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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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프랑스의 前 축구선수로 전성기 레블뢰의 숨은 살림꾼이었다. 또한 긴 금발이 인상적인 훈남 선수였다.
긴 금발을 기른 이유는 자신의 얼굴이 너무 커보인다는 때문이라고 밝혔다.
2. 클럽
2.1. AS 모나코 FC
프티는 1989년 아르센 벵거감독이 발탁하여 데뷔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전으로 자리잡는다.
프티는 AS 모나코에서 활약하면서 1996년 AS 모나코에게 리그우승을 안겨주고 타클럽으로 이적을 추진한다.
2.2. 아스날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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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클럽으로 이적을 추진하던 프티는 은사인 아르센 벵거의 제안에 따라 아스날로 이적하며 마르크 오버르마르스와 함께 아스날에 입단한다.
비에라-프티의 황금 미들진은 프리미어 리그 최고의 중원조합을 자리잡았고 첫 시즌만에 리그 우승과 FA컵 우승을 이루면서 더블을 달성하였으며 EPL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중 하나로 꼽혔다.
2.3. 아스날 이후
2000년 프티는 입단동기였던 마르크 오버르마르스와 함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였는데, 3백의 센터백으로 나서는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굴렀고, 로렌조 세라 페라 감독과 궁합도 맞지 않았으며, 잉글랜드를 그리워하게 되었기 때문에 프티는 1시즌만에 EPL로 컴백하게 되고 첼시로 이적하게 된다.
첼시에 이적하기 전 과정에서 프티는 아스날의 라이벌인 맨유의 감독 알렉스 퍼거슨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첼시로 이적하였는데 퍼거슨은 프티가 첼시로 이적하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프티는 램파드와 함께 중원을 단단히 하여 첼시의 성장에 밑바탕을 깔아주었으나 2003년 큰 부상을 당하고 다음 시즌에 클로드 마켈렐레가 첼시에 입단하자 자리를 잃게 되고 재계약에도 실패하게 된다.'''"첼시는 에마뉘엘 프티를 영입함으로써 우승경쟁을 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게 되었다."'''
부상이 심했던 탓인지 프티에게 관심을 보였던 볼턴과 리옹 보르도가 관심을 보였지만 프티는 은퇴를 선언한다.
현재 프티는 축구중계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3. 국가대표
3.1.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디디에 데샹과 함께 레블뢰의 중원을 구성하며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8강에서 이탈리아의 미드필더 디노 바조와 프란체스코 모리에로를 막아내고 중원을 사수하여 팀을 4강에 올리는데 공헌한다.
4강을 거쳐 결승에 올라간 프랑스는 호나우두의 브라질을 맞이하였는데 프티는 이 경기에서 코너킥을 올려 지네딘 지단의 헤딩 선제결승골을 어시스트하고 마지막에는 쐐기골을 기록하여 팀의 3-0 완승을 이끌면서 조국의 월드컵 최초 우승에 크게 공헌하였다.
3.2. UEFA 유로 2000
프티는 유로 2000에서 디디에 데샹과 함께 주력으로 활약했던 1998년 월드컵과 달리 급성장한 파트리크 비에라와 경쟁을 하게 되었다.[2]
프티는 출전하는 경기마다 좋은 활약을 보여주면서 팀의 유로 2000 우승을 도왔다.
3.3.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프티는 2002년 월드컵 프랑스 대표팀에 이름을 등록하였지만 당시 지네딘 지단이 부상을 당한 뒤 세네갈 쇼크를 먹으며 휘청거리던 프랑스의 조별 예선 탈락을 막지 못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강인한 정신력과 뛰어난 체력을 앞세워 무시무시한 활동량을 자랑했고 경기의 흐름을 읽을줄 알았으며, 준수한 왼발을 가져 롱패스도 뛰어났기에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도 충실히 하였고 중원에 안정감을 가져다 주었다. 게다가, 센터백 출신이다 보니 포백 보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한 레벨이었다. 오죽하면 그 비에이라가 자신과 같이 뛰어본 미드필더 파트너중 최고로 프티를 꼽을정도.
참고로, 벵거는 최근 비인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프티와 비에이라같은 타입의 선수를 찾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현실은 마켈렐레 타입의 선수를 얻었지만...
여담으로 현재 아스날에서 프티와 유사한 선수는 묀헨글라드바흐에서 온 그라니트 자카다. 참고로, 벵거가 자카를 공격적으로 사용한 이유를 보면, 프티가 가지고 있던 공격적 재능을 자카도 가지고 있지 않나 생각한 벵거의 생각일 수도 있었다. 허나, 냉정히 말하면 자카는 프티보다는 알론소에 더 가까운 선수인지라 프티처럼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기는 힘들다. 현재 자카가 아스날에서 부진하는 이유도 그 자신이 아쉬운 것이 1차 원인이지만, 벵거가 그를 알론소보다는 프티처럼 박스 가담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스타일로 활용을 하는게 크다. 실제로, 몇몇 경기를 보면 파트너인 램지나 윌셔가 더 후방에 있고 자카가 전방에 붙어 있는 장면이 종종 연출되어진다.
5. 논란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한민국의 개고기 문화에 반대한다며 마이클 오언, 에밀 헤스키, 제이미 레드냅이 한국의 개고기 문화에 대한 반대와 압력을 넣는 서명에 참여했는데, 프티도 개고기에 반대하는 생각이었는지 개고기 문제에 관해 한국 비하로 한국인에게 악명이 높았던 브리지트 바르도의 재단이 주프랑스 한국 대사관에 보내는 항의문에 영화배우 소피 마르소, 장폴 벨몽도, 나탈리 베이와 함께 서명했다. 당시 기사 [3] 웃긴 건 이들은 역시 월드컵 공동개최국이었던 일본의 고래사냥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도 않았다는 것. [4]
그리고 과거 레전드들 중에 벵거에게 비판을 많이 하는 선수 중 한명이다. 그 중 하나가, 과거 레전드들을 기용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 근데, 대부분 동조를 해주지 않는게 현 시점. 팬들은 실력이 있는 사람이 코치를 해야지, 무슨 레전드라고 코치직을 줘야 하냐?가 대다수고, 벵거 역시 융베리나 앙리에게 과거 말한 것처럼, 감독을 하고 싶으면 소규모 클럽이라도 거기서 자신만의 스텝으로 일을 해보는게 훨씬 낫다고 하는 타입. 실제로, 앙리 역시 자신과 벵거간의 논쟁이 있었다는 것을 일축하기도 했었다는... 그런데, 그 와중에 아스날 관련행사는 잘 참여하시는 것을 보면, 츤데레에 가깝다고 봐야...
6. 기타
1998 월드컵 우승직후 NHK에서도 방송한 프랑스 국대를 취재한 다큐멘터리[5] 가 있었는데, 알몸으로 마사지 받는 모습(...)이 찍혔다고 한다.
아스날을 떠나 바르사로 이적한 것을 후회했다고 은퇴이후 밝히기도 했다. 리버풀을 떠나 바르사로 이적한 쿠티뉴를 보며 본인처럼 후회중일거라고 인터뷰에서 밝힌바 있다. 두 선수의 공통점이라면 둘이 나가고 오히려 전 소속팀이 잘나갔다는 점이다.
2020년 초까지 피파 온라인 4에서 프티-굴리트-비에이라-발락 중미 적폐 4대장 지위에 있었다. 키185cm에 강한 몸싸움과 밸런스 그리고 중거리슛이 강력하며 수비력까지 갖춘 선수 는 당시 굴리트를 제외하고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약발 3이라는 치명적 단점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LH시즌이 등장하면서 제라드와 발락의 수비스탯이 대폭 상승하였고 레이카르트의 밸런스가 크게 증가하였다. 때문에 약발 4에 수비스탯, 공격스탯이 모두 좋은 제라드와 발락이 대장 자리로 올라섰고, 더 수비적인 역할에는 레이카르트가 자리잡은데다 그 외에도 중미 자리에 포그바, 더브라위너, 네드베드, 수미 자리의 경우에는 비에이라, 케디라 등이 주류픽으로 자리잡으면서 프티는 대장자리는 물론 주류픽 자리에서도 서서히 잊혀져갔다. 이후 MC 시즌이 나오긴 했지만 MC같은 경우는 선수들의 커리어에서 가장 잘한 시즌을 바탕으로 만든지라 다들 상향평준화가 되어있기 때문에 MC시즌 역시 프티보다는 다른 선수들을 더 많이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1] 1998년 FIFA 월드컵 수훈,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슈발리에 Légion d'Honneur Chevalier[2] 이에 프랑스는 데샹을 고정으로 하고 비에라와 프티가 번갈아 출전시키며 중원의 구성을 달리하여 경기를 펼치는 모습을 보였다.[3] 참고로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는 이에 대해서 한국의 전통문화일 뿐이라며 개고기 문화를 지지한다고 밝히면서 영국은 여우사냥을 왜 그만두지 않냐고 비꼬았다. 그리고 당시 FIFA 회장인 제프 블라터가 반대파인 정몽준을 깎아내리기 위해 개고기를 가지고 트집을 잡도록 유도했다는 설도 있다.[4] 이런 예들때문에 프랑스인들도 몇몇 또라이들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개고기 운운하지 않는다.[5] 세계적인 축구 정보 프로그램인 Futbol Mundial의 일본 NHK BS-1방영분일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