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에하에리스 1세
1. 개요
타르가르옌 왕조의 4대 왕. 2대 국왕 아에니스 1세와 알리사 벨라리온 왕비의 삼남. 생몰년은 34AL ~ 103AL(69년), 재위 기간은 48AL ~ 103AL(55년). 숙부인 마에고르 1세가 반란 당시에 급사하고 나서 즉위했다.
전대 국왕이 폭군으로 유명했다면, 이쪽은 '''타르가르옌 왕조 최고의 성군'''으로 유명하며, 아에곤 1세와 함께 최고의 왕으로 꼽힌다. 별명은 조정왕(The Conciliator), 오래 재위하여 늙은 왕(The Old King), 현명한 왕(The Wise)이다. 아내이자 여동생이었던 왕비 알리산느 타르가르옌 또한 지혜롭기로 유명했으며 남편의 제일가는 상담자였다고 한다. 드래곤은 버미소르.
온화한 성품이었고 조정왕이라는 별명답게 모든 것을 최대한 외교적,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서도 분노하면 단호해지기도 하는 성격이었다. 문무를 겸비했고, 오래 살면서 오랫동안 잘 통치하여 수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행정과 사법 제도를 정비해 아에곤 1세가 시작한 칠왕국의 통합을 완료시킨 왕이다.
덤으로 생일이 9월 20일인데 작가인 조지 R.R. 마틴의 생일과 동일하다.
2. 생애
2.1. 왕자 시절과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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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은 전부 삼촌인 마에고르에게 죽었고, 자에하에리스 본인은 드래곤스톤에 어머니와 여동생 알리산느 타르가르옌과 함께 인질로 갇혀 있다가 비세니아가 죽자 탈출해서 마에고르를 피해서 숨어 살았다.
그동안 마에고르의 계속된 폭정에 질려 있었던 온 나라가 들고 일어나서 왕을 끌어 내리고 자에하에리스를 대신 왕으로 추대하려 하였다. 바라테온 가문의 로가르 바라테온이 자에하에리스에게 호국경으로 임명되어 지지를 천명한 것을 시작으로, 라에나 타르가르옌은 드림파이어를 타고 막내동생에게 도주했으며, 마에고르의 최측근이었던 수관 에드웰 켈티가르,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킹스가드 두명마저도 도주하고, 특히 다에몬 벨라리온은 함대까지 빼돌려 자에하에리스에게 가담했다. 나중에 가서는 라니스터 가문, 티렐 가문, 아린 가문같은 대가문들까지도 대놓고 자에하에리스의 편을 들기 시작했다.
결국 마에고르가 자살로 추측되는 죽음을 맞이한 뒤 48AC에 14살의 나이로 왕이 되었다. 마에고르에게 협조한 귀족과 하인들 대부분은 자에하에리스의 자비로 큰 처벌을 면하게 된다. 다만 이중 마에고르가 벌인 학정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특히 비세리스 왕자를 고문하는 데 협조한 간수 및 고문기술자들은 처형당했고, 마에고르 치세에 임명된 킹스가드들은 한 명은 처형, 한 명은 결투 재판에서 죽었으며 나머지는 도주한 두 명을 포함해 장벽으로 유배되었다.
올드타운에 가서 하이 셉톤에게 왕으로 즉위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대 국왕 마에고르 1세가 무장 교단 봉기에서 밟아는 놓았지만 결국 뿌리뽑지 못했던 무장 교단을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산시키고, 교단의 재판권까지 빼앗아 정교분리의 원칙을 확립했다.[2] 왕 맘에 안 들면 닥치는 대로 죽여대던 마에고르의 폭정을 기억하는 영주들이 알아서 기던 것도 없잖아 있다. 대신 왕가는 교단을 전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성년이 될 때까지는 어머니인 알리사 벨라리온이 섭정을, 반란을 가장 앞장서서 지지했던 로가르 바라테온이 수관을 맡았으며, 둘은 황금 결혼식에서 결혼했다. 로가르 바라테온은 타르가르옌 가문의 근친혼 전통을 지키는 것보다는 교단의 반발을 막기 위해서 자에하에리스 남매를 따로 결혼시킬 생각이었으나, 그러기 싫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잘 따르던 여동생 알리산느와 몰래 각자 드래곤에 탑승해서 드래곤스톤까지 도망친 다음에 근친 결혼식을 올려서 온 집안을 뒤집어놓았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드래곤스톤에 틀여 박혀서 모친과, 새로운 아버지 행세를 하려는 수관인 로가르에게 반발하였다. 로가르는 자에하에리스에게 분노해 어떻게든 초야를 치르지 않은 두 사람을 갈라놓기 위해 여러 뒷공작을 시도했고, 왕 또한 자신을 아들 취급하며 약혼 과정을 자신에게 비밀로 한 로가르에게 불만을 가졌고, 드래곤스톤으로 여러 영주들을 불러 회합을 가지는 등 킹스 랜딩의 로가르를 견제했다. 로가르는 왕의 폐위까지 언급하다가 해임당했지만, 성인이 된 자에하에리스가 정식으로 섭정의 권력을 이양받자 용서받았다.
2.2. 집권 초중기
50AC, 16세가 되던 해에 성인이 되어 본격적으로 정권을 잡기 시작한 뒤로부터 대대적인 개혁을 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협의회를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하면서 일부를 해고하고 그 대신으로 자기가 직접 신분고하 없이 뛰어난 인물들을 선발해 고용하였다. 소협의회의 경우 단순히 조언가들의 자문회에서 실질적인 관료기관으로 만든 것은 자에하에리스였다. 그리고 이 당시 재무대신 레고 드라즈와 구상해낸 그의 초기 정책 중 하나는 일반 백성들이나 상인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대신 비단 같은 사치품과 국방에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성채 증축에 부가세를 씌우는 것이었다.[3]
다음해 알리산느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뤘고 하룻밤도 치뤘는데, 어차피 왕국 대부분은 자에하에리스를 정식으로 왕으로 임명했고 무장 교단은 해산되었지만, 근친혼을 인정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둘은 지지를 얻기 위해 용을 타고 왕국을 순례하였고, 동시에 마에고르의 전 왕비였던 엘리노르 코스테인을 포함한 일곱 명의 설교자들을 왕국에 파견하였다. 이 왕국 순례 과정에서 알리산느 왕비가 메이든풀에서 습격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해 알리산느는 첫째 아에곤을 낳았으나 3일만에 죽었고, 다음 해에는 대너리스를 낳았다.
54AC에는 일곱 명의 설교자 중 하나인 알핀이 하이 셉톤으로 선출되었고 발리리아인들은 안달족과 문화적, 신체적으로도 다르기 때문에 근친혼이 허용된다는 "예외주의 교리"(Doctrine of Exceptionalism)가 정식 교리로 세워졌다. 같은 해 엘리사 파먼이 누나 라에나 타르가르옌의 알 세 개를 훔쳐갔고 어머니 알리사 벨라리온이 아이를 낳고 죽었다. 나중에는 아에레아 타르가르옌 공주가 실종되는 일이 있었다. 2년 뒤 아에레아가 끔찍한 몰골로 돌아왔고 발리리아의 출입을 일제히 금지했다.
그리고 다음해 55AC에는 대장장이의 아들 출신으로 킹스 랜딩의 도서관 사서직을 맡고 있던 셉톤 바스, 그랜드 마에스터 베니퍼, 법무대신 알빈 매시와 함께 전 왕국을 총망라하는 통일된 법전을 작성했는데, 이건 정복왕 아에곤 1세도 자치권 보장을 위해 하지 못했던 일이다. 2년 뒤 마일즈 스몰우드를 해임하고 바스를 수관으로 천거했다. 바스는 타르가르옌 왕조 역대 최고의 수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자에하에리스의 최고의 업적들에는 항상 바스가 관여했다.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바스의 반대파들은 하층민 출신인 바스가 셉톤이라기보다는 마술사에 가까운 존재라고 비난했지만 바스에 대한 왕의 신뢰는 굳건했다. 바스의 조언에 따라 킹스 랜딩의 상하수도를 도입하여 도시의 청결과 시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도 했다. 같은 해 바엘론 타르가르옌이 태어났다.
58 AC에는 북부를 방문했는데, 자에하에리스는 펜토스와 티로시가 자에하에리스 왕의 뛰어난 외교력을 듣고 협상을 부탁했다. 이때 알리산느 타르가르옌이 먼저 윈터펠에 가서 알라릭 스타크를 방문했는데, 그를 설득하여 밤의 경비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북부 영토를 기프트에 일부 분할해 주었다. 현재 알려진 바로는 왕비 알리산느와 함께 유일하게 장벽을 방문한 왕이기도 하다. 밤의 경비대의 성 중 하나인 딥 레이크는 알리산느가 자기 보석을 팔아서 마련해 준 돈으로 지었다. 그리고 이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장벽의 성 중 하나인 스노우게이트는 퀸스게이트로 이름이 바뀌었다. 왕비의 조언으로 초야권도 완전히 폐지했는데, 이건 평민들이 좋아하고 나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만한 법이다. 어차피 현실의 중세에서도 사실상 사문화된 법이라 이걸 빌미로 영민에게 돈을 뜯던 영주들 빼곤 별 탈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59AC 겨울에는 왕국에 기근과 함께 오한병이라는 전염병이 왕국에 돌았으며, 소협의회 절반과 킹스가드 두 명을 잃었다. 대너리스 공주도 죽었다. 그래서 소협의회에 들어갈 유능한 인물들을 다시 구해야 했다. 다음해에는 알리사 타르가르옌 공주가 태어났다. 60AC에는 도른 변경의 제3차 도른 전쟁에서 로가르 바라테온과 함께 독수리 왕을 토벌했다. 이 당시 전염병 때문에 떨어진 왕권을 회복했다고 한다.
61AC에는 강철 은행에서 받은 돈을 바탕으로 치세 기간 동안 웨스테로스 전체를 잇는 도로인 킹스로드의 건설을 시작했다.
2.3. 자녀들과 후계자 논란
금슬이 어찌나 좋았는지 13명이나 되는 자식을 본것으로 유명하다. 자식들은 각각 순서대로 아에곤, 대너리스, 아에몬, 바엘론, 알리사, 바에곤, 마에겔, 다엘라, 사에라, 비세라, 가에몬, 발레리온, 가엘을 낳았다. 이중 아홉 명만이 성인 때까지 살아남았다. 자세한 것은 타르가르옌 가문 항목 참조. 큰 아이들은 모두 민중들에게 인기가 많을 정도로 상태가 좋았지만, 밑에 가면 갈수록 이상할 정도로 아이들의 상태가 나빠져서 자식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알려진 손자 손녀로는 아에몬과 바라테온 가문 출신 조슬린[4] 의 소생인 라에니스, 그리고 바엘론의 아들들인 비세리스와 다에몬, 비세리스의 첫 아내이며 다엘라의 딸인 아에마, 그 외에도 많은 후손들이 있었다. 이 많은 후손들이 용들의 춤에서 전멸에 가깝게 많이 죽었다.
2.4. 집권 후기
80AC에 왕세자인 아에몬 타르가르옌을 법무대신으로 임명했다. 3년 후 제4차 도른 전쟁에서 도른이 스톰랜드를 침공해 오자 각자 용을 타고 아에몬, 바엘론 왕자와 함께 함대를 쓸어버렸다.
그라다가 92AC에 타스 해적 진압에서 왕세자 아에몬이 전사했다. 자에하에리스가 아에몬의 딸, 즉 자기 손녀인 라에니스 타르가르옌 대신에 차남 바엘론을 후게자로 삼자 왕비 알리산느는 '여자가 남자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어디 있냐'며 매우 분노하였고 별거를 택했다. 이에 삼녀인 마에겔 공주가 둘 사이를 중재해서 화해했다고 한다.
98AC에 즉위 50주년을 맞이하여 대 마상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차례차례 비극이 겹쳤는데 먼저 같은 해 명신이자 친구인 바스가 죽었다. 이후 킹스가드의 사령관이자 마상대회 공동 우승자인 라이엄 레드와인 경, 후계자였던 셋째 아들 바엘론 왕자, 오토 하이타워 경이 차례로 수관직을 맡았다. 바엘론 왕자는 군왕의 자질을 보일 정도로 잘 해냈으나 요절했고 라이엄 레드와인과 오토 하이타워는 바스만큼 유능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다음해 막내딸 가엘이 투신자살로 죽었고 그다음해에는 알리산느 왕비가 슬픔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거기에 바엘론 왕자마저도 죽자 바에곤의 조언으로 101년의 대협의회에서 하렌홀에서 전국 각지의 영주들을 불러 후계자를 결정했고, 바엘론의 장남 비세리스 타르가르옌이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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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들을 차례로 잃은 자에하에리스는 큰 충격을 받았고 병상에서 앓아눕는 시간이 길어졌다. 바엘론이 죽고 2년 후, 자에하에리스는 수관 오토 하이타워 경의 딸 알리센트 하이타워를 왕국으로 돌아온 사에라 공주로 착각했고, 알리센트가 병상의 그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을 들으며 숨을 거두었다. 이때 알리센트가 읽어준 책 중에는 바스가 쓴 책들이 많았다고 한다.
귀족과 평민들을 불문하고 많은 백성들에게 사랑받았던 성군이었기 때문에 그가 죽자 전국이 슬퍼했다. 심지어는 사실상 적대국이었던 도른 공국에서도 자에하에리스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한다.
3. 평가
"중재왕"이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이 자에하에리스 1세의 가장 뛰어난 능력은 단연 외교력이었고 되도록이면 평화를 지향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필요에 따라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권모술수를 부릴 줄 알았다.
아버지인 아에니스가 약하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열심히 무예를 연마한지라 문무겸비한 왕이었다. 젊은 시절에는 독수리 왕을 지원하는 로가르 바라테온의 동생을 일대일로 싸운 뒤 베어서 전염병으로 떨어진 왕권을 회복하고 유약한 아에니스의 아들이라는 딱지를 완전히 지워버렸으며, 장년기에 딸 사에라 타르가르옌의 처녀성을 취한 젊은 브랙스톤 비스버리 경에게 장애인이 되는 형벌 대신 결투 재판의 기회를 줬는데, 킹스가드를 동원하는 대신에 '''직접''' 딸의 대전사로 나서서 상대의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 잘 방어하면서 기다리다가 블랙파이어로 상처를 줘서 제압한 다음에 눈을 찔러버리는 무용을 보여줬다.
서약을 파기하는 것을 무엇보다도 싫어했다. 대표적으로 킹스가드 두 명이 마에고르를 버리고 자기 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믿을 수 없다며 밤의 경비대로 보내버렸다. 또, 킹스가드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루카모어 스트롱 경이 킹스가드의 맹세를 저버리고 비밀리에 세 명의 아내와 결혼해 열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낳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역시 그를 거세하고 밤의 경비대로 보내버렸다.
자에하에리스가 이같은 업적과 개혁을 세우는 데는 용을 필두로 한 강력한 왕권도 한 몫 했다. 후에 마찬가지로 성군으로 불리는 다에론 2세와 아에곤 5세가 개혁에 대한 귀족들의 반발로 반란에 시달리거나 대놓고 무시받은 것만 봐도, 타르가르옌 왕조의 힘은 드래곤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데 50년간 명군으로써 왕위에 있었다는 점과 왕세자였던 흑태자 에드워드가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서 손자인 리처드 2세가 왕위에 올랐다는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조선으로 따지면 세종대왕에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왕조에서 최고로 추앙받는 성군이라는 점 외에 4번째 왕에다가 3남, 초대 왕의 손자인 것도 비슷하다. 가장 적자를 많이 낳은 왕이었지만 정작 자식 농사가 비극으로 끝난 것도. 그리고 업적 대부분이 세종대왕은 태종이 마련해 준 강력한 권력, 자에하에리스는 마에고르의 숙청과 용이라는 권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공통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