에 화가 난 류현진의 아버지가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에 찾아가 병원 물건 위치를 재배치했다고 한다. 해당기사.[3] 실제로 류현진이 있었다면 SK 성적은 더 올랐을 것이고 여기에 이재원을 뽑는데 조범현감독의 의중이 컸던만큼 조범현 감독에게는 매우 아쉬운 선택이였다. 실제로 SK왕조에 류현진까지 있었으면 조범현 감독의 몸값과 명예는 더욱 올랐을 것이고 김광현도 없고 정상호가 주전포수였던 2009년 한국시리즈를 생각한다면... 2007~2011년까지 5년연속 통합우승도 가능했을지 모른다. 물론 만약이라는 건 없지만 말이다. [4] 사실 SK 입장에서 류현진을 거르지 않았다면 여러 측면에서 훨씬 이득을 봤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쪽은 이재원이 주전 자리를 먹어줌에 따라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가 있다. 어쨌든 이재원을 걸렀다면 현재 SK의 포수진은 리그 최하위권을 다툴 수준이였을 것이니... [5] 임재철이 한화를 보고 롯데보다 더 한 팀은 처음이라고 한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2003년에는 스프링캠프를 제주도에서 연 전력이 있고, 2012년까지는 2군 구장이 없었다. 그 당시엔 매 해 신인 드래프티들의 WAR 총합을 계산하면 항상 맨 뒤에서 노는 구단이 롯데, 한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