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영화

 

1. 개요
2. 국가별
3. 관련 항목



1. 개요


'''무협영화'''란 무협물 장르의 영화를 가리킨다. 중국의 무협영화는 1930년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걸로 추정된다. 1920년대도 일본에서는 모리 오가이의 단편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걸 감안하면 말이다. 무협영화는 1940년대 이후, 촬영기술이나 특수효과가 발달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특히 개인이 TV를 보유할 수 없었던 시대였기때문에 영화는 서민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런데 지겨운 현실 때문에 카타르시스가 필요했던 관객들을 위해 무협영화가 나왔다. 사실 무협지가 원래 현실도피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발달한 거지만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읽기가 귀찮은데다가,문맹은 글을 읽을 수 없고 특히 책만 읽으면 잠이 오는 사람들이 많기에 무협영화가 더 번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무협영화는 국가별로 큰 차이가 있다.
서부극이 초창기 찬바라물에 영향을 주고 찬바라물과 홍콩식 무협영화가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무협영화와 찬바라물이 서부극에 다시 영향을 주는등 액션 영화에 영향을 끼친게 지대하다.

2. 국가별



2.1. 일본


찬바라항목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사무라이라든가 인의를 위하거나 그시대의 가치를 지키기위해 목숨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며 사람들을 도륙한다. 밑의 3국의 무협영화들에 비해 황당한 경공술이나 무술초식이나 괴상무기가 덜 나오고 리얼리즘적이다. 사실 동남아에서 제일 인기있는게 찬바라고,서구 매니아들이 제일 선호한다.
홍콩의 장철 등도 사실 찬바라에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영화 분야에서는 무협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2.2. 홍콩


처음에는 일본의 찬바라물에 밀려 인기를 얻지 못하였으나 1960년대 중후반 호금전, 장철, 초원 등 명감독들이 등장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 이소룡이 활약하기 전에는 극장에 걸리는 영화는 다 무협영화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많은 무협영화들이 쏟아져나왔다.
호금전 감독은 경극에 영향을 받은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영상미가 돋보이는 예술적인 무협을 추구하여 후대의 홍콩 감독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다만 감독이 무협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어서 액션 장면보다 영상미를 추구한지라 지금 대중들의 관점으로 보면 액션 장면이 무척 밋밋해 보일수도 있다. 대표작으로는 대취협, 용문객잔, 협녀가 있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호금전이 쇼브라더스와의 마찰로 대취협을 완성한 직후 영화사를 떠나자[1] 쇼브라더스의 사장 런런쇼가 장철을 호금전의 대항마로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뜨기 시작한 장철 감독은 호금전과 정반대로 유혈이 난무하고 마초적인 내용의 무협물을 감독했다. 장철의 영화는 비록 호금전의 영화보다는 전체적인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기존 무협 영화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액션씬이 대중들의 큰 인기를 얻어 스타 감독으로 떠오른다. 다만 너무 영화를 공장식으로 찍어댄지라 매번 같은 플롯, 매번 같은 액션 장면 등으로 식상한 영화들이 난무하였고 결국 더욱 화려한 액션과 현대물로 무장한 이소룡이 나타나자 정말 급격히 몰락하게 된다. 대표작으로는 외팔이, 금연자 등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초원 감독은 1960,70년대 홍콩영화 1차 부흥기 시절 무협을 포함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만든 감독[2]이자 배우로[3] 이러한 다재다능한 재능을 살려서 위의 두 감독들에 비해 드라마적인 요소가 두드러진 무협영화들을 만들었다. 주로 고룡의 소설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 유명하다. 대표작으로는 유성호접검, 백옥노호, 의천도룡기 등이 있다. 백옥노호 같은 고룡의 후기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들은 원작이 출판된 직후 영화화되었고 고룡이 직접 각본을 담당하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부터는 동방불패, 황비홍으로 유명한 서극 감독이 주도하였다.

2.3. 대만


대만의 경우, 3S정책목적으로 장려되었고 현실(장제스 독재)에 불만을 많이 품은 지식인들이 양질의 원작을 제공해줬기에 엄청난 성장을 했다. 중화권과 가치관에서 상당히 미묘한 차이가 있다.
홍콩 무협영화의 중흥기와 맞물려 대만에서도 1967년 호금전 감독의 용문객잔, 1968년 곽남굉 감독의 일대검왕 이 히트하면서 무협영화의 중흥기가 시작된다.
곽남굉은 이후 홍콩으로 건너가 쇼브라더스에 입사하기도 했고, 2편의 영화를 감독한후 다시 대만으로 복귀, 소림사 18동인 같은 명작을 남기기도 한다.
같은 중화권이기에 홍콩영화계와 대만영화계는 인적교류가 빈번하다.
대만에서 주목 받는 신인 감독이나 배우는 보다 넓은 시장인 홍콩으로 스카웃 되어가고, 전성기가 지난 홍콩 스타 (또는 홍콩으로 진출했던 대만 출신 스타)는 어김없이 대만으로 무대를 옮겨 명성을 지속시키기고 다시 홍콩시장으로 복귀하기도 했다.
전자는 70년대 반영자, 하리리 부터 80년대 임청하, 호혜중, 왕조현 등이고 후자는 왕우, 정소추, 강대위, 나열, 진성, 능운, 종화, 악화, 장익 등 거의 대부분의 배우들이 그랬다.
그 때문에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대만 배우, 홍콩 배우(애초에 같은 중국인이니) 들이 뒤섞여서 출연한 영화들이 우후죽순 개봉되었다.[4]
또한 1976년 홍콩 쇼브라더스의 초원 감독의 유성호접검의 영향력은 상당해서 비슷한 플롯으로 홍콩배우들을 출연시킨 아류 작품들이 대만에서도 많이 제작 되었다.
70년대에는 홍콩영화에 필적할만한 걸작들도 많이 제작되었지만 80년대로 넘어가면서부턴 저예산 날림 영화들이 더 많이 제작되었다.
70년대 대만 무협 중흥기의 주목할 만한 배우들은 백응, 강남, 전붕 등의 남성배우들, 그리고 상관영봉과 서풍 그리고 장령으로 이어지는 여전사 이미지의 배우들이 있다.
특히 60년대 말 호금전의 용문객잔과 협녀, 곽남굉의 일대검왕 등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전붕'은 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대만무협 영화의 유일무이한
원탑 남자 주연으로 활약하였다.
80년대 중후반 국내 비디오 대여점의 무협물들은 대만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중에는 전붕 주연에 위에 말한 흘러간 홍콩 스타들인 능운, 종화, 악화, 강대위 가 조연 그리고 어김없이 나열, 진성, 장익 등 이 악역으로 나오는 영화들이 있었다.
70년대 후반에는 자신의 영화사를 설립해서 감독겸 주연으로도 활약하였다.
전붕 주연의 한국개봉작으로는 비취호리, 소림사18동인 등이 있다.
전붕과 함께 용문객잔으로 데뷔한 '상관영봉'은 60년대 말부터 70년대 후반까지 대만 무협영화의 히로인이었다.
소림사 18동인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고 한국 무협영화에도 가끔 모습을 보였다.
그 뒤를 이은것은 '장령'으로 [5] 77년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한 진명화 감독의 무림천하(풍운인물)에서의 카리스마는 주연이었던 남자배우 진상림을 완전히 압도한다. 84년 성룡, 임청하, 정소추등과 같이 출연한 대복성에서도 모습을 볼수 있는데 이 영화를 끝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한듯하다.

2.4. 한국


한국 역시 무협 영화가 제작되었다. 정창화 감독의 황혼의 검객(팔잘리는 것도 나온다)등등. 특히 홍콩 대만 무협영화가 인기를 끌때는 한국인들이 한국에서 중국옷입고 싸우는 무협영화들도 나왔다. 대표적인게 남기남 감독의 여자 대장장이... 다만 대부분 질적으로 수준이 낮고, 한복입고 싸우는 무협영화라서 그런지, 서구권의 인기는 별로다.

2.5. 중국


원래 무협의 고향인데다가, 거친 현실(문화대혁명이나 그외의 치안부재)때문인데다가 갖은 풍파를 견딘 사람들이 갈구하는 자극은 엄청난 거라서 굉장히 잔인하고 폭력적이다. 대만,홍콩 무협영화나 드라마들도 잔인하지만 중국 게 제일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중국 무협영화는 한국에 수입될때 사람이 두 동강나는 건 다 짤리기 때문에, 한국 TV로 보면 그런게 잘 안나오지만 대신 뭔가 스토리가 빠진 듯한 느낌이 날 것인데 그게 검열에 걸려서 그렇다. 실제 중국 뉴스나 신문을 보면 잔인한 영상도 검열같은거 안한다. 중국은 공산당의 나라여서 그런지 홍콩,대만,한국 무협영화와는 미묘하게 다른 가치관이 있다. 그래도 인구 십몇억에 공산국가여서 그런지 엄청난 인원과 소품,세트를 동원한다. 대표적인 게 황후화로 이 영화 병사들을 후방에 안 배치하고 다 기어들어가서 기습 한번에 전멸하는장면으로 유명(...)

2.6. 베트남


중국 무협 영화들의 영향을 받아 2010년대부터 베트남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베트남판 무협 영화가 나오고 있다.[6]영화나 사극 드라마 모두 시장 형성 태동기라 중국의 드라마 세트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7. 미국


많은 사람들의 편견과는 다르게 미국 할리우드 영화, 애니메이션 역시 무협물에 충분히 익숙하며 다양한 무협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70년대부터 이소룡과 홍콩영화들이 유행해서 무협적 기반을 닦았고 일본 찬바라 물 역시 크게 유행했다. 일본, 대만, 홍콩 배우들이 헐리우드에서 데뷔하는 일도 있었다, 그에 영향을 받은 미국 오리지날의 무협물도 많이 제작되었다.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지 못하는 질 낮은 작품[7] 도 있지만 동양적인 정수를 충분히 소화시켜서 재생산하는 훌륭한 작품도 많다. 대표적으로 가라데 키드, 쿵푸 판다, 와호장룡[8], 킬빌[9] 등등이 있다. 또 이소룡, 홍콩, 일본의 무협물과 액션물에서 큰 영감을 받아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격투씬, 스토리가 크나큰 영향을 받았다. 중국식의 판타지스러운 큰 규모의 무협물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무술이 등장하는 액션영화도 헐리우드에서 유행했는데 척 노리스, 스티븐 시걸, 장 클로드 반담 같은 배우들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3. 관련 항목


[1] 대취협을 보면 엔딩이 굉장히 썰렁하다. 이는 호금전의 완벽주의로 인하여 촬영 기간과 예산이 초과되자 제작자 런런쇼가 10일 이내 촬영을 마치지 않으면 감독을 바꾸겠다고 협박했고 결국 대리 감독이 얼렁뚱땅 영화를 완성시켜 개봉하여서 그렇다. 이후 호금전은 대만으로 건너가 활동을 한다.[2] 홍콩에서 2번째로 영화를 많이 감독한 감독이다.[3] 한국에서는 오히려 성룡폴리스 스토리의 악당 주도 등 그가 감독한 영화 자체보다는 배우로 널리 일려져있다.[4] 80년대 중후반 국내 비디오 대여점의 무협물들은 80년대 초반 대만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주요 배우들이 70년대 쇼브라더스 영화에 출연하던 홍콩배우들이 많았다[5] 상관영봉과 이미지가 상당히 비슷해서 혼돈하는 경우도 있는데 장령이 10살 어린 후배이고 키는 더 크다. 둥근 얼굴에 동그란 눈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또한 두 여배우 모두 눈매가 굉장히 매서운게 특징이다.[6] 후 레 왕조 초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Thiên mệnh anh hùng>(한국 개봉명 <황제암살단>) 같은 것.[7]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블록버스터 체인에는 흑인이 중국옷을 입고 중국인으로 나와서 무술을 하는 컬트적인 무협영화들도 전시되어 있었다[8] 대만 감독, 원작에 홍콩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엄연히 미국 제작사가 만든 미국 작품이다.[9] 오마쥬와 패러디가 가득한 액션영화지만 무협물의 서양화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다. 스토리만 봐도 전형적인 무협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