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고기

 


羊肉
Mutton(양), Lamb(어린 양), Silver Steak(양고기 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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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각국의 양고기
3.1. 유목민족
3.2. 이슬람권
3.3. 남아시아
3.4. 동아시아
3.4.1. 한반도
3.4.2. 일본
3.4.3. 중화권
3.5.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4.1. 램 요리
4.2. 머튼 요리
4.3. 냄새 제거법


1. 개요


(羊)의 고기. 영어로는 'lamb' 또는 'mutton'이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양의 나이에 따른 구분으로, 일반적으로 lamb는 1년 미만의 어린 양을 의미하며 mutton은 1년 6개월 정도의 나이든 양을 뜻한다. 생후 6~10주된 양고기는 보통 베이비램(baby lamb), 생후 5~6개월짜리는 스프링램(spring lamb)이라고 한다. 다만 양의 특성상 육용과 양모, 젖 등의 부산물을 얻는 용도가 갈리는 이 어중간한 시기에 도축되는 일이 별로 없다. 한글 및 한자로는 구분없이 그냥 '양고기', '양육(羊肉)'이라고 부른다.[1]

2. 특징


늙은 양(Mutton)의 경우, 자라면서 지방질에 카프릴산, 펠라르곤산이 축적되면서 노린내[2]가 난다.
이 늙은 양고기 노린내에 적응하지 못하면 꽤 먹기 힘들지만,[3] 늙은 양고기에 익숙한 유목민들은 이 특유의 노린내에서 오히려 구수함을 느낀다고 한다. 맛은 이 노린내를 견딜 수 있으면 좋은 편으로 볼 수 있으나, 다소 익숙하지 않은 맛에 노린내까지 겹쳐지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다. [이]
앞서 말했듯, 이 노린내는 성숙한 양고기의 지방질과 피에서 나는 향이며, 이 향을 약화시키기 위해 고기의 지방질과 피를 최대한 제거하거나 후추, 민트, 로즈마리, 고수 등의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이 독특한 냄새 때문에 램은 잘 먹어도 머튼(생후 12~20개월)은 도저히 못먹는 사람들이 많다. 거기에 더해 다양한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거나 특정 향신료에 거부감이 있으면 이 머튼의 냄새를 잡기 위해 만든 향신료 때문에 머튼을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머튼의 맛에 익숙해진 입장에서는 버터의 고소한 맛이 나는것과 동시에 달짝지근한 늙은 양고기 특유의 풍미가 더해져서 머튼에 맛을 제대로 들인 사람이 램을 먹으면 뭔가 2% 부족한 맛과 향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고기든 늙은 고기의 풍미를 어린 고기가 따라갈 수는 없다.
특히 인도식 커리 등에 넣어 먹을 경우 강한 향신료와 고기의 풍미가 조화를 이루고 쿠민과 카다멈 등의 향신료가 누린내를 잡아주기 때문에, 향신료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경우라면 머튼에 익숙하지 않아도 상대적으로 쉽게 즐길 수 있다.
양을 많이 치는 유목민들은 이 머튼을 매우 좋아하나, 고기 자체가 쇠고기돼지고기에 비하면 질겨서 뜨거운 상태에서 바로 먹어야 부드럽다고 한다. 노린내를 배제하면, 맛이나 식감 자체는 돼지고기와 쇠고기 중에서는 쇠고기와 비슷한 편이다. 풍미를 제외하면 램은 어린 송아지 고기와, 머튼은 일반 육우 고기와 식감과 맛이 비슷하다.
색은 소고기보다 엷으나 돼지고기보다 진한 선홍색이다. 육즙이 풍부하고 기름이 많은 편이여서[4] 향신료와 조미료를 잘쳐서 갓 구운 양고기는 매우 맛있다.
새끼양(lamb)은 별 노린내가 없고 연하다. 대신 맛도 연해서 성체 양에 비해 고기맛에 특징이 없다. 값은 성양보다 비싸다. 세계적으로 머튼 보다는 램이 잘 팔리고 있다. 어린 양 통구이인 메쉬위는 양고기에 거부감있는 이들도 웬만해서 즐길 수 있다. 미국의 유명한 요리사였던 앤서니 보뎅[5]이 살아있을 때, 모로코에 여행가서 100달러를 주고 메쉬위를 사먹었는데, 어린 양을 그 앞에 데려와 목을 번개같이 베어 도축하여 털 밀고 요리하는 과정을 다 봤다고 한다. 보뎅 본인이야 유명 주방장이고 이런 거 못 보면 도저히 좋은 재료 못 구한다는 철칙으로 미국에서도 도축장에서 닭이나 돼지 도축한 걸 여럿 봐서 꼭 역겹진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도축하여 통으로 굽고 인공첨가제없이 몇몇 자연 재료로만 써서 구운 메쉬위를 먹어본 그는 미국이라면 몇 배는 더 줬어야 할 음식(알고보니 현지인보다 더 비싸게 받은 돈이지만 보뎅은 그래도 미국보다 훨씬 싸다며[6] 만족했다.)이라며 돈이 아깝지 않은 환상적인 맛이였다고 격찬했다. 다만 술이 없어 아쉬웠다고. 물론 모로코는 이슬람권 국가이긴 해도 자국산 맥주 브랜드인 카사블랑카와 스페샬레 플래그 등이 큼지막하게 자리잡고 있고 맥주공장도 있는 나라이니 술이야 얼마든지 사 마실 수 있지만 관광지에 주로 팔기에 이 양고기를 먹던 곳에서 거리가 있었고 관광객도 없는 현지인들 틈에서 먹던 것이라 술은 포기하고 그들이 마시던 독한 박하차를 대신 술처럼 여기며 즐겼다고 한다. (앤서니 보뎅- 쿡스 투어 중 발췌)
유목민들은 가족들끼리 먹을 때에는 노린내가 심한 늙은 양고기를 먹었지만, 손님을 대접해야 할 때는 어린 양을 대접했는데, 당연하게도 대접하는 양이 어리면 어릴수록 그 손님을 더 극진히 대접하는 것으로 여겼다. 구약 성경에서도 전형적인 유목민이었던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늙은 양이 아닌 어린 양을 잡아서 고기를 대접하는 묘사가 종종 나오곤 한다.
또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인과 아랍인을 비롯한 셈족 계통 민족들은 에게는 갓 태어난 새끼 양과 염소를 바치는 것을 최고의 제물로 여겨왔다.
식재료로 이용된 역사가 길고 대중적이면서도 주요 종교들로부터 금기시되지 않기 때문에 이따금 "고기의 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식품에 대한 금기 자체가 거의 없는 기독교유교[7], 돼지고기를 금하는 등 코셔할랄 같은 식품에 대한 엄격한 규칙이 있는 유대교이슬람교는 물론, 소고기를 금기시하고 상위 카스트를 중심으로 돼지고기에 대한 금기도 일부 존재하는 힌두교에서도 선호되는 고기가 바로 양고기와 닭고기다.
불교의 경우 중국으로 전파되기 전까지 초기 불교나 상좌부 불교는 신도들은 물론이고 승려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채식을 권하기는 하나, 육식에 대한 금기 자체는 "살아있는 생물들에 존중심을 가지고, 불필요한 살생을 하지 말라"는 것을 제외하면 없었다.[8] 대승 불교의 계통에서도 티베트 불교 등 양젖과 양고기를 비롯한 양의 부산물들이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티벳, 몽골 등의 지역에 기반을 불교 교파들에서는 승려들이 양고기를 시주로 받으면 섭취하게 할 정도였다.
삶아서 수육으로 내놓으면 개고기와도 식감과 풍미가 유사하다.[9] 양두구육이 여기서 나온 고사이다.
L-카르니틴이 지구상 동식물 재료들 중 가장 많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이어트식으로도 각광받고 있다. 당연히 너무 많이 먹으면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처럼 살이 찐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로.

3. 각국의 양고기


구세계[10]에서 양고기가 주요하게 생산되어 소비되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양을 많이 키웠다는 점이다. 양의 생산과 소비가 적은 나라들과의 차이는, 농경 문명이 빨리 정착할수록 양을 키우는 비율이 줄어들었고 반대로 농경 문명이 늦게 정착할수록 양을 키우는 비율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농경 문명이 빨리 자리를 잡게 되면 더욱 우수한 생산성과 범용성을 지닌 목화삼(식물), 아마 등 면작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양의 가치가 떨어져서 양의 사육 비율이 낮아지는 반면, 농경 문명이 늦게 자리를 잡게 되면 면작물을 구하기 어려워서 동물 가죽이나 털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니 상대적으로 양의 가치가 상승하여 양의 사육 비율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리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의 경우 일찍부터 견직물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농경 문명이 빨리 자리를 잡은 곳에서는 양의 필요성이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양고기의 섭취율도 떨어졌지만 농경 문명이 늦게 자리를 잡은 곳에서는 양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양고기의 섭취율도 증가하였고, 현대로 이어져 농경 문화가 빨리 자리잡은 지역에서는 양고기의 보급률이 낮은 반면 농경 문화가 늦게 자리잡은 지역에서는 양고기의 보급률이 높은 편이다. 농경 문화가 빨리 자리잡은 지역에서 중요하게 여긴 동물은 농업 생산량에 도움이 되면서 여러 부가물들을 제공해주는 소의 비중이 더 높았고 이 때문에 양 대신 소고기돼지고기 섭취 문화가 더 널리 자리잡았다.[11]
다만 농경이 시작된 시점이 빠르다고 해서 그 민족이 우수한 민족이라는 식의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농경 문화의 정착 속도와 형성된 농경 문명의 종류는 각 사회나 개인의 자질보다도 지역 특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양고기가 대중화 되어있는 지역들은 현재까지도 척박한 땅에 부족한 강수량이나 일조량 등으로 인하여 농사를 짓기 좋은 조건이 아니다. 이 때문에 양에게 의존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웠고, 때문에 양고기 섭취 문화도 오랫동안 남아있었던 것이다. 한편 사막 지대인 서아시아북아프리카 등에서는 덥다 보니 양을 키우지 않았을 것 같으나 의외로 이 지역들 또한 양을 키웠다. 척박한 기후로 인하여 농경이 비교적 늦게 시작된 이 지역들은 양에게서 털과 가죽, 고기와 뼈 등 유용한 것들을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12] 게다가 사막은 해가 진 후에는 몹시 춥다 보니 양털이 필수품이기도 했다. 더불어 농경 문화가 빨리 자리잡은 지역이라고 해서 양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겨울에는 면직물보다 양털이 더 방한 효과가 좋았고, 고기와 가죽 및 뼈 등의 부가물들은 덤으로 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양을 먹지 않는 지역들은 고온다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인도, 일본, 중국의 지역들. 이 세 나라에서 양을 자주 키우고 먹는 지역들은 위도나 고도가 높아서 서늘한 기후를 가진 지역들이다. 대표적으로 각각 히말라야 산맥 근처와 홋카이도 그리고 화북 지역이 있다.[13] 반면 남인도, 간토, 남중국 등 고온다습하며 쌀농사로 대규모 인구를 부양하는 인구 밀집 지역에서는 양을 키우지도, 먹지도 않는다. 즉 농경문화 중에서도 쌀농사와 가장 상극인 게 양고기 문화인 것이다.
또한 남인도, 남중국, 독일, 오키나와, 한반도 등의 사례를 볼때 양고기 문화의 대척점에 있는 육류 문화는 돼지고기 문화가 있다. 돼지는 기본적으로 온난한 기후와 풍부한 물, 일정한 정착지와 돼지를 먹이기에 충분한 식량이[14] 필요한데, 이는 양을 키우는 환경 조건과 정 반대의 조건들이다. 쉽게 말해, 돼지는 고온다습한 기후에 수자원이 풍부하며 대규모의 식량이 생산되어 많은 수의 정착민과 가축을 부양할 수 있는 지역의 주력 가축이며, 양은 건조한 기후에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물이 있으며 식량 생산에 한계가 있어 대규모의 정착민과 가축을 부양하기는 힘든 지역의 주력 가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때문에 돼지고기 문화 지역과 양고기 문화 지역은 겹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돼지고기 문화는 유럽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농경 문명 지역들과 그 영향을 받은 지역들에 퍼져있으며, 양고기 문화는 서아시아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유목민 문명 지역들과 그 영향을 받은 지역들에 퍼져있다. 그리고 이는 종교적 특성으로도 나타나는데, 양고기 문화권의 종교인 유대교이슬람교 그리고 북인도 지역의 힌두교가 돼지고기를 불결한 음식 취급을 하며 섭취를 금기시하는 반면, 이런 양고기 문화권 종교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그리스도교사도 바오로 등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면서 돼지고기 섭취를 허용하도록 바뀌었다. 동아시아의 전통인 유교도교, 신토, 무교 등에서는 돼지고기를 신이나 조상 등 존귀한 대상에게 올리는 제물이자 특별한 날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먹는 특식으로[15] 적극 활용해왔다.[16]
다만 예외적인 국가가 있는데, 그것이 영국이다. 영국과 비슷한 기후와 식생을 나타내는 북프랑스와 베네룩스, 독일, 폴란드 지역에서는 양고기가 터키계 이민자들의 요리 혹은 특별한 때에 먹는 특식으로 인식되는 반면, 영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접하는 고기 중 하나다. 영국인들이 생활터전으로 삼은 브리튼 섬아일랜드 섬의 경우 제법 비옥한 땅에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었고[17], 강수량이 충분했으며, 일조량이 부족하고 평균 기온 자체는 높지 않지만 기후 변동 폭이 크지 않아 스코틀랜드 고지대 정도를 제외하면 겨울이나 밤에 혹한이나 폭설이 찾아오지는 않아 그렇게 크게 추위에 대비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잉글랜드웨일스,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영국은 현재까지도 유럽에서 제일 가는 양고기 생산 및 소비국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영국의 산업적 특성과 로마 제국 시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경제적 분화에서 영향을 받았으며, 영국의 기후나 환경이 정착 농가를 형성해 양을 대규모로 키우는 산업의 경지에 올리기 적합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목양 산업이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18] 이런 특수성 때문에 영국은 양 뿐만 아니라 품질 좋은 돼지고기 생산과 높은 돼지고기 수요로도 유명하다.
농경 문화가 빠르게 정착해 양고기 섭취 문화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에서는 체감이 잘 안 되지만, 전세계적으로 대중적인 고기 중 하나가 양고기이다. 지역별로 금기시되는 경우가 있는 다른 고기들과는 달리 닭고기와 함께 거의 모든 지역에서 허용되는 고기이다.[19] 그나마 닭고기가 조류인 반면 양은 포유류이기 때문에 돼지고기소고기와 더 가깝다는 이점도 있는 편. 이런 탓에 국내에서는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등(90년대 이후엔 오리고기도 추가)에 비해 상당히 비중이 적은 편이었다. 참여정부시절 시행한 고용허가제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유입되어 수도권을 중심으로 양꼬치 가게가 성행하면서 대중화가 이루어졌다. 일부는 양(羊) 사육농가를 통해서 양고기가 공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양고기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대중적이지는 않다.
세계에서 - 오리 - 거위 - 돼지 다음으로 많이 도축되는 식용 가축으로 2009년 미국에서 조사한 통계를 보면 전세계에서 10억 마리에 달하는 양이 도축되었다.
2010년대 초반 조사에서 1인당 양고기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에 수단이 이름을 올렸다. 2위는 카자흐스탄, 3위는 양이 많은 호주. 역시 양이 많은 뉴질랜드는 7위에 올랐다. 4위는 중국, 5위는 미국이다.

3.1. 유목민족


유목민들에겐 버릴 게 없는 동물이다. 농경 정착민들이었던 한국인들이 소를 거의 다 먹는 것처럼 지금도 유목민들이나 그 영향을 받은 이슬람권에서 못먹는 부위가 거의 없다. 눈알까지 파서 아이들 간식으로 즐겨먹고 뇌는 쪄서 타진[20] 등의 방식으로 먹으며 뼈는 조각품이나 일상도구 등 별별 것으로 다 활용한다.
중앙아시아, 중동지방의 아랍인, 페르시아 제민족, 튀르크 제민족이나 유럽인들은 노린내를 잡기 위해 다양한 향신료로 양념을 하지만 몽골인들은 그런 거 없이 그냥 삶거나 뜨거운 돌에 익혀서 그대로 소금에 찍어 먹는다.
주의할 점은 유목민이나 아프리카 부족들이나 고기를 보통 삶아서 주는데 다 익지 않은 것을 주는 경우가 있다. 안그래도 누린내 나는 양고기를 덜 삶아서 입으로 물면 핏물이 배어나온다. 게다가 유목민도, 부족민도 손님을 대접하는 걸 최우선하는 사람들이라 큰 덩어리를 몇 개씩 집어주는데 거절할 수도 없고 난처하게 될 수 있다. 이럴 땐 대충 한두 덩어리 꿀꺽 삼키고 남은 것을 어린아이에게 주면 OK. 그냥 손님에서 인자하고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친절한 손님이 될 수 있다. 물론 전통에 따라 큰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 눈치껏. 사실, 양을 완전히 익히는 것보다는 반쯤 데치는 것이 더 맛이 난다고 한다. 스테이크를 미디엄 정도를 선호하는 것과 마찬가지. 특히 변변한 향신료가 없는 유목민족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한다.
허영만도 몽골 취재여행을 가서 양고기로만 먹는 유목민들에게 얻어먹은 양고기가 고역이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그대로 삶은 양고기는 냄새가 장난이 아닌데 그 양고기를 재료로 만든 만두(보즈)나 군만두(호쇼르)도 냄새가 나서 먹기 힘들었다고. 또한 양젖으로 만든 아이락(마유주)도 냄새에 기겁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울란바타르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김치찌개 먹으니 얼굴이 달라져서 몽골인 가이드가 웃었다고 한다.
만화가인 윤린도 캐나다인 남편이랑 몽골에 여행가서 같은 경험을 했다고. 몽골에서 만나 친하게 지낸 일본인 커플 관광객도 몽골은 어찌된 게 먹을 게 양고기만 있다고 우는 얼굴을 하며 서로 뜻이 같다고 웃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넷도 울란바타르에 가서 각자 한식과 일식 식당 가서 오랫만에 자국음식 시켜먹고 좋아했다고.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의 여행기에서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가장 괴로웠던 음식으로 이 삶은 양고기를 꼽았다. 몽골에서 살아 있는 양을 눈 앞에서 죽이고 그대로 데친 후 뼈째 붙은 고기 한 덩이를 받았는데 그 노린내가 엄청난 수준이라고. 물론 사람마다 다른지라 하루키랑 같이 터키몽골 여행을 간 일본인 친구는 이런 양고기를 맛있게 잘 먹어서 하루키가 나중에 물고기를 구하기 어려운 내륙지방에서 음식 탓에 고생할 때 그 친구는 전혀 고생을 안해 부러웠다고 한다.]
무엇보다 몽골인들에게 양고기는 국민들이 모두 즐기는 대표적인 고기이다. 높은 지대에 산림이 없고 평야가 넓어 양을 키우기 최적인 환경을 갖춘 몽골은 양의 사육두수 또한 엄청나다. 대다수의 몽골요리에는 양고기가 들어간다. 칭기즈 칸만 해도 생전에 양 머리 요리를 즐겼다고 하며, 양고기로 만든 전통 레시피가 아직도 내려오고 있다. 뿔을 잘라내고 털을 대충 깎은 다음 뜨겁게 달군 석쇠로 털을 그을려 제거하고, 솥에 넣어 물에 오래 삶다가 뿌리채소를 넣고 얇게 편 밀가루 반죽으로 머리를 덮는다. 이후 머리가 다 익으면 꺼내 뼈를 제외한 모든 부위를 도려 먹는다.# 다만 양 사육두수가 엄청남에도 몽골은 양고기 수출량이 그리 많지 않아서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양고기 수출대국이 되지는 못했다. 몽골 내에서 원자재 의존형 경제에 대한 문제점이 제기되면서 이슬람권과 남아시아권 지역을 대상으로 양고기 수출을 시작하는 중이다.
중국에서는 노점을 가면 양 음경만 꼬치로 팔기도 한다. 시식 리뷰 아랍이나 이슬람권도 양 음경을 별미로 즐겼다. 미국인 주방장 앤서니 보뎅도 모로코에서 메쉬위를 먹을 당시, 도축하여 굽던 사람이 먼저 주던게 바로 양 음경과 고환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 했지만 가이드가 말하길, 양 음경은 상징적 의미도 있거니와 맛도 좋기에 연장자에게 먼저 대접하는데 오늘 양을 산게 당신이니 당신에게 특별히 준 것이라고. 고환 하나는 도축하던 사람이 맛있게 먹기에 보뎅은 먹어봤는데 의외로 맛있다고 회고했다. 생존왕도 먹었고 아이슬란드라든지 유럽 각지에서도 양 음경, 고환은 별미였다.

3.2. 이슬람권


인구 수가 13억 이상이 넘는 이슬람권에서도 양고기를 즐겨 먹는다. 인구보다 양이 더 많다는 뉴질랜드와 호주에서 주로 수입한다. 사실 이 나라들도 이슬람권이 주 양고기 수출국이다.
그래서 뉴질랜드와 호주에서는 할랄 푸드(무슬림이 이슬람 성직자들 곁에서 이슬람 도축으로 잡은 것을 보증한 고기 음식)를 위하여 무슬림 도축업자 이민들도 받아줄 정도다. 때문에 정치 경제문제로 고민하게 만들고 있다. 허구헌날 호주 백인우월주의 극우 정당이 아랍계 이민자 금지주장을 하면 목축업계가 그러다가 호주 목축업계 망한다고 난리를 피운다. 호주 출신 주방장이 오만에 가서 여러 현지 음식도 먹고 현지를 둘러보며 쓴 책에서 아랍에서 양고기 수요가 엄청나다보니 아랍권이 호주 양고기의 수입을 금지한다면 호주 목축업자들이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물론 이슬람권에서도 양을 길러 먹기도 하지만 워낙 수요는 많고 공급은 달리니 수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양고기를 많이 먹어서인지 이슬람권 나라를 대표하는 냄새는 양고기 냄새라는 말까지 있다.
터키에서 양고기 케밥을 사먹는 경우에도 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다만 제법 비싸게 파는(한화 4천 원 정도) 케밥은 이런 냄새가 별로 없는 양고기라 한국인도 먹을만하지만 엄청 싸게 파는(1~2천 원 이하) 케밥을 사먹으면 나이들어 도축한 양이라 누릿한 양고기 냄새에 괴로울 수도 있다. 특히 갈아서 만든 륄레 케밥(Lüle kebap)은 질이 안 좋은 고기를 갈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냄새가 많이 나서 처음 먹으면 기겁을 할 정도다. 만약 먹으려면 티케 케밥(Tike kebap)이나 생고기를 구운 것이 그나마 냄새가 덜 난다. 아니면 쇠고기와 양고기를 반반 섞는 아다나 케밥(이쪽은 매워서 먹기 더 수월하다.)도 좋은 선택이다.

3.3. 남아시아


아래의 동아시아 문단에 나온 중국의 사례와 비슷하다. 전통적으로 브라만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힌두교로 대표되는 인도 계통의 종교가 강세였던 남아시아는 히말라야 산맥 및 티베트 고원과 맞닿은 북부 지역을 제외하면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양을 키우기 힘들어서 양고기 소비가 극히 드물었다. 그러다가 훗날 델리 술탄 왕조무굴 제국으로 대표되는 이슬람 정복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튀르크인과 페르시아인의 양고기 섭취 문화가 유입되어 인도를 포함한 남아시아에서 양고기를 즐겨먹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훗날 무굴 제국을 무너뜨린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는 영국인들의 양고기 섭취 문화도 유입되어 남아시아 전체가 전반적으로 양고기를 많이 소비하게 되었다.
국가별로 보면 히말라야 산맥 및 티베트 고원과 맞닿은 파키스탄, 네팔, 부탄은 양을 키우기 적합한 환경 덕분에 자국에서 생산된 양고기를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 고온다습한 기후 때문에 양을 키우기 힘든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몰디브는 바다와 맞닿은 지형(특히 스리랑카와 몰디브는 섬나라다.)이라 해상교역이 활발해 호주, 뉴질랜드 등 타국에서 수입한 양고기가 많이 소비된다. 인도의 경우 북부 지역은 전자에 해당하고 남부 지역은 후자에 해당하는 만큼 양고기 소비에 있어서 양쪽의 모습이 모두 나타난다.

3.4. 동아시아



3.4.1. 한반도


한국에서는 적어도 부여시대 때부터 양을 사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주로 털 채집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고기는 종묘에 제사를 올릴 때 쓰거나 약용으로 사용되는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현재까지도 인류의 동물성 단백질 수요 충족에서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는 계란과 고기를 제공하는 닭이나, 양처럼 모피 채집이 가능한 , 잡식성으로 사육되는 돼지 등에 비해서는 고기 공급이 드물었던 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과거에도 몽골과 만주에서 양이 넘치도록 사육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철도, 비행기 같은것이 없던 시절이니 대중화는 힘들 수밖에 없었다.
고려시대 기록들 중 지배층에서는 양과 돼지고기를 먹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되는 기록이 있다.
조선 세종 조에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자 어의가 양고기를 처방하기도 하였다는 것이 조선왕조실록에 기술되어있다. 이때 세종은 양은 조선에서 구할 수 없어 명에서 수입해야 하는데, 그 돈으로 더 많은 백성들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양고기를 거부했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사치와 향락을 금기시하던 유학의 나라인 조선에서, 노동력이나 계란을 제공해주거나 하다못해 오물처리를 해주고 키우는 것도 상대적으로 쉬운 소, 닭, 돼지에 비해 하루 종일 풀만 뜯는 데다 키우는데 손이 많이 가고 비용도 많이 드는 양은 좋은 취급을 받기 힘들었다.
거기다 양을 먹이기 위해서는 서늘한 기후와 드넓은 목초지가 필요했는데, 한반도는 암벽투성이 바위산이 많아 목초지가 들어설 수 있는 평야가 적고, 장마 때문에 함부로 산을 깎았다간 산사태가 나기 쉬운 기후였다. 무엇보다 조선에서는 중앙의 방침에 따라 평야는 모두 곡식이나 채소 농사를 위한 농경지로 개간한 경우가 많았다. 결국 조선 전기 한반도에서 양은 거의 절멸됐으며, 세종 대부터 양고기는 비싼 돈 주고 중국이나 만주에서 수입해 먹는 것이 되었다.
그 이후 1960~70년대,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경공업 진흥 정책이 펼쳐지며 한국의 섬유 공업이 활성화 되었고, 이 시기 영국 등 서양계 품종의 서양 양들이 한국에 털양으로 유입되었다. 이때 양털을 얻고 더 이상 양털을 얻을 수 없는 늙은 성체 양을 도축해서 단체급식, 특히 군대에 식육으로 납품하거나 혹은 시장에 내놓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머튼은 노린내가 심한데, 현재도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다는 평을 듣지만, 그보다도 훨씬 더 열악하던 당시 군대 취사반 상황에서 각종 향신료로 머튼에서 나는 노린내를 제대로 처리하기는 당연히 불가능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그 노린내 심하고 질긴 늙은 양을 먹어 봤던 이들의 증언이 양고기에 대한 국내의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언급은 한국군 병영식 문서에도 나와있다. 이후 양모 붐이 가라앉으며 양 사육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21] 질낮은 국산 양고기 대신 외국에서 들여온 양고기가 시장을 점령하게 됐다.
현재 한국에서 소비되는 양고기는 거의 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영국 등 영연방 국가들에서 수입해온 양고기라고 보면 된다. 수입과 국내 납품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사업체들도 있다.[22] 한국에서 방목되는 양들이 없는 건 아닌데 보통 털 얻기 + 관광사업용으로 길러지지 식육용으로 길러지진 않는다. 대관령 등에서는 근처 점포에서 제법 비싼 값에 제한된 양의 국산 양고기를 팔기는 한다. 대부분은 양꼬치 한 두 개 분량으로 맛보기 겸 관광상품으로 판매한다.[23]
관련 식당이 전무했던 양고기가 다시 등장한 것은 1990년대 국내로 진출한 조선족들에 의해 양꼬치집이 생기면서 부터. 현재는 소도시 지역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양꼬치집 외에도, 저가 뷔페가 아닌 중고가 뷔페에서는 2010년대부터 바베큐 코너에서 소, 돼지갈비 외에도 양갈비를 내기도 한다.
하지만 2010년대 양고기 값이 대폭 오르면서 한국에서 먹기 힘들어졌고 여전히 한국에서 대중적인 소비가 이뤄지지 않는 고기이다.
북한은 일본의 남면북양(南棉北羊) 정책[24] 이후로 을 많이 키우게 되었다. 현재도 북한 전 지역에서 널리 키우지만, 특히 개마고원에서 많이 키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쇠고기[25]에 비해 염소고기와 양고기를 더 많이 먹는 편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양고기는 다른 고기들보다 비싼 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고기 요리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위구르식 양고기 꼬치 요리의 인기가 꽤 높아졌다고 한다.

3.4.2. 일본


일본의 경우 불교의 영향으로 많은 종의 포유 동물에 대한 육식을 자제 혹은 금지하는 사회적 풍토가 흑선내항 시기까지 있었기 때문에 양고기 문화가 크게 발달하지 못했다. 산과 숲이 많고[26], 더운 여름과 장마가 있는 혼슈와 큐슈의 기후나 환경이 한국과 마찬가지로 양을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후 선선한 날씨에 넓은 평야지대가 있는 홋카이도가 개척되고 일본 제국이 양을 키우기에 좋은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그 지배권 하에 놓으면서 일본의 목양 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기부터 일본 시장에 본격적으로 양고기가 유통되기 시작했다. 문제는 당시 군용 의복에 사용할 양모를 생산하기 위해 양을 키워서, 더이상 털을 얻지 못할 때 도축한 양은 당연히 매우 늙은 양인지라 노린내가 대단했으며, 양은 전략 물자로 철저히 통제되었기 때문에 양고기의 공급량 자체도 충분하지는 않았다.
일본제국이 몰락하고 일본국이 들어선 이후 군수용으로 홋카이도 지방에 대규모로 키우고 있던 양이 민간에 풀렸고, 일시적으로 수요보다 많이 풀린 양의 공급 물량은 일본, 특히 홋카이도 내에서 양고기 처리의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이 시기 재일한국인 요리나 미국 등 서양 요리와 인도 요리가 일본에 유입되고, 일본의 자체적 육류 섭취 문화가 생기면서 오늘날 일본의 양고기 문화가 되었다. 이후 급격히 경제가 성장하며 소득이 크게 증가한 일본인들이 기존에 먹어보지 못했던 식도락을 찾아나서기 시작하면서 양고기 문화가 오키나와를 제외한[27] 일본 전역에 퍼져나갔다. 오늘날에야 램이 일본 양고기 문화의 주류를 점하고 있지만, 그래도 기성세대 사이에는 누린내가 나야 양고기 먹는 맛이 난다고 머튼을 고집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홋카이도징기스칸 [28]이라는 양고기 음식이 유명하다. 다만 홋카이도에서도 현지에서 자란 국내산 양고기는 비싸서 호주나 뉴질랜드산을 쓰는 경우가 많다.
2016년 일본을 방문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이 당시 일본 천황인 아키히토에게 양고기를 대접받은 일이 있었는데, 한 국가의 황실이 상대국 정상에게 대접하는 요리 혹은 선물이 보통 그 국가를 대표하는 것들이라는 점을 여긴다면, 징키스칸을 비롯한 양고기 문화가 일본에서 인기 있는 새로운 전통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3.4.3. 중화권


중국은 이 양고기 문화를 가지고 화북과 강남으로 대표되는 북중국과 남중국을 구분할 정도로 양고기 문화가 지역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원래 중국 문명의 경우 황하 문명 시절부터 농업이 중심이 되는 문명이었다. 때문에 농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데다 동물성 단백질 제공에도 크게 탁월하지는 않으면서, 키우는데에는 손이 많이 가는 양에게서 나온 양고기는 유목민들과의 본격적 접촉 이전까지 중국 지역에서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닭, 오리를 중심으로 한 조류 고기와, 중국인들의 입맛에 크게 부합하면서 매우 빠른 성장 속도와 상대적으로 간편한 사육으로 탁월한 양의 단백질을 제공하기까지 하는 돼지고기 문화가 중국 전역에 뿌리내렸다. 즉, 유목민들이 본격적으로 만리장성을 넘어오기 전까지 양고기는 중국에선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은 음식이었다. 하지만 북방민족 왕조를 여럿 거치며 북중국 지역을 중심으로 중화요리 계열에 북방 유목민족들의 요리가 흡수되어 현재는 양고기가 중화요리에서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와 더불어 가장 인기있는 고기 중 하나가 되었다.[29]
특히 청나라 때에는 지배세력부터가 유목민 계통이어서 그런 것인지, 북경 인근에서는 양고기 요리가 대세였다. 박지원열하일기에 따르면 가는 곳마다 조선 사신들을 대접한다고 양고기 요리를 해주었는데, 양고기에서 나는 노린내 때문에 조선인들에게선 고역이었다고 한다. 참다못한 박지원이 상대방에게 농담 삼아 "대국 요리는 제법 노린내가 난다."고 했다가 상대방이 무안해하자 서둘러 사과한 적도 있다. 다만 박지원이 방문한 지역은 만주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북중국 지역이었기 때문에 당시 중국 사회 전반에 양고기 문화가 퍼져있었다고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이무렵 만들어진 것이 중국 동북 3성 지방의 어린 양꼬치/양갈비 요리. 한국[30]일본에서 별미거리 안주거리로 상당히 인기를 얻어 중국 양고기 요리의 대표요소까지 되어버렸다.[31] 하지만 사실 중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양요리는 양탕(羊湯 혹은 羊羹[32])이다. 외식메뉴로도 각광받는 카오양(烤羊, 양고기 구이)[33]을 먹기 전에 보양삼아 먹는것은 필수코스고, 별도로 한끼 식사용으로 만든 양탕도 인기있다. 정말 간혹가다가 국수를 말아먹기도 하는데 마치 설렁탕면같은 느낌. 이들은 서북쪽의 위구르족(후이족) 양고기 요리의 영향을 받은 결과이기도 한데, 현지 위구르 자치구에 가면 말 그대로의 통양구이도 볼 수 있다. 탄카오루양이 통으로 어미양과 새끼양을 구운 양고기 요리다.
전술했듯 중국 길거리에서 파는 노점에선 양의 생식기도 꼬치로 판다. 영어로 Sheep Penis(...)라 적어두기도 한다. 맛은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남중국 지역의 경우 북중국 지역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우선 강남 지역이라고도 불리는 남중국 지역은 여러 큰 강을 중심으로 습지 지역이 넓게 펼쳐져 있었고, 날씨 또한 고온다습한 기후였기 때문에 양을 키우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었다. 거기다 이런 기후로 양모의 수요 또한 많지가 않았다. 그리고 쌀과 과채 농사가 매우 잘 되고, 환경적 요인으로[34] 돼지 목축 또한 매우 용이했기 때문에 양고기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화 등의 면작물 농사가 매우 일찍 시작되어 다양한 식물성 섬유로 옷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에 양을 키울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남중국 지역은 일찍부터 견직물이라는 품질 좋고 생산성 좋은 동물성 섬유가 등장하여 중요한 산업으로 굳건히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양 목축 문화가 자리 잡기가 힘들었다. 즉, 농업 생산 외의 다른 분야에 투입될 수 있는 잉여 노동력과 자본이 양모 산업 대신 견직물 산업에 투입되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에 남중국 지역에서 양이란 그야말로 "북쪽 사람들이 키우는 이상한 냄새나는 동물"이 된 것이다. 때문에 여러 유목민 왕조의 지배를 받으면서 양고기 문화가 널리 퍼진 현재에도 중국에서 양고기 문화의 남방 한계선은 우한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장강 중류 지역으로 꼽히고 있으며, 남중국 지역에서 전체적으로 양고기는 "북중국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이 먹는 고기"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남중국 지역의 강한 영향을 받던 대만의 경우 오스트로네시아어족에 속하는 언어들을 사용하며 혈연적으로도 폴리네시아인들과 친척 관계에 있는 대만 원주민들이나, 남중국 출신 이주자들의 후손들이 주류인 본성인들의 경우에는 돼지고기 문화나 닭고기, 오리고기 문화 그리고 염소고기 문화가 크게 발달했으며, 일본 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소고기 문화 또한 크게 발달했으나, 양고기 문화와는 큰 접점이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의 영향과 국부천대를 전후로 밀려온 북중국 출신 외성인들의 영향으로 일본과 북중국 지역의 양고기 문화가 도입됐으나, 여전히 북중국 출신 외성인들 및 그 후손들이나 중국 출신의 망명객들을 제외하면 즐기는 비율이 높지 않다.

3.5.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이쪽도 양고기를 정말 많이 먹는다.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유래한 꼬치요리인 샤슬릭[35] 대표적이다. 원래 양고기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먹었지만 러시아 제국이 중앙아시아를 정복했었고[36] 지리적 인접성 때문에 러시아로도 중앙아시아 요리가 퍼져 나가면서 러시아인들도 양고기를 꽤나 많이 먹게 되었다. 수프의 일종인 보르시에도 양고기를 넣기도 하며, 양갈비와 감자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주변이나 안산시, 부산역 등지에서 우즈베키스탄이나 러시아 요리를 맛볼 수 있다.

3.6. 앵글로색슨 영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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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리 계통의 요리들이 양고기 스테이크를 즐길 때 쓰는 가장 일반적인 소스들이다. 아래쪽부터 민트젤리, 머스타드, 사과 마멀레이드.
앵글로색슨족이 중심이 된 혹은 앵글로색슨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영연방 국가들[37]에서도 양고기는 즐겨 소비되는 육류이다. 특히 웨일스와 뉴질랜드, 아일랜드의 넓은 초원 지대에 풀어놓은 양은 세계적인 양모와 양고기의 공급원이며, 동시에 관광자원으로 쓰일 정도로 유명하다.
이들 국가들에서는 양고기 먹을때 박하로 미리 양념을 해서 구워 먹거나 박하로 만든 소스를 곁들여 먹는 스테이크 요리가 발달해 있다. 양고기 특유의 노린내를 잘 잡고 풍미를 더해줘서 잘 어울린다. 영국 요리에 대한 선입견으로 폄하하는 경우가 많지만, 영국과 그 영향을 강하게 받은 국가들은 양고기 요리를 잘 만드는 편이다.[38] 괜찮은 식당들은 양고기 스테이크를 적당한 육질로 냄새 없이 잘 굽는 편이다. 역사적으로도 영국은 양모 관련 산업이 중세부터 발달했던 나라라 양을 많이 먹어왔고, 그만큼 양고기 요리에 축적된 노하우도 많다. 해당 국가들은 스테이크 용으로 특히 양 갈비대를 즐겨 사용하고, 이외에도 뼈가 박힌 등심이나 다리 부분도 스테이크로 즐겨 먹는다.
스테이크 손질된 양고기의 경우 고기의 색상이 소고기에 비해 덜 붉어 은빛이 돌기 때문에 영연방 국가들에선 양고기 스테이크를 Silver Steak라고 부르기도 한다.[39]
스테이크 외의 요리법에는 양고기 스튜가 있는데, 가정식으로 투박하지만 맛있는 스튜를 만들어 먹는다. 다만 만드는 국가와 지역에 따라 다르고, 인접한 지역이라도 각 집안마다 재료나 조리법이 조금씩 차이가 있고, 이 때문에 한국의 김치처럼 만든 집안 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지역 특산 스튜를 먹어보는 것도 좋다.
더불어 인도 요리의 영향으로 양고기 커리도 많이 먹는데, 고유의 양고기 스튜 문화와 합쳐진 양고기 커리 스튜를 만들어 먹곤 한다.

4. 요리


[image]
대표적인 요리로는 양(羊)불고기, 스튜, 바비큐 등이 있고 양꼬치. 케밥 등의 재료로 쓰이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위에 양고기의 특징에서도 설명 되어 있지만, 양을 자주 먹는 나라에서 머튼과 램은 아예 다른 종류의 고기라고 취급해도 될 정도로 요리법이 구분이 되어있다. 머튼은 향신료를 많이 넣고 오래동안 조리하는 커리, 스튜등의 요리에 쓰고 램은 주로 스테이크나 구이에 쓰인다.

4.1. 램 요리


  • 훠궈(火锅, 화과)[40]
  • 양꼬치
  • 케밥
  • 샤슬릭
  • 징기스칸 [41]
  • 스테이크


4.2. 머튼 요리



4.3. 냄새 제거법


양고기를 맛있게 요리하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누린내[42]에 적응해서 진입장벽을 없애든지 아니면 요리하기 전에 충분히 준비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하는 양고기 손질법이다.
  • 고기의 피를 완전히 빼야 한다. 할랄 푸드 문서에서도 볼 수 있지만, 무슬림들은 양을 잡고 나서 피를 완전히 빼고 가공한다.[43] 양고기의 냄새는 대부분 양의 혈액에서 생성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양고기의 노린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이슬람권의 양고기 요리(대표적으로 터키 요리)를 먹는 게 나을 수 있다.
  • 터키에서는 케밥을 요리하기 하루 전에 양고기를 후추커민, 우유 등에 담궈둔다. 이렇게 하면 냄새가 한층 더 희석되고 고기가 연해지게 되는 효과가 나온다. 그 외에 박하생강, 마늘, 고춧가루등을 사용해 볼 수도 있다. 특히 마늘이 효과가 좋으며, 터키 요리아랍 요리같이 양고기를 많이 사용하는 요리에서도 마늘은 이 때문에 필수요소로 자리잡았다.
  • 동유럽에서는 양고기를 레몬, 토마토, 양파, 소금에 하루 이상 재워서 냄새를 제거한다. 터키에서 향신료로 양고기를 재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기를 더 부드럽게 하는 기능도 있다.
  • 향신료를 쓰고 싶지 않다면 양고기를 본격적으로 조리하기 전에 끓는 물에 살짝 데치는 방법도 있다. 고기 내의 남은 피를 상당 부분 빼내기 위한 방법인데, 이럴 경우 고기가 익기 전에 꺼내야 하며 육즙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
  • 삶아서 조리하려면 요리술이나 정종을 넣고 우선 한번 데치고 다시 물을 부어 삶는 방법도 있다. 대신 이렇게 하면 양고기의 기름이 상당히 많이 빠져나간다.
  • 특유의 냄새는 대부분 비계에서 나오기 때문에 오븐 조리의 경우 중간 중간 오븐 팬에 고인 기름을 따라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비계를 너무 제거하면 그냥 딱딱하고 질긴 살코기만 남는지라 취향에 따라 적절한 밸런스 선을 맞추는 것이 포인트.
  • 복잡한 양념 필요없이 MSG만 살짝 뿌려 굽는 것도 한 방법이다. MSG의 감칠맛이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역하지 않게 효과적으로 잡아주기 때문이다.
  • 나무를 태운 연기를 쏘여서 냄새를 잡고 풍미를 더해주는 훈연도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바비큐 그릴을 쓰거나, 연료로 히코리, 매스킷 등 나무를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연기의 향이 배도록 하면 된다. 가정에서는 훈연기나 더치오븐을 사용하여 5-20분간 연기를 쏘여 냄새만 제거한 후 나머지는 프라이팬으로 굽거나, 냄비에서 끓이거나, 오븐에서 마무리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릴에서 나무로 굽거나 훈연 목재를 숯에 넣어가며 석쇠로 구운 양고기 스테이크는 대부분의 사람이 소고기와 맛을 구분하지 못한다. 물론 현실은 갈비뼈가 붙은 양 스테이크 고기는 뼈 붙은 소갈비 스테이크[44]보다 더 뼈가 가늘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모양으로 구별은 할 수 있다.

[1] 쇠고기의 '양깃머리', '양'은 이 양이 아니고 의 일부을 말한다. 한자로는 밥통 양(䑋)이며, 육달월(月)변에 양 羊을 쓰는 속자(俗字)로도 많이 쓴다. [2] 수과(守瓜), 전취(羶臭), 혹은 누린내라고도 부르는 그 냄새. 육류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를 의미하며, 양 같은 가축 외에 야생동물 고기도 노린내가 날 확률이 높다. 참고[3] 한국에서 주로 식용으로 소비되는 동물들의 경우 노린내가 덜한 편이 많다. 그나마 노린내가 강한 식용 동물은 염소 정도인데, 이마저도 양념을 엄청 써서 그 냄새를 최대한 죽이는 식으로 조리한다. 돼지와 가깝고 수렵이 허가된 멧돼지가 잘 소비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노린내 탓이 어느 정도 있다.[이] 노린내를 비유하자면, 우유와 기름을 섞어 얼린 뒤 곱게 갈아 들이마신듯한, 우유와 버터를 코로 '맛보는' 것처럼 느끼한 냄새다. 이 누린내의 정도가 극심한 경우, '''암내''', 더 심하면 '''홀아비 냄새'''에 가까운 향을 느낄 수 있다.[4] 서구권의 대표적인 양고기 요리로 mutton chop이라는게 있는데, 서빙하면 뼈에서 살이 상당부분 발려져 있다. 그 부위 대부분이 그냥 지방이여서 적당히 잘라낸 것.[5] 1956~2018. 성을 보면 알겠지만 프랑스계 이민자 후손으로 앤서니 부르댕으로도 알려져 있다. 2018년 파리에서 갑자기 자살했다.[6] 미국에서 양을 돈주고 사자면 100달러도 부족하다고 서술했고 저렇게 도축하고 굽고 하자면 몇배가 아니라 1000달러 불러도 될만했다라고 서술.[7] "지나치게 탐식하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소박하고 건강하게 먹으라" 정도를 제외하면 식생활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없었다.[8] 불교 = 채식 인식이 강화된건 중국에서 시작된 대승 불교와 거기에 간섭한 왕조의 정책과 연관되어있을 뿐, 원래는 육식 금지가 아니었다.[9] 이건 염소고기도 마찬가지.[10] 아프로유라시아라고도 불리는 아프리카와 유럽, 아시아의 구대륙들. 오세아니아와 아메리카는 이들과는 다른 신대륙 혹은 신세계라고 불리며, 당연하게도 신대륙의 양 목축은 구대륙의 그것과는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11] 청나라만주족은 농경 문화와 유목 문화의 영향을 모두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농경민족이 선호하는 돼지고기와 유목민족이 선호하는 양고기를 모두 즐겨먹었다.[12]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으로 유명한 다윗도 원래 직업은 목동이었다.[13] 다만 현대 인도는 후술할 내용대로 무굴 제국 등 이슬람 정복왕조와 그 이후에 이어진 영국의 지배에 따른 영향으로 이전에 비해 양고기 섭취가 많은 편이다. 중국도 마찬가지로 위진남북조 이후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 등의 유목민족의 지배로 당송시대 이전보다는 제법 양고기 문화가 남쪽까지 내려와 있다.[14] 풀이나 나뭇잎, 심지어는 나무껍질이나 풀뿌리까지 먹는 양과 달리, 돼지는 곡물이나 견과 혹은 과실처럼 인간이 먹는 식량을 먹고사는 식량을 공유해야 하는 까다로운 식성을 가졌다.[15] 유럽이나 동아시아의 식량 생산 사정이 다른 지역들에 비해서는 나았다지만, 돼지고기를 매일 같이 먹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고, 돼지고기를 유통하고 보관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었다. 오늘날처럼 돼지고기를 동아시아와 유럽 선진국의 하층민들까지 배불리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산업혁명 이후의 일이다.[16] 동아시아의 돼지고기에 대한 강한 애착은 1990년대 이후 이스라엘로 이주를 시도한 중국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돌아온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이라는 의식도 있고, 명목상 유대교를 믿기도 하나, 실질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유교와 도교 그리고 대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동아시아화된 유대교를 믿고 있었다. 자신들이 즐겨먹던 돼지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스라엘 유대교 지도자들의 압박에서부터 시작해, 결국 중국 유대인 사회가 향유하던 생활 전반의 관습에 대한 견해차로 인한 기성 이스라엘 주류 사회와의 갈등으로 결국 갈라서게 됐다.[17] 때문에 중세기에도 브리튼과 아일랜드의 면적 당 곡물 생산량을 중심으로 한 농업 생산량은 유럽 전체 평균 이상을 꾸준히 기록했다. 현재에는 유럽 내에서 단위 면적 당 최상위의 곡물 생산량을 자랑하는 나라 중 하나가 영국이다.[18] 이후 대영제국 시기 영국의 지배와 영향을 받았던 속령들과 영연방 국가들도 양고기 생산과 소비에 있어서 중요한 국가들로 취급받고 있다.[19] 특정 고기에 대한 금기는 그 지역 사람들이 정말로 그 고기를 부정하다고 여겨서 안 먹은 게 아닌 경우가 많다. 지역 특성상 구하기 어려운 고기와 이를 탐하는, 즉 사치를 금지하기 위해 종교를 근거로 두고자 교리에 추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례로 돼지고기를 금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슬람의 경우 중동의 기후 특성상 낮은 덥고 밤에는 추운데다가 몹시 건조하다. 때문에 안정적인 기후에 습한 환경에서 자라는 돼지를 키우기 힘들다보니 돼지를 키운다는 행위 자체가 돈지랄 행위였다. 낭비를 막고자 쿠란에 돼지고기는 부정하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문구를 추가해서 먹지 않던 것이 나중에는 애초에 부정하니까 안 먹는 쪽으로 뒤집어진 것이다. 말레이권도 이슬람교가 공인되기 전까지는 전통적으로 농경 문화의 영향이 강해서 돼지고기 섭취가 금기시되지 않았다.[20] 물을 넣지 않거나 최소한으로 넣고 재료자체의 수분을 이용해 익힌 뒤, 스프나 소스를 뿌려 먹는 찜 요리.[21] 양을 키우던 곳들은 모두 나무가 자라 숲으로 복구되었다. 철쭉 군락으로 유명한 지리산 바래봉도 원래는 양을 키우던 곳이었다.[22] 보통 수입시 통으로 들어오는 양고기들이 이런 업체를 거쳐 유통되거나 부위별로 소분화돼서 팔리기도 한다.[23] 염소고기로 대체된 양고기 요리들이 남아있는 경우도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에서는 흑염소를 이용한 양탕 이라는 음식이 있다. 흑염소를 푹 삶아 부추 등 탕으로 만들어 즐기는 음식. 흑염소 수육과 함께 먹어도 일품이다.[24] 일본군 군복에 많이 쓰이는 원재료인 면화와 양모를 얻기 위해 남한 지역에서는 면을 주로 키우고, 북한 지역에서는 양을 많이 키우도록 강제한 정책을 뜻한다.[25] 북한은 예전 남한처럼 소를 농경에 이용하기 때문에 소는 절대로 먹는 동물이 아니라 그저 일하는 동물로 여긴다고 한다. 무엇보다 북한은 소의 개체수가 남한보다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소를 소중하게 여기고 관리한다. 특히 소를 잡아먹으면 쇠고랑 찬다고 하며, 아예 심하면 즉결처분 당한다고. 게다가 탈북민들의 말에 의하면 소가 평생 노동만 하고 또 많이 먹지도 못해서 맛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는 흡사 고무 씹는맛이라고 한다.[26] 간토와 도호쿠 지방을 중심으로 평야 지대가 넓게 형성 되어있지만 대부분 농지나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양을 키우기에는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27] 오키나와는 남중국 지역과 마찬가지로 양을 키우기에는 매우 좋지 않고, 돼지를 키우기에 매우 적합한 기후에, 전통적으로 돼지를 많이 키우고 먹어 돼지 요리법이 크게 발달했기 때문에 양고기가 정착하지 못하고 돼지고기가 압도적 주류를 차지했다. 이와 별개로 오키나와는 염소고기 섭취가 많은 편이다.[28] 오늘날 이 요리의 기원에 대한 가설 중 하나가 재일한국인들의 요리법을 받아들인 야키니쿠 요리법을 응용한 것이라는 것이다. 다만 징기스칸이 처음 만들어진 경위나 만들어 먹은 사람들 자체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돼 있기 때문에 야키니쿠와의 직접적 연관 관계에 대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대신 만들어 먹는 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에 둘을 함께 취급하는 요리점들도 존재한다.[29] 중국에선 소고기가 홍소우육(이마저도 홍소육의 인기에 밀린다.) 같은 특이케이스가 아니고서야 중화요리에서 별 인기가 없다. 중국 전반으로 봤을 때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더 잘 먹기 때문이며, 특히 남중국 지방의 경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가 아닌 '물소' 고기라 엄청나게 질기다. 중국 내륙 지역에서 생산되는 야크고기 또한 일반적인 소고기에 비해 질긴 편이다. 이 때문에 한국, 일본, 미국 등 해외 중화요리들도 소고기 요리가 드문 편. 다만 해외 중화요리 계통 중 400년 넘게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마카오의 경우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소고기 섭취가 꽤 있는 편이다. 50년 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대만 또한 다른 중화권에 비해 유독 채식주의자가 많아서 그렇지, 덴무 덴노 때부터 이어져왔던 육식 금지령이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철폐된 일본의 영향으로 중국 본토에 비하면 소고기 섭취가 많다. 특히 해외 중화요리들 중 특히 200년 가까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과 싱가포르의 중화요리는 영국의 영향으로, 그 기원이 광둥이나 푸젠 등의 남중국 지역의 요리였음에도, 소고기와 양고기의 섭취가 제법 있다. 덕분에 현대엔 제법 대중적인 중식당에서도 소고기 볶음면 같은 요리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30]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 이런 중국 동북인들이 운영하는 양꼬치집이 있다. 적당히 연하면서 기름지고,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포인트.[31] 정상훈SNL 코리아에서 이 요소를 탁 집어 '양꼬치엔 칭따오'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히트친적도 있다.[32] 두 메뉴는 조리법이나 완성형태가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먹는건 "탕"[33] 메뉴판에 '''반마리, 한마리''' 이런 식으로 표기되어있는데 대략 반마리면 4~5명이서 먹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34] 기본적으로 돼지를 키우기 위해서는 거의 습지 수준으로 우리를 조성해줄 많은 물과 돼지가 좋아하는 더운 기후, 그리고 돼지에게 먹일 곡물이나 견과류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 뒤집어 말하면, 남중국 지역은 덥고 습한 기후와 풍부한 수자원, 탁월한 식량 생산으로 돼지를 키울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던 것이다.[35]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꼬치도 샤슬릭이라고 부른다.[36] 물론 그 전에도 몽골 제국의 지배에 의해 러시아에 몽골족과 튀르크족의 양고기 문화가 많이 유입된 상태였다.[37]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남아공, 자메이카[38] 사실 영국 요리가 전체적으로 고기 요리를 잘 만드는 편이다.[39] Osgood이라는 학자가 1953년 지은 책에 이 Silver Steak와 관련된 일화가 실려있다. 그가 소유한 자동차의 대쉬보드에는 Silver Streak라는 로고가 붙어 있었는데 식사시간이 다가오자 배가 고픈 나머지 그는 이를 Silver Steak라고 읽었다는 것이다. Psychology: THe study of human behaviour라는 심리학 교과서에서 Needs와 Perception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루는 챕터 초반에 소개된다.[40] 샤브샤브와 비슷한 중국음식. 베이징에 가면 쉽게 맛볼 수 있다. 누린내도 나지 않고 값싸고 맛이 좋아 한국인들도 즐겨 먹는다. 샤브샤브와는 달리 양고기를 사용하며, 국물도 대체로 붉은 색, 노란 색 등을 띈다. 중국에서는 레토르트 형식으로 훠궈 국물 소스도 파는데, 싸고 괜찮으니 기회가 되면 구해보자. 원래는 샤브샤브와 전혀 다른 요리였으나, 샤브샤브의 영향을 받고 그 스타일을 중국식으로 흡수하였다. 한국에서는 서울 대림동이나 건대입구 일대에 전문점이 많이 있다.[41] 원래는 털을 자르고 남은 늙은 양을 활용한 요리였지만 최근엔 대부분 구이에 더 어울리는 램을 쓴다고 한다[42] 카프릴산, 펠라르곤산 때문에 생기는 냄새다.[43] 유대교의 코셔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음식과 관련된 종교적 계율들은 사실 위생이나 조리법 등의 이유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다.[44] 도끼와 닮아서 토마호크 스테이크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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