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염공
'''美髥公'''
삼국지는 물론 삼국지연의를 비롯한 창작물에 등장하는 관우의 별명 중 하나. 정사 관우전에서 관우는 수염이 아름다웠으며 이 때문에 제갈량이 관우를 염(髥)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에서 유래하는 별명이다.[1] 현대의 마초적 간지나 수염관리가 귀찮아서 기르게 되는 경우와 달리 고대에는 남자는 모두 수염을 기르는 것이 당연시하게 되던 사회였음에도 수염이 돋보였다는 내용을 보아 관우의 수염은 당대에도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이하의 설명은 연의에 의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하비성에서 주군이자 의형인 유비의 두 부인과 가솔을 데리고 항거하고 있던 관우. 하지만 두 부인의 안전도 안전이거니와, 조조 밑의 장수이지만 예전에 관우 덕분에 목숨을 건진[2] 장료의 진심어린 설득에 흔들리게 된다. 결국 관우는 세 가지 조건[3] 을 달고 조조에게 항복한다.
이후 조조는 관우를 계속 곁에 두기 위해 이런저런 계책을 쓰는 한편, 조정에 볼일이 있을 때도 관우를 대동하고 갔다. 그 때 헌제는 관우가 유 황숙[4] 의 의제임을 알고 그에게 관직을 내렸다.
겨울 즈음이 되자 관우는 계속 허도 내부의 저택에 살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승상부에서 조조를 만나 얘기를 하던 도중 미부인&감부인의 시종이 달려와 "두 마님께서 울고 계십니다"라고 하자 조조에게 일언반구 없이 곧장 저택으로 돌아갔다. 조조는 불쾌감이 들었지만 "오로지 충의만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저런 사람을 두고 싶다."라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곁에는 관우같은 신하가 있는가'를 스스로 생각해 봤지만 없다는 걸 깨닫자, 관우를 반드시 자신의 곁에 두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관우는 저택에 들어가서 두 부인에게 울고 있는 연유를 묻자, 두 부인은 "유현덕께서 함정에 빠져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필경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 걸 보면 해를 당하셨나 봅니다"라고 흐느꼈다. 이에 관우는 "형님을 너무 그리워하시다 보니까 그런 마음이 꿈에 나타난 것이다. 아직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다독였지만 자신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관우는 두 부인을 달래고 조조에게 돌아와 말도 없이 나갔다며 사과를 했지만, 조조는 관우의 눈물 자국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이에 관우가 솔직하게 두 부인의 이야기를 하니, 조조는 '유비를 잊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내 앞에서 유비 이야기를 꺼내다니 '라며 내심 불쾌하게 여겼다.
하지만 조조는 내색하지 않고 관우에게 술을 청하며 시름을 달래라고 했다. 하지만 술이 들어갈수록 관우는 더더욱 울적해지며 유비를 그리워하는 말을 했다. 조조는 다시 불쾌해졌지만 얘기의 방향을 돌렸다. "장군의 수염은 몇 개나 되오?" 관우가 몇 개인지는 모르나 묵은 게 수두룩 빠지기도 한다는 식으로 웃으며 대답하자 조조도 웃으면서 "장군처럼 술이 들어가도 수염이 더욱 빛나는 것 같소. 지금은 겨울이라 수염이 상할 테니 내 비단 주머니를 마련해 드리겠소."라고 했다.
조조는 약속대로 관우에게 비단 주머니를 마련해 주고, 평소대로 관우를 데리고 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헌제가 업무를 보다가 관우의 가슴에 달린 주머니를 보고 그게 뭐냐고 묻자, 관우는 그 주머니를 달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주머니를 끌렀다. 그러자 수염이 길게 빠져나와 허리춤까지 닿았다. 그걸 보자 헌제도 기뻐하며 "실로 아름다운 수염이다. '''그대야말로 미염공이다.'''"라고 했다.
-김홍신 평역판 삼국지 발췌
1. 개요
삼국지는 물론 삼국지연의를 비롯한 창작물에 등장하는 관우의 별명 중 하나. 정사 관우전에서 관우는 수염이 아름다웠으며 이 때문에 제갈량이 관우를 염(髥)이라고 불렀다는 기록에서 유래하는 별명이다.[1] 현대의 마초적 간지나 수염관리가 귀찮아서 기르게 되는 경우와 달리 고대에는 남자는 모두 수염을 기르는 것이 당연시하게 되던 사회였음에도 수염이 돋보였다는 내용을 보아 관우의 수염은 당대에도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이하의 설명은 연의에 의거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2. 유래
하비성에서 주군이자 의형인 유비의 두 부인과 가솔을 데리고 항거하고 있던 관우. 하지만 두 부인의 안전도 안전이거니와, 조조 밑의 장수이지만 예전에 관우 덕분에 목숨을 건진[2] 장료의 진심어린 설득에 흔들리게 된다. 결국 관우는 세 가지 조건[3] 을 달고 조조에게 항복한다.
이후 조조는 관우를 계속 곁에 두기 위해 이런저런 계책을 쓰는 한편, 조정에 볼일이 있을 때도 관우를 대동하고 갔다. 그 때 헌제는 관우가 유 황숙[4] 의 의제임을 알고 그에게 관직을 내렸다.
겨울 즈음이 되자 관우는 계속 허도 내부의 저택에 살면서 생활하고 있었는데, 승상부에서 조조를 만나 얘기를 하던 도중 미부인&감부인의 시종이 달려와 "두 마님께서 울고 계십니다"라고 하자 조조에게 일언반구 없이 곧장 저택으로 돌아갔다. 조조는 불쾌감이 들었지만 "오로지 충의만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저런 사람을 두고 싶다."라며 감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곁에는 관우같은 신하가 있는가'를 스스로 생각해 봤지만 없다는 걸 깨닫자, 관우를 반드시 자신의 곁에 두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관우는 저택에 들어가서 두 부인에게 울고 있는 연유를 묻자, 두 부인은 "유현덕께서 함정에 빠져 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필경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는 걸 보면 해를 당하셨나 봅니다"라고 흐느꼈다. 이에 관우는 "형님을 너무 그리워하시다 보니까 그런 마음이 꿈에 나타난 것이다. 아직 더 기다려 봐야 한다."고 다독였지만 자신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관우는 두 부인을 달래고 조조에게 돌아와 말도 없이 나갔다며 사과를 했지만, 조조는 관우의 눈물 자국을 보고 이유를 물었다. 이에 관우가 솔직하게 두 부인의 이야기를 하니, 조조는 '유비를 잊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내 앞에서 유비 이야기를 꺼내다니 '라며 내심 불쾌하게 여겼다.
하지만 조조는 내색하지 않고 관우에게 술을 청하며 시름을 달래라고 했다. 하지만 술이 들어갈수록 관우는 더더욱 울적해지며 유비를 그리워하는 말을 했다. 조조는 다시 불쾌해졌지만 얘기의 방향을 돌렸다. "장군의 수염은 몇 개나 되오?" 관우가 몇 개인지는 모르나 묵은 게 수두룩 빠지기도 한다는 식으로 웃으며 대답하자 조조도 웃으면서 "장군처럼 술이 들어가도 수염이 더욱 빛나는 것 같소. 지금은 겨울이라 수염이 상할 테니 내 비단 주머니를 마련해 드리겠소."라고 했다.
조조는 약속대로 관우에게 비단 주머니를 마련해 주고, 평소대로 관우를 데리고 조정에 들어갔다. 이에 헌제가 업무를 보다가 관우의 가슴에 달린 주머니를 보고 그게 뭐냐고 묻자, 관우는 그 주머니를 달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주머니를 끌렀다. 그러자 수염이 길게 빠져나와 허리춤까지 닿았다. 그걸 보자 헌제도 기뻐하며 "실로 아름다운 수염이다. '''그대야말로 미염공이다.'''"라고 했다.
-김홍신 평역판 삼국지 발췌
3. 관우와 미염공에 관련된 내용들
- 조조가 관우에게 적토마를 선물할 때 관우를 불렀던 호칭도 미염공이었다.
- 또한 나중에 마초가 유비의 산하로 들어오자 유비에게 마초와 한 번 싸우게 해달라고 편지를 보내자, 제갈량이 유비를 대신해서 답장을 보낸 적이 있었다. 이 때도 미염공이란 표현을 쓴 적이 있으며 정사 삼국지에서도 언급된 바 있다. 이때 제갈량은 관우에게 "(전략) 익덕과 견준다면 앞을 다투겠지만, 염(미염공의 약칭)에게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답장을 했다.
4. 기타
- 태사자는 정사 삼국지에 키가 7척 7촌에 수염이 아름다웠다는 기록이 나온다.
- 수호지에서는 주동이 미염공 별호를 선점하는 바람에 정작 관우의 후예로 설정되어 외모도 관우 판박이(붉은 얼굴, 아름다운 수염, 청룡언월도)로 묘사되는 관승의 별호는 평범하게 "대도"(大刀). 싱크로율만 놓고 따지면 관승 쪽이 훨씬 관우에 가깝고 주동은 무예보다는 인품이 돋보이는 캐릭터다.
- 고려시대 정중부의 수염이 탐스럽고 길어서 여기에 비교되기도 했다고. 그러나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을 촛불로 태워먹으면서 이후 보현원 사건에 정중부가 발벗고 나서는 빌미 중 하나가 된다.
- 그 외 몽골 제국에 쫓겨 고려에 침공한 거란족 유민과의 전쟁(강동의 역)에서 활약한 고려의 장군 김취려도 수염이 배 아래까지 내려왔을 정도로 길어서 예복을 입을 때마다 두 명의 여종들에게 수염을 나눠들게 한 후 허리띠를 메었다고 한다. 당시 몽골군의 사령관이었던 카치운[5] 이 김취려의 풍채와 긴 수염을 기이하게 여겨 나이를 묻고는 형으로 모시며 후대했다는 이야기도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5. 현대 창작물
- 서브컬처에서 미소녀로 TS될 때에는 수염을 붙일 수 없으므로 대신 엄청나게 길다란 머리카락을 달고 나오게 되는데, 이에 발맞춰 별명 또한 미발공(美髮公)으로 변경된다. 이걸 공식화한 것이 바로 일기당천에 등장하는 관우와 연희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이샤.[6]
6. 같이보기
[1] 참고로 관우는 제갈량이 자신을 염이라고 부른 편지를 들고 다니며 빈객들에게 자랑했다고 한다(...). 고우영 삼국지 등의 영향으로 라이벌 이미지가 퍼져 있는 관우와 제갈량이 실제로는 상당히 친밀한 관계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 사대부를 멸시했다는 기록이 있는 관우가 거의 자기 아들 뻘인 선비가 별명으로 자신을 부르는 것을 허락을 넘어서 기뻐했다.[2] 한때 여포 밑에서 일하다가 여포 사후 참수될 위기에 처했지만, 관우와 유비가 조조 옆에서 간언을 해준 덕분에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이 두 경우 모두 무대가 하비성이며 상대방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설득하는 역할이 뒤바뀌었다.[3] 조 승상이 아닌 한나라에게만 항복하겠다, 의형 유비의 봉록을 두 부인에게 내려달라, 형 유비의 소재지가 파악되는 대로 즉시 떠나겠다. 핵심은 세 번째라는 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4] 동승의 주도로 조조 살해 계획이 일어나기 이전에, 유비가 여포에게 쫓겨 장비&관우를 데리고 조조에게 투항했을 때 유비의 조상을 조사하여 '황제의 아저씨(숙부)'란 별명을 붙여주었다.[5] 고려사나 고려시대를 다룬 대중역사서에서는 주로 '합진(哈眞)'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칭기즈 칸의 동생 중에도 카치운이 있지만 그와는 동명이인이다.[6] 진삼국무쌍 7과 8에 등장하는 관은병도 관우의 딸임을 어필하기 위해 검고 긴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가진 미소녀로 나온다.