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엔탈리즘

 


Orientalism
1. 개요
2. 상세
3. 역사적 변천
4. 비동양권의 경우에
5. 사례
5.1. 문화권에 따른 사례
5.2. 요소
5.3. 작품
5.3.1. 캐릭터
6. 개념 오남용 문제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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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0년대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처음으로 지적한, '''서구 중심의 동양관'''[1]'''에 기초한 각종 담론'''들을 총칭하는 명칭.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하기 이전에는 주로 '동양학'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2. 상세


에드워드 사이드는 팔레스티나 출신이긴 하나 그 지역에서는 소수종교라 할 수 있는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복잡한 정체성이 서구인들의 편협함을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주로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드러내는 언설들을 정리했다. 저서의 핵심은 동양에 대한 서구의 지식은 현실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동양'의 여러 사회가 본질적으로 서로 닮아있으며 '서구'의 사회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선입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 선험적 지식이 '동양'을 '서양'의 안티테제로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 관계에는 '''힘'''이 작용한다.
예시:
  • 동양 사람들은 전부 머리가 새카맣고 눈이 째져 있으며 키가 작다.
→ 실제로는 가끔 자연적으로 갈색 머리도 나오고, 눈에 크게 안 띄어서 그렇지 고동색 계통도 상당히 많다. 평균 신장으로 따지면 남부 유럽은 한국과 별로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한국보다 작은 국가들도 있다. 게다가 눈도 타원 형태의 눈도 있고 쌍꺼풀 진한 눈도 있는 등 다양하다.
  • 특히 중국만을 염두에 두고 "중국인들은 전부 손톱이 길고 요사스럽게 생겼다"는 표현도 많다. 이를테면 푸 만추. 땡땡의 모험에서도 '동양인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잠깐 등장. 실제로 중국에서 땡땡이 만난 중국인들은 편견과는 다른 일상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 물론 악수가 배꼽 인사를 하는 것과 같이 완전히 같지는 않고 차이도 있다는 점도 묘사된다. 이는 전근대 중국의 왕족들이나 상류층들 사이에서 실제로 손톱을 길게 기르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태후의 손톱)
  • 동양 사람들은 권모술수에 능하다.
→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한 고대 로마 정치사를 보자.
→ 실제로는 중국의 난징 천주교난, 남명영력제의 가톨릭 공인 시도, 일본의 시마바라의 난카쿠레키리시탄 문화, 조선의 자생적 천주교 전래 등을 보면 오히려 옛날에도 서양과 같이 기독교 신자가 분명히 존재 했음을 알 수 있다. 2010년대 기준으로는 동양권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인구의 약 90%가 가톨릭이며,대한민국은 길거리에서 십자가 찾는게 어렵지 않을 정도로 교회들이 퍼져있으며, 국민의 60% 가량은 아예 무신론자. 오히려 유럽에서 기독교 신자들이 줄어드는 현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문화대혁명으로 종교를 갈아버렸다. 또한 그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인도의 경우도 이슬람교힌두교가 대부분의 인구를 차지한다.
'''흔히 말하는 '동양'을 깔보는 선입견이나 풍조가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 동양이라는 범주 자체가 오리엔탈리즘'''이다. 전혀 상관이 없는 수많은 제국을 서구의 입장에서 타자화해 동일한 담론으로 묶는 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의 기본 전제다. 따라서 사이드의 이 저서가 출간된 이후로는 '오리엔트'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단어가 되어 사장되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사장된 것은 아니며, 예전에 쓰던 명칭인 중동(Middle East)은 '지중해 입장에서의 용어'이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 주변의 국가들을 '오리엔트'라고 부르고 있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는 극동(Far East)이라고 불렸다. 현재에 와서는 아시아라든지 동양같은 단어가 거의 똑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서 아무 의미 없는 것 같지만.
즉 오리엔탈리즘은 단순히 '''서양의 동양에 대한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 등을 비난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며''' 서구가 동양을 인식하고 정의하고 묘사하고 연구하는 그 담론 전체를 아우르는 용어이다. 학문, 희곡, 회화, 문학 등 서구에서 생성된 담론에서 '서구가 동양을 인식하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다. 그러므로 비서구권 나라의 문화를 깔보는 서양인에게 '이런 오리엔탈리스트!'라고 일갈하는 식으로 써서는 안 된다.[2]
하지만 현실적으로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가 쓰이는 상당수는 '''문명화되고 우월한 서양에 비해 열등한 동양'''이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것이 대다수인것이 현실이다. 예외적이라면 불교, 힌두교나 그에 기반한 문화들은 평화주의적이고 물질문명에 찌든 서구사회에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주장이나 몇몇 공동체주의 성향 정치철학자들이 말하는 "동양권에는 서구권에서 잃어버린 덕과 정의가 살아있다"는 식의 주장들도 이런 '포지티브 오리엔탈리즘'의 예로 볼 수 있다. 오리엔탈리즘적 편견으로 지적되는 부정적 인식들 사이에도 대조적인 것들이 있어서 예를 들어, "동양인들은 비굴하고 소극적이며 겁이 많다." ↔ "동양인들은 잔인하고 무례하며 사기를 잘 친다." 류의 모순된 편견도 존재한다.
《오리엔탈리즘》에서는 주로 중동과 인도에 대한 서술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동과 인도를 제외한 비서구권에 대한 논의는 없으나, 이후 서구 근대의 비서구권에 대한 시각을 분석하는 데 유효한 이론으로 각광받고 있다.
오리엔탈리즘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는데, 짧게는 시누아즈리나 튀르크리에서 길게는 고대 그리스의 오리엔트에 대한 인식까지 그 기원을 소급할 수 있다. 그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역시 이질적인 것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 그리고 대상화이다.
근대 서구문명의 강력한 영향하에 남은 나머지, 비서구권도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을 자신에게 그대로 투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내재화된 오리엔탈리즘'적 언설로 소위 태평양 전쟁 시기 일본에서 외쳐진 구호인 '근대로의 초극(近代への超克: 동양의 정신문명으로 근대 서구의 물질문명을 극복하자라는 의미)'이 있다.
서구권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며, 작품에 따라 상당히 미묘하게 녹아있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동양의 신비성이나 이념을 강조하는 형태부터, 직접적으로 일본도를 든 사무라이나 때론 중국과 일본풍이 짬뽕된 닌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아시아 나라들 문화 차이 구분을 못 한다. 한국 사람이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문화 구별을 제대로 못 하는 것처럼.[3]
이러한 성향은 만화에서도 등장하는데 서구권에서는 영어식 이름이나 지명, 소재를 쓰는 만화 못지 않게 동양풍의 배경과 소재를 쓰는 만화도 인기를 끌고 있다. 동양풍 복장과 소재를 이용하는 드래곤볼, 나루토, 블리치등이 이 오리엔탈리즘과 맞아떨어져서 영미권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리엔탈리즘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이 쪽 계열의 학자들이 흔히 일으키는 문제이지만 이론의 검토 대상이 너무 방대하다 보니 사실문제를 정확히 검토하지 않고 논증에 활용하는 경우도 있어 설득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
동명의 저서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있다. 교보문고 출판, 영남대학교 박홍규 교수가 번역했다. 역주 및 역자의 후기 등에서 번역자 본인의 성향이 매우 강하게 드러난다.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다가 오히려 옥시덴탈리즘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건 뭐 그렇다쳐도 당시 브리지트 바르도의 개고기 식용 비판 논란에 번역자 혼자 흥분해서 번역 후기 및 의견에 개고기 예기만 잔뜩 써놓는 등 오늘날의 정서와 상당히 괴리되는 내용이 많으므로 주의할 것을 권한다. 게다가 번역자 본인이 정작 사이드가 방대하게 인용하고 있는 문예 작품에 대한 이해도는 턱없이 부족하여 문맥에 대한 부연 설명이 매우 부실하고 번역된 문장 또한 전혀 정제되지 않았다. 더더욱 역주가 사족으로 보일 여지가 커진다. 애초에 에드워드 사이드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인종차별과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인데, 국내에 이 책이 번역되었던 이유는 개고기 식문화 옹호다보니...

3. 역사적 변천


언급한대로 '오리엔탈리즘' 이라는 용어 자체는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의 저서가 기원이기는 하지만 서구의 동양학을 지칭하는 말은 그 전부터 있어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오리엔트를 저열하고 퇴폐한 전제군주정이라 멸시했을망정 야만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4] 당대부터 페르시아 제국은 수준높은 문명국이었고, 로마 제국 시절에도 파르티아, 사산 왕조는 야만국이 아니었으며 이들과 교류하던 유럽인들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중국에 대해서도 교역을 통해서 세리카(비단을 뜻하는 라틴어 sericum에 a[5]를 붙인것)[6] 등으로 부르며 잘 아는건 아니지만 저 멀리 그런곳이 있다는건 일단 알고는 있었다.
중세이슬람 제국 전성기에는 서구 유럽 문명은 대체로 이슬람 세력의 침략을 당하는 입장이었다. 십자군 전쟁, 레콘키스타, 시칠리아 탈환과 노르만의 알제리 정복 등의 반격도 있었으나 유럽 문명의 기원인 고대 로마의 영토인 팔레스티나, 북아프리카, 아나톨리아 등이 모두 이슬람 세력의 손에 넘어갔고, 오스만 제국 시절에는 동부 유럽이 모두 먹히고 중부 유럽까지 공격을 받았다. 중세 유럽인들도 예루살렘성지순례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이슬람 세력과의 교역, 포로생활, 십자군 전쟁, 레콘키스타, 시칠리아 탈환 과정에서 남겨진 이슬람 문명의 모습 등을 통해 이슬람 문명이 야만국이 아니라 유럽 문명 못지 않게 발달한 문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중세 유럽인들은 동양인들을 신심없는 이교도라고는 욕할지언정, 열등한 야만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중세까지만 해도 기독교적 가치관이 깊게 남아 있던 탓에 동방 문명을 상종못할 이교도라 볼 뿐이지 이들을 연구하고 관심의 대상으로는 보지 않았다.
다만, 저렇게 기독교의 위상이 높던 중세유럽에서도 이미 몇몇 편리해 보이는 문물은 이교도들인 아랍에서 받아들였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아라비아 숫자. 원래 인도기원이니 인도 숫자라 불러야겠지만, 유럽에서는 중동을 통해 들어왔으므로 아라비아 숫자(arabic number)라고 불린다. 아라비아 숫자는 1200년대 초반에 유럽에 들어왔으며, 중세 끄트머리인 1400년대 후반부터는 교회에서조차 아라비아 숫자를 썼고, 1500년대 중반부터는 일상생활에서도 로마 숫자를 거의 몰아내었다. 그밖에 물질적인 것들로 면직물(인도기원이지만), 시럽, 소다(음료수) 등등은 모두 중세에 중동에서 유럽에 들어왔으며 연금술과 거기서 이어지는 화학 역시 중동을 통해 도입되었다.
그런데 근세에 이르면 유럽에서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이슬람 세력은 더 이상 유럽에 위협이 아니었으며, 대항해시대의 개막으로 중동을 넘어 인도나 중국과도 교류하게 되면서 이들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다. 또 계몽주의의 발현으로 유럽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옅어짐에 따라 동양인들을 사악한 이교도들로 보는 관점에서 우리들(유럽)과는 또다른 문명을 가진 세계로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이 시점부터 유럽의 작가나 예술가들이 동양의 문화를 그들만의 시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동양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는 학자들도 나타났다. 당시 이들을 오리엔탈리스트(Orientalist)라고 불렀다.
이 시절 전 유럽에 걸쳐서 동양식 유행이 나타나게 된다. 중국풍이라고도 번역하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 터키풍의 튀르크리 등이 퍼졌으며 로코코 양식 전반에 동양적인 유행이 나타났다. 치펜델 양식(chippendale style)으로 불리는 중국식 가구 스타일이 널리 유행했으며, 중국산 도자기가 널리 쓰였고 아예 유럽인들이 우리도 중국풍 도자기 한 번 만들어보자해서 나온게 오늘날에도 유명한 본차이나 도자기이다. 건축양식에서는 영국의 로열 파빌리온, 프랑스 베르사유 궁의 트리아농궁 등 동양적 색채의 영향을 받은 건축물들이 널리 등장했으며, 동양식 파고다 스타일의 건축이 널리 쓰였다. 회화양식에서도 프랑수아 부셰, 크리스토프 위에 같은 동양적 화풍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 때의 오리엔탈리즘은 오히려 동양을 신비하고 환상적이며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오스만 제국데브시르메제도나 한자 문화권의 과거제도를 소개하며 '동양적 능력주의'는 근대적 국가를 지향하던 계몽주의자들이 여전히 유럽 사회 전반에 남아 있던 봉건제적 정치적 분화, 귀족 권력의 잔재 등을 비판하는데 전형적으로 쓰인 레퍼토리였을 정도.[7]
그러나 이 시기 서구가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른 문명을 대등하거나 우월한 상대로 간주했던 것이 아님을 유의해야 한다. 오스만과의 관계 변화에 따른 튀르크리의 발흥이 대변하듯이 당시의 오리엔탈리즘 열풍은 대항해시대의 개막 후 타 문명권에 대한 확고한 질적 우위를 점한 서구가 지구 방방곡곡을 탐험하며 외국의 신기하고 이질적인 문화적 컨텐츠를 즐긴 것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국처럼 타 문명을 오랑캐로 멸시하지는 않았지만 동경이나 열등감을 갖지도 않았고 오히려 흥미 본위의 연구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8]
그리고 18세기에 이르면 서구의 동양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다시 달라졌다. 산업 혁명 이후 유럽문명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패권문명이 되면서 제국주의 시대가 열려 비서구 각국이 유럽열강들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렇게 되자 이 때부터는 서양에서 비서구인들을 이론의 여지없이 열등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비판하는 식민주의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은 바로 이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즉,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 자기들의 우월함을 내새우기 위해 동양을 열등한 존재로 묘사했다는 것이다.
다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정의를 떠나서 원래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은 반드시 제국주의적인 시각에서 동양을 열등하게 바라보는 것만이 아니라, 서양이 동양에 인식하고 정의하는 시각 전반을 지침하는 말이라는 것은 위와 같다.

4. 비동양권의 경우에


오리엔트라는 말은 라틴어 ''oriens''에서 왔으며 oriens는 원래 '뜨다'를 의미한다. 물론 해가 뜨는 곳 즉 동쪽을 뜻한다. 오리엔탈리즘은 물론 동양 즉 아시아 문명에 대한 시각을 말한다. 그런데 백인우월주의적인 시각에서 타 문명을 낮추어 보는 경우에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남북 아메리카 원주민,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원주민, 오세아니아, 태평양 원주민들에 대한 시각은 원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애초에 이곳은 오리엔트도 아니고, 따라서 엄밀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도 성립할 수 없다. 지금도 영어의 오리엔탈리즘은 원칙적으로는 이들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럴때는 그냥 간단하게 '''인종차별'''이라고 부른다. 사실 유럽에서는 고대부터 교류하던 동양과는 달리 신대륙,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원주민들과 대등한 관계에서 교류한 적도 없고 인종주의가 타파되는 20세기 전까지는 아예 처음부터 열등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9] 이런 단어가 생겨날 여지도 없었다.
간단히 예를 들면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이 있다는 걸로 비판받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경우 "Indiana jones","Orientalism"으로 검색하면 학술 서적,문서, 언론기사도 수두룩하게 나온다. 물론 인디아나 존스는 4편을 제외하고는 동방이 배경이니[10] 오리엔탈리즘이 맞다. 300(영화) 같은 경우도 오리엔탈리즘 적이라며 비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역시 식민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 아포칼립토의 경우 "Apocalypto","Orientalism"으로는 학술 서적이나 언론 기사가 잘 나오질 않는다. 물론 "Apocalypto", "Racism"이라고 검색하면 숱하게 나온다. 오리엔탈리즘이 아니라고 해서 비판하지 않겠다는게 아니라 그냥 인종차별로 비판한다는 말이다. 다만, 원칙적으로 이렇다는 것이고 영어에서도 신대륙에 대해서도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주로 일반인들이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등에서 잘 모르고 쓰는 경우이지 학술적, 전문적으로는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5. 사례



5.1. 문화권에 따른 사례



5.2. 요소



5.2.1. 중동


명칭
튀르크리
페르소필리아
아라보필리아
  • 백인보다 어두운 피부색
북아프리카, 서아시아, 남아시아 지역의 거주민들은 인종적으로 코카소이드라 백인이다.[11] 그런데도 매체에서 그려질 땐 더 어두운 톤의 피부로 그려지거나 안면형태가 흑인과 유사하게 그려지는 것이 당연시되어왔고[12], 이 논리에 따라 예수는 중동인이니 백인이 아니라던지, 중동 캐릭터를 하얗게 그리면 화이트워싱이라는 잘못된 논란이 발생하기도 한다.
  • 미녀
서양인들의 중동 미녀에 대한 환상[13]과 오리엔탈리즘이 어우러져 탄생한 캐릭터들의 대표적인 예시. 단, 클레오파트라는 중동과는 무관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즉 그리스계 혈통이다. 원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혈통/문화는 매우 폐쇄적이어서 이집트의 전통적인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하지만 워낙 중동 미녀의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있다.
아랍 남성은 갈색 피부에 터번을 쓰고 호전적이고 호색적이며 아랍 여성은 니캅, 히잡을 쓰거나 아니면 밸리댄서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유목민으로만 묘사되고 있고 무슬림과 일치되고 있다.
무슬림을 아랍과 일치시키는 경향이 있고 통제할 수 없는 광신도로 묘사된다. 무슬림 여성은 항상 히잡을 쓰는 이미지이며 무슬림 남성은 터번에 무기를 들고 있는 이미지이다. 그리고 무슬림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무슬림 여성은 그런 무슬림 남성에게 핍박받는 불쌍한 존재로 묘사된다. 여기서 백인 구세주 신드롬이 현대에도 발생하고 있는데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보도하는 과정에서 보인다.#
서양인들은 오스만 제국의 하렘이 퇴폐적인 곳으로 상상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5.2.2. 이집트


명칭
이집토마니아

5.2.3. 인도


명칭
인도마니아 / 인디엔느

5.2.4. 중국


명칭
시누아즈리
이건 원래 메소포타미아에서 왔는데도 중국문화 취급이다. 무엇보다도 이탈리아 음식인 파스타부터가 국수다.

5.2.5. 일본


명칭
자포네스크 / 자포니즘
  • 닌자
  • 사무라이
  • 가라테
  • 레이키
  • 분재[14]
  • 스모
  • 스시
  • 벚꽃
  • 게이샤
  • 야마토 나데시코
  • 일본도
  • 저주인형
  • 하이쿠
  • 할복

5.2.6. 한국


위의 국가들과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기존의 전통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어느정도 전통문화가 서구권에 알려져 있는 중국, 일본, 인도등의 문화와 달리 한국 문화는 못해도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 초반에 이르어서야 알려지기 '''시작한''' 정도여서 전통적인 문화보다는 현대적인 문화의 지분이 상당히 크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인지 오리엔탈리즘적인 편견적 이미지가 비교적 옅은 축에 속하기는 한다. 예를 들자면 한류의 영향으로 위의 다른 나라들과는 또 다른 이미지가 생겨나고 있다.

5.2.7. 기타 요소


음식이나 복장 등, 어느 나라에나 있는 요소.
  • 복장
  • 음식
  • 예술
    • 대리석 조각상 - 본래 그리스-로마 조각상은 그 뒤에 안료로 색을 입힌 것이었지만, 르네상스 이전까지 발견했던 조각상들은 색이 바란 상태였기 때문에, 문명인(서양)은 색을 절제할 줄 안다고 생각했으며, 나중에 동방에서 발견된 색이 입혀진 조각상을 미개하고, 어린애들이나 좋아한다고 깠다.[15] 그 뿐만 아니라, 보관상태가 좋아 안료가 입혀진 채로 있던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상을 출토해서 안료까지 다 벗겨내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지기까지 했다. 이후 2000년대에 와서야 그리스-로마 시대의 조각상에 어떤 안료가 쓰였는지 연구가 이뤄졌지만, 연구자들이 종종 대안 우파의 협박을 받는다고 한다.[16]

5.3. 작품



5.3.1. 캐릭터



6. 개념 오남용 문제


본래대로라면 동양권에 대한 서구권 사람들의 좁은 식견에서 비롯된 과도한 신비화를 지적하는 개념이지만, 케이팝 가수들이 음악에 국악의 요소를 차용하거나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한복 패션을 선보이는 것을 '''서구권의 오리엔탈리즘 취향에 맞춘 것이 아니냐'''고 오히려 우리 쪽에서 문제 삼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서태지, 이정현 등 선례가 있었고, 정작 전통문화계에서는 전혀 문제 삼지 않아서 오히려 한국 사람들 절대 다수에게 프로불편러라고 비판받는 주장이다.
조금은 다른 사례이지만 오히려 한국에서 전통문화 요소 활용에 대해 과도하게 비판적인 경우가 많았다. 이는 한국 일반 대중들이 전통 문화에 대한 식견이 부족하다 보니, "나의 전통 문화는 이렇지 않다"라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이정현의 경우 비녀가 너무 커서 방송 금지를 당하기도 했는데, 민속학 전공자인 조희진은 <선비와 피어싱>이란 저서를 통해 방송국의 방침을 비판했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통념과는 달리 조선시대 선비들도 처음에는 피어싱을 하는 등, 지금 관점에선 매우 파격적인 패션을 즐겼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일러스트레이터 흑요석에 대한 논란을 들 수 있는데, 나름 고증을 철저히 한 일러스트를 기모노라고 비난을 해대는 일들이 인터넷상에서 횡행한다.
케이팝 가수들의 한복 패션을 정작 일부 자국인이 비판하는 것도 좁은 식견에서 비롯된 과도한 물어뜯기라 볼 수 있다.
또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방패를 내세우면서, 서구인에게 동양에 대한 학습을 과도하게 강요하는 문제도 있다.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한국인은 과연 서양을 깊이 있게 학습하고 있는가? 북미와 유럽 등으로 큼직하게 구분하는 정도면 그나마 양반이고 그냥 '서양=미국'으로 퉁치는 사람이 썩어넘치는 게 현실이다. 또한 일본산 서브컬처에서는 중세와 근대가 버무려진 시대를 배경으로 독일과 프랑스가 섞인 공간에서 영어와 독어가 섞인 이상한 이름을 쓰는 캐릭터들이 돌아다닌다(...) 물론 무식한건 자랑이 아니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든 문화권과 문화권의 관계에서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게 필요하지만, 그 기준을 서양인에게만 터무니 없이 올려잡는게 아닌지 반성해야 할 일이다.

7. 관련 문서



[1] 비서구권[2] 실제로 저런 상황을 마주하면 차라리 Racist(인종차별주의자) 라고 하는 편이 낫다. [3] 그나마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같은 네덜란드 문화권이고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은 같은 북게르만 문화권이라는 점에서 참작의 여지는 있다. 물론 이런 식의 구별을 하는 것도 유럽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 얘기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4] 대신 설화를 통해 그리스인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했다(...) 이건 이집트도 마찬가지.[5] Espania, Britannia, Italia, Croatia, Serbia, Romania 등 국가나 지명 뒤에 붙는 A.[6] 비단이 서양에 전래된 것은 고대 그리스 시절부터이며 로마 제국 시절에도 비단이 꽤 사용되었다. 참고로 영어의 Silk는 라틴어 sericum, 더 정확히는 라틴어 sericum의 기원인 고대 그리스어 sērikós가 기원이며 이것은 다시 중국어 絲(si, 실 사)에서 온 것이다. 폼페이 유적에서 중국제 비단 옷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발굴되기도 했다.[7] 우습게도 정작 실무 능력은 대학에서 교육받고 오랫동안 경력을 쌓은 서양 관료들이 훨씬 우수했다. 산업혁명 문서 참조.[8] 중국에 대해서는 아직 막연한 환상이 남아 있었지만, 이 시기 이미 서구는 이슬람과 인도를 후진적인 문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9] 바야돌리드 논쟁 등에서 보여지듯 그나마 양심적인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을 교화의 대상 정도로는 보았지만 자신들과 대등한 존재라고 여긴 적은 20세기 전까지 한 번도 없다. 북미에서는 힘이 약했던 초기 식민지 이주민들과 원주민들이 비교적 대등한 교역관계를 갖는 경우가 있었지만 유럽에서 대등한 존재로 여긴적은 한 번도 없었다.[10] 1편은 이집트, 2편은 인도, 3편은 터키(사실 주요 무대는 유럽 전역이다)[11] 남아시아 지역은 미국, 브라질처럼 다인종이다. 그러나 오리엔탈리스트들은 남아시아인 중에서 오스트랄로이드나 동아시아인(한중일) 같은 사람만 부각하고 있다.[12] 네덜란드의 화가인 Jan Lievens는 살라딘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인처럼 그렸다. 출처[13] 인도 미녀도 일부 일맥상통.[14] 중국에서 기원해 한국과 일본으로 전파되었지만 서양에서는 일본의 분재가 유명해 서양인들이 일본 문화 하면 떠올리는 주요 이미지로 각인됐다.[15] 색이 입혀진 채로 발굴된 네페르티티 얼굴상을 보자.[16] 실은 그리스-로마 시대는 색을 중시했다. 귀족과 왕족은 원색의 옷을 입었고, 노예는 색이 있는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당시 보라색이 너무 귀해서 보라색 옷을 입는 것은 황제의 특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