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블랑 터널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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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 L'incendie du tunnel du Mont-Blanc
이탈리아어 : L'incendio del Traforo del Monte Bianco
1. 몽블랑 터널
2. 사고 당일
2.1. 불이 붙기 까지
2.2. 불이 붙은 뒤
2.3. 구조 활동
3. 화재 이후
4. 기타


1. 몽블랑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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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tunnel du Mont-Blanc''
''Il traforo del Monte Bianco''
'''Mont Blanc Tunnel'''
길이 11.6km의 터널프랑스인 G.드레피네가 1870년 제안한 뒤, 1958년 착공되어 1965년 7월 19일 개통되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연결하며 터널 덕에 이동 거리가 200km 정도 단축되어 유럽의 새 동맥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알프스 계곡과 오스타 계곡을 직접 연결하며, 샤모니몽블랑에서 북으로 제네바를 거쳐 리옹에서 프랑스 각지로 통하는 길과 쿠르마이외에서 남으로 토리노, 밀라노, 로마로 통하는 길이 1년 내내 연결되어 정치적, 경제적인 영향이 굉장히 큰 터널이다.
이 터널은 이러한 유명세 만큼 안전하기로 유명해서 18개의 화재대피소와 77개의 비상 전화가 존재했고, 이탈리아쪽에는 의용소방대, 프랑스쪽에는 터널 화재 전문교육을 받은 전문 소방서가 존재해 34년간은 무사고'''였는데...'''

2. 사고 당일



2.1. 불이 붙기 까지


1999년 3월 24일, 오전 10시 46분, 마가린 9톤과 밀가루 포대 12톤을 실은 냉장 트레일러를 견인하는 벨기에인 길버트 디그레이브의 볼보 FH12 트랙터가 밀라노의 과자 공장으로 가려고 터널에 진입했다. 터널 안에서 길버트 앞의 운전자가 담배를 다 피고 꽁초를 던졌는데, 꽁초가 바람을 타고 '''트럭의 공기흡입구에 들어갔다.'''[1] 담배는 공기 흡입구 내에서 불길이 커지면서 큰 불을 내기 시작했고, 연기가 심해지자 반대쪽 차선에서 달리던 운전자들이 경적과 비상등으로 경고했으나 길버트는 몰랐다.
10시 50분, 가시거리 감지 센서 9개에 가시거리가 30%이상 하락하자 이탈리아와 프랑스 두 곳에 경고가 울렸지만, 이탈리아는 과거에 잘못된 경고를 자주 받아서 '''센서를 무시하도록''' 소프트웨어를 바꾼 상태였고, 프랑스 측에서는 시스템 오류라 생각하고 무시했다.
52분, 길버트가 불이 붙었음을 알아차리고는 비상등을 점등하고 트럭을 멈춘 뒤 소화기를 꺼내 진화를 시도하나 실패하고 '''트럭이 폭발'''했다. 뒤에서 오던 다른 트럭 25대도 멈춰섰고, 이 트럭들에 가려져 폭발을 못 본 차량들은 꾸준히 들어왔다. 길버트는 폭발에 놀라 이탈리아 쪽으로 도망갔다.

2.2. 불이 붙은 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가던 차량은 후진기어를 넣고 도망가기 시작했고, 트럭은 2차선에서 방향을 돌리기가 불가능해서 운전자가 트럭을 버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대피자 중 한 명이 22번 대피소에 설치된 비상전화로 통제소에 전화를 걸어 터널관리당국에 화재가 났단 사실을 알렸다. 문제는 불이 너무 강해서 양쪽 통제소에서 어디서 불이 난 건지 CCTV로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냉장 트레일러의 보냉재(폴리우레탄)와 안의 마가린 9톤이 엄청나게 불타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처음 불이 났던 트럭 뒤에는 하필이면 스티로폼 포장지를 비롯해 불이 잘 붙고 유독성 가스를 잘 뿜는 물건들이 잔뜩 실려 있어 연기가 더더욱 심해졌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톨게이트를 차단하고, 이탈리아에서 엔진이 산소부족으로 정지되는 걸 막으려고 외부공기공급시스템을 가동했으나 '''산소가 더 공급되면서''' 불만 더 켜졌다.

2.3. 구조 활동


10시 57분, 터널소방대가 출동했다.[2] 화재현장으로부터 2km 떨어진 지점까지 가는 데는 성공했으나 연기 때문에 앞이 가려져 후퇴하기로 했다. 문제는 엔진이 산소부족으로 죽어서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 결국 근처 피난소로 대피해야 했다. 근처의 샤모니 소방대도 도우러 왔으나 같은 이유로 근처 기계실로 대피했다.
이탈리아 쪽은 연기가 별로 안 퍼져서 출동해 화재 지점 10m까지 접근해서 구조하는 데 성공했으나, 차량과 타이어가 폭발하기 시작하자 후퇴했다. 또 11시 11분 다른 소방대가 출동하지만 이탈리아마저 엔진이 맛이 가버리는 바람에 22번 대피소로 대피했으나, 대피소의 환풍구에서 유독가스가 나와서 환풍용 통로로 대피해야 했다. 이 상태에서 본부에서는 생환한 선봉대를 실종된 것으로 착각하고, 이들을 구조해 달라는 오더를 내리는 바람에 이들이 더 깊숙이 들어가 피해가 더 커졌다.
한편 이탈리아 관할구역의 경비원 피에루치오 티나치는 자신의 BMW K75 오토바이를 타고 산소 호흡기와 산소캔을 멘 채 터널 내를 5번 왕복하면서 10명을 구조한 뒤 사망했다고 알려졌었으나... 사실은 피에루치오 티나치에 관한 영웅담이 실린 지역뉴스를 최초로 프랑스 외부 미디어로 인용한 기자 Mark Gardiner에 본인에 의해 자신의 인용기사가 다시 확대 재상산 되면서 걷잡을수 없는 영웅을 만들어낸 오보였음이 밝혀졌다.
물론 화재 당시 피에루치오는 화재현장 인근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있던 프랑스 트럭기사 Maurice Lebras를 터널내 Niche No.20 방화구로 이끌고가 함께 몸을 숨긴 뒤 이를 인터폰을 통해 관제센터에 보고하였으나 50시간 이상 지속되었던 엄청난 화염 앞에 고작 4시간을 버티도록 설계된 방화구에 있던 이들을 구할 수 없었다. 그가 Maurice Lebras를 구조한 것은 맞으나 이러한 노력이 어쩌다보니 지역 신문과 화재책임으로부터 회피하기위해 영웅 만들기에 급급했던 관할 경찰에 의해 10명이상 구조했다고 과장되었던 것이었다.

3. 화재 이후


불은 53시간이나 타오른 뒤에야 꺼졌다. 불이 너무 강해서 콘크리트가 녹아 터널 내의 암반이 드러날 정도였다.
사망자는 39명이나 됐는데 그중 대부분이 대피소에서 발생했다.
차량 운전자 길버트 데그라브는 4개월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고, 샤모니시 시장 미겔 샤를레데는 직무정지 6개월에 벌금 1만 5천 유로 처분을 받았다. 프랑스 쪽 관리공단 사장 레이 차튼은 2년형을 받고 역시 벌금 1만 5천 유로를 내야 했고, 터널 안전 담당자 제랄드 론 클리는 6개월간 수감되고 2년 직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사고 이후 몽블랑 터널을 지나가는 모든 트럭은 적외선 온도 감지 시스템을 지나야 하고, 엔진 과열 같은 화재 위험성이 보이면 경보가 뜨고 터널 내부에 진입하지 못한다. 통제소는 중앙 한 곳으로 변경되었으며, 비상 대피소에 화상통화장비를 설치한 다음 방화복과 마스크를 구비했으며, 대피소 지하에 환풍구에는 피난계단을 설치해 화재가 발생하면 공기 공급을 중단하고 구조용 통로로 사용하도록 바꾸었다.
이 사고로 인해 한 때 LPG 자동차의 통행이 금지 된적도 있었다. 최근에는 차량 앞에 LPG 차량임을 표시하고 사전 신고하는 조건 하에서 허가.

4. 기타


사상 최악의 참사에서 다루었다.

[1] 믿기 어렵겠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위기탈출 넘버원에서 트럭(훨씬 작은 봉고트럭으로 실험하긴 했다.)앞에서 담배꽁초를 계속해서 버리는 실험을 했는데 트럭 창문이 열려있다면 바람을 타고 창문 안으로 들어오거나 짐칸에 떨어지는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2] 이들의 구조차량은 Janus 4000 이었는데 터널 같은 곳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차를 빼기 쉽도록, 엔진과 운전석이 앞뒤 양쪽으로 달린 전후동력형 구조를 갖춘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