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터우

 

1. 소개
2. 그 외
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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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饅頭
중국 요리의 하나로 지방에 따라 (馍) 혹은 모모(馍馍)라고 부른다.
만터우[1]는 한국식 독음으로 '만두'로 읽히지만, 속이 '''없다'''. 그냥 두꺼운 밀가루 반죽을 길게 만든 다음 돌돌 말아놓은 것을 찐 모양인데, 한국에서는 '''꽃빵'''이 만터우와 비슷하지만 꽃빵[2]쪽이 훨씬 더 반죽이 얇다. 중국 현지에서 만두 달라면서 '만터우'를 달라고 하면 속 없는 만두를 갖다주니 주의할 것. 중국에서 만두를 달라고 할때는 바오쯔 혹은 자오쯔[3]를 달라고 해야 한다. 제갈량의 고사를 예로 들며 "어찌됐든 나관중 시절에는 속을 채운 포자 등도 만두라고 불렀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4]
속에 아무것도 없어서 맛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 밋밋함 덕에 중국 북부 지역 사람들은 밥 대신 다른 요리들과 함께 주식으로 먹는다.[5] 밀가루가 아닌 옥수수가루나 수수가루로 반죽해 만드는 원추형의 만터우는 워터우(窝窝头, 窩窩頭, 窩頭)라고 불린다.
이 음식들은 초기에는 발효 기술이 없어서 그냥 익힌 밀가루 덩이에 가까운 물건이었다. 밀이 처음으로 중국에 전래된 시안 지방에서 주식으로 먹는 꿔쿠이라는 솥에 구워내는 납작하고 단단한 에서 그 원형을 볼 수 있고, 섬서성의 명물빵인 파오모(泡馍)도 이런 형태의 빵이다. 이후 발효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의 부풀어오른 형태가 되었다. 그에 대한 언급은 남제서(南齊書)에 서진 영평 9년(299년)에 태묘의 제사음식중에 발효시킨 빵인 면기병(面起餠)이라는 음식이 나오며 송나라 사람 정대창도 '연번로演繁露'에서 발효된 밀가루는 부드러워진다고 이 음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만터우의 형태와 선호는 지방마다 달랐는데, 산동에서는 속을 넣지 않은 걸 먹었으나 상해에서는 만터우 속에 속을 넣어서 만든것을 선호했다. 보통은 속을 넣으면 바오쯔(包子)라 부르지 만터우로 분류하면 안되지만, 상해 사람들은 속을 넣어도 그걸 계속 만터우라고 불렀다고, 때문에 상해에서 속이 안들어간 만터우 사먹기는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로, 중국 공산당에서 식량을 아끼기 위해서 본래 속이 들어가는 만터우를 속이 없는 빵덩어리 형태로 만들어서 억지로 보급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모택동 시절에도 시골에서 서민들이 고기랑 야채로 속을 채워 지진 주식용 호떡을 끼니용으로 흔히 만들어 먹던 걸 보면 그냥 헛소리이다. 애초에 식량이 부족했다면 곡물이 제일 부족했을 텐데 곡물을 가장 많이 쓰는 속없는 빵을 일부러 보급할 리가 만무하다. 영양면은 둘째치고라도 과일껍질이든 순무든 속을 넣어야 양이 불어난다. 당연하겠지만 만터우를 공산당 차원에서 억지로 만터우라고 보급한것은 아니고, 대약진 운동 당시에 개인식당의 폐쇄조치를 단행하고 공공식당을 개설해서 운영하도록했고, 각 개인은 식사때마다 공공식당에 가서 밥을 먹도록 강제해놓았는데 공공식당이 위낙에 엉망진창으로 운영되다보니까 결국 공공식당을 폐쇄했던 일화가 와전된 것이다.
요리로는 만터우를 튀겨서(炸饅頭, 자만터우) 설탕을 넣고 졸인 우유와 함께 디저트처럼 내놓는 것과 진인(金銀)만터우라고 해서 절반은 쪄내고 절반은 튀겨내는 빵 여러개를 내놓는 요리나 앞서 언급선 섬서성의 파오모를 뜯어 양념한 양고기국물에 꿇여먹는 양러우파오모(羊肉泡饃)라는 시안(도시) 지방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요리[6], 곡식 대신 으로 만드는 밤 워터우[7], 남송 시대 간신 진회가 명장 악비를 모함해 죽이자 그 증오심에 임안(자금의 항주)의 한 간식가게에서 진회 부부의 모습을 밀가루로 때려 빚어 반죽한 뒤 그걸 하반신이 뱀처럼 보이게 등을 붙여 한쌍으로 꼬아서 기름에 넣고 튀겨 팔았다고 하는 데서 유래한 여우탸오(油條)[8] 라는 도넛과 비슷한 쫄깃한 식감이지만 단맛이 아닌 소금기있는 반찬급의 음식이 있고, [9][10] 이 음식에서 간식으로 발전한 매실호두참깨를 넣어 반죽한 뒤 튀겨 복숭아씨를 뿌려 먹는 꽈배기 모양의 단맛이 도는 빵인 텐진(天津)과 마화(麻花) 등의 다양한 요리가 존재한다. 꼬치집 같은 데서는 꼬치로 구워서 제공하기도 한다.

2. 그 외


시키면 한다! 약간 위험한 방송에서도 만터우와 비슷한 음식이 나온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팥 없는 찐빵은 무슨 맛인가를 실험하는 내용이다. 사실 만터우 자체도 그냥 보면 속 없는 찐빵처럼 생기기는 했다.
소설 대지를 보면 주인공 왕룽이 농사일을 하면서 마늘을 끼워 넣은 만터우로 점심을 해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가난한 사람이나 노동자들에게는 일상적인 메뉴였던듯 하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져서, 2000년대 중후반 중국 빈부격차를 다룬 국내 다큐멘터리를 보면 시골에서 도시로 와서 기술없이 건설업하는 막노동자들[11]의 식사 메뉴(그나마 회사에서 제공하는 공짜밥)가 1사람당 만터우[12] 4개 정도와 무짠지와 쌀죽, 또는 배추국 등이 전부로, 이것만 하루 3끼를 먹는다고 나온 적이 있다. 오죽하면 내레이션(성우 구자형)도 '''요리의 천국 중국에 안 어울리는 빈한한 아침이다'''라고 할 정도.
국내 취재진이 "맛있나요?"라고 하자 무표정하게 먹던 노동자가 "맛으로 먹어요? 굶어 죽지 않으려고 먹는 거에요." 라고 말했을 정도.[13] 그나마 같이 먹는 짭짜름한 무짠지 비슷한 것이 양념이지만 "이것만 먹고 3끼라니....."라며 경악했다. "이것밖에 없나요?" 라는 질문에 "이거라도 회사 측이 주는 식사에요. 안 주면 사먹어야 하는데 너무 비싸요. 우리 수입으로는 한끼 제대로 사먹을 수 없어요. 중국 막노동자들에게 그나마 이 만터우가 밥인게 흔하죠...."라고 답변했다. 이들이 먹고 싶은거 있냐는 국내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으로 나온 것이 궁보계정과 어항육사(위샹로스)였는데, 이것을 식당(우리네 보통 구멍가게 식당 수준)에서 이 음식에 밥과 고기를 곁들어 식사로 먹던 이들은 이 건설업 현장에서 현장감독 등의 중간 간부직들이었고[14] 사무직이나 자영업자 등의 화이트칼라 층은 더 고급스러운 식당에서 같은 메뉴지만 더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을 사먹고 있었다.[15]
2010년대에도 다를 거 없다. 하루에도 모두 합쳐 100킬로그램 이상 짐을 가지고 걸어 올라오기에도 힘든 산 위의 식당과 숙박 시설에 필요한 짐을 나르는 짐꾼들도 일단 한번 올라가서 돈받은 다음에 만터우(그나마 위에 노동자들과 달리 돈주고 사서인지 만터우가 훨씬 품질이 좋아 보인 것)만 꺼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아직도 볼 수 있다. 그것만 먹고 이번에는 식당에서 내주는 쓰레기들을 수십킬로그램 무게를 가지고 내려가서 돈받고 하는 가난한 짐꾼들을 극한직업에서 취재했던 바 있다.

3. 관련 문서


[1] 만토우 라고 읽는 경우도 있다.[2] 중국에서는 화쥐안(花捲)이라고 부른다[3] 바오쯔는 포자(왕만두나 찐만두. 즉 찐빵같은 밀가루빵 속에 든 만두), 자오쯔는 교자다.[4] 타당한 의견인 것이 설령 현재의 연구 결과대로 "만두의 발명가 제갈량설"이 틀렸다 해도 "삼국지연의가 나온 시점까지도 밀가루 반죽 안에 고기 속을 넣고 동그랗게 빚어 익혀낸 요리를 만두라고 불렀다"는 역사적 사실 자체가 여전히 남기 때문.[5] 사실 주식으로 쓰는 음식들은 맛이 밋밋해야만 한다. 그래야 질리지 않고 오래 먹을 수 있기 때문. 그냥 먹어도 맛있다는 말은 맛이 강하다는 의미로 쉽게 질리게 된다. 모든 인류와 모든 나라와 모든 지역이 똑같다. 한중일뿐만 아니라 동남아권도 기본으로 먹는 쌀은 밋밋하고 유럽과 북중남미, 중동, 남아시아 또한 주식으로 먹는 빵이 밋밋하며 옥수수 가루를 떡같이 만들어 주식으로 먹는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 지역도 밋밋하다. 각종 반찬과 곁들어 여러가지 맛으로 먹는게 똑같다.[6] 통일왕조 송의 건국자인 조광윤이 즉위하기 전 빈곤할 때 굳은 빵을 국에 적셔먹던 것에서 기인한 음식이라고 한다[7] 의화단 사건서태후가 피난가면서 유래한 음식이라고 한다[8] 당시엔 문자 그대로 진회를 튀긴다고 유작회(油灼檜)라 불렀지만 서슬퍼런 병사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유작귀(油灼鬼)라고 돌려 불렀고, 도리어 진회가 이 별명으로 불리게 된다. 당시 발음이 지금과 같았다는 보장은 없지만 실제로 檜는 guì. 鬼는 guǐ로 성조 하나 차이로 발음이 같다. 단, 檜가 진회의 이름으로 쓰일 때는 qínhuì로 발음된다.[9] 중국의 가장 일상적인 아침식사가 바로 이 튀긴 유조에 달콤짭짜름한 간장소스를 곁들이고 두유, '떠우장'이라고 하는 설탕을 넣은 콩국이나 기타 죽과 같이 먹거나 다른 음식을 싸서 먹는 것이다. 지방 요리인 삼(糁)과 함께 먹어도 일품이라 한다. 한국에서도 안산이나 구로동에서 맛볼 수 있다. 중국인들, 특히 강남사람들은 유조를 그야말로 매일매일 먹는다.[10]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의 작가로 유명한 주요섭이 쓴 소설인 인력거꾼에서도 상해에서 인력거꾼으로 생계를 꾸리는 주인공이 유조와 죽으로 아침을 먹는 장면이 나온다.[11] 당연하지만 기술 있는 전문 노동자들은 훨씬 많이 받는다. 한국에서도 정발된 플래닛 칼로리에서도 중국 이런 고층빌딩 기술자를 취재했는데 이 사람은 전문 기술자이다보니 한달에 한국 돈으로 45만원(그나마도 이게 이 직종에서 꽤 버는 축이라고) 정도 받았다. "기술없으면 내가 버는 돈 절반 이하에요..그 사람들 힘도 더 들기도 하고 고달픈데 돈도 적으니 참...불쌍하더군요.솔직히 나도 아주 많이 버는 건 아니지만..." 하지만 , 이런 그도 컨테이너를 대충 붙여 만든 기숙사에서 지내며 밥은 그나마 업체에서 주는 식당에서 먹는데 더 벌어서인지 만터우가 아닌 밥이나 국수를 주로 먹고 어쩌다가 고기를 조금 먹는다고 인터뷰했다.[12] 당연하지만 만터우도 재료에 따라 품질이 확 다른데, 이들이 먹는 만터우는 최저품이라 겉보기에도 초라했다. 싸구려라고 하면서 무표정하게 먹는 모습들을 보여준다.[13] 중국인들의 성격이 솔직한 편이라 그럴 수도 있다. 한국 같았으면 맛있다고 둘러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 뭐 반응이야 어떻든 식사가 부실해 보이는 건 마찬가지다.[14] 이들이 먹는 식사도 끽해야 1500~3000원 수준. 한국의 노동자들이 먹는 밥보다 가격이 낮았고 비주얼도 딱 한국의 일반 노동자들 밥이랑 비슷하거나 그거보다 아래였다.[15] 한 끼에 2~3만원. 한국의 서민들이 매일 먹기엔 비싸도 특별한 날에 종종 가서 먹는 식당이나 술자리를 가질 때 나오는 수준의 가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