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교단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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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Militant Uprising
얼음과 불의 노래의 과거 사건.
41AC - 48AC에 벌어진 칠신교 산하 무장조직인 무장 교단이 타르가르옌 왕가에 일으킨 대규모 봉기.
칠신교 교단은 승승장구하는 타르가르옌 가문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통일 작업을 도왔지만, 칠왕국 평정이 끝난 뒤 왕권을 확립하려는 왕가와 기존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교단간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벌어졌다. 문제는 아에니스 1세는 그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이러한 갈등을 붙붙이기만 했던 것. 예를 들어서 강철 군도의 반란 진압 이후 칠신교 선교사들을 추방시키는것을 허용하는 등.
특히 교단 내에서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문제에 관해 문화적인 차이를 존중해야 된다는 온건적인 파벌과 죄악이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적인 파벌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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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 41AC에 아에니스가 자신의 아들인 아에곤과 딸 라에나를 결혼시키자 보수적인 하이 셉톤은 분노하며 공개적으로 왕가를 비난, 이에 교단 내의 과격파였던 무장 교단도 반발하며 봉기를 일으킨다. 이때 아에곤 왕자와 라에나 공주의 결혼을 축하해준 셉톤 머미슨도 파문당한 뒤 무장 교단원들이 붙잡아 죽였다.
아에니스는 왕성에 침입한 무장 교단들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할 뻔하고 드래곤스톤으로 피난가는 안습한 신세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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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었던 형 아에니스 1세가 킹스 랜딩에서 쫓겨나고 드래곤스톤에서 사망하자 마에고르가 어머니 비세니아 타르가르옌의 부름으로 귀국하여, 왕좌 계승권을 주장한다. 이때 그랜드 마에스터 가웬만이 아에니스 1세의 첫째 아들인 아에곤의 계승권이 위라고 주장하며 그의 즉위를 항의하자 "힘이 있는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목을 날려버리고'''[1] 왕위에 앉았다.
그 직후 비세니아와 마에고르는 셉트에 가서 "이제부터 내가 왕이니 불만 있는 놈 다 나와" 라고 선언하자 무장 교단의 '전사의 아들들' 기사단 총단장 데이먼 모리겐이 7 대 7 결투 재판을 신청한다. 이때 마에고르가 같이 싸울 사람 없냐고 묻자 킹스가드는 아에니스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없었고 다들 최강의 전사들에게 덤빌 엄두를 못냈지만, 딕 빈이라는 일개 평민 맨앳암즈가 왕을 위해 싸우겠다며 먼저 나서자 다른 기사들 또한 용기를 얻고 나섰다. 여기서 마에고르는 도전한 교단 기사들을 모두 죽이고 승리하지만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고 본인 또한 결투 도중 철퇴에 머리를 맞아 30일 동안 의식 불명에 빠졌다. 하지만 추방 기간 중 사귄 티안나라는 여자의 도움으로 회복한다.
의식을 되찾은 마에고르는 깨어나자마자 드래곤 발레리온을 타고 킹스랜딩의 기억의 셉트를 습격해서 안에서 기도하던 무장 교단 일원 700명을 모조리 태워 죽인다. 이때 발레리온의 불길을 피해 도망가던 무장 교단 신자들은 마에고르가 데려온 궁수들에게 전부 사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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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교단은 겁먹기는 커녕 분노하였고 반란은 오히려 전국으로 번졌다. 특히 스톤브릿지의 전투에서는 와트 더 휴어(Wat the Hewer)가 이끄는 무장 교단 군대 9천명과 마주하게되었는데, 이들 무장 교단의 군대는 모두 보병인데다가 가난한 평민들이었기에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장비도 형편없었던터라 마에고르가 이끄는 기병대의 공격에 꼼짝없이 격파되었다. 결국 이들은 마에고르의 진압군에게 맨더 강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 정도로 대패하였으며 스톤브릿지는 그 후로부터 비터브릿지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반란군 지도자 와트는 진압군의 사령관인 메도우 경을 포함한 기사 6명을 죽이면서 저항하다 생포된다. 와트는 킹스랜딩으로 압송되어 마에고르와 티안나의 결혼식때 조리돌림을 당하다 마에고르의 명에 의해 도끼로 사지가 잘려 죽고만다.
그레이트 포크의 전투에서는 무장 교단 뿐만이 아니라 리버랜드와 웨스터랜드의 반란군을 포함한 2만명에 달하는 병력이 마에고르의 진압군 2만과 맞붙었으나 마찬가지로 대패하였다. 이때 마에고르는 발레리온을 타고 친정에 나섰으며, 여기서 포로가 된 교단신자들과 반란군 기사, 병사들 상당수가 처형된다.
교단과 왕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자, 마에고르는 하이 셉톤에게 킹스랜딩에 와서 재판을 받으라고 하고, 이에 하이 셉톤은 마에고르한테 직접 올드타운으로 와서 신에게 잘못을 얘기하며 빌라고 요구했다. 이에 격분한 마에고르는 또 이런 요구하면 올드타운을 태워버리겠다고 경고하는 등, 이 둘의 관계는 점점 더 최악을 향하고 있었다. 43AC에 마에고르와 어머니인 비세니아가 하이 셉톤과 협상하기위해 올드타운으로 가던 중 갑자기 하이 셉톤이 죽고[2] 비세니아가 자신의 드래곤인 바가르의 등위에 탑승해서 먼저 도착했을 땐 이미 올드타운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타르가르옌 가문의 깃발이 펄럭이고있었다. 이후 하이타워 가문은 신속하게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하면서 훨씬 대가 약하고 늙은 셉톤을 창 끝으로 압박해서 그 자리에 오르게하여 마에고르를 왕으로 인정하면서 왕과 교단 사이의 갈등은 누그러지게된다. 마에고르도 세리스를 왕비로 복권 시켜주면서 화해하였으며, 이후 올드타운에 반년동안 기거하면서 조정을 열었고, 이 과정에서 포로로 잡힌 전사의 아들들은 처형당하거나 장벽으로 유배되는 선택을 해야 했는데, 당시 하이타워 지부의 단장이었던 모건 하이타워는 사면받았다.
또한 마에고르는 악명높은 종교무장금지법(마에고르법)을 만들어, 1년간의 유예시간을 줄테니 전부 무장해제하라는 경고를 내리고 교단의 기사(Warrior's Sons)의 두피를 벗겨 가져오면 금화를 주고, 일반 병사인 가난한 동료(Poor Fellows)의 두피를 가져오면 은화를 준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공약은 그대로 지켜져 마에고르를 지지하는 귀족들에게 신자들이 학살되는 결과로 이어지게된다. 이 학살로 약 2천명이 살해되었는데 실제로는 돈을 노리고 무고한 사람들도 다수 죽였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속에서도 여러 무장 교단원들은 새로 선출된 하이 셉톤을 아첨쟁이라고 비난하며 여전히 투쟁을 계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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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혼란속에서 아에니스의 원래 후계자였던 아에곤 왕자는 다시금 왕위계승권을 주장하였고 그의 용 퀵실버와 지지세력을 이끌고 신의 눈 섬으로 향해 숙부 마에고르와 맞서게된다. 그러나 겨우 서른을 넘은 용 퀵실버와 백살은 가볍게 넘은 고룡 발레리온은 체급과 실전 경험부터가 다르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고, 마에고르 또한 칠왕국 최고의 전사이자 지휘관이라 애송이에 불과한 아에곤으로써는 이길수가 없었다. 결국 신의 눈 호수 인근에서 벌어진 일기토에서 발레리온의 화염 공격에 퀵실버가 오른쪽 날개를 잃고 추락하면서 아에곤 왕자는 추락사하게되며, 아에곤 왕자를 따르던 군대 또한 섬멸당하고 만다. 다음해 마에고르는 알리사 벨라리온 왕대비와 자식들인 자에하에리스 왕자와 알리산느 공주를 드래곤스톤에 가둔 후 비세리스 왕자를 종자로 삼아 인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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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에고르의 이런 잔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교단은 계속하여 봉기하였다. 탄압이 계속되던 와중 AC 48년 셉톤 문과 조프리 도겟[3] 이 엄청난 수의 가난한 신자들을 이끌고 레드킵으로 진군하게되는데, 이들은 AC 50년 자에하에리스 왕자를 지지하며 마에고르를 끌어내리기 위해 더욱 많은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마에고르의 폭정에 질색한 귀족들마저 반란에 참가하게되자 온 나라가 마에고르에게 들고 일어선 상황이 되었다.
자에하에리스 왕자를 보호하던 바라테온 가문의 로가르 바라테온이 자에하에리스에게 호국경으로 임명되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반란이 본격화되자 라에나 타르가르옌은 드림파이어를 타고 막내동생에게 도주했으며, 소협의회의 최측근이었던 수관 에드웰 켈티가르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킹스가드 두명마저도 마에고르의 학정에 질려 도주하고만다. 특히 다에몬 벨라리온은 함대까지 빼돌려 자에하에리스에게 가담했다. 나중에 가서는 라니스터 가문, 티렐 가문, 아린 가문같은 대가문들까지도 대놓고 자에하에리스의 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마에고르의 몰락은 가속화되고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위해 마에고르는 남은 충성파 영주들을 모조리 소집하지만 그 자리에는 국왕령 소영주 몇몇만이 참석하였을뿐이었다. 자신의 몰락을 깨닫게된 마에고르는 결국 마지막까지 작전회의를 짜다가 다음날 아침 철왕좌에 앉아서 손목이 그어진 채로 쓸쓸하게 죽은 채로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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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고르가 죽은 뒤에는 수도에 입도한 자에하에리스 1세가 즉위하게 되었는데, 마에고르에게 협조한 귀족과 하인들 대부분은 자에하에리스의 자비로 큰 처벌을 면하게된다. 다만 이중 마에고르가 벌인 학정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특히 비세리스 왕자를 고문하는데 협조한 간수 및 고문기술자들은 처형당했고, 마에고르 치세에 임명된 킹스가드들은 한명은 처형, 한명은 결투 재판에서 죽었으며 나머지는 도주한 두명을 포함해 장벽으로 유배되었다.
자에하에리스는 신들린 외교력으로 교단과 협상을 통해 교단 사면과 보호를 조건으로 무장 교단을 해산시켰고, 결과적으로 무장 교단 봉기는 일단락 되면서 동시에 정교분리의 원칙이 세워지게 되었다. 덤으로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었던 근친혼 문제는 그냥 안달족과 발리리아인들은 다르다라고 넘어가면서 심플하게 해결된다.
하지만 250년 뒤에...
Faith Militant Uprising
1. 개요
얼음과 불의 노래의 과거 사건.
41AC - 48AC에 벌어진 칠신교 산하 무장조직인 무장 교단이 타르가르옌 왕가에 일으킨 대규모 봉기.
2. 배경
칠신교 교단은 승승장구하는 타르가르옌 가문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통일 작업을 도왔지만, 칠왕국 평정이 끝난 뒤 왕권을 확립하려는 왕가와 기존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교단간의 갈등이 필연적으로 벌어졌다. 문제는 아에니스 1세는 그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이러한 갈등을 붙붙이기만 했던 것. 예를 들어서 강철 군도의 반란 진압 이후 칠신교 선교사들을 추방시키는것을 허용하는 등.
특히 교단 내에서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문제에 관해 문화적인 차이를 존중해야 된다는 온건적인 파벌과 죄악이니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강경적인 파벌로 나뉘었다.
3. 진행
3.1.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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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 41AC에 아에니스가 자신의 아들인 아에곤과 딸 라에나를 결혼시키자 보수적인 하이 셉톤은 분노하며 공개적으로 왕가를 비난, 이에 교단 내의 과격파였던 무장 교단도 반발하며 봉기를 일으킨다. 이때 아에곤 왕자와 라에나 공주의 결혼을 축하해준 셉톤 머미슨도 파문당한 뒤 무장 교단원들이 붙잡아 죽였다.
아에니스는 왕성에 침입한 무장 교단들에게 일가족이 몰살당할 뻔하고 드래곤스톤으로 피난가는 안습한 신세가 되고 만다.
3.2. 마에고르의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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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었던 형 아에니스 1세가 킹스 랜딩에서 쫓겨나고 드래곤스톤에서 사망하자 마에고르가 어머니 비세니아 타르가르옌의 부름으로 귀국하여, 왕좌 계승권을 주장한다. 이때 그랜드 마에스터 가웬만이 아에니스 1세의 첫째 아들인 아에곤의 계승권이 위라고 주장하며 그의 즉위를 항의하자 "힘이 있는 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며 '''그 자리에서 목을 날려버리고'''[1] 왕위에 앉았다.
그 직후 비세니아와 마에고르는 셉트에 가서 "이제부터 내가 왕이니 불만 있는 놈 다 나와" 라고 선언하자 무장 교단의 '전사의 아들들' 기사단 총단장 데이먼 모리겐이 7 대 7 결투 재판을 신청한다. 이때 마에고르가 같이 싸울 사람 없냐고 묻자 킹스가드는 아에니스에게 가 있었기 때문에 없었고 다들 최강의 전사들에게 덤빌 엄두를 못냈지만, 딕 빈이라는 일개 평민 맨앳암즈가 왕을 위해 싸우겠다며 먼저 나서자 다른 기사들 또한 용기를 얻고 나섰다. 여기서 마에고르는 도전한 교단 기사들을 모두 죽이고 승리하지만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고 본인 또한 결투 도중 철퇴에 머리를 맞아 30일 동안 의식 불명에 빠졌다. 하지만 추방 기간 중 사귄 티안나라는 여자의 도움으로 회복한다.
의식을 되찾은 마에고르는 깨어나자마자 드래곤 발레리온을 타고 킹스랜딩의 기억의 셉트를 습격해서 안에서 기도하던 무장 교단 일원 700명을 모조리 태워 죽인다. 이때 발레리온의 불길을 피해 도망가던 무장 교단 신자들은 마에고르가 데려온 궁수들에게 전부 사살되었다.
3.3. 비터브릿지와 그레이트 포크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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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교단은 겁먹기는 커녕 분노하였고 반란은 오히려 전국으로 번졌다. 특히 스톤브릿지의 전투에서는 와트 더 휴어(Wat the Hewer)가 이끄는 무장 교단 군대 9천명과 마주하게되었는데, 이들 무장 교단의 군대는 모두 보병인데다가 가난한 평민들이었기에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장비도 형편없었던터라 마에고르가 이끄는 기병대의 공격에 꼼짝없이 격파되었다. 결국 이들은 마에고르의 진압군에게 맨더 강이 온통 붉은색으로 물들 정도로 대패하였으며 스톤브릿지는 그 후로부터 비터브릿지로 불리게 되었다. 특히 반란군 지도자 와트는 진압군의 사령관인 메도우 경을 포함한 기사 6명을 죽이면서 저항하다 생포된다. 와트는 킹스랜딩으로 압송되어 마에고르와 티안나의 결혼식때 조리돌림을 당하다 마에고르의 명에 의해 도끼로 사지가 잘려 죽고만다.
그레이트 포크의 전투에서는 무장 교단 뿐만이 아니라 리버랜드와 웨스터랜드의 반란군을 포함한 2만명에 달하는 병력이 마에고르의 진압군 2만과 맞붙었으나 마찬가지로 대패하였다. 이때 마에고르는 발레리온을 타고 친정에 나섰으며, 여기서 포로가 된 교단신자들과 반란군 기사, 병사들 상당수가 처형된다.
3.4. 마에고르법 제정
교단과 왕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자, 마에고르는 하이 셉톤에게 킹스랜딩에 와서 재판을 받으라고 하고, 이에 하이 셉톤은 마에고르한테 직접 올드타운으로 와서 신에게 잘못을 얘기하며 빌라고 요구했다. 이에 격분한 마에고르는 또 이런 요구하면 올드타운을 태워버리겠다고 경고하는 등, 이 둘의 관계는 점점 더 최악을 향하고 있었다. 43AC에 마에고르와 어머니인 비세니아가 하이 셉톤과 협상하기위해 올드타운으로 가던 중 갑자기 하이 셉톤이 죽고[2] 비세니아가 자신의 드래곤인 바가르의 등위에 탑승해서 먼저 도착했을 땐 이미 올드타운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타르가르옌 가문의 깃발이 펄럭이고있었다. 이후 하이타워 가문은 신속하게 다시 한번 충성을 맹세하면서 훨씬 대가 약하고 늙은 셉톤을 창 끝으로 압박해서 그 자리에 오르게하여 마에고르를 왕으로 인정하면서 왕과 교단 사이의 갈등은 누그러지게된다. 마에고르도 세리스를 왕비로 복권 시켜주면서 화해하였으며, 이후 올드타운에 반년동안 기거하면서 조정을 열었고, 이 과정에서 포로로 잡힌 전사의 아들들은 처형당하거나 장벽으로 유배되는 선택을 해야 했는데, 당시 하이타워 지부의 단장이었던 모건 하이타워는 사면받았다.
또한 마에고르는 악명높은 종교무장금지법(마에고르법)을 만들어, 1년간의 유예시간을 줄테니 전부 무장해제하라는 경고를 내리고 교단의 기사(Warrior's Sons)의 두피를 벗겨 가져오면 금화를 주고, 일반 병사인 가난한 동료(Poor Fellows)의 두피를 가져오면 은화를 준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이 공약은 그대로 지켜져 마에고르를 지지하는 귀족들에게 신자들이 학살되는 결과로 이어지게된다. 이 학살로 약 2천명이 살해되었는데 실제로는 돈을 노리고 무고한 사람들도 다수 죽였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탄압속에서도 여러 무장 교단원들은 새로 선출된 하이 셉톤을 아첨쟁이라고 비난하며 여전히 투쟁을 계속하였다.
3.5. 신의 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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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혼란속에서 아에니스의 원래 후계자였던 아에곤 왕자는 다시금 왕위계승권을 주장하였고 그의 용 퀵실버와 지지세력을 이끌고 신의 눈 섬으로 향해 숙부 마에고르와 맞서게된다. 그러나 겨우 서른을 넘은 용 퀵실버와 백살은 가볍게 넘은 고룡 발레리온은 체급과 실전 경험부터가 다르니 상대가 될 리가 없었고, 마에고르 또한 칠왕국 최고의 전사이자 지휘관이라 애송이에 불과한 아에곤으로써는 이길수가 없었다. 결국 신의 눈 호수 인근에서 벌어진 일기토에서 발레리온의 화염 공격에 퀵실버가 오른쪽 날개를 잃고 추락하면서 아에곤 왕자는 추락사하게되며, 아에곤 왕자를 따르던 군대 또한 섬멸당하고 만다. 다음해 마에고르는 알리사 벨라리온 왕대비와 자식들인 자에하에리스 왕자와 알리산느 공주를 드래곤스톤에 가둔 후 비세리스 왕자를 종자로 삼아 인질로 만들었다.
3.6. 마에고르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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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에고르의 이런 잔혹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교단은 계속하여 봉기하였다. 탄압이 계속되던 와중 AC 48년 셉톤 문과 조프리 도겟[3] 이 엄청난 수의 가난한 신자들을 이끌고 레드킵으로 진군하게되는데, 이들은 AC 50년 자에하에리스 왕자를 지지하며 마에고르를 끌어내리기 위해 더욱 많은 군대를 모으기 시작했으며, 여기에 마에고르의 폭정에 질색한 귀족들마저 반란에 참가하게되자 온 나라가 마에고르에게 들고 일어선 상황이 되었다.
자에하에리스 왕자를 보호하던 바라테온 가문의 로가르 바라테온이 자에하에리스에게 호국경으로 임명되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반란이 본격화되자 라에나 타르가르옌은 드림파이어를 타고 막내동생에게 도주했으며, 소협의회의 최측근이었던 수관 에드웰 켈티가르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킹스가드 두명마저도 마에고르의 학정에 질려 도주하고만다. 특히 다에몬 벨라리온은 함대까지 빼돌려 자에하에리스에게 가담했다. 나중에 가서는 라니스터 가문, 티렐 가문, 아린 가문같은 대가문들까지도 대놓고 자에하에리스의 편을 들기 시작하면서 마에고르의 몰락은 가속화되고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위해 마에고르는 남은 충성파 영주들을 모조리 소집하지만 그 자리에는 국왕령 소영주 몇몇만이 참석하였을뿐이었다. 자신의 몰락을 깨닫게된 마에고르는 결국 마지막까지 작전회의를 짜다가 다음날 아침 철왕좌에 앉아서 손목이 그어진 채로 쓸쓸하게 죽은 채로 발견된다.
4. 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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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고르가 죽은 뒤에는 수도에 입도한 자에하에리스 1세가 즉위하게 되었는데, 마에고르에게 협조한 귀족과 하인들 대부분은 자에하에리스의 자비로 큰 처벌을 면하게된다. 다만 이중 마에고르가 벌인 학정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특히 비세리스 왕자를 고문하는데 협조한 간수 및 고문기술자들은 처형당했고, 마에고르 치세에 임명된 킹스가드들은 한명은 처형, 한명은 결투 재판에서 죽었으며 나머지는 도주한 두명을 포함해 장벽으로 유배되었다.
자에하에리스는 신들린 외교력으로 교단과 협상을 통해 교단 사면과 보호를 조건으로 무장 교단을 해산시켰고, 결과적으로 무장 교단 봉기는 일단락 되면서 동시에 정교분리의 원칙이 세워지게 되었다. 덤으로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었던 근친혼 문제는 그냥 안달족과 발리리아인들은 다르다라고 넘어가면서 심플하게 해결된다.
하지만 250년 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