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
'''Mary Wollstonecraft Shelley'''
(1797년 8월 30일 ~ 1851년 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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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계 최초의 SF 소설가로 알려져 있다. 잉글랜드 출신으로, 아버지로는 최초의 무정부주의자로 꼽히는 윌리엄 고드윈을 두었고, 어머니로는 최초의 페미니스트이자 <여성의 권리 옹호> 의 저자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를 두어, 그들 사이의 차녀로 태어났다.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로 유명하다. 결혼 전 이름은 메리 고드윈. 시인 퍼시 비시 셸리를 남편으로 두었다.
2. 생애
그녀의 출생 다음 날 어머니가 산고로 사망하여 편부 슬하에서 자랐다. 따로 학교 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지식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많은 문인들과 교류하며 글쓰기가 취미인 문학소녀로 성장했다.
15세에 아버지의 제자 중 장래성 있는 시인이었던 20세의 퍼시 비시 셸리[1] 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그가 이미 아내가 있는 유부남이었다'''는 것. 1814년 퍼시와 메리는 사회의 시선과 가족의 반대를 피해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 퍼시의 시집 출판, 학술 활동 때문에 영국에 종종 들르기도 했다고.
1816년에는 스위스 제네바 근교에서 조지 고든 바이런을 만나게 되어 친해졌는데, 그 해 여름 날씨가 우중충한 탓에[2]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이 때 바이런의 제안으로 퍼시와 메리, 바이런 그리고 바이런의 주치의인 존 윌리엄 폴리도리 이렇게 4인이 심심풀이 삼아 괴담을 창작하게 된다.
메리의 회고에 따르면 "퍼시와 바이런은 일찌감치 나가떨어졌고 폴리도리는 '뭔가 아주 끔찍한 생각'을 내놓았다가 더 얘기하기를 그만두는 결말을 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메리의 차례가 돌아오자, 그녀는 '시체를 모아 전기의 힘으로 되살린 한 과학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야기를 경청한 바이런이 '매우 흥미로운 아이디어'라면서 소설로 집필할 것을 권유했고, 남편 퍼시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의 소설화 작업을 도왔다. 그리고 2년 후인 1818년 메리는 익명으로 '프랑켄슈타인'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당시 글쓰기는 남성의 고유 영역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여성 작가들이 익명으로 작품을 내놓는 일이 흔했다.
도피 여행 중 퍼시의 아내 '해리엇 셸리'[3] 가 템즈 강에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둘은 곧 영국으로 돌아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부부가 되었다.
부부 사이의 금슬은 좋았지만,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슬하의 자녀 4명 중 3명이 일찍 죽었고, 남편 퍼시마저 결혼 7년만인 1822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요트를 타다가 폭풍을 만나 익사했다.
퍼시의 죽음 이후에는 그의 유고를 모아 유고 시집을 발간하였고, 1831년 '프랑켄슈타인' 개정판을 내면서 자신이 작품의 작가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후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였으나 '프랑켄슈타인'만큼의 인지도를 얻지는 못하였고 1851년 뇌종양으로 사망하였다.
인지도나 인기와는 별개로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당대의 문학적 평가는 매우 좋지 못했다. 당대에 바이런과 어깨를 나란히 한 남편 퍼시 비시 셸리와 달리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고전으로 인정받게 된 것은 60년대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고 포스트모더니즘·페미니즘 문학비평이 대두하면서부터이다. 재평가도 대표작인 프랑켄슈타인이 대상이지 그 외의 작품들은 지금도 높게 평가 못받는다. 즉 작가로선 전형적인 원 히트 원더.
3. 기타
메리는 1818년 프랑켄슈타인 초판 서문에서 "어떤 한 명의 이야기는 대중의 환영을 받을만했다."고 평했는데, 이것이 폴리도리의 작품에 대한 그녀의 초기의 평으로 보인다. 당시 폴리도리가 쓴 괴담이 바로 '''최초로 흡혈귀가 등장하는 단편 소설 '뱀파이어''''다.
그런데 1831년의 프랑켄슈타인 개정판 서문에서는 "폴리도리는 뭔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어쨌든 '''아주 끔찍하기만 하고 옳지 못한 것'''을 썼다."고 폴리도리의 괴담을 애둘러 비판하는데, 주인공과 주변인의 인생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배드엔딩이라서 마음에 안들었던 모양. 개정판을 낼 시점의 메리는 남편과 자식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인생관이 다소 변해서 더욱 그랬으리라.
1816년 여름 당시, 바이런은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 3권 집필이나 괴담 창작도 잘 되지 않고, 악천후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그러던 바이런의 눈에 포착된 것이 메리의 의붓여동생[4] 클레어 클레어몬트... 결국 바이런이 그녀를 유혹하면서 둘 사이에 딸 알레그라가 태어나고, 이후 스폰서였던 셸리 부부와 관계가 매우 어색해진다.
셸리의 어머니는 현대 최초의 페미니스트 중 한 명이자 프랑스 혁명에서 중요한 인물인 메리 울스톤크래프트(1759~1797)이다. 울스톤크래프트는 프랑스 혁명에서 공화주의의 정수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에서 여성이 인간에도 시민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의 선구자격인 주장이자, 어떤 점에서는 자유주의를 넘어서기도 한다. 셸리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었지만 그녀가 집필한 서적을 읽으며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키웠고, 프랑켄슈타인 소설에도 페미니즘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다.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딸, 여동생, 하녀로만 존재하는 여성 캐릭터, 여성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가족 제도 등에 대한 성찰.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아나키즘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1756~1836)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는 결혼을 영국의 권위주의가 집결한 제도이자 가장 모순된 소유라고 여겨왔으나, 울스톤크래프트와 사랑하게 되어 결혼했다. 그러나 이 결혼은 아이의 장래와 사회적 제도상 겪게 될 불편을 고려하여 이루어진 것이었으며 메리 울스톤크래프트와 윌리엄 고드윈 모두 결혼제도 자체에 회의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혼 후에도 따로 살면서 독립적인 삶과 개인 행동의 자유를 유지해갔다.
1살 차이나는 의붓여동생 클레어 클레어몬트 외에 3살 차이나는 이부 언니 프랜시스 "패니" 임레이(Frances "Fanny" Imlay), 6살 차이나는 이복남동생 윌리엄 고드윈 Jr가 있었다.
메리 셸리를 소재로 그린 만화인 메리 고드윈이 존재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2018년 10월 14일자에서 메리 셸리와 퍼시 셸리의 이야기를 다뤘다.
실종된 이후 퍼시의 시신이 발견되었으나 심하게 부패되어 결국 이탈리아에서 화장해야 했는데 어째선지 심장이 타지않고 남아있어 메리가 이를 간직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의 결말이 인상적.
4. 국내 번역된 작품
- 프랑켄슈타인 (1818, 1831): 1818년 초판[5] 과 1831년 개정판[6] 모두 번역 출간되었다. 초판과 개정판을 구별하는 방법은, "내가 열일곱 살 때~" 부분이 2장 첫머리면 초판, 3장 첫머리면 개정판 번역본이다.
- 최후의 인간 (1826)
- 죽어야 하는 불멸 (1833): <세계 호러 걸작선 2>에 수록되었다
- 부재 외 여러 편의 시: <제인 오스틴과 19세기 여성 시집 : 찬란한 숲을 그대와>에 수록되었다
5. 미디어
- 메리 고드윈 (2005-2006): 박설아, 유진수 작 한국 만화. 전 2권.
-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의 탄생 (2017): 하이파 알 만수르 감독의 영화
[1] 메리보다 훨씬 유명했고, 지금도 작가로선 한수위로 평가받는 낭만주의 시인으로, 현대 대중들에겐 '오지만디아스'로 잘 알려졌다.[2] 1816년은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의 분화가 전세계에 기상이변을 일으킨, '여름이 없는 해'로 유명하다.[3] 퍼시가 바람을 피자 해리엇도 바람을 폈는데, 이때 임신을 해서 자살한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워낙 보수적인 사회였으니 사생아를 가진 여인에게는 가혹한 취급이 가해졌다.[4] 윌리엄 고드윈의 두 번째 부인의 딸. 그녀 위에 이부오빠가 있었다.[5] 문예출판사, 문학동네, 을유문화사, 더클래식 번역본 등.[6] 열린책들, 인디북, 황금가지, 비룡소 번역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